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척 봐도 두꺼운 철판으로 덕지덕지 도배된 장갑차 한 대가 AGS 군대의 선두에 서서 황무지가 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펙스 콘소시엄의 고위임원을 위해 특수제작된 장갑차인 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방호력을 지녔기에 AGS 군대까지 호위로 거느리는 건 과잉보호같아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그 안에 타고있는 탑승자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AI가 운전하는 자동운전 차량인지라 탑승자는 단 둘 뿐이었다. 현재 펙스 세력 중 가장 높은 인물과, 펙스에 있어 가장 가치있다고 할 수 있는 포로, 바로 레모네이드 오메가와 오르카호의 사령관이었다. 평범하게 안전벨트를 맨 오메가와는 달리 그녀의 반대쪽 좌석에 앉아있는 사령관은 하나도 아닌 여러 겹의 안전벨트가 그의 몸통을 가로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지금 차고있는 수갑에까지 연결되서 그야말로 포승줄에 결박된 신세였다.


"목숨구걸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고분고분한걸요. 제 본부에 도착하기까진 시간이 좀 남았는데, 얘기나 좀 나눠볼까요?"


"..."


오메가는 반대편에 과묵히 앉아있는 사령관을 마주보며 말을 꺼냈다. 허나 사령관은 입에 재갈을 문 것도 아닌데도 묵묵답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희들이 제 본진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


"우선 신속의 칸, 그 여자의 전투력은 쓸만할테니 세뇌시켜서 병사로 써먹을 계획입니다. 당신도 기억하실테죠? 괌에 있던 바이오로이드 무리한테 사용했었던 세뇌 귀고리. 그 장치를 더욱 연구해서 칸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할 수 있게 된다면 바이오로이드 세뇌 실험은 완성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은 삼안의 바이오로이드 제작 비법과 오리진더스트를 전부 쏟아부어 만든 물건인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고있죠. 그녀는 유전자 지도를 분석해서 새로운 종류의 마리오네트 병사를 양산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될 겁니다. 


그리고 사령관, 당신은 도착하는대로 실험대 위에 올라가게 될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 휩노스 병을 치료한 건지 밝혀내기 위해, 어떠한 생체실험도 서슴치 않을 겁니다."


"..."


그녀는 다른 차량으로 호송중인 라비아타와 칸을 들먹여가며 사령관을 겁주려했으나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자 이번엔 다른 곳을 찔러보기로 했다.


"이제 당신이 죽고나면 그 오르카라는 무리는 얼마못가 와해되겠죠. 더이상 당신들이 저희 펙스를 방해할 일은 없을겁니다."


"...여기서 나를 죽인다 해도, 오르카는 끝나지 않아. 아직-"


"두번째 인간이 남아있다고요?"


드디어 사령관이 입을 열자 오메가는 작게 한번 웃은 뒤 말을 이었다.


"당신, 설마 그 두번째 인간이 무사히 오르카호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무슨 말이야."


"그 인간, 또 제가 자리를 비운 본진에 기어들어갔더군요. 당신한테 병력을 집중시킨 사이 꽁무니 뺄 줄 알았는데 제 발로 돌아올 줄이야... 자기 나름대로 당신을 구하려고 했던 걸까요?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레모네이드 감마를 시켜 제 본진을 지키게 했으니 지금쯤 그 인간도 잡혀있겠네요."


"뭐...!?"


"살아있는 인간을 두 명이나 잡았으니 오늘을 무슨 기념일로 정해야 겠는걸요? 당신을 실험쥐로 써도 갖고 놀 장난감 한 마리가 남아있다니... 후후훗, 델타한테 재밌는 고문 방법이라도 물어봐야겠어요."


사령관은 감마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으나 그녀가 가진 힘과 위험성을 잘 알고있었다. 부사령관과 그 휘하의 바이오로이드 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인 만큼 부사령관이 무사히 도망칠 가능성은 희박하리라 생각했다. 계속 무표정을 유지하던 사령관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오르자 반대로 오메가의 얼굴엔 희열감이 떠올랐다.


허나 사령관이 느낀 당혹감도, 오메가도 느낀 희열감도, 전부 추측에서 비록된 것일 뿐. 유미의 공작으로 본부에서의 경보가 전달되지 않았는데다, 감마의 능력을 믿고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한 덕에 굳이 본진이 무사한지 확인해보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오메가는 자신의 본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메가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점차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덧씌워지는 사령관의 표정을 보며 편히 쉬려하던 때에 그녀가 옆자리에 놔둔 휴대용 패널에 바깥에 있는 AGS가 보낸 경보 알림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확인하기 위해 팔을 뻗어 패널을 집으려던 찰나, 그들이 타고있는 차가 무언가에 쾅 부딪혀 갑작스레 멈추고, 오메가는 그 충격으로 몸이 휘청했다.


조금전과는 달리 사령관과 오메가 둘 다 당황한 상황. 지금 그들이 타고있는 장갑차는 어지간한 건물의 벽이나 장애물은 부수며 진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대체 무엇이 그 차를 막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메가가 패널을 주워들어 화면을 키자 신원미상자 셋이 빠른 속도로 저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보고를 뒤늦게 읽을 수 있었다.


그 다음 장갑차의 전면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바깥을 보자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던 차에 무엇이 부딪혔냐는 의문이 순식간에 다른 의문으로 채워졌다. '저 녀석이 어떻게 여기에?' 라는 의문으로.



*



우릴 밀어버릴 기세로 달려들던 장갑차는 리리스가 로자 아줄로 만든 반투명한 방어막에 부딪혀 앞면이 찌그러진 채로 멈췄다. 역시 교통사고 따위는 그냥 막는구나. 그 차의 뒤에 있는 끝이 안보이는 AGS떼는 발포하지 않고 경계테세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 차가 확실하지?"


"네... 펙스 간부들이 쓰려고 주문제작한 VIP용 장갑차... 오메가는 분명 이 안에..."


"그리고 주인님도요. 그 분의 뇌파가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유미와 리리스를 통해 확인을 마친 나는 안에 들어있는 오메가를 끌어내기 위해 소리쳤다.


"차에서 내려, 오메가!"


그러자 몇 초 지나지 않아 차문이 열리더니 정말로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저 안에 사령관도 있는 모양이나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오메가가 차문을 닫아버렸다. 그나저나 진짜 나올줄은 몰랐는데, 지금 세 명밖에 없어서 얕보는 건가? 셋이라 한들 여기 블랙 리리스도 있는데.


그치만 사실 리리스는 우리와 같이왔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긴 하다. 리리스가 지 주인 구하겠답시고 멋대로 방어막 풀고 뛰쳐나가는 순간 나랑 유미는 집중포화 맞고 가루도 안남을 테니까. 오메가 휘하의 AGS들이 우릴 향해 포구를 조준한 채로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교착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오메가도 그 사실을 알고있기에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며 허리에 한 손을 올렸다.



"이거 참 놀랍군요, 아직까지 두 다리로 서있을 줄이야. 일단 직접 대면한 건 처음이니 간단한 인사정도는 드리죠. 반갑습니다, 오르카의 부사령관님."


"안녕. 노처녀."


"하, 또 시작이군."


허리를 숙이긴 커녕 꼿꼿하게 편 채로 건네는 인사에 바로 인신공격을 박았지만 오메가는 지겹다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오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비루한 꼴을 보아하니 레모네이드 감마한테 일행을 전부 잃고 셋만 겨우 도망친 모양이군요. 차라리 그 때 오르카호로 도망쳤다면 텅 빈 사령관 자리에 앉고 저한테 고마워했을텐데. 뭘 믿고 제 앞에 나타난 거죠?"


"흠,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무슨 말이죠?"


"곧 알게될거야."


"허세부리지 말고 용건이나 말하시죠. 제 차를 멈춰세우면서까지 제 화를 돋구는 이유가 뭔지 참 궁금하거든요. 혹시 제게 저 더러운 배신자년을 바치려고 오셨나요?"


오메가가 살짝 짜증을 내며 유미를 쏘아보자 유미는 움찔하며 리리스의 뒤로 숨으려고 했다, 그러나 주먹을 꽉 진 채 내 앞으로 나오더니 내가 말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유미는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오메가와 시선을 마주한 채 말을 계속했다.


"저는... 더이상 당신이 두렵지 않아요...!"


그녀의 인생 단 한번도 말할수도 없었고,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터인 그 한 문장을 끝까지 말하자 여태껏 오만한 미소를 유지하던 오메가의 표정에 금이 갔다. 그녀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지자 반대로 나는 씩 웃음이 나왔다.


"히히, 말 잘했다 유미."


이쯤되면 적당히 시간을 끌었을거라 생각한 나는 그녀가 바라는대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메가! 좋은 말로 할 때 사령관을 내놓아라!"


데자뷰가 느껴지는 상황. 저번 난민 호송 작전 막바지에 오메가의 군세가 난입하자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이런 대사를 외쳤었다. 

압도적인 전력차를 눈앞에 두고도 큰소리치는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오메가는 나를 깔보는 듯한 시선과 함께 저번과 같은 답을 들려줬다.


"만약 거절하겠다면요?"


그 때 귓가에 시끄러운 바이크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애니와 히루메, 오렌지에이드가 타고있는 바이크가 우리 옆에 서고, 날아오던 트레저와 포트리스 또한 우리 양 옆에 요란하게 착지했다. 마지막으로 리디아와 하이에나를 양 어깨에 태운 알바트로스가 천천히 내려오는걸 확인한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번과는 다른 대답을. 



"안그러면 이 늙은이가 들어있는 관짝을 확 열고싶어질 것 같거든."


그리고 알바트로스가 손에 들고있는 동면포드를 본 순간,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더이상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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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인질극이라니, 너무 비겁하다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