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자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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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거... 그냥 애들 들려주려 만든 이야기 아니었어?"


수호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레오나는 들어본 적이 있다. '벌레신', '검의 논리'. 안드바리와 알비스가 수호자 숙소에 놀러 간 날이면 수호자가 들려 준 이야기로 발할라의 숙소를 가득 채웠으니까.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온 날엔 아이들이 함께 자달라고 부탁하는 통에 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검의 논리라... 승자가 패배한 상대의 힘을 취해 더 강해진다면 저 규격 외의 더치걸도 설명이 가는 군." 아스널이 일시정지된 영상 속 더치걸을 노려본다. 이윽고 그 날카로운 시선은 군체와의 전투 경험이 있는 자를 향했다. "그래서 화력팀장,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군체를 상대하는데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굶겨 죽이는 것.

군체의 강함은 체내에 심어진 벌레에서 온다. 이 벌레는 힘의 공물로 존재를 위한 투쟁, 살생을 요구한다. 이것을 충족하지 못한 군체 개체는 벌레의 허기에 먹혀버린다.


두번째로는 소모전.

통상적인 군대라면 이들을 향한 소모전은 벌레에게 먹이를 주는 꼴이지만 살생이 해당되지 않는 로봇프레임, AGS를 이용한다면 군체에게도 통한다.


"마지막으로는... 똑같이 검의 논리를 따르는 것." 수호자는 말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마리를 시작으로 이 미지의 위협에 저마다의 의견이 하나 둘 오가며 회의가 격화된다.

달아오른 회의실을 겨우 진정시킨 건 펙스로부터 수신된 하나의 통신이었다.


"여기는 레모네이드 알파입니다. 들리십니까? 저항군 여러분?" 사령관이 콘스탄챠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삑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전원이 공급되고 송신 아이콘에 불이 들어왔다.


"레모네이드 알파, 최후의 인간 님에게 인사드려요. 첫 만남부터 염치불고하지만, 저흴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


오르카 호의 정원.

사령관이 페어리 기종들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바닷속의 조그마한 정원이다.

사령관이 지쳤을 때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주던 장소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이 꺾여버린 지금은 그 바람이 부러진 가지를 흔들며 상처를 자극한다.


사령관은 정원을 둘러보았다.


페어리들이 씨앗을 흙에 밀어넣는다. 꽃들은 자라난다.

다른 꽃들과 너무 가까이 자라난 꽃은 영양 부족과 과밀로 인해 시든다.

드론들은 그렇게 시든 꽃을 솎아낸다.


"정원사와 키질꾼..."


꽃들 사이 곤충들은 서로를 잡아먹는다.

강자는 잡아먹을수록 더욱 강해진다.

약자는 잡아먹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검의 논리."


사령관은 측은지심으로 잡아먹혀야할 애벌레에게 손을 뻗어 구해준다.

자신의 손 안에서 공포에 질려 꿈틀대는 애벌레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저 시들어가는 꽃인가. 잡아먹힐 벌레인가.

먹히지 않으려면... 우리도 그 논리를 따라야 하는가.

하지만 살기 위해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해야한다면 그 삶에 무슨 의미가 있지?


"주인님!"


맑으면서도 앳된 음색이 그의 어깨 너머로 들려왔다. "아쿠아가 왔어!"


사령관은 품에 들어간 아쿠아를 내려보며 내면에서 고개를 드는 공포를 누르기 위해 웃음을 지어보지만 그 가면은 어색할 뿐이다.


아이는 섬세하다. "주인님, 화났어?" 그는 안아주던 한 팔을 풀어 아쿠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아쿠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니?" 그리고 단순하다.


"응!" 아쿠아는 언제 걱정했냐는듯 방긋 웃으며 작은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곤 한웅큼 집은 씨앗들을 내밀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줄 거야!"


"그렇게많이?" 조그마한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씨앗들을 사령관이 받아낸다. "힘들진 않아?"


"아쿠아가 좋아하는 꽃들이야! 아쿠아는 물 뿌리는 걸 제일 잘해! 언니들도 언니들이 잘하는 걸로 많이 도와줘서 즐거워!"


그리고 그런 둘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가지를 치는 가위질의 싹둑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쿠아?" 아쿠아는 리제의 시선을 느끼곤 한 번 딸국질을 하더니 이제 물을 주러 가야겠다며 사령관의 품을 벗어나 날아올랐다.


사령관은 다시 정원을 둘러보았다.


아쿠아가 식물들에게 물을 준다.

리제는 해충을 잡고 가지를 쳐서 식물들이 웃자라지 않도록 돌본다.

다프네는 마이크로봇으로 양분을 주고, 해충과 가지치기로 인한 상처를 치유한다.

그렇게 이들이 이루는 조화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사령관은 생각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정원사와 키질꾼같은 초인과적인 존재도, 수호자처럼 생명게임을 겪어본 것도 아닌, 그저 마지막 남은 인간일 뿐이니까.

하지만 믿기로 했다. 다양한 존재들의 조화가, 화음이. 서로를 벼려내 만든 하나보다 훨씬 더 나은 것들을 만들 수 있다고. 창조는 파괴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누군가의 익숙한 기계음성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빛은 힘을 준다." 사령관은 흙을 털고 다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