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합류하는 바르그의 정보를 달라는 그의 요청에 과거를 떠올려 본다.


"분명..."


통칭 처형자, 여제의 심복으로 친위대를 자처하는 녀석 정도로 기억하고 있지만, 과연 그가 이 정도의 정보 만을 원하는 눈치는 아니었기에 조금 더 머리를 굴리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소속은 우리랑 같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랑 장화는 현장 요원이고, 그 녀석은 여제 옆에 붙어있었지. 그리고 하나 확실한 건..."

"확실한 건?"

"바르그 그 녀석, 말하는 게 싸가지가 없어."


솔직히 곱게 포장해서 말하는 능력 따위는 내게 없었고, 그 녀석에 대한 인상이라면 그것 뿐이었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겠지. 그러나 막상 대답을 들은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예상 밖의 대답을 해왔다.


"확실히... 통신 전문이 먼저 오긴 했는데..."


그는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 보다는 스스로 보고 판단하라는 듯, 그 통신 전문을 내게 보여주었다.


"어디 보자... 나는 여제님의 처형자였다... 다른 건 기니까 대충 넘어가고... 푸흡!"


통신 전문의 내용을 읽은 나는 그대로 박장대소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에 대한 거창한 설명이며 이것저것 자세히 적어 놓은 이력까지. 이게 무슨 이력서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튼, 각설하고 그 전문의 마지막 내용이 가관이었다.


"푸하하핫! 너를 주인으로 모실 생각이 없다! 라니... 크흐흣! 그 녀석 답다."

"하... 이런 경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아마 그의 성격 상 새로이 합류하는 녀석들을 받아주지 않았을 리 없다. 가까이에서 지켜 본 그는 의외로 심성이 말랑한 녀석이니까.


"야, 핫팩."

"응?"

"쫄지 마! 만나기도 전에 쫄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천하의 포이와 장화를 길들인 녀석이 저런 앙칼진 강아지 하나를 무서워 해서 쓰나. 내 인정을 받은 핫팩이라면 저런 녀석은 충분히 감당 가능하단 판단이 들었다. 의외로 지금까지 눈치로 살아남은 만큼, 사람을 보는 눈 하나는 나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팍팍..."

"어휴~ 븅신아! 잘 생각해봐."


엠프레시스 하운드라는 조직 자체가 본디 기밀이었다. 따라서 세상이 멸망한 다음부턴 지원을 받을 길도, 당장에 먹을 것 하나조차도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철충들이 비록 바이오로이드에게 적극적인 적대를 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피해 살아남는 것 자체가 큰 고난의 연속이었다.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인원들은 각자 흩어져서 능력 것 혼자 살아남았어. 그럼 지금 쟤 상태가 어떠겠냐?"

"음... 고생했겠지?"

"그렇지! 이제 상황을 이해 했구나, 핫팩!"


하루도 배부르게 먹기 힘든 삶이라는 것이 멸망한 세계를 떠돌며 살아가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삶이다. 당장 나부터 핫팩에게 신세를 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궁핍한 삶을 살아왔기에 지금 바르그의 상태가 어떤 상황일지 대충 이해가 되었다.


"바르그 그 녀석, 원래 자존심도 세고 앙칼진 성격이라서 말이야. 전문에는 뭐, 핫팩 너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느니~ 그래도 신세를 지니 힘을 빌려주겠다느니~ 씨부렸지만, 딱 봐도 뻔하지. 저 녀석 지금 오늘내일 숨 넘어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을걸?"

"오오... 그럼 먹을 걸로 길들이면..."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거야..."


이런 단순한 녀석에게 홀려버린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만나면 며칠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해보고 그래봐. 장담하는데 바르그는 금방 핫팩에게 마음을 열어 줄 거야."

"정말?"

"장화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왜 핫팩에게 끌렸는데? 내 입으로 말하기 쪽팔리지만... 핫팩은 충분히 매력이 있어."


낯 뜨거운 말을 계속 하려니 코끝이 간질 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질색이었기에 말도 돌릴 겸 바르그의 다른 은밀한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정리했다.


"참, 핫팩! 바르그 말이야..."

"응? 또 뭔가 있어?"


매력 있다는 말에 우쭐해진 이 녀석을 보니 괜히 놀려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뭐, 이건 핫팩이 원하기도 하는 바르그의 정보니 어떻게 보면 그를 속이는 것도 아니니까 말해도 되겠지.


"바르그를 만나면 꼭 이것부터 물어 봐."

"무슨 확인 절차야? 그게 무슨..."

"됐고. 나만 믿어! 이거 물어보면, 바르그가 아주 좋아 죽을걸?"

"오오... 그래! 말해 봐."


월척이 낚였다. 바르그의 가장 민감한 그것을  핫팩에게 물어보라 시키면, 분명 핫팩이 바르그를 달래느라 한동안 고생할 것이고 그럼 그때 내가 슬쩍 도와줄 작정이었다. 장화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공작의 일환이니까.


"꼭 몸무게를 가장 먼저 물어 봐."

"몸무게..?"

"이유는 묻지 말고."


바르그 그 녀석, 분명 72kg 이었지?


'장화를 놀리는 것도 재밌었는데, 새로운 장난감이 기다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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