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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신처분, 시저스 리제

티타니아가 오베로니아의 심장을 찌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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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머리 아플텐데 누워도 돼”

아니에요. 주인님 제가 감히…”

괜찮아, 내가 그게 편해서 그래”

 

의자도 하나 밖에 없는 방에서 그나마 편하게 하려면 한 명을 침대에 눕혔어야했다. 사령관은 드리아드를 안아들고 침대에 내려놓는다. 드리아드의 표정이 순간 붉어진 것이 눈에 보인다.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격한 스킨십을 해보았지만, 그런다고 어색함과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술 마셨다면서?”

네”

어제 보여줬던 맥주?”

아뇨, 리제 언니가 와인을 줬었거든요”

 

사령관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드리아드의 표정은 언제 그런 일을 겪었냐는 듯 화사하게 번져나간다. 붉어진 볼도 얼굴에 열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령관을 만났기 때문인 것 처럼 수줍게 웃는 모습은 다른 자매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술은 왜 마신거야?”

에…”

 

방금 전 까지 사령관과 눈을 맞추던 드리아드의 눈빛이 흔들린다. 무언가 의표를 찌른 것일까. 사령관도 그 마음을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고 그걸 떠보기 위해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드리아드의 반응이 너무 격하다보니 너무 노골적으로 파고 들어간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얘기해도 화 안내실건가요?”

그럼, 내가 언제는 화냈니”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로 드리아드를 타일러본다. 드리아드는 어찌되었건 편안한 분위기에서는 자기 마음에 솔직한 편이었으니, 계속 어르고 달래다 보면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을까 싶은 계산이 섰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려하는 듯, 고개를 돌린 드리아드가 조용히 입을 연다.

 

주인님을 생각하니까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랬어요”

응?”

 

너무 평범하고 단순한 계기에 사령관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린다. 드리아드가 소심하고 여린 부분이 있지마는 그렇다고해서 저런 일에 겁까지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어떤 이유가 더 있겠구나 하고 추측해본다.

 

그러고보니, 어제 밤에는 뭐 했어? 내가 돌려보내고 난 뒤에…내가 전화라도 했어야했는데”

잠깐 벤치에서 주인님을 기다리다가 티타니아 언니랑 얘기했어요. 그러다가 눈이 올 때 쯤에 다프네언니가 가자고 해서 숙소로 돌아왔죠”

 

사령관은 잠깐 눈을 감고 머릿속의 시계를 돌려본다. 스파토이아와의 데이트를하던 도중 그녀를 먼저 올려보내고, 호라이즌 부대원들이 카페를 정리하는동안 장화와 그날 있던 일들에 대해 잡담을 잠깐 나누었었다. 그 사이에 드리아드가 잠시 찾아왔었고, 드리아드를 돌려보낸 뒤 자신도 이야기를 끝내고 숙소로 걸어 올라갔다.

숙소로 쓰는 호텔의 지배인인 콘스탄챠에게 룸서비스를 부탁해서 저녁식사를 방으로 배달시키고 그것이 올라오는 동안 스파토이아와 샤워를 했다. 장난치며 샤워를 끝낸 뒤에야 룸서비스가 올라왔고, 스파토이아와 마주앉은 상태로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다 할 때쯤, 창 밖으로 눈송이가 날리는 것이 보였다. 바다 아래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 그것을 보며 스파토이아와 무어라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꽤 긴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동안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단 사실이 사령관의 마음을 찌른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사령관도 드리아드의 얼굴을 보고있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티타니아는 뭐래?”

언니한테 주인님을 좋아하냐고 물어봤어요”

오, 진짜?”

 

아침에 눈 뜨고 나서부터 계속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있었는데, 정말 처음으로 단순히 흥미가 돋구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령관도 염치가 있고 양심이 있는 사람인 만큼 아직 자신을 긍정적으로 볼 것이라곤 생각 안했지만, 그래도 내심 어느정도까지 그녀의 마음이 열렸을까 궁금하긴 했다. 그것도 티타니아 프로스트라는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의 동생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도 흥미가 돋는 소재였다. 침을 꿀꺽 삼키고 드리아드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언니는 주인님이 아직 어려운가봐요. 물론 저도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지만…기분 나쁘신건 아니시죠 주인님?”

아니 뭐, 아직 나도 엄청난 진전이 있을거라곤 생각 안했…”

죄송해요”

 

예상했단 반응이 나왔다는 듯 대답을 하는 사령관과 사과를 하는 드리아드의 말이 서로 엉켜버린다. 뭉쳐버린 말이 잠깐이나마 공간에 정적을 가져온다.

 

말 한마디에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 없다니까”

하지만…”

 

드리아드 역시 쌓인 것이 많았는지, 눈알이 불안하게도 떨린다. 흡사 선반 끄트머리에 걸쳐놓은 그릇처럼 불안불안한 모습은 금새라도 떨어져 날카로운 파편을 남기며 깨질 것만 같았다.

 

전, 주인님에게 죄송하단 말 밖엔…”

에이 뭘 미안해할게 있다고”

제가, 뭘 잘못해서 싫어지신거죠?”

어?”

 

몸을 살짝 일으켜 침대에 기대앉은 드리아드의 모습이 유달리 처량해보인다. 입으로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미소와는 정 반대였다.

 

제가 더 잘할게요 주인님, 민폐도 안끼칠게요. 전투장비 끼는건 싫지만…그래도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전투에도 나갈게요.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오르카호 구석에 조용히 들어가있을게요…뭐든 할 테니까”

 

배 위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불안한 듯 움찔거린다. 고개를 내리깐 드리아드의 입에서 웅얼거리듯 쏟아져나오는 말들을 사령관은 너무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떨군 드리아드의 시선을 완전히 마주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걸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령관 자신의 멘탈도 쉽게 버틸수는 없을 것 같았다. 침대맡에 앉아 드리아드를 바라보던 사령관은 일부러 책상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버리지 말아주세요”

 

예상을 못한 끝맺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드리아드라면 분명 저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전투에선 예상대로 일이 벌어지는 것 만큼 큰 행운은 없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예상한대로인 것이 자꾸 사령관에게 죄책의 무게를 지게했다.

드리아드라면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것까지 알고있던 자신은 드리아드를 위해 무엇을 했던 걸까, 단 한번도, 그 누구도 버린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자신에게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응시하면 불편하고 마주하면 난처하지만, 가끔 그것을 마주봐야할 때가 있었다. 사령관에겐 그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내가 널 왜 버리겠니”

그렇지만…”

그냥, 잠깐 다른 아이들도 신경써줘야 했을 뿐이야”

 

잠깐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쓰리다. 드리아드를 내버려뒀던 시간을 잠깐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드리아드의 이해심,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와 사랑을 이용하는 느낌이 든다. 입에 쓴 맛이 돈다.

 

정말…정말 그런거죠. 주인님?”

 

이 마저도 예상한 반응, 활기가 돌아온 드리아드를 가볍게 끌어안아준다. 이 아이는 자신을 이렇게 믿어주는데, 나는 무엇을 한 걸까.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지금은 드리아드를 안아주고 가볍게 토닥여준다.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령관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고, 드리아드는 그것을 자신의 말에 긍정하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붙었던 몸이 떨어지고나서 보인 드리아드의 표정은 미소였다. 누군가의 미소를 마주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오늘은 푹 쉬어, 이따가 다시 만나러 올게”

네 주인님”

 

가볍게 인사를 하고 드리아드의 방을 나온다. 들어올 땐 드리아드의 기분을 풀어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드리아드의 기분을 풀어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오는 발걸음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문을 열면 아마 레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령관으로써 부대원에 의존하는 것이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레아는 가끔 그렇게 의존해도 자신을 언제나 포용해주는 바이오로이드였고, 고민이 있으면 어른스러운 해답을 내놓을 줄 아는 바이오로이드였다. 언제나 바이오로이드와의 관계에선 자신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곤 했다. 아마 맏언니로써 쌓은 경험과 기질 때문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기계음과 함께 방 문이 열린다. 편안한 표정의 드리아드를 뒤로 하고 사령관은 문 밖으로 나온다.

 

어?”

주인님”

 

레아의 푸른 머리와는 다른 밤색의 생머리, 간호복도 갈아입지 못한 시저스 리제가 자신의 눈 앞에 서있었다.


심리묘사는 왤케 어렵지

내가 쓰고도 진짜 끝맺음이 너무 병신같은데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