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 없이 인터넷을 서핑하고 있었다. 대충 통발을 돌려놓고서 아무 생각도 없이 끄적끄적 마우스를 클릭할 뿐인 시간 때우기였다. 그런 내 눈에 띈 것은 어떤 게시물이었다.


 『당신만의 라스트 오리진 세계관에서 살아남기』


 뭐야, 이건? 댓글도 없고 조회수도 1인 싱싱한 게시글에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클릭해봤다. 그리고 뜨는 것은 마치 RPG 게임 초기 화면처럼 뜨는 화면이었다. 각종 창들이 질서정연하게 쭉 늘어서있었고, 캐릭터 생성, 세계관 변화, 인물 관계도 등등을 설정할 수 있는 화면 말이다. 몇 개 툭툭 클릭해보자, 이리저리 움직이기는 하지만 평범하네- 싶은 수준이었다. 누군가가 만든 웹페이지 형 게임북 같은 느낌이었다. 캐릭터 생성은 두 가지가 있었다. 어느 쪽이건 커스텀 캐릭 창조이긴 했지만, 웹페이지가 제공하는 옵션을 건드려 조절하는 형식이 하나. 그리고 외부 이미지 파일을 가져와 대충 설명만 적어놓는 형식이 하나.


 이건 일단 나중에 할까. 나는 세계관 변화를 살펴봤다. 거기에는 온갖 세계관 조작 옵션이 가득했다. 크툴루 스타일이라던가, 좀 더 SF 스럽게 한다던가, 아니면 판타지 옵션을 넣는다던가. 판타지 옵션을 클릭해보자, 아래에 나온 인물들의 설명이 살짝 변화하는 게 보였다. 다시 클릭해서 해제하자 원래대로 돌아갔고 말이다. 이건 좀 건드리기 그런가. 다른 옵션들도 살펴봤지만 장단점이 거의 확실하게 있어서 선택하기 껄끄러운게 많았다. SF를 넣으면 아군이 강해지긴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철충도 강해진다던가. 판타지 옵션을 넣으면 철충이 마왕군 느낌으로 강화된다던가. 뭐, 그 대신 다른 걸 건드릴 포인트를 주긴 했다.


 인물 관계도는 세계관 변화보다는 간단했다. 적대, 중립, 친애, 서약. 네 가지 옵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게임에서 서약한 녀석들을 톡톡 건드려줬다. 의외로 서약에 드는 포인트는 쌌기에 내가 서약한 녀석들을 다 건드리고도 조금의 포인트는 남길 수 있었다.


오드리 드림위버, 블랙 웜 S9, 천향의 히루메, 네오딤, 마키나, X-00 티아멧, 철혈의 레오나, T-8W 발키리, 자비로운 리앤, 소완, 아우로라, 신속의 칸, 보련, 므네모시네, 블랙 리리스, CS 페로, 생명의 세레스티아, 무적의 용, 아르망 추기경, 뽀끄루 대마왕.


 도합 20명에 달하는 바이오로이드를 서약 버튼으로 눌러줬다. 나머지는 자동으로 중립이라는 디폴트 설정이었지만, 굳이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묘한 감각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서약 참 많이도 했네 싶다. 서약 반지를 이벤트로 뿌린 것도 있지만, 직접 사서 끼워준 것도 있으니 그럭저럭이라는 느낌이었다. 무과금은 아니고 소과금이라는 느낌 정도? 하긴, 진짜 서버주들은 아예 전 인원에게 반지를 끼워줬다고 하니 나같은 건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설정을 하고 나자 이제 남은건 캐릭터 설정 뿐이었다. 페이지가 제공하는 옵션은...쉽게 말하면 간단했고, 다르게 말하면 평범했다. 휘프노스 병 면역이라던가,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혼혈이라던가, 두 번째 인간이라던가. 능력치를 설정하는 곳도 있긴 했지만 거기에는 이런 옵션이 붙어있었다. 특화 바이오로이드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 라는 설명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다른 옵션을 보았다. 자신만의 커스텀 설정을 자유롭게 짤 수 있는 칸이었다.


 속된 말로 자캐딸에 가깝긴 하지만, 어차피 평범한 게임북 형식의 웹페이지다. 머리 써가면서 옵션을 신중하게 결정하느니 그냥 먼치킨 캐릭터 하나 쳐박아넣는 게 더 깔끔하고 편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옵션 조작식은 포인트가 모자라서 세계관 변화라던가, 아니면 페널티를 받아가면서 조작해야 했다.


 "그럼....어디보자."


 기왕하는 거 조금 많이 강하게 해보자. 시간도 마침 남아돌겠다, 이런 식의 가벼운 여흥은 즐거운 일이었다. 평소에 이런 류의 작품을 많이 봐뒀기에 세계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먼치킨 캐릭을 만드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완성된 것을 보자 나는 실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어디에 던져놔도 죽지는 않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되기에 한 발자국 모자란 수준의 중성자 별에 떨어져도 몸이 조금 무겁네, 하고 느낄 정도의 신체 강도와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라니. 거기에 휘프노스 병 면역은 패시브요, 별의 아이들도 단체로 몰려들어도 잘근잘근 짓밟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뭐, 어차피 게임이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캐릭터 이미지를 올리는 란에 마침 지나가면서 본 적당한 미소년 캐릭터 - 웹서핑 하면서 보는 남캐의 이미지라고는 미소년이 유일했다 - 일러스트를 올린 뒤 마지막으로 밑에 있는 확인을 눌렀다.


 『오류. 중대한 오차 발생. 라스트 오리진 세계관에 맞지 않는 법칙과 힘이 감지되었습니다. 오류. 오류. 오-....적용까지 1%. 적용 완료 예정까지 99년.』

 "응?"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사령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