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전투가 끝난 후의 수복실은 어쩌면 아비규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피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한데 섞여 수복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수복실 밖에서도 간이 진료실을 만들어 놓았으나,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 병사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27번 아일랜드에 파견된 페어리 시리즈들을 제외한 나머지 페어리 인원들은 수복실 의무병으로 배치되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부상자들의 행렬과 죽어가는 이들의 시체를 내장 조각과 함께 시체 가방에 넣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인해 점차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린 아쿠아들까지 무리해서 동원하면서 의료 인력을 증원하려 하였지만 그 시도는 부질 없었다.


"제발요, 알비스는 아직 살아있단 말이에요...! 수복제 남아있는거 있죠? 그렇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제발 알비스부터 제발..."


전투복이 붉게 물든 한 베라가 싸늘하게 죽어있는 알비스를 가리키며 다프네에게 계속해서 사정하고 있었다.


".... 알비스는 죽었어요. 베라씨도 처음부터 알고 계셨잖아요. 이미 여기 오기 전부터 과다 출혈로 쇼크사 했다는 것도...다 아시잖아요."


다프네는 생기 없는 얼굴로 베라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저격으로 복부가 관통당한 알비스의 흰 전투복은 가운데가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이미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아니야... 살릴 수 있잖아요... 네? 살릴 수 있잖아!!"


"아 진짜..! 뭐하고 있어요, 빨리 밖으로 끌어내고, 다음 환자 안으로 들여보내!"


"베라, 제발 그만 좀 해! 알비스는 오기 전부터 죽어 있었어! 좀 인정하란 말이야!!"


베라가 난동을 부리려하자 옆에 있던 님프들이 그녀를 붙잡아 수복실 밖으로 끌고갔고, 베라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알비스의 시신은 리제와 드라이어드들의 손에 의해 시체 가방에 포장되고 있었다.


"야, 발부터 넣으라고 몇 번을 말해! 바빠 죽겠는데 일감 더 만들거야?!"


"죄송해요, 언니. 이게 좀...잘 안 들어가서..."


"넌 그냥 가서 아쿠아들이랑 같이 모르핀 박스들 더 갖고와. 답답해서 못 봐주겠네... 빨리 갖고 오라고!"


수복실 부장으로써 다프네와 같이 능숙하게  부상자들을 상대했으나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이들을 보며 감정적으로 한계를 보이는 리제 L-988403은 소리를 지르며 드라이어드를 혼내고는 분주히 시체 가방 끈을 단단히 묶고 있었다.


"하...진짜 끝이 안 보인다 끝이....!"


"야, 이 짬찌 새끼야, 정신 차려! 여기 의무실이야, 의무실! 눈 떠! 눈 뜨라고 이 새끼야!!"


한 이프리트가 부대원들과 함께 두 다리가 날아간 브라우니를 겨우 침대에 눕히고는 리제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여,여기...아직 살릴 수 있지? 어? 여기 이렇게 숨도 쉬고...어? 모르핀도 맞고...어? 사,살릴 수 있는 거 마,맞지? 어...?"


리제는 손전등을 꺼내들어 반쯤 기절한 브라우니의 동공에 불을 비춰보고는 무심하게 답했다.


"이거 못 살려, 어차피 얼마 못 가서 죽을 거야."


"무, 무슨 소리에요! 얘 아직 숨 쉬고 있잖아요!! 무책임하게 말하는게 어딨어요!"


"아, 그러니까. 얘 못 살린다고. 이미 피도 많이 흘린데다, 반 쯤은 쇼크 먹은 애를 무슨 수로 살려?"


리제는 냉담하게 말을 내뱉고는 브라우니를 치우라는 손짓과 함께 모르핀 박스를 꺼내기 시작했다.


"적어도 모르핀이라도 놔 줄 수 있잖아! 그건 가능하잖아, 이 새끼야!"


이프리트가 리제의 멱살을 붙잡고 욕지거리를 내뱉자, 리제의 미간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디 모르핀으로 장사할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는 줄 알아? 산 사람한테 써도 턱 없이 모자랄 판에 다 죽어가는 시체한테 줄 건 없어."


"아 됐고, 빨리 얘 치워.  다음 환자 빨리 들어...!"


순간 이프리트의 주먹이 리제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고, 비틀거리며 벽에 부딪힌 리제는 찢어진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러보고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오자 눈동자의 초점이 풀리고 말았다.


"이 새끼가 쳐 돌았나..."


"그래 이 씹새야, 나 지금 야마 단단히 돌았다! 네가 그러고도 의무병이야?!"


그 뒤의 상황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리제와 이프리트가 서로 죽일듯이 달려들자 부상을 입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둘을 간신히 뜯어 말렸고, 곧이어 피 묻은 메스를 들고 이프리트를 찌르려던 리제를 레프리콘과 노움이 순식간에 제압하여 창고에 구금해 놓았다.


그리고 두 다리가 잘려나간 브라우니는 리제의 말대로 결국 쇼크사로 사망하고 말았다.










아더는 데드 오스트 대원들의 보고를 들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의무병으로 차출된 페어리 시리즈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심리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해도  리제의 발언은 넘어갈 수 없는 사항이나 다름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리제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의무부장의 말이 맞았다 해도 목숨 걸고 싸운 병사를 다 죽어가는 시체로 비교하면서 줄 모르핀 따윈 없다는 발언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실텐데요. 같은 편이라고 감싸 주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


"일단, 의무부장에 대한 징계건은 부상병들의 치료를 마친 후에 논의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의무부장과 이프리트 E-001994에 대한 처벌은 잠시 보류하도록. 그리고 노움, 레프리콘."


"예, 사령관님."


"너희 둘은 다프네와 같이 부상자들의 치료를 돕고, 브라우니는 이 곳에서 의무부장을 철저히 감시해라. 알겠나?"


"맡겨만 주십시요, 사령관님."


"그리고 다프네, 나중에 레아와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테니 그리 알도록."


"...알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 아더는 너무나도 많은 결과를 감당해야만 했다. 


스카이 나이츠와 둠 브링어의 크나 큰 피해와 알바트로스의 처벌로 인해 그 둘로부터 믿음을 잃은 것, 그리고 인프라에 집중하였으나, 미흡한 의료 체계 준비에 대해서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 


아더는 문득 오래전 누군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아더, 명심하게. 한번 선택을 했다면, 절대 뒤 돌아보지 말게.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죄책감이 자네 발목을 붙잡고 수렁으로 끌고 갈거야.

 끝이 안보이는 ...수렁 말이야."



"......."


아더는 그저 맥 없이 의무실을 빠져나갔고, 피범벅이 된 복도를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 묻은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