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야자가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흐릿한 시야를 바로 잡으려 안경을 고쳐 쓰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덧 태양이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붉게 빛나고 있다. 벌써 저녁인가.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아, 박사님 일어나셨어요?”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 듯 상체만 빼서 두리번거리다 나를 발견하고는 말을 건네오는 단발의 소녀. 부엌에서 저녁 준비가 한창 인가보다.

 

 “그래,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네. 혹시 자는 동안 별일은 없었지?”

 

 “어, 그러니까... 타이거가 2시간 정도 말없이 사라진 것 말고는 큰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창밖으로 커다란 왕도마뱀 3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두 녀석과 달리,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한 마리. 저녀석이다.

 

 “타이거가 가끔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세띠도 잘 모르지?”

 

 “네... 제가 아직 헤엄치는게 서툴러서....”

 

 세띠가 고개를 떨궜다. 이곳으로 온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까지 타이거의 속내를 모르는 것이 제법 분한가 보다.

 

 세띠는 내가 삼안에서 일할 때 신세를 졌던 캐롤린 선배가 보내 준 아이이다. 삼안의 방식에 회의감을 느껴 은퇴를 하고선 목표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던 나의 앞에 편지와 함께 찾아왔다. 

 

 ‘후안에게

 잘지내고 있니?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시간 아까우니 용건만 간단히 말할게. 나도 너처럼 삼안을 그만뒀어. 그리고 자연을 보호하고 연구를 하기 위한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지. 너도 알다시피 지금의 기업전쟁, 이건 우리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위기를 가져오게 될걸? 

그러니 내가 만든 단체에 들어와. 그리고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성과를 내길 바랄게. 유능한 조수도 같이 보냈으니 너라면 충분하겠지.

                                                                                                                                               캐롤린 포스터가’

 

 

 세띠에게 선배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놀랐지만, 의사는 묻지 않고 다짜고짜 자기 할 말만 하는 선배의 모습이 그려져 그리워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확인하려 답신을 하려 했지만 전파조차 닿지 않는 오지에 있는 건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통신을 하지 않고 번거롭게 편지를 써서 보낸 건 이것까지 계산한건가? 혼자 당황하던 내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세띠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선배와 연락이 될 때까지 맡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선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들은 나는 섬의 동식물을 조사하는 것으로 그녀의 바람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 섬은 외곽으로는 바다와 해변, 안으로는 열대우림이 펼쳐져 있어 다양한 생물군이 분포한다. 선배가 말하는 '성과'를 내기엔 문제가 없겠지. 애초에 선배는 내가 이 섬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까지도 알고 있을 터였다. 어쨋든 나는 두 바이오로이드의 도움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세띠는 선배가 굳이 신경써서 조수로 보내 준 만큼 유능한 조수였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들의 외양과 생태, 그리고 습성을 관찰하고 정리할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야생의 왕도마뱀 3마리와 친해져 이제는 이름까지 붙여 집 옆의 공터에 풀어 키우고 있다. 연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사양하지 말라고 했더니 세띠는 기뻐서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이오로이드는...

 

“다녀왔습니다!”

 

 현관에서 활기차고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오른손에 들려있던 마체테와 왼손에 감겨있던 로프를 정리하고 있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미나씨 오셨어요? 곧 저녁 다 되니까 준비하고 나오세요.”

 

“내가 이래서 세띠를 좋아한다니까~ 박사님도 저녁 먹으러 나오셨죠? 얼른 다녀올게요!”

 

 빠르게 장비들을 정리한 미나가 내게 인사를 하곤 욕실 쪽으로 사라졌다. 미나는 내가 이 섬에 처음 당도했을 때도 홀로 섬을 지키고 있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 그리고 짙은 녹음으로 가득한 이 곳은 부자들의 은밀한 휴양지로 쓰이기 적합했다. 미나는 구조요원 및 정글 관광 가이드로써 이곳으로 파견되어 왔다. 하지만 경영 악화로 이내 섬이 버려지게 되었고, 나의 전재산을 털어 이 섬을 사들이기 전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숙박시설로 쓰였던 방갈로를 개조해 이 섬에 정착한 나와는 달리 미나는 섬 중앙에 있는 비상대피소에서 따로 거주를 했었다. 미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인간인 나를 신경 쓰는듯 했지만, 당시의 나는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득 차 바이오로이드를 보는 것을 꺼려했었다. 하지만 세띠가 온 뒤 조사와 연구를 시작하면서 길 안내와 경호 등으로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고, 나 뿐만 아니라 소심하던 세띠도 활기찬 미나 덕분에 감화되어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오는 시간.  저녁식사를 하며 시시한 잡담을 하다 세띠가 문득 생각 난 듯 물었다.

 

“미나씨, 혹시 정찰 중에 타이거가 어디로 갔는지 보셨나요?”

 

 “음, 글쎄? 아무래도 내가 섬 안쪽을 살펴볼 때 어디로 사라졌었나 본데. 타이거 녀석 요즘 잠잠하더니 또 그러는거야?”


“네, 크... 큰일만 안 생기면 다행이지만...”

 

 세띠가 동물들을 아끼는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중에서 도마뱀 3총사는 특히 각별했다. 이 섬에 오고 그녀가 처음으로 길들인 동물이기에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도마뱀에게 붙이기에는 다소 의뭉스러운 이름도 그녀가 다 지어줬었지.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타이거는 생긴거에 비해 영리한 구석이 있으니까.”

 

 나는 세띠를 안심시키며 마당 쪽을 살펴보았다. 바닥에 엎드려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글과 베어와 달리 타이거는 고개를 치켜든 채 이제는 새까매진 바다를 아직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하여튼 신기하단 말이지 타이거는. 여기서 꽤 오랫동안 근무를 했지만 저런 녀석은 처음이야~”

 

 어느덧 그릇을 비운 미나가 일어나 기지개를 쭉 펴며 말했다.

 

 “보통의 녀석들도 야생동물들 중에선 똑똑한 편이지만 박사님 말씀처럼 타이거는 특이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지금도 봐. 친구들은 다 자는데 혼자 바다만 보고 있... 어? 어? 점점 고개가 돌아가네?”

 

 미나의 말처럼 타이거의 머리는 바다에서 하늘로, 뒤 쪽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윽고 들리는 폭음.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발 밑으로 전해지는 미약한 진동.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한 우리는 서둘러 확인해보기로 했다. 선반 위에 장식되어 있던 사냥용 엽총을 꺼내는 사이, 세띠는 자신의 방탄복과 가스탄을, 미나는 좀 전에 정리해둔 마체테와 로프를 도로 꺼내 들었다.

 

 무언의 신호를 시작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밤바람 사이로 희미하게 탄내가 난다.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걷다보니 풀 밟는 소리마저 크게 들려온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빨간 불길 사이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 섬의 지리를 꿰고 있는 미나 덕분에 헤매지 않고 왔을 것이다.

 

“두... 두분 다 이제 제 뒤로 오세요...”

 

 세띠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며 앞장섰다. 미나와 난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세띠의 뒤에 섰다. 조금씩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세띠의 등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뗀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입이 바싹 말라가기 시작했다. 섬 밖의 상황이 여기까지 영향을 끼친 건가? 그렇다면 왜 지금 와서? 대체 왜? 소리의 근원지가 가까워질수록 좋지 않은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문득 외견만 보면 훨씬 어린 두 소녀들을 앞세워 나아가는 자신에게 혐오감이 생겼다. 삼안을 막 나왔을 때가 떠오른다 젠장.

 

 어느덧 불바다가 된 수풀 사이로 붉은색 철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뜨거운 열기와 숨 막히는 연기 때문에 더 나아가기 힘들어 보였다. 세띠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미나가 아직 불타지 않은 나뭇가지에 로프를 던져 걸더니 순식간에 나무 위로 올라갔다. 

 

“후우... 이런.”

 

 소리의 근원지를 살펴본 미나가 갑자기 한숨을 푹 쉬더니 우리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확인하고 올게.”


 미나가 타잔처럼 순식간에 치솟는 불길의 건너편으로 가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로프를 타고 다시 우리 앞으로 나타나 착지했다. 

 

 양팔에 두 덩어리를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