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게 미소 짓는 알비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격렬한 전쟁이란 감정을 파괴하지만, 언제나 밝은 그녀를 보며 대견하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키 만한 방패를 들고 전선에 나아가 적의 흉탄으로부터 아군을 지키는 그녀의 진정한 강함이란, 이런 밝은 마음이 아닐까.


"음, 일이 많이 밀려서 놀지는 못할지도..."

"에에~?"


천진난만한 그녀의 미소가 단 한마디로 사그러든다. 역시, 저런 표정에는 약하단 말이지.


"하핫! 어쩔 수 없지. 그럼 조금만 쉴까?"


결국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모두 그녀와 다른 모든 아이들의 미소를 지키고 싶다는 이유니, 이렇게 조금은 여유를 갖고 그녀와 놀아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손을 붙잡고 이끄는 그녀에게 저항하지 않고 따랐다.


"그런데 오늘은 뭘 하고 놀까?"

"음~ 중요한 일을 생각할 때는 초코바가 필요해!"

"초코바가 그렇게 좋아?"

"응! 엄~청 맛있거든!"


자연스럽게 꺼내는 알비스를 보면, 마치 햄스터가 해바라기 씨앗을 오물오물 씹는 것 같은 모습이라 귀여운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탄알집에서 자연스럽게 뽑혀 나오는 초코바란, 베라가 잔소리를 하는 이유 역시 조금은 공감이 갔다.


"정말 잘 먹네.. 초코바랑 나랑 어느 게 더 좋아?"

"응? 초코바랑 사령관 님 중에 누가 더 좋냐구?"


내심 사령관 님이 더 좋다는 답변을 듣길 기대했으나, 생각 외로 대답에 망설임이 섞인 알비스. 결국 배신감에 몸을 떨고 있을 무렵, 알비스의 답변이 귓가에 들려왔다.


"히힛! 알비스는 사령관 님이 더 좋아! 왜냐면 사령관 님이랑 있으면 초코바를 먹는 것 보다 더 행복하니까!"


답변이 늦은 것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초코바를 먹는 귀여운 모습으로 용서하기로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스스로가 물러 터진 성격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그녀들을 상대할 때면 자연스럽게 져주고는 했으니까. 그러는 편이 더 마음도 편했다.


"사령관 님도 초코바 줄까? 잠깐만 기다려 봐, 분명 여기에.."


어느새 자신의 몫을 다 먹은 알비스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초코바를 찾기 시작했다. 저렇게 단것을 많이 먹으면 양치를 잘 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베라가 알아서 잘 관리해주고 있겠지.


"히잉... 초코바가 다 떨어졌잖아~"


그러나 귓가에 들려온 것은 알비스의 좌절 섞인 말이었다. 초코바가 떨어졌다는 것이 저토록 슬퍼 보일 수 있을까. 단순한 간식일 뿐이지만 보는 이마저 슬퍼 보이는 눈망울로 알비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불현듯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결국 그 눈길을 피하지 못했다.


"사령관 님! 사령관 님도 필요한 거 다 떨어졌지?"

"아니, 그렇지는..."


불길하다. 악마의 속삭임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아냐! 분명 필요한 게 있을 거야!"

"그, 그런가?"

"응! 분명 있어! 사령관 님! 그러니까... 있잖아~" 


더욱 조여드는 악마의 손아귀에 결국 나는 타락하고 말았다.


"안드바리 몰래 창고 갔다 오자! 거기에는 필요한 것들이, 엄~청 많아!"

"차, 창고..."

"사령관 님이 좋아하는 자원이랑 빨간 칩도 엄~청 많을 거야!"


의지가 나약한 인간이라면, 분명 저 유혹에 타락했겠지. 그러나 나는 오르카 호의 수장이자, 모든 저항군의 사령관. 저런 유혹에 굴하지...


"쫄?"

"누가 쫄려? 가자! 가는 거야!"


솔직히 쫄리냐는 말은 못 참지.



과연 알비스의 말대로 이곳은 자원과 각종 물자들의 보고였다. 엄청나게 쌓여있어 구별조차 힘든 이 장소를, 안드바리는 그동안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악독한가. 그녀에게는 오르카 호의 사령관이란 직책도 통하지 않았기에 이 광경을 처음 목도 한 나로써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다 자원..."

"흐흐흐! 어때! 사령관 님! 내 말 듣기를 잘 했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눈 앞의 보물들을 소개하던 알비스가 양 손에 허리를 올리는 모습에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보물을 독점할 수도 있었음에도, 그녀는 나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알비스 잘했으니까, 오늘도 부둥부둥 해줘!"

"하하핫! 고마워 알비스! 이걸로 제조 100연차! 아니, 200연차는 가능하겠어!"

"와아~ 사령관 님이 최고야! 히히, 부둥부둥~"


하지만 기쁜 표정으로 비행기를 타던 알비스가 내 등 뒤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표정이 굳더니 황급히 연막탄을 꺼내 들었다.


"연막탄 발사!"

"뭐, 뭐야? 알비스 왜 그래?"


매캐한 연막 냄새에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아 쿨럭이며 알비스에게 질문했지만, 그녀는 이미 빠르게 도주하고 있었다. 양손 가득, 초코바를 대량으로 들고 그것들을 흘리면서.


"알비스는 먼저 갈게!"

"뭐? 어딜..."


질문이 끝나기도 전, 울려 퍼진 권총이 장전 되는 소리. 싸늘하게 울려 퍼지는 금속 마찰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변명해보세요, 사령관 님. 들어는 드릴게."



그리고 사신이 강림했다. 

하얀 정복과 푸른 머릿결이 인상적인 작은 소녀.

그녀의 이력을 설명하는 보고서에 적혀 있던 구절이 떠오른다.


'소녀는 말없이 총을 꺼내 적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고, 그 자리에 있던 발할라의 병사들은 그 소녀의 참신한 해결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