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참...."


아더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테이블에 올려진 하선 동의서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동의서에는 더치의 사진과 일신상의 사유로 오르카 호에서 하선함과 동시에 27번 요안나 아일랜드에 정착하겠다는 글과 함께 모든 동의란에 더치의 서명이 적혀 있었으며, 최종 결정란은 공백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아더의 몫이었다.


"레드후드, 더치와 이야기는 해보았나?"


아더의 질문에 레드후드는 그저 고개만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여러 번 설득했으나, 주장이 너무 확고하여 결국 사령관님께 인계해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좀 더 말려보지..."


"사령관님, 어쩌면 섬을 탈환한 시점에서부터 이미 결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건 허락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더치의 사정을 아는이상, 저희가 그 친구의 하선을 막을 의무는 없습니다. 그냥...보내주는 수 밖에요."


캐틀린과 로네의 말에 아더는 깊은 한숨만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 역시 더치를 떠나 보내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더치를 붙잡아 놓는다는 것은 어쩌면 땅 위에서 살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그는 결국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정말이지,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더는 깊은 한숨과 함께 최종 승인란에 서명을 마쳤고, 소라가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해주었다.


"사령관님께선 최선의 선택을 하신거에요. 저희가 그리했던 것처럼요."










"결국, 떠나는 거야?"


이그니스는 관물대를 정리하는 더치의 옆에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녀 역시 더치를 설득하려 했으나, 주장이 확고한 더치를 오르카 호에 붙잡아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그저 더치가 떠나는 것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같이 데드 오스트에 들어가기로 했었는데."


"...그랬지, 그런데 이젠...어려울 것 같아."


더치는 관물대의 문을 걸어 잠그며, 말을 이어나갔다.


"난 그저 땅 위에서 죽기 위해 데드 오스트에 들어가려 했었지만...거긴 내가 있기엔 너무 험한 곳이었더라고. 개죽음 당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어.


난 그게 너무 무서웠어. 


어차피 죽을 목숨, 뭐라도 하고 죽자는 심정이었는데, 막상 내 눈앞에 실제로 그런 일들이 들이닥치니까...너무 무섭더라고."


"미안, 같이 들어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더치의 사과에 이그니스는 그저 그녀를 안아주는 것으로 답했다.


"아니야, 사과할 필요 없어. 나였어도 충분히 그런 선택을 했을거야."


"몸 조심하고, 거기서 건강하게 지내야 해. 알았지?"


이그니스의 포옹에 더치 역시 포옹으로 답하는 사이, 누군가가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내가 혹시 눈치 없이 들어온거라면..."


"아니야, 사령관. 무슨 일로...온 거야?"


"그게...."


아더는 잠시 이그니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이그니스는 경례와 함께 숙소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그니스가 나간 것을 확인한 아더는 숙소의 의자를 끌고 와 더치의 앞에 앉았다.


"27번 아일랜드에서 하선하기로 한 건...네가 스스로 선택한거니?"


"응."


"...누구의 강요도 없었고?"


"그래, 나 스스로, 내 양심에 따라 내린 선택이야."


더치의 대답에 아더는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깊은 한숨과 함께 더치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몸 조심하렴, 더치. 적어도 가끔씩은...엽서라도 좀 보내주고, 알았지?"



"바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보내볼게. 고마워, 사령관. 모든 게...다."


아더는 희미하게 웃으며 더치를 안아주었고, 이내 더치에게 손을 뻗었다.


"떠나기 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만나서 작별 인사를 해 주는 건 어떨까?"


"안 될거 없지, 어서 가자."







"사령관? 현재 처리해야할 결재안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용무가 있다면 추후에 다시 찾아오도록."


말 그대로 격납고에는 알바트로스가 처리해야 할 결재 서류에 대한 데이터들이 가득 담긴 드라이브들이 수십 박스들씩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이상하군, 분명 부탁한 대로 여기까지 더치를 데리고 온 건데."


더치는 아더의 말에 아더와 알바트로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알바트로스,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지금 해야 할 거야. 더치는 곧 있으면 떠날 테니까."


"......"


"알바트로스? 정말 이럴건가?"


아더의 재촉에 결국 알바트로스는 진행 중이던 행정처리를 잠시 멈추고는 더치를 내려다보았다.


"더치, 섬을 떠나기 전에 하나 얘기하고 싶은게 있다."


"...뭔데?"


"난....62명의 더치걸들을 일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발언을, 사령관의 앞에서 했다. 그걸로 인해....내려서는 안 될 선택을 했으며, 그로 인한 불필요한 피해를 산출하고...말았다. 


이 자리에서...난....난....."


"미안하니까 사과해달라는 거야?"


"....그래, 너에게....용서를 구하고 싶다."


최강의 AGS라 불리던 알바트로스가 일개 더치걸에게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아더는 그저 가만히 팔짱을 끼고 보기만 했다.


용서를 구하는 알바트로스를 매몰차게 대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대할지에 대한 선택은 이제 더치에게 달렸기에, 그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잘못을 했다는 건 인정하는 거야?"


"...그렇다."


"그럼 됐어, 인정하지 않았다면 난 널 절대 용서해주지 않았을 거야."


"....."


"하지만 명심해, 네가 반장님을 비롯한 62명의 더치걸들을 일개 소모품으로 본 행동, 발언.


그리고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는 전부 네가 스스로 내린 선택이야.


잊지마, 그리고 네가 죽기 그 직전까지 네가 그때 했던 행동들을 절대 잊지마."



더치는 그 말과 함께 격납고를 떠났고, 알바트로스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는지 그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을 뿐이었다.


"오늘 일을 잊지 마, 더치의 말에 틀린 부분은 하나도 없으니까."


아더 역시 더치의 말에 동의하는 듯이 말하고는 그대로 격납고를 떠났다.


그렇게 아더가 더치를 따라 떠나자, 격납고에는 알바트로스만이 남아 있었다.





"자,자!! 3번 수송선 번호 받으신 분들은 이쪽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이쪽으로!"


수송선들로 가득찬 갑판에서는 임펫들과 인상이 잔뜩 구겨진 이프리트들이 형광봉을 흔들며 섬에 정착할 이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정말...여기서 내리실 겁니까?"


"....더는 못 버티겠어요, 그 아이가 있던 방에 더 있다간...정말 입에 총구를 물어버릴 것 같아요."


"...아무튼 건강하게 지내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게 그 아이를 위한 겁니다."


"그래야죠,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PTSD로 인해 더 이상 총을 잡지 못할 것 같은 이들은 물론,


"야, 노움아. 너 이제 분대장이다, 브라우니들 똑바로 잘 관리하고, 레프리콘들 적당히 갈궈. 알았지?"


"몸 조심하십쇼, 이병장님."


"이,이뱀...."


"넌 진짜 레프리콘 속 어지간히 썩혀라, 어? 걔 지금 흰머리 잔뜩 늘어서 몰래 염색하는 거 모르지?


암튼 난 간다, 개눈깔이랑 다리 병신 되니까 전역은 시켜주는구만, 개새끼들..."



전투 중의 부상으로 정착하려는 이들 또한 있었다.




"저 섬에 정착하려는 이들이 참 많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탐색때마다 발견되는 이들은 물론, 부상으로 전역한 이들에 PTSD로 퇴역하는 이들을 합치면..."


"꽤 많겠죠."


"다들 무척 바쁜 모양이군."


더치의 손을 잡고 갑판으로 나온 아더는 화사한 햇살에 눈을 잠깐 찌푸렸다.


"오셨습니까, 사령관님."


"안녕하세요, 더치.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게, 이렇게 헤어질 줄은 몰랐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척후병을 죽여버릴 걸 그랬어."


"농담치고는 짓궃네요."


"자,자, 다들 이쯤에서 그만하고. 더치, 몇 번 수송선이라 했었지?"


"7번 수송선, 이제 정말 가봐야 할 것 같아."


곧 더치와 아더가 작별을 하려는 찰나, 로네가 한 케이스를 꺼내들며 더치에게 건네주었다.


"그...작별 선물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나름 준비한 게 하나 있습니다."


케이스 안에는 더치에게 어느 정도 맞는 짧은 총열의 산탄총이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섬에 아직 유충이 돌아다닐 지도 모르고, 그러니...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제 나름대로 손질을 좀 해봤습니다."


"로네, 더치에게 왜 이런 걸...."


아더가 이마를 짚으며 로네를 타박하려고 했으나, 더치는 오히려 웃음과 함께 로네의 선물을 받았다.


"고마워, 언젠가는 쓸 데가 있겠지. 이걸로 잘 죽여볼게."


산탄총이 담긴 묵직한 케이스를 아무렇지 않게 멘 더치걸은 7번 수송선의 엔진이 점화되는 소리와 함께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어지는 더치의 뒤에서 아더와 데드 오스트 대원들은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더치! 몸 조심하십쇼! 그리고...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합니다!"


"여유 있을 때 엽서라도 보내주는 거 잊지 말고!"


"조심히 가셔야 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더치!"



수송선이 이륙하는 와중에도 아더는 여전히 더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언니! 이거 봐요! 빨리요!"


광산 앞의 잡초들을 제거하던 아쿠아가 다프네를 부르며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민들레네? 잡초 제거하다가 발견한거니?"


"네! 엄청 예쁘죠?"


"그런데...이 꽃도 뽑아야 하나요...? 뽑기 아까운데..."


"그럼 그대로 내버려두자. 그것도 무덤을 가꾸는 하나의 방법이니까."


 아쿠아와 다프네들이 정돈하고 있는 광산의 무덤 앞에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