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쪽 세계로 가겠다, 사령관txt] 모음집





--


"짐은.............."


좌우좌가 메뉴판을 들고 한참을 고민한다.


"눈 빠지겠다."

"으으으으음......!"

"후후후. 천천히 고르세요, 우리 공주님이 원하는 건 전부 다 사드릴 테니까요."

"정말!? 정말로 다 사도 되겠느냐!!"

"그럼요."


에이미가 눈웃음을 지으며 우좌를 바라본다.

사령관도 그 둘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지훈 씨."


에이미가 그를 불렀다.


"어, 응?"


그는 살짝 얼을 탔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저희는 둘이서 하나만 시키고, 공주님이 고르는 걸 다 같이 먹을까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도 돼."


그는 에이미가 돈 때문에 고르기를 꺼려한다고 생각했다.


"돈은 넉넉해. 아르망이 준 거 말고도."


아르망의 투자는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일부러 잃기도 하고, 다시 얻기도 하며 교묘하고 철저하게 판을 짜고 있었다.


"음식을 낭비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렇기야 한데...."

"그리고...."


그녀가 슬쩍 몸을 기울이며 몸을 가까이 한다.

가슴이 팔뚝을 꾸욱 누르고, 그녀의 입술이 귓볼에 살짝 닿아 간지럽혔다.


"한 그릇 안에서 저와 당신의 타액이 부드럽게 어울어져 소스가 된다는 거.... 달아오르지 않나요?"

"읏...."


그는 벌써 여러 명과 관계를 맺었고,

그 중에는 나앤처럼 비현실 같은 상황에서 맺은 관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극에 약했다.


'아니, 백전노장이 와도 이건....'


에이미는 미인계에 특화되어 있다고 하더니 과연 그랬다.


"후후후."


에이미가 살짝 떨어지며 웃는다.


"정했다! 짐은 스테이크랑! 폭립이랑 또 어, 이거랑 저거랑...!"


좌우좌가 신나게 메뉴를 고르다가 돌연 멈췄다.


"아.. 짐이 너무 많이 시켰느냐....?"

"아니, 더 시켜도 돼."

"정말? 정말로!?"

"그럼."

"와아! 그럼!! 이거랑저러랑......"


세 사람은 점심 식사를 시작한다.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도 맴돌았다.


솔직히, 라비와 요안나가 무거운 짐을 짊어진 건 마음이 아팠다.

대원들이 이쪽으로 넘어와 그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누군가는 저 너머에서 철충과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펙스가 움직인다는 건, 철충도 그렇다는 얘기겠지.'


자아를 찾은 건 오르카호의 대원들만이 아니다.

펙스도, 철충도. 그리고 별의 아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들의 작은 행복을 이루어주는 것.

그리고 믿는 것.

이 두 가지였다.


"다 잘 될 거야, 그렇지?"


그가 에이미에게 말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고,


"물론이에요."


가까이 다가와 그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은 말씀드리기 이르지만,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요."

"응, 믿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방긋 웃었다.


"사랑스러운 사람."


에이미가 다시 한 번 입을 맞춘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두 사람을 축복해주었고,

좌우좌는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았다.








"와아-!!"


좌우좌가 길거리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인류의 멸망을 직접 경험했으니 감회가 새로울 터.

북적거리던 것은 오르카호 내부도 마찬가지지만

이곳과는 느낌이 다를 거다.


"굉장해. 인간이 이렇게 많이...."


우와, 우와 감탄하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공주님. 길 잃지 않게 손을 꼭 잡으세요."

"음, 알겠노라!"


우좌가 에이미의 손을 꼭 잡는다.


"권속도 손을 주거라. 나와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응."


그도 우좌와 손을 꼭 잡는다.


사실, 그에게도 신선한 풍경이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양식의 건물들이 좌우로 서 있고,

전혀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주변을 오가고 있었다.


'여행 자체가 처음이니.'


어쩌면 좌우좌와 에이미가 느끼는 것에 10퍼센트 정도는 비빌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다 해도 한참 부족하지만.


"오오! 권속이여! 저게 무엇인가!!"


넓은 공원에 다다랐을 때 좌우좌가 사람들이 몰린 곳을 가리켰다.


"길거리 공연이네."


그가 말했지만 그도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오오! 구경해도 되겠느냐!? 권속. 구경하고 싶어."

"그래, 보러 가자."


그들은 사람들이 둘러싼 곳으로 가 가장 바깥에 섰다.

노랫소리는 잘 들리는데, 사람의 벽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권속, 안 보여."

"목말 태워줄게."

"응!"


사령관은 좌우좌를 번쩍 들어 목말을 태웠다.


"어때, 보여?"

"오오! 잘 보인다! 선글라스를 쓴 멋진 아저씨니라!!"

"하하."

"후후후."


에이미가 와서 팔짱을 껴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잘 부르네요, 곡 선정도 좋고. 중저음이랑 잘 어울려요."

"그러네."

"...언젠가 당신 노래도 들어보고 싶네요."

"윽....."

"긴장하시기는."


그녀가 후후 웃었다.


"권숙 권속!! 우리도 해보지 않겠는가?"

"응? 길거리 공연을?"

"그렇다!"

"내가?"

"에에, 권속은 노래를 잘 부르느냐?"

"어.... 아니....?"

"그러면 왜 움찔하는 것이냐. 짐은 스카이나이츠들을 말한 것이다."

"아하하...."


그는 멋쩍게 웃는다.


"스카이나이츠랑 뮤즈, 아스널 준장님도! 또 히루메도! 다들 즐거워할 거다!!"

"흐음."


그는 잠시 고민한다.


'확실히, 여러 사람 앞에서 부르면 성취감을 느낄 수는 있겠다.'


다만, 아스널의 경우는 싫어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스스로가 밝히기를, 오직 '그'를 위해서 연마한 기술이랬으니까.


'하지만 땡컨이라면 관심을 가질 지도.'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선에서 즐기면 좋을 거다.


물론, 지속적으로 즐길 수는 없다.

그럴 여건도 안 될 뿐더러,

혹시라도 세상에 알려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네.'


일단은 알았다고 답한다.


"괜찮은 생각이네. 나중에 모두랑 얘기해볼게."

"기대가 되는구나!"

"후후후, 저도 기대가 되네요."

"앗, 다음 노래가 시작된다!!"


우좌의 외침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어? 그런데 잠깐.'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는 바이오로이드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명령을 내리면.....?'


그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에이미가 관중들 사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응?"


그녀가 귓속말을 한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응."


굳이 그걸 말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알았다고 했다.


에이미가 사라진 후, 그는 우좌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데,

돌연 등 뒤에서 싸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꼭 커터칼의 칼끝이 미간을 향했을 때처럼 날이 서는 기분.


"끅....!"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고, 다음 순간 오싹한 기분이 사라졌다.


"......?"


그는 슬쩍 몸을 틀어 뒤를 본다.

아무도 없었다.

길거리 공연에는 신경도 안 쓰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있을 뿐이었다.


"아아 권속! 안 보인다! 몸을 틀지 말아라!!"

"아, 응. 미안해."


그는 다시 앞을 보면서 생각한다.

착각이라 하기에는 아직도 그 서늘함에 닭살이 돋아 있었다.


'대체 뭐였지?'









"읍...! 으읍...!"


에이미는 으쓱한 골목으로 한 부랑자를 끌고 왔다.


"감히 제 남편에게 칼을 들이밀다니요."


그녀는 부랑자를 벽으로 밀쳐 놓고 입을 틀어 막았다.

한 손으로 성인 남자를 들어 올리는 괴력.

남자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손아귀 사이에 낀 턱 뼈가 어긋나며 뿌드득 거린다.


"죄, 죄송....!"


남자가 영어로 사과한다.

에이미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죽이지는 않겠어요. 저의 살인이 '제 사랑'에게 부담으로 다가갈 테니까."


그녀는 거의 턱을 박살 낼 기세로 손에 힘을 주었다.


"뭐가 목적이었나요? 대답이 늦어지면 각오하시기를."

"도, 돈...! 돈....!!"

"강도를 하려고 했다? 아시아인이라?"


남자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윽...! 으으으..!!"

"다시 한 번 제 눈에 띄면, 죽일 겁니다. 아셨나요?"


다시, 그가 끄덕인다.


에이미는 그를 골목 깊은 곳으로 내던지고 골목을 떠난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부랑자를 억압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그 손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떨림도 없었다.



'아르망 씨의 말이 맞았네요.'


인류와의 연결고리는 끊겼다.

그녀들은 자유였다.


'우리가 모실 분은 오직 한 분.'


그의 게임 계정은 그녀들과 이 세계를 이어주는 등대의 역할을 했고,

등대의 주인은 한 명 뿐이었다.


'지훈 씨.'


그 남자야말로 그녀들의 영원한 행복이 될 사랑이었다.









에이미가 자리로 돌아갔을 때 공연은 끝나 있었고, 좌우좌와 사령관이 뒷정리를 돕고 있었다.


"노래는 정말로 잘 들었다!"

"어... 쉬 세이.. 에... 유어 쏭 이즈 베리베리 굿. 예아~"


사령관이 초등학생보다 못한 수준의 영어로 좌우좌의 말을 해석하고 있었다.


"후후후."


에이미는 다가가서 도와주지 않고 떨어진 장소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외국인 아이와 아시아계 인간은 흔치 않은 조합일 터.


노래를 부르던 남자들도 대강 알아듣고 호탕한 웃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외국인들이 도와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영어를 속사포로 쏟아붓자,

사령관은 얼 타서 '아아, 탱큐 탱큐.'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제 돌아가나요?"

"응."


에이미가 적당할 때 그들에게 돌아갔다.


"어우, 영어를 못해서 혼났네...."

"권속은 영어에 재능이 없다. 에이미가 있었어야 했거늘! 짐의 마음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아요, 공주님."


에이미가 좌우좌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분들에게도 분명 전해졌을 거예요. 제가 보장해요."

"정말이냐?!"

"네. 나중에 그분들이 뭐라고 했는지 알려드릴게요."

"에이미 혹시 다 듣고 있었어....?"

"그럼요, 자기. 당연히 다 듣고 있었어요."


에이미는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노력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구경만 했어요."

"하하....."


사령관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었다.

그녀들에게 저 분은 이런 분이었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그 말 한 마디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

행복의 허들이 낮은 원인은 다소 불운하지만....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그녀들의 모든 아픔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돌아가요. 집으로."


에이미가 그의 팔을 꼭 안으며 달라붙었다.


"응."

"돌아가면 우좌를 먼저 보낼까?"


사령관이 작게 묻는다.


솔직히, 에이미는 혹했다.

그러나...


"아니요. 마지막까지 함께 있고 싶어요."

"그래?"

"네."


암살자로 존재할 때는 이룰 수 없던.

이 행복한 일상을.


"저희 셋이 함께 있어야 의미가 있어요. 당신. 그리고 저의 공주님과 함께."

".....응, 그럼 그렇게 하자."

"후후후, 사랑해요, 나의 파랑새."


그녀가 뺨에 키스를 한다.


"우리는 꼭 가족 같구나! 메리가 줬던 그 그림처럼!!"


좌우좌가 외쳤다.


"어머, 그렇게 보이나요?"

"누가 봐도 가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후후후."

"그런데 좀 남사시럽구나. 길거리에서 이러면."

"앗."

"짐이 눈치껏 먼저 돌아갈 테니 집까지만 참거라."

"읏......"


좌우좌는 대담했고, 관대했다.







"그렇게, 아직 시간이 많지만 짐은 에이미를 위해 양보했다."


좌우좌의 방.

알비스와 그녀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오 굉장해! 그럼 에이미가 감사 인사로 초코바도 왕창 줬겠네!?"


알비스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좌우좌는 으른의 미소를 지었다.


"훗, 알비스 백작이여. 짐은 가족을 대할 때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오.....!! 좌우좌 대단해!"


알비스가 눈을 반짝이며 좌우좌를 칭찬했다.

평소와 달리 오늘의 좌우좌는 확실히 뭔가 으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 사령관이랑 에이미는 푹착푹착 중인가?"

"훗."


좌우좌는 당당한 미소로 대답한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아니하였으니, 뻔하지 않느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액자를 바라봤다.

에이미가 메리에게 부탁했던 커미션 그림이 담긴 액자였다.


사령관과 에이미, 그리고 좌우좌가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정겨운 가족의 한 장면이었다.


"짐은 큐피트 프린세스이니라."


누가 알았을까.

거짓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장막이 들춰졌을 때.

그 너머에 희망과 행복이 있을 줄은.


"참, 권속은 영어를 못했다."

"에에, 영어를? 우린 모듈만 끼면 되는데."

"음, 새로운 권속은 어리숙하더구나. 가르쳐야 할 것이 산더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를 구원한 것은

못하는 것이 없던 만능 사령관이 아니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












다음화 :  "곧 그쪽 세계로 가겠다, 사령관.".txt-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