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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제의 거대한 가위가 목을 겨눈다. 리제가... 내 목을? 나를... 해충이라 부르면서? 아무리 꿈속 세계라지만 이건 좀 현실과 괴리가 크다.

 

 “리제, 나야! 사령관!”

 “주인님의 목소리까지 훔친 죄, 사지를 갈가리 찢어 놓겠어!”

 

 아, 화내는 포인트를 보니 차라리 말을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섬뜩하게 차가운 날이 목에 닿아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정신 나갈 것 같은 공간을 겨우 버텨 이제 겨우 리제를 만났는데, 이리 허무하게 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위에 성대가 잘리기 전,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친다.

 

 “리제!! 이건 꿈이야! 눈을 떠!”

 

 목을 파고드는 날이 멈칫한다. 실눈을 뜨고 살피자 리제가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살핀다.

 

 “... 주인님?”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스토커!!!!!!”

 

 무언가 긴 덩어리가 날아와 리제의 가위를 때렸다. 가위가 목에서 떨어지는 동시에 누군가 내 몸을 뒤로 끌어당긴다. 덕분에 뒤로 자빠져 리제가 잘라낸 나의 옛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잘린 목끼리 정답게 마주 보는 것보다는 한쪽이라도 붙어 있는 게 낫지. 그나저나, 이 목소리는 리리스! 나를 붙잡은 리리스의 손... 촉수를 더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촉수?

 

 검고 흰 뭉텅이가 부풀어 올라 나와 리제 사이를 가로막는다. 기다란 촉수가 무언가를 질질 끌고 와 그 덩어리에 합류한다... 자세히 보니 총이다. 리리스의 피스톨. 덩어리가 느릿느릿 총을 들어올려 리제를 겨눴지만, 총구는 휘적휘적 허공을 겨눈다.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난 걸까, 거대한 덩어리는 꾸물텅 꾸물텅 몸을 떤다.

 

 “그... 저... 리리스?”

 “네, 스토커로부터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 착한 리리스가 왔어요. 주인니... 주인님??”

 

 리리스의 목소리를 내는 그 무언가가 나를 쳐다보더니(쳐다본 것이 맞겠지?) 소스라치게 놀란 듯 몸을 위아래로 격렬하게 튕긴다. 이건 좀 징그러운걸. 그보다, 놀라고 싶은 건 내 쪽인데 왜 날 보고 그러는 거야?

 

 “주인님, 얼굴이!”

 

 얼굴? 손으로 얼굴을 더듬자 이마 위로 기계같이 차갑고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주 옛날에 느껴봤던 불쾌한 감촉... 기억하기 싫은 그 감촉... 리제가 나를 해충으로 착각할 만하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반 철충, 반 인간 머리, 지금 내 목 위에 달린 것과 똑같이 생긴 머리와 다시 눈을 맞췄다.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리제가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일단 내가 진짜 사령관이라는 것을 믿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고, 그 ‘덩어리’가 리리스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그 두 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전부 네 모자란 기억력 때문이라는 거야!”

 

 리리스의 가설은 이러했다. 리제의 꿈속으로 들어온 우리는 리제의 기억을 기반으로 실체화되기에 그 기억이 흐릿할수록 실체화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리제의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나는 일부가 철충일지언정 그 형태가 온전하게 실체화되었지만, 흐릿하게 기억되고 있던 자신은 이런 부정형의 괴물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샬럿은?”

 “샬럿...이요?”

 

 리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응, 샬럿도 함께 네 꿈속에 들어왔는데 아직 만나질 못했어.”

 “죄송합니다만, 주인님. 그... 샬럿이라는 분은 누구신지...?”

 “흥, 이 리리스도, 심지어 주인님조차 이렇게 엉망으로 기억하고 있을진대, 샬럿을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샬럿은 아예 이 꿈속에 들어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아니, 그래도 지금 리제가 잠든 지 겨우 두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그렇게 아예 잊어버리는 게 가능할까?”

 “그게 아마...”

 

 리리스가 말끝을 흐렸다. 리제를 쳐다보며 대답을 미루는 듯했다.

 

 “두 시간이요?”

 

 리제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주인님.”

 

 리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혹시 저희가 스토커의 꿈속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는지, 알고 있으신지요?”

 “글쎄, 시간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계속 걷기만 했어서...”

 “삼 일이 넘었습니다.”

 

 뭐?

 

 “이곳은... 시간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어서요. 그래서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시간을 셌습니다. 74시간 20분, 지금 막 40초가 지났습니다.”

 

 “아니, 잠깐. 닥터는 20분이면 리제의 자아가 붕괴할 거라고 말했어. 뭔가 착각을...”

 

 순간, 닥터가 보여줬던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 가운데 하얀 타원이 떠 있을 뿐이었던 그 영상. 그 영상은 꿈속의 리제가 실시간으로 보는 시야를 재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꿈속에서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다면? 수 시간의 시야가 겹치고 겹쳐서 하나의 화면에 나타난다면?

 

 ‘이건... 전송되는 데이터 양이 비정상적으로 많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거든?’

 

 

 “리제, 너는 지금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지?”

 

 리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여기에 갇힌 지, 벌써 두 달은 넘은 것 같은데요?”

 

 이곳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다.

 

 

 ‘이건 한 시간 전 화면. 원의 길이가 지금보다 짧지?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데이터의 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점점 빠르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