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쪽 세계로 가겠다, 사령관txt] 모음집




--


"후후, 손님. 머리카락이 많이 기셨네요."


호텔방의 화장실.

의자를 가져와 앉은 뒤, 얇은 천을 덮고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가위의 공허한 찰칵거림이 화장실에 울려 퍼지고

보련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끼어들며 사운드를 더했다.


"머릿결이 굉장히 좋은데, 염색은 해본 적 없으세요~ 손님?"

"응. 없어."

"어머~ 어째서일까, 이렇게 좋은 머리칼을 그냥 놔두면 손해에요."

"염색할까?"

"음~ 아뇨."

"응?"


보련이 후후 웃는다.


"오빠는 검은 머리가 제일 나아."

"그럼 방금 한 말은 뭐야?"

"그야 당~연히 립서비스지."

"아하."

"머릿결이 좋다는 건 진심이었으니까 낙담하지 마~"


그는 웃었다.


"음~ 이 정도면 괜찮게 된 것 같은데?"


보련이 가위를 멈췄다.


"끝났어?"

"아, 아직 일어나지 마."

"응? 왜?"

"아직 더 해야 할 게 있어."


보련이 그의 앞으로 와서 섰다.

뭘 하는가 싶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그녀가 몸을 숙이더니 그의 몸을 덮은 천 아래로 들어왔다.


"히익?"


하얀 천을 뒤집어 쓴 유령이 꾸물꾸물 다가와 그의 허벅지 사이를 꽉 채웠다.


"저, 저기?"


지이익.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


"읏...!"


부드러운 손길이 팬티 위로 봉을 쓰다듬고 더 아래로 내려가 불알을 움켜쥐었다.


"저기.... 보련?"

"자... 초 엘리트 파트장, 보련의 시식 코너, 시작합니다~"


그녀가 한 꺼풀 벗긴다.

천으로 뒤덮여서 불투명한 움직임 아래.

추잡스럽게 쪽쪽 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후에는 보련이 화장실 벽을 짚고 엉덩이를 과시하며 섰다.


"나, 완전히 오빠 모양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데, 그래줄 수 있어?"


정신 나갈 것 같은 멘트.

실제 서약 대사도 저것과 비슷한  멘트가 있다.


'실제로 이런 말을 들어볼 줄은 몰랐는데....'


그는 미쳐버릴 것 같았고,

보련과 함께 미쳐나갔다.









물론, 그런 추잡한 사랑만 나눴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에밀리가 찾아왔다.


"미워...."

"으, 응....?"

"만날 582만 보냈어. 휴식 없었어."

"하하...."


이건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만약 자의식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아니, 그런 가정을 세우는 것도 비겁한 변명이겠지.

그는 솔직하게 사과하면서 에밀리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나, 도움 됐어?"

"응?"

"도움 됐다면 괜찮아."

"...에밀리가 아니었으면 못 했을 게 많아."


이건 진심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지만...

582무한 뺑뺑이 덕에 자원도, 빨칩도, 파칩도 부족함이 없었다.


"꼭 안아줘."

"응."


사령관은 침대에 앉아 에밀리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따뜻해."

"응?"

"사령관의 품안. 따뜻해."


그녀가 사령관에게 기대어 반쯤 몸을 누웠다.


"야한 거 기대했어?"

"으, 응? 아니.. 아니야...."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양심을 찔렀다.


에밀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 오늘은 이대로가 좋아."


그녀가 살며시 눈을 감는다.


"이대로 꼭 안고 있어줘."

"그럴게."


에밀리는 그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헤헤, 이렇게 생겼구나, 사령관은."


리앤은 당당하게 왔지만 막상 그와 얼굴을 마주 보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리앤... 울어...?"

"아니."


그녀가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반가워서."

"나도 반가워."

"아니, 달라."

"응....?"


갑작스러운 선언에 그는 당황했다.


"물론, 사령관도 반갑겠지. 우리는 게임 속 캐릭터에 불과했으니까."


그녀는 그를 왓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음...."

"하지만 내가 더 반가워. 이것만은 확실해."


당찬 표정을 보아하니, 일부로 울음을 참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는 슬쩍 웃는다.


"얘기를.... 들어봐도 될까?"

"듣고 싶어?"

"응. 꼭."

"조금 슬퍼질 수도 있는데?"

"난 그게 더 좋아."

"정말...."


리앤은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나, 깨달은 게 하나 있어."

"뭐를?"

"왓슨과의 추억은 가짜였다는 거."

"...."


대강 예상은 했지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할 말을 잃었다.


"아, 오해하지 마. 이미 극복한 일이니까. 다만, 감정이 북받쳐서 그래."

"....듣고 있어. 계속 말해줘."

"난 왓슨과 다시 만나서 정말로 행복했어."


리앤이 울 듯, 말 듯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환상이었던 거야. 내 뇌에 각인된 기억. 만들어진 추억. 한낱.... 즐거움을 위한 짧은 스토리...였던 거지."

"...."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정말 슬펐어."


세상이 만들어지고, 기억이 새겨진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 허무함은 상상을 초월할 거다.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다루던 영화처럼.

마키나의 환상의 낙원처럼.


"이해해."


그 역시 환상을 꿈꾸며 살았기에 이해했다.

만약 지금 그녀들을 만나 여러 가지 추억을 쌓았던 것이 한순간의 환상이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비록 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들, 나는 경찰이니까."


결국, 그녀가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미소를 지은 채.


"나는 거짓된 세상을 조사했어. 이곳에 와 서 있기 전까지 우리는 목숨을 걸고 세계를 탐구했어. 그리고 그 결과."


이제 한 방울, 두 방울의 수준이 아니었다.

리앤도 더 이상 닦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흐르는 눈물이 그냥 쏟아지도록 놔두고 웃었다.


"이 세계를 찾아내서 여기에, 당신의 와서 섰어. 스스로가 사령관이라고 밝힌 남자의 앞에."


그녀가 계속 말한다.


"게임 속에서, 나는 '사령관'을 왓슨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그 '사령관'을 대변자로 세웠던 당신. 당신도 왓슨일까?"

"...."

"내 기억 속 왓슨과 당신을 동일인물로 봐야 하는 걸까?"


그는 입을 다문다.

선택의 기로였다.


'환상을 지키느냐.. 아니면.....'


"지난 날, 우리를 연결해준 건 왓슨이라는 존재였어. 하지만 그 존재는 거짓된 추억이었지."


그녀의 미소가 흔들린다.


"대답해줘. 우리는... 너와 나의 연결점은 뭐야?"


본인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시시각각으로 교차하는 감정들이 보인다.

불안과 슬픔, 당황, 그리고....


희망.


리앤은 행복을 희망하고 있었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침대에 쓰러져 있는 장면이었어."


그가 입을 연다.


리앤은 가만히 듣는다.


"난 나보다 한참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한테 맞았어. 발로 차였고, 몸이 붕 떠서 침대로 날아갔어."

"...."

"이유는 단순했던 걸로 기억나. 냉동고에 있던 통 아이스크림을 먹었거든. 딱 두 입 남았던 거였어. 아직도 기억해. 바닐라 맛이었어."


그 인간이 그를 때렸던 논리는 어처구니 없었다.

하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불쾌한 기억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다.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내 반에 장난기 심한 친구가 하나 있었어. 옷을 벗기는 장난을 쳤던 애야."


그 녀석이 그의 상의를 벗겼다.


"쉬는 시간에, 내 멍이 모두에게 공개됐어."


하지만 아이들이란 순수한 만큼 잔혹하다.

멍이 들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것이다.


"난 놀림감이 됐어. 정확히는, 피부색이 신기하다고 너도 나도 와서 구경했어."

"....."

"하지만 그때 난 거짓말을 했어. 이건 나만의 비밀이라고, 몸에 이런 흔적이 있는 건 대단한 힘을 지닌 영웅의 혈통이라는 증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말이었다.

당황하고 어린 생각에 아무렇게나 뱉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걸 믿었다.

바보들의 향연이었다.


"그 일을 기점으로, 난 애들이랑 친해졌어. 멍도 나중에는 지워졌지만 그 이후에도 그럭저럭 친하게 지냈었고."


거짓말은 나쁜 것이 맞다.

그러나 거짓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학대 당하는 아이였어. 하지만 그날 이후, 그 멍은 내게 힘을 줬어."


난 할 수 있다.

나는 위대한 영웅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니까...


"그래서 버틸 수 있었어. 거짓의 발판 위에 서야만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거짓은 진실이 됐다.


"난 실제로 위대한 영웅이 됐어. 물론,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영웅은 아니었지만."


인류의 영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위한 영웅은 될 수 있었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서 부모 아래서 벗어났어. 그리고 여기 서 있고."


리앤은 어느새 울음을 멈췄다.


"리앤."


그가 리앤에게 다가가 뺨을 어루만졌다.


"거짓된 추억도 연결점이 될 수 있어."

"사령관...."


모두가 이곳에 왔다가 갈 때, 공통점이 하나씩 있었다.


레오나는 그를 성장 시킬 계획을 짰었다.

나앤과 보련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추잡하고 격렬한 사랑을 요구했다.

홍련은 불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를 탐했다.

에밀리는 마음의 응어리조차 묻어버리고 포근함을 원했다.

마키나도 두려움을 밝히며 자신을 인정받고자 했다.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마음을 달래었다.


"언제든지 여기로 와.

솔직히 나는 비루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지만,

내 곁이 너희의 낙원이 될 수 있다면.

난 행복해."


그는 리앤의 뒤통수를 감싸고 살짝 끌어당기며 키스했다.


"왓슨이든 뭐든,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에게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

이름은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게 가장 중요해."

"후후."


리앤이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거짓을 조사하며, 희망을 쫓아 여기까지 왔어."


이제 그녀가 웃는다.

눈물 젖은 미소가 아닌,

행복의 미소를.


"오늘도 한 건 해결이야. 사랑해.... 지훈아."

"나도 사랑해."












오르카호의 지휘관실.

저쪽 세계를 본 뜬 지도의 한쪽에서 신호가 발했다.

그것을 본 레모네이드 알파는 미간을 좁혔다.


"이건...."



--














다음화 :  "곧 그쪽 세계로 가겠다, 사령관.".txt-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