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이제야 숨 좀 돌리겠네."


503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철충들의 피로 얼룩진 드릴의 배터리를 갈아끼웠다.


광산 내부에서 깨어난 철충들을 막기 위해 503을 비롯한 63명의 더치걸들이 망설임 없이 광산 안으로 뛰어들었고, 못해도 12명의 더치걸들을 잃은 대가로 광산 내부의 연약한 지지층에 폭탄들을 전부 설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충들이 눈치라도 챘는지, 광산을 빠져나가 격발하기도 이전에 더치걸들을 기습했고, 놈들을 몰아내는 데 또 다시 18명의 더치걸들의 목숨을 대가로 치뤄야 했다.


503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는지 몸을 비틀거렸다.


"반장님, 한 대 피실래요?"


1차 기업전쟁부터 같이 광산과 참호를 파내왔던 702가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어 불을 붙여주었다.


503, 702를 비롯한 더치걸들 모두가 기업 전쟁 당시에 생산된 멸망 전 개체들이었다.


503은 연기 한 모금을 최대한 음미하며 뱉어냈고, 텁텁해진 입 안을 얼마 남지 않은 물로 닦아냈다.


"이거 돗대 아니냐?"


"돗대고 나발이고, 언제 뒤질지도 모르는데 그게 중요합니까?"


"씹쌔끼, 말 한 번 안 질려고 지랄이야, 지랄은..."


503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은 더치걸들은 숨을 고르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503도, 702를 비롯한 광산 안의 더치걸들은 그들의 마지막이 다른 이들의 마지막과 마찬가지로 광산에서 끝날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인류 멸망 이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그들을 라비아타가 받아주었고, 그나마 인도적이었던 그녀의 밑에서 503은 작업팀을 이끌고 계속해서 묵묵히 드릴을 잡고 땅을 파내왔다.


하지만 무능한 사령관의 패악질로 자원은 늘 바닥을 보였고, 그만큼 더치걸들의 작업량은 늘어만 갔다.


"근데, 우리 여기 살아서 나간다 한들, 그 씨발년이 꼴아박은 자원들 다시 캐내러 광산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담배나 마저 피쇼! 씨발 담배 맛 떨어지게 뭔 개소리야?"


개미 좆 같은 년, 503은 쭈그려 앉아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702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503은 갑자기 새로 들어온 막내를 떠올렸다.


"야, 702."



"아, 씨발 또 뭐!"


702의 욕지거리에도 503은 묵묵히 말을 이어 나갔다.


"막내 말이야...잘 나갔겠지?"


"거 지지리 궁상맞게 뭔 막내 타령이요? 지가 알아서 잘 나갔겠지. 


그 스틸라인 쪽에서 사람들 보내준다 했으니까 지금쯤이면 링거 맞고 있겠죠."


"알아서 나가기는 니미, 뒤에서 통수 때리고 카트에 실어올렸는데."


"거 씨발, 일일이 걸고 넘어져야 합니까?"


성질을 부리는 702도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짚었다.


"....그래도 씨발 죽더라도 밖에서 죽을 줄 알았더니만."


"우린 더치걸이야, 등신아. 땅 속에서 살다 땅 속에서 죽는다. 그게 우리 그...모..토? 모토! 그래, 모토 아니겠냐."


"모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미친....반장 딱지 벗으시더니 정신 나가셨쇼?"


503은 문득 자신의 오른팔에 붙어있던 완장이 없음을 느꼈고, 잠깐이나마 허전함을 느꼈다.


"그렇지....막내한테 줬지, 참...."


"...야."


"왜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 안 드냐?"


503의 말에 702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동료들이 매몰된 바위 속에서, 굶주림 속에서, 인간들이 만든 지옥 속에서 죽어나가는 동안 그들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그들의 이성은 점차 무뎌졌고, 이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기억하기가 어려워졌다.



"우린 뭐 오래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어. 근데 막내는...걘 너무 어리잖냐.


죽기에는 너무 어려. 니도 알잖아. 걔 맨날 어리버리 까는거."


"그렇죠, 뭐. 맨날 혼나고 대가리 맞고, 귀싸대기 맞고...."


"이럴 줄 알았으면 후식으로 나온 딸기 좀 얹어 줄 걸."


"이제와서 그런게 뭔 상관이요? 우리 앞에는 저 좆같은 벌레 새끼들이 넘쳐나는데."


702의 말대로 철충들의 울음소리가 광산에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더 끔찍한 소리가 강하게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씨발 우리 진짜 죽을 팔자인갑다."


503은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게 생각하쇼, 저 벌레 새끼들 몫까지 우리가 다 파놓았으니, 격발만 시키면 초대형 납골당 하나 장만하는 거지.


그리고 운 좋으면, 저승길 단체 할인이라도 받을 지 누가 알어?"


702의 농담에 살아남은 더치걸들이 실없이 웃었고, 곧 철충들의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자 모두가 드릴의 시동을 강하게 걸었다.


"얘들아."


503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 짓거리 한 탕만 더 뛰면, 존나게 푹 쉴 수 있을거야."


곧이어 저 멀리서 트릭스터가 나타나자 503은 타이머가 입력된 스위치를 눌렀고, 타이머의 숫자가 줄어드는 동시에 503을 비롯한 살아있는 더치걸들은 망설임 없이 바리케이트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좀만 더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