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 호가 있는 세계로 건너온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아더를 제일 성가시게 한 존재는 어쩌면 트릭스터일지도 몰랐다.

비록 자외선 탐지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모습이 보였으나, 그렇다고 쉽게 당해줄 존재는 아니었다.


섬의 심층부에 자리잡은 철충 병력 사이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아더의 목을 노리는 트릭스터의 행동과, 아더와 더치에게 총구를 겨누는 철충들 속에서 아더는 도저히 트릭스터를 공격할 틈을 찾을 수 없었다.


"젠장...."


아더는 계속해서 몰려오는 칙들의 사격 속에서 소총의 탄창을 갈아끼웠다. 

비록 심층부에 자리잡은 철충들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해도, 트릭스터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에게도 큰 무리가 있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더치는 조명탄을 꺼내들고는 메고 있던 폭탄 가방끈을 단단히 고쳐맸다.


"사령관, 내가 칙들의 시선을 돌려볼게."


"더치? 지금 뭐하는 거야. 내 곁에 붙어 있으라 했잖아!"


"칙들의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 트릭스터를 죽일 수도 없어. 적어도 이 곳을 잘 아는 내가 맡아야 할 일이야.


"...더치,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그러니..."


"다른 방법은 없어, 사령관."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더치는 곧바로 엄폐물을 벗어나 칙들의 사격 속에서 고치들 사이에 타이머가 설정된 폭탄 드론들을 심어놓으며 분주히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총격 사이에 넘어질 뻔 했지만 더치는 계속해서 달려나갔고, 곧 격발되는 소리와 함께 철충들이 잠들어 있던 고치가 불길 속에서 갈갈이 찢겨나갔다.


"더치!!"


"이 멍청한 놈들! 저 쥐새끼가 고치들을 파괴하고 있잖아! 가서 죽여! 찢어죽이란 말이다!"


어둠 속에서 트릭스터의 노기 섞인 고함이 들려왔고, 칙들은 트릭스터의 고함에 놀랐는지 황급히 더치를 추격하기 위해 급히 자리를 옮겼다.


"데몬, 감히 날 상대로 꼴에 쥐새끼 한 마리로 잔재주를 부리려 하다니... 넌 반드시..."


'트릭스터! 트릭스터!!'

순간 트릭스터의 뇌파로 스토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 없는 일로 부르는 거라면, 널...'


'데몬의 부하들이 더 나타났다! 데몬의 강철 병사들이 내 병력을 도살하고 있단 말이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당장 광산 내의 잔여 병력을 전부 끌고 와서 날 도와라! 당장!!'


'아직 데몬을 죽이지 못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 금방이면...'


'데몬이고 뭐고 당장 날 도우란 말이다, 이 무지한 벌레놈ㅇ....!!!!'


순간 스토커의 목소리가 뇌파에서 끊기자 트릭스터는 더 이상 화를 감추거나 참지 않았다. 


끔찍한 울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아더를 향해 마구잡이로 발톱을 휘둘렀지만 아더는 이를 가볍게 피하며 탄창의 내용물을 전부 트릭스터의 몸에 박아주는 것으로 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것 같은데."


"데몬...!!"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트릭스터의 배 안쪽으로 굴러들어간 아더는 단검을 꺼내들어 재빨리 트릭스터의 발목과 허벅지를 향해 칼을 정교하게 휘둘렀다.


발목의 힘줄이 끊어졌는지 피범벅인 다리를 붙잡으며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트릭스터에게 달려든 아더는 권총을 꺼내들어 놈의 무릎을 향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방금 전의 기세는 어디갔지? 날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나?"


아더의 살기에 두려움을 느낀 트릭스터는 기어서라도 도망가려 하였으나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이번에는 트릭스터의 양 어깨 관절이 궤뚫렸다.


"그 동안 이 섬의 지배자로 군림하니까 모든 것이 네 발 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이제는 움직일 수 없게 된 처지의 트릭스터에게 다가오는 아더의 주위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트릭스터는 겁에 질린 듯 아이마냥 버둥거리며 기겁할 뿐이었다.


"넌 교활하고 간악한 놈이 아니야. 그저 잔머리 하나만 잘 돌아가는 벌레에 불과할 뿐이지."


".....!!!!"


"그런 벌레 주제에...넌 감히 이 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62명을 쥐새끼들이라 모욕했다."


"넌 그저 약자에게만 강한 벌레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머,멍청한 놈! 날 죽인다고 끝날 일이 아니야! 위대하신 분께서 네놈의 정체에 대해

아신 이상, 넌...!!"


무게가 실린 아더의 주먹이 화상으로 일그러진 트릭스터의 안면을 강타하자 깨진 이빨 조각들과 살점들이 점액질 바닥에 나뒹굴었다.

더 이상 트릭스터에게는 싸울 의지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아더는 그것에게 있어 그리 관대한 자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하나 깜빡한 게 있었어."


아더는 트릭스터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계속해서 트릭스터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네가 내 앞에서 더치까지 모욕했다는 걸 넘어갈 뻔 했는데,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군."


트릭스터의 얼굴은 아더의 주먹질 속에서 점차 곤죽이 되어가기 시작했고,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것을 확인한 아더는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내가 널 상대하기 전에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나?"


곧 아더는 으깨진 이빨들 사이에 맥없이 늘어져있던 트릭스터의 혓바닥을 움켜쥐었다.


"네 혓바닥부터 시작해서 척추까지 완전히 뽑아주기로 했었지."


트릭스터는 자신에게 들이닥칠 죽음 앞에서 한없이 겁에 질려버렸고, 그제서야 엑스큐셔너가 어떻게 죽었던 것인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잘난 열 치 혓바닥으로 어떤 잔머리를 굴릴지 한번 보고 싶군."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트릭스터의 목은 끔찍한 소리와 함께 뜯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척추 째로 몸에서 분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