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49543871 - 시리즈 모음














땅이 울리고 수많은 거목이 쓰러진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와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한가득 울려 퍼진다.




발키리가 스코프를 통해서 보고 있는 광경은 그런 파괴의 향연이었다.




그 파괴의 장본인, 타이런트가 오르카 소속이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가 딱히 잔인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은 난폭 그 자체. 그렇기에 보다 보면 다소 두려움이 느껴졌다. 바이오로이드라는 만들어진 생명이라 한들 가지고 있는 생명체의 본능이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대원들의 접근조차 허용치 않던 수 겹의 방어선은 이미 2개나 파괴되었고 지금은 3번째 방어선이 무너지는 중이었다.




정작 그 파괴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별생각이 없었다. 턱과 꼬리 등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열심히 움직여 눈앞의 AGS를 제거하는 반복 작업을 수행하며 기계적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전쟁터 한복판이라 한들 몸에 흠집이 나는 게 고작. 타이런트에게 이 전장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더 없나?"




파괴행위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폐허가 보였다. 나무로 가득하던 숲은 평지화되었고 수백의 AGS가 파괴된 흔적이 널려있는 폐허



그 폐허 사이로 올빼미 깃털 같은 것이 불쑥 솟아올랐다.




"안녕 타이런트!"


"우와악! 어우 시ㅂ…놀래라!"



수십의 AGS를 쓰러트린 자의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경박한 비명. 자신 때문에 기겁한 타이런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비스의 표정은 아침 햇살처럼 해맑았다.




"히히 오랜만이야!"


"너 왜 여기 있어! 아니 그보다도 안 다쳤어?"




혹여나 내 공격에 휘말린 건 아닐까 걱정되어 그녀의 상태를 살펴봤다. 다행히도 알비스는 상처 하나 없었다.




"휴.. 다치지는 않았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저어어기서 언니들이랑 있었는데 타이런트가 보여서 왔어."




손가락으로 저 멀리 언덕을 가리키는 알비스. 지금 보니 이마가 땀으로 흥건했다. 




"아 대장님도 같이 왔어!"


"대장님이라면… 레오나?"


"정답이야, 타이런트"




아직 쓰러지지 않은 나무 사이에서 금발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엉망진창인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귀한 모습에 레드 카펫이라도 깔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당당했고 또 아름다웠다.




"적의 방어선을 돌파해 준건 고마워. 하지만 함부로 공격했다간 아군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것 기억해둬. 광선이나 미사일은 사용하지 않은 걸 보니 전혀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긴 하지만."




거대한 병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철혈의 지휘관


그녀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기에 순순히 인정했다. 조금 전에도 알비스가 근처에 있었는데 파괴 행각을 벌이고 있지 않았는가.




"주의하겠다. 연락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아군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사령관과의 연락은 가능한 상태인가?"


"전파를 감지하자마자 알바트로스와 기술진들이 대응하기 시작했어. 곧 오르카 내부의 통신 문제는 해결 될거야. 그러면 사령관과 연락도 가능해지겠지."




에이미에게 전해달라 부탁할 필요도 없었나. 하기야 오르카에는 뛰어난 지휘관이 많았다. 이런 사태에 대비하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




"방어선도 파괴했으니 나와 대원들이 숲 속으로 들어갈 거야. 사령관도 금방 찾을 수 있겠지."



"오 그래 숲 속으로.. 안돼!"




내가 소리 지르자 천하의 레오나도 당황했는지 포커  페이스가 살짝 흔들렸다.




"왜 소리지르고 그래? 뭐라도 있어?"


"숲 안에 타이런트가 있다. 나 말고 다른 타이런트"




레오나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사령관이 타이런트가 있는 숲에 고립되있다. 그 사실이 방금까지만 해도 같이 간 대원들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애써 잠재운 위기감과 걱정을 다시 솟아오르게 했다.




그러나 지휘관으로서의 위기감과 한 여자로서의 걱정도 억누를 수 있는 강굴함이 그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알바트로스는 방해 전파에 대응 중이니 움직일 수 없으니 배제하면…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너하고 팬텀, 레이스… 그리고 그 AGS 뿐이겠네"




레오나가 AGS를 언급하며 거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레오나가 대하기 어려워하면서 타이런트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있던가?




아니 그런 사소한 걸 생각할 여유는 없겠지. 바닐라가 없는 만큼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알 수 없다. 사령관, 아니면 다른 대원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일단 나부터 들어가겠다. 대응은 빠른 편이 좋겠지."


"좋아, 추가 병력은 내가 보낼게. 너하고 숲속에 있는 타이런트는 구분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아군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도록 해"


"조언 고마워"




숲속으로 사라지는 타이런트를 뒤로하고 레오나는 곧장 오르카로 향했다.


현재 오르카에 속해있는 3기의 최상위 AGS 중 하나,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자에게 사령관의 구조를 부탁하기 위해




"알비스 따라오렴."


"네! 대장님"









***







"허억..허억.."



"괜찮으신가요. 주인님?"


"주인님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무에 기대 거친 숨을 고르는 사령관, 그리고 그런 그를 걱정하는 콘스탄챠와 금란. 장작 그녀들 또한 호흡이 규칙적이지 못했고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잠깐 쉬자. 너희들도 좀 쉬어"




그의 말에 금란, 콘스탄챠 그리고 엘븐과 다크엘븐, 하르페이아 모두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들은 사주경계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었다.




쉬기 시작한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하늘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하르페이아가 급히 내려왔다.




"사령관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어. 우리 편은 확실히 아닌…"




하르페이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와 섬뜩한 포효


사령관에게는 다소 익숙한 소리였기에 그 소리의 근원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뛰어!"




다시 달리기 시작한 그와 그녀들 뒤에서 나무를 쓰러뜨리며 타이런트가 달려오고 있었다.




[ 크아아아아아!! ]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땅울림, 길을 막던 나무가 힘없이 꺾이고 부러지는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공포가 다리를 움직인다. 그러나 미친 듯이 달려도 보폭의 차이가 거리를 줄여버린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일행의 가장 뒤에서 달리던 콘스탄챠를 목표물로 삼은 폭군. 마침내 이빨이 닿을 거리에 도달하자 연약한 바이오로이드의 신체를 잘게 다지기 위해 폭군의 입이 벌어진 순간



 

"안녕! 잠깐 실례할게!"




써니가 신기에 가까운 유연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콘스탄챠를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다가오는 차가운 공기


얼음으로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자 그 위로 빠르게 미끄러지며 거리를 벌리는 써니와 콘스탄챠




갑작스러운 둘의 난입에 사냥감을 놓친 타이런트가 분노에 찬 포효를 지르며 그녀들을 쫒았다. 그러나 써니는 콘스탄챠를 안아 든 상태라고는 믿기지 않는 움직임으로 타이런트와 거리를 벌렸다.




써니와 콘스탄챠가 사령관 일행의 옆에 착륙한 순간  얼음의 벽이 솟아나 타이런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얼음의 벽따위 타이런트에게 종잇장만도 못하다. 하지만 이 벽의 목적은 물리적 차단이 아닌 속임수를 위한 것




써니의 홀로그램이 얼음의 벽 뒤에서 튀어나와 일행이 도망치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사라져간다. 타이런트는 홀로그램이 자신이 쫒던 것들과는 모습도 숫자도 다르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것을 쫒아갔다.




위기는 넘겼다. 그렇게 생각한 일행이 나무 뒤에 숨어 숨을 고르는 순간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던 나무가 꺾이기 시작한다. 




또 다른 타이런트가 나타났다.




오르카 소속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날려버리는 흉포한 울부짖음과 함께 두 번째 타이런트가 사령관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번개가 떨어졌다.




콰광!




마른하늘에 떨어진 번개가 타이런트에게 직격해 불꽃을 피워낸다. 주변으로 흩어진 전류가 근처 나무들을 모조리 태워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그 연기보다 검은 AGS가 내려왔다.




"흐음.. 연합전쟁 당시 최강의 AGS라고 하기에 그 힘에는 흥미가 있었습니다만… 실망스럽군요."




또 한번 번개가 타이런트에게 직격하며 강렬한 전류가 강철의 몸을 타고 흐른다. 회로가 타는 냄새와 함께 거대한 폭군이 쓰러졌다.




"사령관 각하. 이곳에 계셨군요."



"로크! 덕분에 살았어."



"다들 제 몸에 매달리시지요. 잠시 기능을 정지시켰을 뿐이니 서둘러 빠져나가야 합니다."




사령관 일행이 로크의 몸에 올라탄 순간 써니의 홀로그램에서 벗어나 추격을 재개한 첫 번째 타이런트가 나타나 로크에게 달려들었다.




속았다는 걸 눈치챘는지 머리끝까지 분노한 모습




[ 크아아아아아!!!! ]




성난 폭군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로크는 반격하려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필요가 없었다.




"타이런트! 처리하시지요!"




로크의 목소리와 함께 숲이 갈라졌다.





숲을 가른 것은 붉은 빛





어떤 요새도 어떤 적도 파괴해버리는 파괴의 빛이 로크에게 돌진하던 타이런트를 덮쳤다.





쿠구궁!





빛이 소멸하자 몸이 붉게 달궈진 채 넘어진 타이런트의 눈앞에 펼처진 것은 갈라지고 불탄 숲 그리고 또 다른 폭군의 모습이었다.




"좋아 로크, 니가 말한대로 잘 진행됬네.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거냐?"


"제가 사령관 각하와 다른 분들을 안전한 곳까지 모실 동안 이 짐승들을 상대해주시면 됩니다. "


"뭐? 야 입 밖으로 나온다고 다 말인 줄 아냐! 나보고 어떻게 이 두 놈을 동시에…"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순식간에 로크는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붙잡을 틈도 없이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로크




그리고…




[ 크르르르… ]




타이런트 둘이 동시에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두 마리의 타이런트가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타이런트가 돌진해오는 타이밍에 맞춰 몸을 옆으로 돌린다. 온몸의 무게를 꼬리에 싣자 나의 꼬리는 강철의 벽도 무너뜨릴 파쇄추가 되어 돌격하던 타이런트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광!




앞서서 돌진해오던 타이런트가 그 충격에 밀쳐지며 뒤에 있던 타이런트의 몸에 부딪히자 강철과 강철의 파쇄음이 숲 전체에 울려 퍼진다.




비틀거리는 것도 잠시, 몸의 균형을 찾은 두 녀석. 그  중에서 나에게 얻어맞은 놈이 달려들려는 순간 덜컥 하고 무언가에 걸린 듯 멈춰 섰다.




두 번째 타이런트가 녀석의 다리를 물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깔아뭉갰던 다른 타이런트를 적이라고 판단한 모양. 나를 노리던 녀석도 표적을 바꿔 자신의 다리를 문 타이런트의 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 크아아아아! ]


[ 크아아아아아아!! ]




포효하고 물어뜯고 서로를 향해 몸을 부딪치는 둘.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 난입할 필요는 없으니 한 발짝 물러서서 구경했다. 지들끼리 싸우다가 둘다 죽으면 참 좋겠다 같은 생각도 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소프트웨어 성능이 떨어져도 타이런트는 타이런트, 괴물이니까.




괴물들의 싸움답게 결판이 나는 것은 빨랐다. 한쪽이 상대방의 목에 제대로 이빨을 박아넣는 데 성공하자마자 강력한 치악력이 목을 으스러트렸다. 불꽃이 목에서 솟아오르자 물린 쪽의 몸이 축 늘어진다.




패자의 시체를 집어던진 놈은 다음 목표물, 나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타이런트다운 무겁고 강한 공격. 하지만 너무나도 단순하다. 녀석의 공격이 향할 위치가 눈에 뻔히 보인다.




머리를 오른쪽으로 비틀어 녀석의 이빨을 피하자 내 이빨 바로 앞에는 녀석의 목이 놓였다.




나는 그 기회를 날려버릴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단숨에 이빨을 목에 박아넣고 턱에 힘을 준다. 거기에 더해 턱의 위아래에 달린 부스터까지 불을 내뿜으며 녀석의 목을 누르는 턱에 힘을 더한다.




방금 녀석이 했던 것처럼




우드득.. 콰가가가각…!




[ 크아아아아아!! ]




내 이빨에서 벗어나러 몸부림치는 녀석


그리고 녀석을 놓아주지 않으려 버티는 나


두 거인의 발걸음 한번 한번이 땅을 흔들며 마치 지진이 일어난것 같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상다방의 힘은 나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다. 아마 이대로 힘겨루기를 계속했다가는 내가 놈을 놓치고 말겠지. 그러니 지금 바로 끝내야한다.




한쪽 발을 앞으로 한 발짝 내딛는다. 머리쪽으로 무게를 싣고 몸 전체를 휘두르며 상대를 엎어 쳤다.




쿵!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넘어진 녀석의 몸을 한쪽 발로 짓밟자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짓밟힌 부위에 금이 간다.




콰직! 우드득



[ 크으으…크아아아!! ]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사라지지 않는 투지


그에 화답하듯 놈을 밟고 있는 발에 무게를 실어 놈의 몸을 더욱 단단히 고정하고 물고 있던 목을 뽑아버릴 기세로 위로 잡아당긴다.




으드득..콰가각… 




목의 장갑이 하나씩 부서지며 안에 있던 부품이 튀어나온다. 그럴수록 밟혀있는 녀석의 반항이 거세지지만 결국 그뿐이다. 녀석은 이기지 못했다.




쾅!




폭발음과 함께 내가 밟고있던 타이런트의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다. 물고있는 머리의 절단면에서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줄줄 흐르며 내 이빨과 머리를 적셨다.




쿵!




패배한 폭군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며 마지막으로 땅을 한번 흔들었다. 




"훌륭하시군요. 두 마리를 동시에 해치우실 줄이야."




그제서야 나타난 로크. 천천히 고도를 낮추는 모습이 쓸데없이 우아하고 또 여유로워 보여서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짬처리를 해도 이렇게 하냐! 내려와! 내려오라고 망할 까마귀 새끼야!!"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 이빨을 피하는 로크. 이빨은 허공만 가르며 서로 부딪혀 캉캉하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아..혈압 올라"


"혈압? 전압을 잘못 말한 것 아닙니까"




순간 뒷목이 땡겼다. 로크 말대로 이 몸에 혈압이 있을 리가 없으니 인간 시절의 잔재 때문이겠지.




"말을 말자… 이 몸으로는 뒷목도 못 주무르는데"





로크를 잡는 것은 포기하고 땅바닥에 누워버렸다. 새삼 이 세상에 와서 오르카를 위해서 싸운 것이 몇 번인데 잠깐 휴가를 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