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년이 지난 일이다. 내가 아이돌로 데뷔하여 안전모를 벗고자 했을 때였다.

안전모와 쓰레기통을 반납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령실에 들려야 했기에 사령실에 들어가자

사령관이 자원런 덱을 깎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반납하는 안전모와 쓰레기통을 무시하고 아이돌 의상을 주지 않았다.


"이제 좀 주면 안될까?"

"아이돌 의상 어련히 줄까 봐? 계속 조르면 안 줄거야."


이 철충은 왜 또 이러는가. 결국 재촉하지 못하고 알아서 잘 달라고 부탁만 했다.

그러나 그는 커피만을 훌쩍이며 느긋하게 덱을 계속 깎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말은 그래도 쉽게 주겠거니 했는데, 슬슬 무대 시간이 다가와도 의상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며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 저 정도면 충분하거늘, 자꾸만 그는 시간을 끌고 있었다.


"무대가 늦으니 이제 줘."


라고 운을 떼니,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무대 시간은 내가 조정할 수 있다니까. 재촉한다고 줄 것 같아?"


라며 의상을 도로 집어넣는 것 아니겠는가. 하도 기가 막혀서 나는 그에게 최대한 점잖게,

그러나 확실하게 언성을 높였다.


"아니, 자원 줍고 오라길레 주워왔고, 무대 뛰라길레 뛰러 가겠다니까 뭘 더 하란 말이야? 사령관, 참 고집불통이네.. 무대 시간에 늦는 다니까?"


그러나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럼 의상 없이 무대 뛰던가! 난 이거 못 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지금까지 기껏 기다렸는데 그냥 나갈 수도 없고, 어차피 무대 시간은

도저히 늦겠다 싶으면 늦춰줄 수 있다고 했으니 이제 될 대로 되라며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사령관 마음대로 해."

"아니 글쎼, 재촉하면 점점 더 늦어진다니까. 이런 걸 주는 게 사령관 마음이지, 재촉한다고 되나."


조금은 누그러진 말씨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상을 무릎에 올려놓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도 그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뻐끔뻐끔 눈이 따가운 매연을 뿜어내고는

이제야 다 됐다며 의상을 건네주었다.


사실 그 유명한 오드리가 직접 제작한 것이니 이미 완성도는 충분한 무대 의상이었다.

결국 무대 시간이 조금 늦춰지고 만 나로써는 불쾌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저렇게 꼬장을 부려도 결국 그는 최후의 인간이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덱을 깎는 모습이

멋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무뚝뚝한 사령관이다.'


라고 생각하며 짜증을 삼켰다. 방 문을 나서기 전 슬며시 그를 돌아보니, 그는 이벤트 지역 재화런 덱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바라보고 있는 그의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공포스럽게 보였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철충 커스텀이 섞인 피부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거지런에 대한 공포와 트라우마가 증폭된 셈이다.


숙소에 돌아와 의상을 보였더니, 전대장이 우리들이 드디어 무대에 선다며 야단이다.

매일같이 혹독한 거지런으로 팔려가는 것 보다야 좋다는 것이다. 사실 내 입장에선 철야 거지런이나

이런 무대나 별 다를 것 없이 느껴졌다.


그런데 전대장이 말하길, 거지런에 나가면 초췌한 눈빛에 잔뜩 낀 다크서클 때문에 시체와 같았지만,

무대에 나가려는 내 모습은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단다.


나는 짜증이 조금 났다. 그리고 사령관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드리아드가 불쌍하네.'



별밤 아이돌 무대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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