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이상하다→, 온 세상이-”

 

“그만! 음정이 하나도 안 맞잖아요!”

 

“크흠, 다시 해볼게요.

 

이상하다↗, 온 세상이↗

 

“그만. 역시 안 맞네요.”

 

 

뮤지컬 제안이 나오고 사흘(3일) 후. 리마토르는 스카이 나이츠의 지도 하에 발성 연습부터 음정 연습까지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공연에 지장이 없도록 약물 투여가 예정된 7일 안에 연습을 마치고, 공연 후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그를 포함한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오드리는 그의 신체를 측정하더니 하루 만에 잘 뽑힌 정장을 만들어주었고, 덴세츠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는 무대 구성부터 시나리오 작성까지 단 이틀 만에 전부 완성하는 뛰어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의상과 무대, 대본이 완성되었으니 남은 문제는 출연진들의 연습뿐이었다. 모모와 백토, 뽀끄루는 평소에도 해오던 업무가 공연이었던 만큼 짧은 기간에도 훌륭한 합을 맞출 수 있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리마토르였다.

 

공연은커녕 강의와 연구로 평생을 보냈던 그였기에 노래도 연기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스카이 나이츠와 모모, 백토, 뽀끄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하르페이아와 흐레스벨그의 강력한 의지로 연습은 강행군을 달렸다. 하루 18시간을 공연 연습에 쏟는다는 무리한 일정에 리마토르 본인은 경악했으나, 자신의 취미를 메이저로 끌어올리려는 하르페이아와 매지컬 모모와의 연결고리를 조금이라도 더 견고하게 만들려는 흐레스벨그의 압박에 그는 강형욱 훈련사를 만난 개처럼 착실히 연습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헉... 헉... 이만하면 됐을까요...?”

 

“아직이에요. 두 번째 소절의 음정조차 똑바로 못 맞추면 어떡하자는 건가요? 최종 리허설까지 3일밖에 안 남았으니까 더 강하게 가보죠.”

 

“허.... 그럼 밥이라도...”

 

“그리폰! 여기 닭가슴살새싹보리크릴오일 쉐이크 하나 가져와!”

 

흐레스벨그의 입에서 나오는 절망적인 단어에 리마토르는 자신이 마치 서커스의 곰이 된 기분을 느꼈다. 철저히 보여주는 걸 목적으로 조련당하는 그의 모습을 감안하면 틀린 비유는 아니었으나, 이미 아이돌로 데뷔한 경험이 있어 완벽한 무대에 동경을 갖고 있는 그녀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정도는 일상에 지나지 않았다.

 

“쉐이크 오면 마신 뒤에 다시 레슨 들어갈 거에요. 음정만 잘 맞추면 나머지는 다 잘 풀리니 제대로 해보자고요.”

 

“알겠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반팔티에 면바지를 입고 녹초가 된 그는 벽에 몸을 기대고 거의 뻗다시피 했다.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와중에 차가운 캔의 감촉이 볼에 느껴지자 그는 악마의 쉐이크가 왔는가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 그거 여기-”

 

“고생 많이 하나 봐?”

 

하지만 그의 생각은 빗나갔다.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얼굴은 눈웃음을 짓고 있는 칸이었다. 무설탕 탄산음료 캔을 그에게 건네며 칸은 그의 옆에 앉았다.

 

“칸,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연습 중이라는 소식 듣고 잠깐 들렀어. 어때, 잘 되는 거 같아?”

 

“뭐... 어렵지만 그냥 하고 있어요.”

 

“칸 대장님께 경례 드립니다!”

 

칸이 그와 대화하는 사이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이 칸에게 경례를 건네자 칸은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라며 편하게 말했다. 연습에 들어가야 했으나 타 부대의 지휘관이 와서 휴식시간을 만들어주는 걸 막을 수는 없었기에 흐레스벨그는 리마토르가 칸과 시간을 보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보다 갑자기 웬 뮤지컬이야? 당신이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하르페이아의 제안이 있어서 도전해봤죠. 괜히 받아들인 거 같아요.”

 

“후훗,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 보니까 기분이 좋네.”

 

칸은 이참에 자신도 출연해보는 것이 어떨까 물었으나, 리마토르가 진지한 눈빛으로 만류하자 곧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리마토르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물었다.

 

“혹시 연습한 곡 들려줄 수 있어? 얼마나 잘 부를지 궁금해.”

 

“에이, 됐어요. 형편없어서 후회할 거에요.”

 

“후회해도 괜찮으니 한 번만 부탁할게. 들어주면 안 되나?”

 

“죄송하지만 그 부탁은 거절하겠습니다.”

 

“당신이 말해준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잖아. 나한테 ‘이대로 괜찮을 용기’를 말해주었으니 당신도 ‘노래부를 용기’를 내주면 안 될까?”

 

“휴, 철저하게 복습하고 왔네요. 그 정도면 들려드려야죠.”

 

배운 내용까지 들먹이며 끈질기게 부탁하는 칸의 모습에 리마토르는 백기를 들었다. 그는 스카이 나이츠가 레슨할 때 지적해준 내용 전부를 되새기며 복식호흡을 시작했다.

 

“...각오했어, 나의 희생. 난 정의로운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 거야. 끝까지--!!

 

오직 나만! 할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

 

복식호흡으로 배에 힘을 모으고 두성을 통해 맑은 음색을 이끌어낸다. 이론이 실전에 접목되어 강렬한 가창력으로 뿜어져 나오자 노래를 들은 칸과 레슨을 해주던 스카이 나이츠 전원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와...”

 

하르페이아의 입에서 감탄이 나오자 칸도 곧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고 그에게 칭찬의 말을 남겼다.

 

“연습 많이 했네? 말은 겸손하면서도 실력은 확실하네. 본 공연 때 기대하고 있을게.”

 

그녀는 리마토르의 뺨을 부드럽게 붙잡더니 그윽한 눈길과 함께 말했다.

 

“이건 특급 칭찬이야.”

 

그녀 스스로도 말하고도 부끄러웠는지 칸은 볼을 붉히며 급히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리마토르는 칸의 온기가 남은 볼을 말없이 손으로 두어 번 문지르더니 정적이 내려앉은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먼저 말을 꺼냈다.

 

“네, 이제 다시 연습 들어가시죠.”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무도 연습을 재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폰이 그에게 날아와 꿀밤을 먹이면서 화를 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으면서 우릴 속여?! 그 LRL 꼬맹이랑 붙어다니니까 이런 장난질만 느네!”

 

“악! 잠깐만요! 물병으로 때리지 말아요! 이거 진짜 아프다고요!”

 

그가 그리폰에게 응징을 당하는 동안, 린트블룸과 슬레이프니르는 방금 있었던 광경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대장, 방금 그거 귀여운 린티도 사령관님께 받을 수 있을까?”

 

“받는 건 둘째 치고, 칸 대장님이랑 리마토르님이 그런 관계였던 건 예상외네.”

 

하르페이아는 그리폰이 플라스틱 물병에 금이 갈 정도로 그를 후려치자 황급히 그리폰을 만류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처참한 노래 실력을 보여주던 그가 칸이 오자마자 완벽한 발성을 보여주는 모습을 생각하며 사랑의 힘에 박수를 보냈다.

 

“뭐, 이런 식으로라도 음정이 잡혔으면 된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보고 오늘은 퇴근해요.”

 

흐레스벨그는 뜻밖의 상황에 잠시 생각에 혼선이 왔었으나, 이제 연기 연습을 명분으로 모모와 붙어있을 시간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상황을 정리했다. 칸이 방문한 후 리마토르의 음정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졌으며, 이 상황을 두고 후일 스카이 나이츠에서는 여러 말이 많이 나왔다.

 

 

다음 날, 리마토르는 모모와 백토가 교편을 잡은 연기 지도에 들어갔다. 중간 중간 뽀끄루가 감정선을 잡는 연습을 도와주었으나 성명을 발표하는 연기 이외에는 모두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였기에 상황은 어제 음정 연습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았다.

 

“교수님, 이 상황에서는 정의를 오직 자신만이 행할 수 있다는 독선에 찬 연기가 필요해요.”

 

“뽀끄루 씨, 방금 전까지 순수한 정의로 가득 찬 모습을 연기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이 장면은 확고한 정의를 보여주는 동시에 오만에 빠져 타락할 조짐을 보여주는 연기가 필요해요. 순수한 정의에서 한 발자국만 더 밟으면 악이 될 수 있는, 독선적인 모습을 같이 표현해야 해요.”

 

“이것 참...”

 

섬세한 감정선을 이끌어 내야하는 장면에 리마토르는 애꿎은 머리카락만 빙빙 꼬았다. 그 모습을 보더니 백토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뽀끄루, 진실의 방으로.”

 

“예...?”

 

그의 직감이 불길하다는 신호를 보내자 리마토르는 우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뽀끄루가 그의 다리를 꽉 잡아 도망을 봉쇄했고, 설상가상으로 모모가 탈론 페더가 설치한 카메라를 모두 가리자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바뀌었다.

 

“프로페서, 지금부터 드는 감정에 모두 솔직해지면 돼.”

 

“그게 무슨 말이-”

 

“매지컬 전기톱!”

 

백토는 평소 들고 다니는 매지컬 핑크 문 라이트를 휘두르자 리마토르는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걸 느꼈다. 흉기가 눈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갖고 놀자 그는 기겁해서 외쳤다.

 

“잠깐만요!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거에요?!”

 

“괜찮아. 머리카락이 많아서 좀 잘라도 되겠어.”

 

“아니 지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교수님, 지금 느끼는 감정 그대로 대사를 말하세요!”

 

뽀끄루가 그에게 차근차근 지도를 했으나 전기톱이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공포의 순간을 맛보는 리마토르에게 그 말이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못해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대사를 말하라는 거에요!”

 

그의 절규에 백토는 전기톱을 내려놓더니 위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대사를 못 말하겠다, 분명 그리 말했지? 

 

프로페서, 이걸 어쩌나. 마법소녀는 대사를 말하게 하는 방법을 다 알고 있다고?”

 

말이 끝나자마자 백토는 전기톱을 그의 목에 들이밀었다.

 

“어서 대사를 말해!”

 

“으아아악---!!!”

 

“교수님, 빨리요!”

 

“나, 난, 난! 신세계의! 신이 되겠어!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생존본능이 그의 머릿속에서 대사를 끄집어내 다급히 입으로 밀어 넣었다. 입 밖으로 나온 대사를 들은 백토는 그제야 만족하는 미소를 지으며 전기톱을 치웠다.

 

“좋아, 역시 누구든지 공포를 초월하는 영역에 들어가야 순수한 감정을 보여준다니까.”

 

“....그 방법 두 번 쓰지 마요.”

 

리마토르는 등줄기에 폭포처럼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자신의 목이 잘 붙어있는지 더듬었다. 괜히 도전해보겠다는 말을 꺼낸 과거의 자신에게 호쾌한 날아차기를 먹이며 그는 백토가 진실의 방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도록 연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살고 싶다는 그의 욕망이 연기의 신에 닿았는지, 그 후로는 다행히 연기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수고하셨어요, 모모 스티커 받아가세요!”

 

모모가 레슨을 마친 그의 가슴팍에 스티커를 붙여주자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연습실을 나섰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느낌을 받으며 그는 비척비척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대여,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아스널?”

 

그가 복도를 걷던 중 귀에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아스널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수건과 물병을 건넸다. 리마토르는 그리폰과 있었던 일 때문에 물병을 보고 반사적으로 움찔 놀랐으나, 이내 현 상황을 직시하고 겸연쩍게 물병을 받았다.

 

“아침 6시에 나가더니 새벽 3시에나 들어오는군. 모모 스티커를 받은 걸 보니 그만큼 열심히 했나 보네.”

 

“열심히 해야죠. 살기 위해서는...

 

그보다 아스널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주무셔야 할 시간 아닌가요?”

 

“오늘은 새벽 출격이 있어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네. 6시에 출격하는 거니 아직 여유는 있지만.”

 

그녀의 말에 리마토르는 놀랐다. 부대의 지휘관이라고 해도 출격 2시간 전에 일어나 준비해도 부족함이 없을 터인데, 자신에게 찾아오려고 3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는 건 곧 자신이 아스널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모습이 아니라 깔끔하게 정복을 차려입었다는 건 적어도 1시간 전에 일어났다는 점을 의미했기에 더더욱 문제는 커졌다.

 

“4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거에요? 가서 조금이라도 더 눈 붙여요.”

 

“괜찮네. 요새 그대 얼굴을 통 못봤더니 하고 싶은 말도 있어서 말이지.”

 

아스널은 그의 방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았다. 리마토르가 차를 내오겠다고 하자 손을 휘휘 저어 사양의 의사를 밝힌 그녀는 제복 안에서 책 두 권을 꺼냈다.

 

“이건...?”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지은 불후의 걸작이지.”

 

리마토르는 그녀가 건네는 책을 받아 천천히 살펴보았다. 가죽표지가 둘러진 걸로 보아 꽤 구하기 힘든 양장본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멸망 이전에도 이정도 양장본이면 다른 책보다 비싼 값을 얹어주어야 구했을 터인데, 멸망 이후인 지금은 천만금을 주더라도 구할 수 없는 책이었기에 그는 책의 가치에 감탄했다.

 

“이렇게 귀한 걸 어디서 구한 거에요?!”

 

“에밀리가 탐색 나갔다오는 길에 찾았다며 주었네. 오래된 저택에서 찾았다고 그러더군.”

 

“운이 억세게 좋았군요. 이 책을 제게 주신다는 건, 소로의 사상에 대해 듣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는 거죠?”

 

“정확하네. 내가 괜히 3시간을 비운 게 아니지.”

 

리마토르는 그녀의 미소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평소 둘러앉는 책상에 앉았다. 그러나 아스널은 고개를 젓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손으로 두드렸다.

 

“오늘은 둘뿐이니 가까이 앉아서 읽지 그런가?”

 

그녀의 말 속에 숨겨진 뜻을 파악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로의 허벅지가 조금의 공간도 없이 딱 붙은 상태에서 둘은 책을 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생태주의 철학자의 대부로 일컬어지죠. 쾌고 감수주의를 제창한 피터 싱어, 생태중심론을 주장한 레오폴드 등 많은 학자들이 소로의 영향력 아래에 서있답니다. <월든>은 그런 소로의 사상이 농축된 수필로, 월든 호수가에서 지내며 겪은 일을 적은 책입니다.”

 

“한 가지 말을 빼먹지 않았나? <월든>이 쓰인 배경에 멕시코 전쟁을 벌이던 당시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목적에서 소로가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일이 있다는 점도 밝혀야 완벽하지. 소로가 쓴 또 다른 저서인 <시민의 불복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철학자가 생태주의자 뿐만 아니라 시민 불복종을 제안한 사회운동가라는 점도 알려주니 말일세.”

 

“와, 미리 다 조사해서 오셨네요?”

 

아스널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리마토르는 감탄했다. 항상 자신의 말을 듣던 그녀가 사상가에 대한 지식을 읊을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그는 그녀의 성장을 체감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대와 제대로 대화하려면 교양은 필수 아니겠는가?”

 

아스널은 어깨를 으쓱하며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가 고양된 그녀의 감정을 잘 담아서 보여주고 있었기에 리마토르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를 칭찬해주었다. 평범한 칭찬의 말을 해주려다가 그는 순간 낮에 칸이 자신에게 해준 칭찬을 떠올리고는 아스널의 볼을 가볍게 잡았다.

 

“이건 특급칭찬이에요.”

 

그는 아스널의 당황한 모습을 예상했으나,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아스널은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말없이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리마토르도 자신의 예상과 많이 다른 모습에 조심스레 손을 놓았다.

 

“...그대가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군.”

 

아스널은 볼을 붉힌 채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더니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를 힐끔힐끔 곁눈질로 쳐다보면서도 그녀는 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주목받는 이유는 멸망 이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같은 작은 삶(Minimal Life)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라고 봐야할 것이네. 그가 살았던 1800년대는 노동과 성공에 초점을 맞추며 앞으로 더 빨리 달려가기만을 강조한 시대였으나, 그는 그런 흐름에 반기를 들고 조용히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삶을 지향했지. 

 

빠른 삶이 가져오는 물질적인 성공이 클지라도,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한다는 붉은 여왕 이론이 적용되는 역설적인 삶이라는 점에서 피로는 극심하게 쌓일 걸세. 그러니 소로가 추구했던 조용한 삶이 회복(Healing)을 중심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겠지. 지친 삶에는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점, 그건 <청소부 밥>의 첫 번째 가르침 아닌가?”

 

“아스널, <청소부 밥>은 본편에서 언급만 되고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에 이렇게 인용하면 읽는 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크흠, 자제하겠네. 아무튼, 소로 본인이 이런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건 아니었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주류 문화였던 멸망 이전에도 욜로(YOLO-Your Only Live Once)라고 하여 한 번 사는 인생을 즐기겠다고 하는 이들에게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지 않았는가.

 

소로의 자급자족을 골자로 한 월든 호숫가에서의 생활은 당대에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네. 게다가 멕시코 전쟁이라는 국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세금을 내지 않았다가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소로의 삶은 굴곡져있었네.

 

그렇지만 우리가 소로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나? 나는 우여곡절을 겪을지라도 그 자리에 멈춰설 때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보네. 우리는 언제나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를 요구받지. 노력을 다했음에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지만,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결과만을 갖고 우리는 스스로 채찍질을 한다네.

 

소로의 사상은 그런 삶이 과연 옳은가 물음표를 던지네.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이 과연 옳은 걸까? 가끔은 브레이크를 밟고 자연 속에서 여유를 찾는 건 어떨까? 재화를 최대한 갖는 걸 목적으로 할 수 있지만, 때로는 필수적인 물건들만 갖고 무소유를 실천하는 건 어떨까?

 

나는 소로의 사상이 물음표라고 생각하네. 인두세를 거부하며 시민 불복종을 외쳤던 것 역시 당대의 주류(主流)에 물음표를 던진 거였다네. 이렇게 물음표를 던지는 사상이 있어야 철학도, 사회도, 우리의 삶도 발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스널은 말을 마치고 리마토르를 바라보았다. 상당한 깊이를 보여주는 그녀의 생각에 리마토르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제안을 건넸다.

 

“아스널, 군사대학 교수가 아니라 철학과 교수를 해도 되겠는데요?”

 

“후훗, 과찬일세. 그대만큼은 아니지.”

 

아스널은 그를 진하게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리마토르는 당황했으나 아스널은 바이오로이드 특유의 강한 근력으로 그를 꼭 안아주며 귀에 속삭였다.

 

“그대가 안고 있는 상처가 무엇인지 난 모른다네.

 

그대가 왜 위선을 행하는지도 난 모른다네.

 

하지만 소로가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대에게 물음표를 던질 걸 말해주고 싶네.

 

그대는 왜 혼자 아프려고 하는가? 아픔을 나눌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그만 혼자 아프게나. 내가 그대의 짐을 같이 지겠네.”

 

아스널은 그리 말하며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지자 리마토르는 조각난 기억 중 하나가, 아득한 시간을 넘어 어떤 뭉클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걸 느꼈다.

 

“...고마워요, 아스널.”

 

그의 감정은 한 줄기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아스널은 말없이 그를 좀 더 토닥여주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소로의 말대로, 그대에게도 잠시 멈춰 설 때가 필요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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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피소드에 넣을 음악들 음정 조정 다 끝났다.... 자연스럽게 여자 목소리로 올리는게 그냥 키만 올린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었구나...


이번 에피소드는 준비 과정을 담아서 짧게 써봤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리마토르로부터 많은 강의를 들은 아스널도 철학적인 식견을 갖게 되었음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잘 드러났을까 모르겠네. 이대로 박사학위를 못받아 고통받는 닥터, 석사 과정에서 구르고 있는 하르페이아처럼 아스널도 대학원생의 길을 걷는 건 어떨까?


조잡한 글 읽어주는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모두 좋은 일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