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아주 가관이구만."


그렘린 G-0428은 탄식과 함께 공구상자를 내려놓았다.


빌어먹을 27번 아일랜드에서 포탑과 함께 총탄 세례를 버틴 것도 벅찬데 후퇴하자마자 반파된 알바트로스를 비롯한 수많은 AGS들을 수리해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끔찍한 날 그 자체였다.


"428! 빨리 와서 안 도와줄거야? 언니 지금 힘들어 죽겠거든?!!"


"아, 가요 가! 누군 뭐 농땡이 피우는 줄 아나..."


".........."


알바트로스의 몸 곳곳은 넝마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AGS 중에서 강자 급에 속한다 한들 스토커의 저격에 여러번 피격된 것은 꽤나 피해가 컸기에, 전략적 효율성을 고려하여 기술팀들의 대다수가 알바트로스의 수리에 투입되고 있었다.


"...내 수리는 얼마나 걸리지?"


"여기저기 손 보는 거에다 락카칠까지 고려한다면 못해도 6,7시간 정도 걸릴걸요? 그냥 편하게 계세요."


"아니, 내 수리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경상을 입은 AGS 병력부터 먼저 수리하도록."


"예? 높으신 분부터 먼저 수리 받으셔야..."


"...전투는 모두 끝났고, 현재 파손된 AGS는 나 하나뿐만이 아니다. 내 수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경상을 입은 AGS 병력을 수리하는게 더 효율적이다."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뭐...언니! 짐 챙겨요! 램파트들부터 먼저 수리해야할 것 같아요!"



"혹시 모르니까 긴급 처치용으로 용접은 해놓았으니 움직이지 마세요!"



정비팀이 떠나자 알바트로스는 멍하니 창 밖으로 보이는 27번 아일랜드를 바라보았다.


완벽했다고 생각한 그의 효율적 전술은 그저 허울만 완벽했을 뿐 철충들의 거센 저항조차 예상하지 못한 허술한 전술에 불과했다.


스카이나이츠와 둠 브링어의 큰 피해는 결국 작전에 불참하면서 공중형 AGS 병력을 전부 회수해간 자신의 실책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에 알바트로스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그래."


저 멀리 격납고 입구가 열림과 동시에 아더가 알바트로스를 향해 다가오자, 알바트로스는 스파크를 튀기며 고개를 힘겹게 돌렸다.


"사령관."


"내가 자릴 비운 동안 지휘를 잘해주었다고 들었어."


"...아니, 그 반대다. 내 지휘는 너무나도 형편 없었다."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피해만에 집착한 나머지 여려 변수들 중에서 적의 저항이 거셀 것이라는 경우를 제외한 것과 공중 AGS 병력을 다시 회수한 것부터가 내 지휘의 큰 오점이었다."


"....그랬지. 하지만...."


" '하지만'의 개념은 지금 이 상황에 부적절한 경우다, 사령관. 난 실패했고, 그로 인해 입을 필요도 없던 큰 피해를 입었다. 이게 현실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결과이며, 그게 전부다."


"....일단 네 징계에 대해서 얘기해주지. 명령 불복종에 항명은 크나큰 중죄이지만, 나 대신 병력을 안전하게 퇴각하도록 도운 것과 스토커를 처리한 것, 그리고 27번 아일랜드를 재탈환 한 것을 고려하여...5개월 행정직 파견과 최소 유지 비용을 제한 나머지 AGS 병력 예산안 3년치를 각 부대들의 재건에 투입하는 걸로 결론 지었어."


"메이 중령이 날 죽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처벌 치고는 너무 관대하군."


"정확히는 메이와 슬레이프니르가 널 죽이지 못해 안달 나 있지. 한 동안은 피해 다니는게 나을 거야."


둘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의 기류가 흐르고만 있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더였다.


"알바트로스,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말해라, 사령관. 아는 선에서 답해주겠다."


"군인으로써 갖추어야 할 정신 중 최우선적으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 고를거지?"


"선택지는 어떻게 되나, 사령관?"


"군인으로써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 군인으로써 냉철한 지성을 갖추는 것."


"......."


알바트로스는 아더의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이번 일에 대해 자신을 추궁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으나, 그의 프로그램 속 수치 계산 결과, 아더가 자신을 추궁하는 의도로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나라면...."


"쉽게 고를 수가 없을 것 같아."


"이유는..?"


"이유라..."


아더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난간을 움켜쥐었다.


"지나치게 명예에 반응한다면 전술에 대해 더 신경 쓸 수가 없게되고, 결국 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어.

반대로 지성에 집착한다면 목숨걸고 싸우는 이들이 장기말로 밖에 보이지 않게되고, 결국 그로 인해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되지.


둘 중 하나만을 고른다는 건 솔직히 나로써도 힘든 일이야."


"그리고 우리 둘 중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거군. 맞나, 사령관?"


"맞아. 우리 모두 선택을 한 후에 후회하기 마련인 법이니까.

하지만 누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이었는지는 신만이 알겠지."


사실 아더 역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다. 


차라리 알바트로스의 말대로 지휘권을 넘기고 AGS 병력들이 섬을 재탈환하는 것을 관전하는 것을 택했다면 바이오로이드들의 피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알바트로스 역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는 것을 보자, 아더는 문득 자신의 세계에서 누군가 한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봐, 아더. 세상에 완벽한 지휘관이 있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그냥 뭐...나이 먹으니까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아지더라고. 군인으로써의 정신과 장교로써 냉철한 지성을 동시에 갖춘 완벽한 지휘관이 있다면...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까...뭐 이런 생각이 종종 들더군."


"다 완벽하다면 그건 신이겠지요. 그리고 신이 미쳤다고 이 저주 받은 세상에 내려 오겠습니까?"


"그렇지...세상에 완벽한 지휘관은 없어. 각자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기도 하고,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지. 


아더, 명심하게. 한번 선택을 했다면, 뒤 돌아보지 말게.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죄책감이 자네 발목을 붙잡고 수렁으로 끌고 갈거야.

 끝이 안보이는 ...수렁 말이야."




"알바트로스, 우리가 이렇게 후회한다고 한들, 죽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겠지?"


"......"


"나도 오래전에 들은 이야긴데, 한번 선택을 했다면,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죄책감이 발목을 붙잡고

끝이 안보이는 수렁으로 끌고 갈 테니까."


"......"


"솔직히 말해서...나도 매번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할 때가 있어. 내가 다른 선택을 내렸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도 할 때가 있다고.

난 신이 아니야. 반쯤은 개조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너도 알잖아?"


".........."


"...그래, 너도 생각이 복잡하겠지. 그건 나도 이해해."


아더는 난간을 잡던 손을 떼고, 다음으로 있을 회의를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일단 수리부터 받고 마음이 정리된다면...그때 다시 이야기하지."



아더가 떠났음에도 알바트로스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