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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신처분, 시저스 리제

티타니아가 오베로니아의 심장을 찌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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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 또각 하는 또렷한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방주 근처에 여러 종류의 업소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오르카호와는 다른 취침환경을 위한 숙박시설도 세워졌다. 사령관 역시 이 곳을 임시 관사로써 쓰고 있었다. 시설의 공평한 제공을 위해 최대 이틀까지 숙박을 할 수 있게 했지만 사령관을 포함한 몇 명의 바이오로이드는 예외였다.

 

나야, 문 열어”

 

문 너머에서 들리는 가녀린 목소리에 어린아이 같은 발랄함이나 청초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을 읽기 힘든 무미건조함이 문 너머에서 들린다. 평소라면 사령관은 찾아온 바이오로이드를 돌려보냈겠지만, 그것이 티타니아라고 한다면 어느정도 고민이 필요했다.

 

누구야?”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허리를 쭉 늘리며 기지개를 켠 스파토이아가 문 앞에 서있는 사령관쪽을 바라본다. 멀뚱히 침대에 앉아있는 스파토이아에겐 문 밖의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은 듯 했다.

 

티타니아, 무슨 일이야?”

나와”

급한 일 아니면 조금 이따 얘기하면 안될까? 정오까지는 스파토이아랑 데이트 약속이…”

열어”

 

티타니아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서리가 낀다. 차라리 전장의 한가운데라면 좀 더 올바른 판단이 설 것 같았는데, 이런 일상 속에서 무엇이 더 옳은지 판단하려니 두 사람의 눈치가 너무 보인다. 문고리를 틀어쥔 사령관은 흘끗 스파토이아를 바라본다.

 

여흐어어허…흐어어…답지않게 눈치를 보고 그래”

 

하품하며 낸 앞의 두 소리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문맥을 보아하니 열어도 된다는 신호인 듯 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사령관이 문고리를 돌린다. 어쩐지 문고리를 쥔 손이 얼얼하게 느껴진다.

자신보다 한 뼘 아래의 높이에 티타니아의 눈이 위치한다. 방주에 와서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이나마 열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진 거의 소 닭 보듯 하던 티타니아가 대뜸 급하다며 문을 열라고 하다니, 방주에 온 뒤로 티타니아가 탈주한 이래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긍정적인 이벤트라면 좋으련만, 티타니아의 건조한 표정을 보니 헛된 희망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속 편한 스파토이아만 티타니아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다시 침대에 드러눕는다.

 

들어와…괜찮지?”

응”

아니, 지금 수복실로 가”

어?”

 

몸을 틀고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사령관이 무안하게 티타니아는 문 밖에서 사령관을 재촉한다.

 

수복실?”

드리아드, 아파. 엘리자베스가 수복실에서 전화했어”

뭐?”

 

계속해서 캐묻는 남자의 태도가 짜증난 듯 티타니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밝은 이슈는 아닐거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머릿속이 텅 하고 비는 느낌이다. 상황을 자세히는 몰라도 급하게 찾아올 만큼 아프면 리제가 보고서를 올렸을테고, 그걸 받은 부관인 바닐라가 자신에게 알려주었을텐데, 어쩌다 이런 누락이 생긴걸까? 드리아드는 얼마나 아프길래 다른 사람도 아닌 티타니아가 이렇게 찾아온 걸까 사령관의 머릿속엔 꼬리를 물고 의문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어제 드리아드를 봤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아프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약간 침울해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체적으로 큰 결함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 그런걸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프다면 일단 가서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했다. 리제와 다프네라면 분명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했을테지만, 사령관이자 주인으로써 현황을 파악해야했다.

 

하아…스파토이아, 진짜 미안한데”

가, 뭘 그런걸로 미안해 해”

 

침대에 누워 속 편하게 둘의 대화를 듣고있던 스파토이아가 씩 웃으며 사령관을 배웅한다. 일부러 미안함 갖지 말라는 듯, 일상적인 일인 것 마냥 침대에 편히 누워서 대답한다.

 

미안, 남은 3시간은 키핑해줘”

그럼 내일 밤에 써야지”

 

옷도 제대로 여미지 못한 사령관이 티타니아를 지나 복도를 걷기 시작한다. 터벅터벅 들리는 발소리가 복도에 무겁게 울린다. 멈춰있던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남자를 티타니아가 잠시 바라본다.

 

미안”

응?”

 

사령관이 방을 비우자 그제서야 방 안으로 들어간 티타니아가 스파토이아를 바라보며 사과한다. 사과하는 표정치고는 눈빛에 어린 살기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스파토이아도 어렴풋이 그것이 티타니아의 본심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페어리라는 부대를 잘 알지는 못해도 자기 눈 앞에 서있는 티타니아라는 바이오로이드가 항상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어서 감정표현이 망가져버렸단 것 정도는 들었다.

 

아니 뭐, 동생 문제라며”

 

티타니아를 눈 앞에 두고도 스파토이아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말을 건넨다.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바이오로이드에게는 살갑게 말 붙이는 것도 난감한 존재였지만 선입견이 없달지 관심이 없달지, 티타니아를 잘 모르는 스파토이아에겐 상시 통증을 달고 사는 바이오로이드 정도였다.

 

나도 동생이 있으니까, 아프다면 바로 뛰쳐들어올만 하지…보자, 그쪽 동생이…그 부끄럼 많이 타는 친구랑, 조용한 아가씨랑, 코코랑 같이 다니는 친구랑, 그…하여튼 머리 땋고 다니는 애까지 넷인가?”

엘리자베스, 다프네, 드리아드, 아쿠아”

이름은 다 아는데 뭔가 이미지란게 있잖아”

 

능청스레 웃으며 페어리의 기종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그러는 그쪽은”

내 동생? 하나, 아니 둘. 봤을텐데? 코코라고 쪼끄맣고 머리 보라색인애랑, 후사르라고 이상한 말 하는애”

 

도란도란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동생이라는 코드가 맞아서인지 티타니아와 스파토이아의 대화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진다.

 

리제는 사령관님에게 방금 상황 요약해서 보고서 올려주고, 다프네는 수복실 정리 좀 부탁해”

 

혼자서는 리제와 드리아드 모두를 당해낼 여력이 없던 다프네가 급히 호출한 레아가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리제는 간만에 분노로 흥분한 탓인지 심장박동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심호흡과 함께 리제는 사무실로 들어가고, 레아는 드리아드와 함께 수복실 밖으로 걸어나간다. 두 손을 꼭 모은 드리아드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레아보다 한 걸음 뒤로 걷는다.

 

왜, 속상해?”

 

레아는 드리아드의 허리춤에 손을 넣어 끌어안는다. 가슴과 가슴이 엉겨붙는다. 한참을 울었던 드리아드의 몸에 언니의 온화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복도에서 걷던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잠시 멎는다. 인원이 많이 빠져 조용한 오르카호에 잠시 완전한 적막이 흐른다.

 

주인님이 너를 잊었을까봐서?”

 

드리아드를 정면에서 마주한 레아가 드리아드의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훔친다. 눈물을 닦아내자 빨갛게 달아오른 볼과 부은 눈이 고스란히 보인다. 레아는 포근한 미소로 드리아드를 응시한다.

 

언니가 꼭 전해줄게, 너가 주인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보리를 재배해서, 술을 담그고, 전해주려했는지, 꼭 전해줄게”

주인님이, 좋아해주실까요?”

그럼, 언니가 아는 주인님이라면 분명 좋아해주실거야”

 

레아는 드리아드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통하게 할 수 있는 자세였다.

 

지금은 그동안 전투에 많이 참여했던 다른 부대원들을 신경써주시니까 어쩔 수 없지만, 방주에서의 생활도 정리하고 다른 거점으로 가면 그땐 꼭 우리 자매들 모두…주인님이랑 피크닉가자”

 

자신을 끌어안은 레아의 몸이 조금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드리아드는 레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레아가 아무리 지휘관기라고 해도 언니에게 그런 권한까지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레아가 자신을 속이려는 의도가 없단 것도 알 수 있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자세 탓일까,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조금 짧구만

다음편에 뭔가 이것저것 담으려하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