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안나 외전 일부 스포주의





이방의 십자군 왕이자, 동방의 기독 군주. 그러한 타이틀을 갖고 있음에도 이런 불경한 언사는 좋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스스로도 말한 것처럼 나 '프레스터 요안나'는 그저 배우일 뿐이었어도 저 설정들을 진심으로 지키고자 노력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어."


수많은 이들을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연극'이라는 미명 하에 도륙했으며 그 후로는 몰려드는 철충들로 부터 아군을 지키지도 못했으니, 만약 설정만이 아닌 진짜 동방의 기독 군주였어도 그 죄는 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죄인인 주제에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는 것은 과연 헛웃음이 나오는 행위일 뿐이었다.


"비록 배우일 뿐이어도, 비록 허울 뿐인 망상이라 하더라도..."


나를 따르던 이들은 진심으로 신의 품을 그리워했고, 그런 그들을 지키기 위해 방패를 들었다. 그러니 기도를 멈출 수 없었다. 부디 모두를 지킬 힘을 주기를, 부디 모두의 영혼이 구원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수많은 죄를 짊어진 내 죄악이 조금이나마 씻겨질 수 있기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방패를 내릴 수 없었고, 스스로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기도를 멈출 수 없었네."


그러나 기도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에 오랜 시간은 필요 없었다. 스스로가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심판의 날에 처절하게 깨달았기에, 방패를 쥔 손과 검을 쥔 손을 마주 잡고 그저 기도를 올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 자매가 있었지. 짐과 함께 마지막까지 싸운 자매인데..."

"아, 그..."

"하핫, 주군도 대충 알고 있었나?"


눈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그려본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그 자매의 얼굴.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숨을 거둔 그녀의 안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를 올렸던가.


결국 그녀의 마지막 요청대로 기도를 올렸으나, 이미 나는 죄를 진 몸. 죄인의 신분으로 드리는 기도가 정녕 효과가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면, 역시 회의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맴돌았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그녀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거짓 된 존재일 뿐인 내가 올리는 기도가 과연 그 자매에게 안식을 주었는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응, 충분했을 거야."


망설임 없는 확신의 말에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확고한 신념이 묻어 나오는 눈과, 마찬가지로 확신에 찬 어조. 그는 살며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떠나간 그 자매도 알고 있었으니까."

"무엇을.. 말인가?"

"요안나의 기도란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어리둥절한 내 표정에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어. 요안나는 그저 설정에 충실했던 배우라고."

"그, 그럴 리.."

"나도 한참을 더 조사해 보고서야 깨달았거든. 요안나도 몰랐던 게 당연해."


그렇다면 그녀는 왜 기도를 원했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붙잡고, 피를 토하며 기도를 바랬을까. 그것은 구원을 원해서 가 아니었다는 것일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와 같이 머릿속을 흔들어 놓는 격류에서 날 구원한 것은 주군의 이어진 설명이었다.


"여기부터는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그녀는 요안나가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했을 거야."

"죄책감..?"

"응, 잘 생각해봐. 그녀가 마지막에 기도해 달라고 했을 때, 누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말했는지."


주군의 대답에 마음속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며, 항상 밤마다 나를 몰아넣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 분명 그녀는 기도를 해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주어는 분명..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래, 그녀는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라고 했었지."

"아..."


그제서야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느껴졌다. 그동안 억눌린 감정들이 결국 무너져내려 눈물로 표현되고 있으리라. 분명 꼴사나운 모습이겠지만 주군은 말없이 품에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랬어. 먼저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그랬지.. 그랬어.. 그녀는.."


처음 그녀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스스로는 천국에 갈 수 없으리라 여겼다. 이미 수많은 죄를 진 몸. 천국에 내 자리는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자매는 내 자리를 바라며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그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 정도로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요안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오히려 요안나가 홀로 남겨져 괴로워할까. 그것을 걱정했던 거야."


그 후로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주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둑이 무너진 호수와 같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말 없이 닦아준 주군이 있었기에, 먼저 천국에서 죄인일 뿐인 나를 기다려주겠다 말해준 자매가 있었기에 드디어 마음의 짐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었다.



"후...."

"어머, 사령관 님.. 표정이 어둡네요? 이래서야 고생한 대가를 받기 힘들겠어요."

"아, 미안해 시라유리.. 조사해주느라 고생했는데."

"후훗, 아니에요. 오히려 사령관 님과 요안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어서 저도 기뻐요."


요안나가 나가고 홀로 한숨 짓던 사령관에게 다가온 시라유리가 가벼운 회화를 건네며 무엇 인가를 사령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조금 힘들었지만.. 찾았어요. 사령관 님이 부탁하신 것."

"고마워. 이게.. 그거구나?"

"네, 사령관 님께서 말씀하신 좌표에 무덤이 하나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찾았어요."


시라유리가 사령관에게 건넨 것은 잔뜩 녹슨 인식표였다. 요안나의 증언과 기억을 토대로 결국 요안나와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그 자매의 인식표를 구해온 것이다.


"그런데 인식표는 어째서..?"

"요안나의 마음의 짐을 내려줬으니.. 이제 내가 대신 기억하고 짊어질 생각이거든."

"정말.. 고생을 사서 한다는 표현은 사령관 님에게 딱 어울려요."


그렇게 핀잔을 주는 시라유리의 표정은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녀의 핀잔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령관은 인식표를 바라보며 각오를 새롭게 다져나갔다. 이제 이런 희생이 더 이상 없기를, 그리고 모두를 지켜낼 수 있기를.


"자, 일하자 시라유리! 내가 고달프면 모두가 편안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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