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월요일 오전 6시, 대망의 첫 출근을 위한 기념비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아침의 날씨는 맑고 화창함!


하늘에 있는 구름이 회색에 검은색같지만 그건 기분탓이다! 나한텐 맑고 화창함!


물론 주말동안 고생이 있긴 했다. 아무리 직장을 구했다고 해도 돈이 없다는 현실은 그대로였으니, 주말동안은 돈이랑 먹을게 없었다.


다만, 주말동안 사장님의 태평양와도 같은 너른 마음덕분에 편의점 폐기식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로 럭셔리한 식사를 하며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지.


아아, 그 이름도 멋지고 대단한 티타니아 사장님!


그 협박(?)면접을 하고서도 통성명 한번도 못했지만, 나한테 연락했던 사장님의 전화번호를 등록하고 나중에서야 이름을 알게됐다.


그렇게 눈물겨운 주말이 지나고, 드디어 영광스러운 첫 출근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모님...정확히는 과외를 해아하는 학생인 미호의 집.


나같은 인간은 살 마음도 못낼것같은 개쩌는 고급 아파트다.


...나 진짜 제대로 된 과외를 잡은걸까, 아니면 욕심내면 안되는 호랑이꼬리같은걸 잡은걸까?


아파트 입구 부근에서 서성이기를 잠시,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듯 미호가 달려와서 내 팔을 붙잡았다.


"쌤! 안녕하세요!"


"그래, 나도 반가워."


미호는 세상 해맑게 웃으면서 내 팔에 계속 매달려 있었다.


"쌤, 학교 가는길은 제가 안내할게요. 그리고 옷 멋져요."


꼭 강아지처럼 잘 따르는 여친이 있으면 이런 느낌이겠지만…은인인 사모님의 소중한 딸내미이시다.


나같은녀석한데 비싼돈 주면서 이런 일을 시킬정도로 귀한 딸이니까 건드리면 안되겠지.


그리고 미성년자다.


"고맙다. 그리고 길 안내는 괜찮은데? 휴대폰 네비게이션 있어."


아무리 내가 사회 초년생이라도 네비게이션은 쓸 줄 알아, 미호야....


"제가 안내할게요."


미호는 내 말을 못들은건지, 다시한번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뭐라도 해주고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난 너한테 도움을 주라고 돈을 받는거란다. 도움을 받으라고 돈을 받는게 아니라.


"네비…"


확실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제가. 안내. 할게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패기가 서려있다.


한번만 더 말을 꺼냈다가는 무언가를 당할것 같으니, 그냥 안내를 받도록 하자.


그래, 현지인의 안내가 정확하잖아? 아하하하. 절대 눈앞에 있는 고등학생한테 쫄아서 이러는건 아니다.


"알았어."


그렇게 미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우리 옆에 승용차 한대가 부드럽게 다가와 정차했다.


"응?"


갑자기 나타난 차에 고개가 돌아간 순간, 차의 창문이 내려갔고 거기서 사모님이 얼굴을 비추셨다.


"이 차 쓰시면 돼요."


이 차를 쓰라고요? 진짜?


"이 차를…쓰면 된다고요?"


내가 차에대해서 뭐든지 아는 차박이는 아니라도, 적어도 명품 브랜드와 비싼 시리즈의 가격대가 어느정도인지는 대충 주워들은게 있다.


…이거, 깡통가격만 2억이잖아. 지금 살짝 보이는 내부 보면 그냥 깡통이 아니라 풀옵션같은데.


물론 소중한 딸을 보내는 차니까 좋은거 태운다는 마음이 이해안가는 것도 아니고, 이정도 집이면 저정도 차면 의외로 최고 수준은 아니잖아?


아까 여기 올 때 보니까 파란색 페라리가 지나가기도 했고. 근데 사모님의 이어지는 말은 부자동네니까 그러려니하던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네, 출근용이랑 외출용 두대가 있거든요. 그럼 수고하세요~"


두대? 차 두대야? 면허는 사모님 혼자만 갖고있잖아요. 근데 차 두대?


"키는 차 안에 있어요. 그리고 안에 체크카드도 있으니까 주차장에 갈 일 있거나 미호 간식같은거 사주실일 있으시면 쓰시고. 소액결제는 내역 안날아오니까 5만원 밑으로는 부담없이 쓰셔도 돼요."


차 두대인데 하나는 외제차에…뭐? 카드도 준다고? 마음대로 쓰라고? 진짜?


잠깐 놀라있는 사이에, 사모님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가셨다.


부잣집은 부잣집이구나…임원씩이나 되면 저정도 재력을 가지게 되는건가?


"진짜 나 여기 어떻게 취직한거지?"


차 겉표면에 기스라도 날까봐 카드로 탑쌓듯이 부드럽고 디테일한 움직임에 신경쓰며 손잡이를 쥐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와서 차 뒷문을 난폭하게 열었다.


덜컹!


으아악 그거 비싼거야! 기스내지마!


"와! 미호네 쌤, 나도 태워줘!"


저 애는 분명…철용이였지.


"뭐?! 야, 나가!"


미호는 자기 자매인 철용이랑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근데 왜 싸우지? 학교가는길이 다른데 태워달라는건가?


"싫어! 나도 편하게 학교갈거야! 어차피 지하철로 가도 중간에 내리니까 나도 가는길에 내려주면 되잖아! 나 지하철 싫어! 맨날 카드를 다시 대라고 한단 말이야!"


음, 내가 내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살듯이 철용이도 철용이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사는구나.


모두가 각자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고있겠지! 크흑, 너도 참 고생이 많다!


갑자기 밀려든 감수성에, 나는 철용이를 태워주고싶어졌다.


"태워줘도 괜찮지 않아?"


내 말에, 미호와 철용이는 서로 반대되는 반응을 보였다.


"아, 쌔애앰~!"


"우와! 고마워, 미호네 쌤!"


앙탈부리는 미호가 귀엽긴 한데, 철용이의 해맑은 미소에 마음이 좀 더 흔들린다.


"대신 난 옆자리에 탈거야."


미호는 그 말을 하고 곧바로 조수석에 탔고, 철용이는 조수석에타든 트렁크에타든 신경쓰지 않는다는듯이 뒷좌석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럼 난 뒤에서 누워있어야지! 히히, 도착하면 깨워줘."


아무리 그래도 누워있는건 좀 아니지않니…?


운전석에 앉은 뒤, 시트를 조정하는 사이에 미호가 안전벨트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게 신경쓰여 벨트를 채워주었다.


범칙금 3만원이라고.


"안전벨트는 제대로 해."


"?!?!"


내가 직접 안전벨트를 채워주자, 미호는 벨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에 있는 애도 채워야지.


"철용아, 너도 벨트 차."


"에에~누워있고싶은데. 왜 차야해?"


"그게 법이야."


"어쩔수없네."


철용이는 순순히 안전벨트를 찼고, 그렇게 우리는 아파트를 나서 학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쓰읍, 아침 출근이라 조금 막히네…?"


여기 주변 지리를 대충 알긴 하지만, 차가 이렇게 막힐줄은 몰랐는데.


"쌤, 엄마는 여기서 저쪽으로 빠졌어요."


"그래? 옛날에 이 주변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아침 교통상황은 잘 몰라서."


"이 주변에 다녔어요? 학교 어디였어요?"


미호는 내가 다닌 학교에 관심이 있는지 내 모교를 물어왔지만, 나는 엄마(학교)…모교가 없다.


"어? 아아, 없어졌어. 학교 재단에서 사건사고가 터져서 망했거든."


"으음…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어차피 1년 다니다가 끝났고. 그보다 네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그 국제고였나?"


"아, 네."


"외국인친구도 많겠네?"


"제법…있죠."


"그래, 친구는 좋은거야."


그렇게 미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철용이가 앞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고 말했다.


"미호네 쌤!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에, 저쪽 언덕길 앞에서 세워줘."


오른쪽으로 꺾고 언덕길…? 분명히 저기는 내가 알기로…산인데. 그리고 그 산 위에 고등학교가 있었지 아마.


"저쪽 언덕길이면…저거 산위에 있는 학교 진입로 아냐? 위까지 안태워줘도 돼?"


분명히 내 기억에 따르면 저기 올라가는게 엄청 힘들다고 들었는데? 3학년쯤 되면 죄다 장딴지가 철근콘트리트마냥 미쳐버린 수준이었고.


내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던 중에, 철용이는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뛰는게 더 빨라!"


…뭐? 아니, 아니지. 지난번에 보니 얘가 몸은 튼튼한것 같았고…내 학생은 철용이가 아니라 미호잖아? 적당히 태워다주면 되겠지.


그렇게 그 문제의 산동네 학교에 멈춰서자, 철용이는 곧바로 튀어나가 언덕길을 평지처럼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와……"


사람의 모습을 한 말이나 산양 뭐 그런게 아닐까…? 저거 2단기어넣고 언덕 올라가는 1톤 탑차보다 빠르게 달리는데?


도중에 철용이랑 비슷할 정도의 속도로 달려가는 갈색머리의 여자애가 또 하나 있었지만, 더 알아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되게 빠르네. 아무튼 저 앞쪽 그 국제고로 데려다주면 되는거지?"


"네."


철용이의 전력 질주를 본 뒤, 나는 미호가 다니는 학교에 도착했다.


"…여기 부자학교인건 알았는데, 너무 부자인데?"


사립의 티가 팍팍 날 정도로…아니, 그냥 게임이나 드라마에 나올정도로 엄청나게 고급진 학교다.


그냥 화강암판때기랑 초록색 문패박힌 흔한 학교가 아니라, 무슨 옻칠한 나무에 금박으로 글귀새긴것같은 학교이름이 박혀있다.


국제 UOU 고등학원


…원래 국제고등학교인건 알았는데, 영어였나? 나 학창시절에는 뭔가 한국이름이었던것같은데.


정문에서부터 부티와 귀티가 나는 학교였지만 일단 여기가 미호의 학교였으니 미호를 내려주었다.


"쌤! 5시에 와줘요!"


"알았어."


"얘들아 안녕~"


미호는 인싸스럽게 지나가는 애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아싸틱한 학창생활을 보냈었던 나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음, 역시 고급진 학교라 그런가 애들도 다 고급지네.


확실히 아가씨 느낌이 나는애도 보이고.


차분하고 분위기있게 이어폰을 귀에 꽂고있는 애가 보이는데…다른애들은 다 학교 건물로 가는데 왜 혼자만 벤치에 앉아있대?


그리고 조금 복장이 프리해보이지만 그래도 뭔가 자신감넘쳐보이는애도 있고.


아니…너무 프리한 애도 있는데. 이거 학교 괜찮은거 맞아?


아무튼 그렇게 잠깐 구경을 하다가, 학교쪽에 너무 오래있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될것 같아 자리를 떴다.


시간이 지나 4시 50분.


집에서 쉬다 온 나는 미호를 픽업하기 위해 학교 정문 앞 도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조수석너머로 정문쪽을 쳐다보고 있을 때, 미호가 누구보다 빠르게 교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쌔~애앰!"


"빨리왔네? 5시에 오라더니."


"멀리서 보니까 차가 있었으니까 바로 뛰어왔어요! 저 잘했죠? 에헤헤."


그래…빨리 뛰어온건 좋은데, 뒤에 붙어있는건 대체 누구니.


"그래, 잘했다. 잘했어. 그보다 뒤에는 누구야?"


"어?!"


"어머, 반갑습니다. UOU 국제학교의 학생회장, 시라유리라고 합니다."


그래, 학생회장스러운 일자머리랑 롱헤어가 네가 학생회장이라고 증명하고 있네.


"그래, 반가워요…시라유리 학생. 근데 여긴 왜 온건지 말해줄 수 있나요?"


학생회장 캐릭터한테 반말하기는 조금 그러니 나도 존대를 해주겠어.


"말을 높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후배에게 전해듣기로, 등하교시간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던 미호 학생이 갑자기 하교를 기다리는듯한 반응을 보였다는 말에 뭔가 싶어서 따라와봤으니까요."


뭐, 그래도 된다니까 나도 반말을 해야지. 그보다 미호의 변화가 되게 눈에 띄었나보다.


그 이전에…불안해하는게 눈에 띌 정도로 겁을 먹고 있었다는거야?


나는 시라유리의 말을 듣고 미호를 쳐다보았고, 미호는 의문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와 시라유리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할 뿐 불안해한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미호네 선생님이야. 과외쌤. 혹시 학교에 과외는 안된다거나 하는 이상한 규정은 없지?"



"어머, 그런건 없답니다. 다만 의외라고 생각한데다.…궁금했어요. 도대체 뭐가 미호양을 그렇게 만든걸까? 하는 그런 호기심때문에 왔을뿐이에요."


시라유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고,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4월달의 포근한 날씨와 내가 입은 정장재킷, 그리고 긴장에 가슴팍과 등에 후끈하게 열이 오르고 땀이 삐질 흐르기 시작했다.


"으음. 그래. 내가 미호를 그렇게 하긴 했나봐. 아무튼 이제 집에 가야하는데 보내주지 않을래?"


"이런,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보네요. 미호 양? 밝아진 모습을 보니 좋네요."


나는 몸을 내밀어 미호가 탈 수 있게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고, 미호는 곧바로 문을 잡아당겼다.


"…어머. 우후후."


시라유리는 갑자기 살짝 웃기 시작했고, 나는 그 웃음에 이유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자, 미호야. 얼른 가자. 시라유리라고 했지? 미호 챙겨줘서 고마워!"


급하게 엑셀을 밟아 학교 앞을 떠나며, 나는 그동안 감정적으로 고생이 많았던 미호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먹고싶은걸 물어보았다.


"가는길에 뭐 먹을래?"


이런거 하나로 나아질 기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


"음…초콜릿요!"


미호는 단순히 초콜릿이란 말 한마디만 내뱉었고, 너무 단순하고 간략한 주문에 나는 다시 되물었다.


"초콜릿? 그거면 돼?"


"날씨도 따뜻하니까…아이스크림까지 먹을까요?"


초콜릿이랑 아이스크림이라…미호네 집 주변에…어? 생각해보니까 있네.


"그래, 아이스크림으로 하자.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너 만나러 갈때 디저트 카페같은게 있더라."


"앗…나를 만나러….?"


그렇게 나는 지난번 면접때 잠깐 들렀다가 숟가락을 정리해준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그 카페를 가기로 했다.


메뉴를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초콜릿 아이스크림이야 있겠지.


-UOU 국제학교 학생회실-


교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다시 학교, 그것도 아무도 없는 텅 빈 학생회실로 돌아온 시라유리.


그녀는 늘 손에 들고다니는 수첩을 책상에 내려놓고, 서랍속의 큰 장부를 꺼내 펼쳤다.


[학생명부-특이사항#2]


학생명부를 펼친 시라유리는 그 안에 적힌 미호의 이름을 찾아낸 뒤, 그녀의 전화번호와 대략적인 인적사항을 살펴보며 엷게 미소지었다.


"후후, 미호네 선생님이라…한번 조사해봐야겠네요."


시라유리는 미호와 관련된것 대략적인 사항들만 노트에 옮겨 쓴 뒤, 나머지는 눈으로 훑어보고 그대로 명부를 닫았다.


"아아~가슴이 두근거리네. 새로운 조사대상이 생기면 언제나 이렇게 가슴이 뛴다니까. 우후후후후."


그녀는 지금 힘차게 뛰는 심장의 고동을 희열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띄워진 홍조는 희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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