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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발렌타인의 앞에는 두 바이오로이드가 마주 서있었다. 아자젤과 사라카엘. 두 바이오로이드는 서로 노려보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한다고. 다리의 양편에 서 있는 두 바이오로이드는 서로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서로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두 원수는 서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이단자에게 심판이 내려지길! 그리고 이단자의 시체 위에서 빛의 영광이 피어날지로다!”

 사라카엘은 번개가 치는 손을 뻗었다. 그 방향에는 아자젤이 서있었다. 이미 아자젤은 자신의 손을 사라카엘에게 뻗은 상태였다. 그것의 손에 달린 레이저는 언제라도 아자젤을 쏠 준비가 되어있었다.

 둘의 싸움은 순식간에 끝나고 말겠지. 피할곳 없는 좁은 열차 안에서의 싸움이었다. 멋지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싸움도, 화려하게 레이저와 번개를 피해가며 서로의 급소를 노리는 싸움도 존재할 수 없다. 서부 영화처럼 누가 먼저 총을 뽑고 정확하게 쏘냐의 싸움이었다.

 누가 지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에릭 발렌타인은 그런 싸움을 바라지 않았다. 그 위험에 아자젤을 빠트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외쳤다.

 “이렇게 싸울 필요는 없잖아! 사라카엘, 빛이란 존재하지 않아. 네가 몸을 담았던 코헤이 교단은 사이비 종교집단에 불과하다고! 이단이라니, 너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그 작자들에게 이단은 다른 종교를 믿는 자가 아니라 그들의 돈을 가로채는 사람을 말하는 거였다고! 그 광경을 보고도 모르겠다는 거야? 그들은 종교단체조차도 못되는 집단이었어!”

 “당신이 무엇을 안다는 겁니까! 그대는 빛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빛의 계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인간이란 본디 자신이 보지도, 듣지도 않은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빛께서 손수 만드신 천사입니다! 그러니 저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빛은 실존합니다. 그리고 저 아자젤은 당신에 의해 배교한 이단자입니다! 빛의 심판은 저 타천사를 먼저 마주할 것이고 다음은 당신입니다, 에릭 발렌타인! 당신으로 인해 저는 갈 곳을 잃고 이렇게 범죄자를 보호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교단을 부정하고 나선 아자젤이 특이 개체라 해야겠지. 덴세츠 사이언스의 세뇌는 말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렌타인님, 물러나세요. 이 싸움은 말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겐 지금 부를 순 없지만 언제나 저를 지켜보시는 그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사라카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빛만 있을 뿐이죠. 저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사라카엘은 끝내 인정하지 않을 그분께서는 하나뿐인 선지자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자젤은 에릭에게 안심하라는 듯, 말하고는 사라카엘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것의 손의 자그마한 구멍은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타천사여, 그대는 빛께서 그대를 위해 그대의 손의 빛으로 나를 죽이는 것을 허하실 것 같은가? 빛을 거부한 그대에게 빛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빛의 심판만 있을 뿐!”

 “빛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빛은 그저 과학의 산물이고 우리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인 것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빛께서 가라사대, 죄인을 용서하거라! 그러나 그대는 죄인이 아니노라! 배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니니 빛께서 가라사대, 이단자를 처단하거라!”

 “빛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전부 당신이 지어낸 말 아닙니까!”

 “빛께서는 지금도 가라신다! 어찌 그대는 빛의 음성을 거부하는가!”

 “저는 한번도 그 음성이라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건 당신의 세뇌가 만든 환청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째서 인정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자젤의 손의 빛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언제라도 쏘겠다는 듯 사라카엘을 위협했지만 사라카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자젤의 말을 받아쳤다.

 “그럼 그대가 들었다는 이름없는 잡신의 말도 환청이라는 건가?”

 “그분은 존재하십니다! 어째서 그분을 그런 더러운 입으로 부르는 겁니까!”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사라카엘의 도발을 참고 넘어가지 못한 아자젤이었다. 빛은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그것은 빛으로 된 레이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건, 바이오로이드건 빛을 피할 수 없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레이저 총은 피할 수가 없는가.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미 발사된 레이저를 피할 순 없지만 레이저가 발사되기 전에 미리 피한다면. 피하는 것은 레이저 자체가 아닌 레이저를 쏘는 주체의 사선이다.

 사라카엘은 알고 있다. 아자젤의 능력을. 그것의 손에서 나오는 레이저가 어느 궤적으로 날아가고 어느 순간 발사되는지를. 그것에게 아자젤의 레이저를 피하는 것은 권총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총알을 어떻게 피하냐고? 인간에게는 불가능했지만 바이오로이드는 가능한 것이다.

 허공을 가르고 열차에 작은 구멍을 낸 레이저를 피한 아자젤이 할 일은 아자젤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사라카엘은 손을 뻗어 노란 번개를 아자젤에게 날렸다. 빛은 일직선으로 날아가지만 번개는 전도체를 향해 날아가는 존재다. 번개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개를 피하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날아가는 전자보다 더욱 빠르게 달려가는 것 뿐이었고, 아무리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바이오로이드라 할 지라도 그것은 불가능에 존재하는 영역이었다.

 일순이었다.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에서 한 솔로와 그리도의 대치에서 그리도의 사격을 피하고 순식간에 반격으로 그리도를 쏴죽인 한 솔로처럼. 뭐? 그런 장면이 아니라 한 솔로가 먼저 쏜 거라고? 그런 판본을 먼저 본 사람이 2100년대까지 살아 있을 리가.

 아자젤은 사라카엘의 일격에 죽고말았다. 그것의 입술에 있어야 할 침은 말라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것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 아자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인 마냥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단자는 처단되었습니다. 에릭 발렌타인, 다음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마주하기를 얼마나 오래 기대했는지요. 당신과 같은 빛의 대적자에게는 어떤 벌이 주어져야 할까요.”

 “에릭님, 물러나세요!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바닐라 A1이 에릭을 밀치며 사라카엘 앞에 멈추어섰다. 그것은 에릭을 보호하려는 듯, 양팔을 펼쳤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무기도 들지 않았다. 그것이 가진 것은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몸 뿐이었고 그것쯤이야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작은 바이오로이드는 불쌍하게도 아무 힘도 지니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에릭의 고기방패밖에 될 수 없는 존재였다. 무력감이 들었지만 그것은 무력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에릭을 지켜야 했다. 아니, 사라카엘을 이겨야 했다. 그래야 그것의 진정한 주인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사라카엘을 넘어서야 론 브래드버리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것은 주먹을 쥐었다. 이를 악물었다. 사라카엘과 목숨을 다해 싸우기로 결정했다.

 “눈이 한쪽이 먼 바이오로이드라. 손에 무기도 없으면서 저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바닐라 A1이 정녕 빛의 심판자가 되는 저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그정도로 얕보일 추태는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만.”

 “덴버러 백작 론 브래드버리 주인님을 위해 저는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제 자매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인님을 위해 그 위에 제 목숨 하나 추가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당신은 저 범죄자, 맥칼리스터를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었나요?”

 바닐라의 결의 가득한 말을 들은 사라카엘은 그것의 말을 비웃었다.

 “하! 너 같은 바이오로이드를 위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바닐라 A1. 처음 보는 개체도 아냐. 어떤 신도가 내게 바닐라 A1을 데리고 왔지. 자신의 바이오로이드가 죄를 지었으니 내게 심판을 해달라 했지. 죄로 가득해 두려워하는 표정을 한 바닐라 A1의 얼굴이 지금 네 얼굴과 똑같아.”

 “멈춰라! 철도 경찰이다!”

 두기의 켈베로스가 권총을 들고 나타났다. 유사시를 대비해 열차 내에 상시 대기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두 바이오로이드라도 권총으로 사라카엘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빛이시여! 그대의 심판자를 막는 자들을 벌하소서!”

 사라카엘은 그렇게 외치며 노란색 번개를 던졌고, 일렬로 서있던 두 켈베로스는 하나의 번개를 맞고 동시에 쓰러지고 말았다.

 “별것도 아니군.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그래. 네 표정. 번개를 아는 자의 표정이다. 그 눈, 무언가의 번개를 맞고 멀어버린 것이군. 이 번개로 인한 고통이 어떤지 아는 모양이지. 걱정말게나. 이 번개는 바이오로이드 하나 죽이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것이 아니니. 이단자처럼, 혹은 저 경찰 나부랭이들처럼 순식간에 죽음을 인식도 못하고 죽을 것이네.”

 사라카엘이 그렇게 말하곤 손가락을 튕기자 전기가 그것의 손에서 일었다. 그리고 에릭은 볼 수 있었다. 바닐라 A1의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그것은 두려워하고 있다. 번개에 다시 맞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닐라 A1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무리 공포로 가득한 얼굴을 할지라도 그것은 목숨을 바쳐 에릭 발렌타인을 구하고자 했다.

 “당신의 번개따윈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레아 언니의 번개에 비하면 그깟 작은 번개는 간지러운 수준일 겁니다. 당신은 자신이 이 세상의 진정한 강자라 생각하십니까? 이 자리에서 벗어나면 끝이라 생각하십니까? 제 자매들은 당신들을 끝까지 따라갈 겁니다. 당신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자리가 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최소한 저는 제 마지막 자리를 고를 수 있지만 당신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요. 당신들은 계획을 짜고 고민을 하고 발버둥을 치겠지만 제 자매들은 당신들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할 겁니다. 그러니 이 싸움은 제 승리입니다. 결국 당신은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닐라 A1은 더 이상 떨지 않았다. 그것은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오히려 한발 사라카엘을 향해 내딛었다. 사라카엘은 전기가 이는 손을 바닐라 A1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그 손을 붙잡을만큼 사라카엘에게 다가갔다.

 “지금 이순간이 당신이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입니다. 그 빛 나부랭이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속죄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입니다. 언제 자신의 마지막이 올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마지막 순간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세요. 당신은 결코 이길 수 없어요.”

 “이, 이 가소로운 것이 어찌 빛의 심판자 되는 이 사라카엘의 앞을 막고자 하는 거냐!”

 사라카엘이 손을 들어 번개를 만들어내 바닐라 A1에게 던지려던 순간이었다.

 “아아! 제 찬양을 들으소서! 제 죄악된 입으로는 그저 찬양밖에 할 수 없는 분이시여! 그대에게 영광이 함께하길! 감사 가득한 제 찬양을 들으소서!”

 아자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에릭은 잊고 있었던 아자젤의 능력을 떠올렸다. 교단이 기적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그 능력을 떠올렸다.

 아자젤은 부활할 수 있었다. 얼마나 자주 부활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에릭은 아자젤의 부활을 두번째로 마주했다.

 “이 이단자가! 그대에게는 속죄조차 사치일지니! 빛의 심판을 받거라!”

 사라카엘은 살아난 아자젤을 돌아보면서 바닐라 A1에게 던지려 했던 번개의 목표를 아자젤로 바꾸었다.

 “심판을 받을 것은 그대다!”

 아자젤은 손을 뻗어 레이저를 발사했다. 사라카엘은 또다시 그 레이저를 피했고 열차의 천장에 구멍만 낼 뿐이었다. 이대로면 또다시 아자젤은 사라카엘의 번개를 맞고 죽을 것이었고 그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같은 일은 언제나 반복되기 마련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럼에도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그것은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비극을 예방하도록.

 사라카엘은 자신의 뒤에 아자젤이 일어서자 뒤를 돌아보았고 자신의 앞에 있던 바닐라 A1이 이젠 자신의 뒤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말았다.

 “아자젤님! 지금입니다!”

 바닐라 A1은 사라카엘을 뒤에서 붙잡았다. 그것이 아자젤의 레이저를 피하지 못하도록, 그것이 얌전하게 자신의 최후를 맞을 수 있도록.

 그러나 사라카엘은 발버둥을 쳤다. 자신의 최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어디서 하찮은 저가 바이오로이드가 내 발목을 잡는가!”

 사라카엘은 번개를 쥔 손으로 자신을 붙잡은 바닐라 A1의 팔을 잡았다.

 “으아아악!”

 번개에 감전된 바닐라 A1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그것은 발작하듯 떨리는 몸으로 사라카엘을 여전히 붙잡았다. 사라카엘은 바닐라 A1를 일격에 죽일 수 없었다. 바닐라 A1이 자신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전기는 흐르는 성질이 있다. 전기에 감전된 사람을 만지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감전된 사람을 만지면 만진 사람도 감전되기 때문이다.

 사라카엘은 자신의 전력을 다한 전격을 쓸 수 없었다. 바닐라 A1이 죽을 정도의 전류가 흐르면 자신 역시 죽게 되니까. 자신이 고통받는 한 이 있더라도 바닐라 A1이 고통을 받아 자신을 붙잡는 것을 포기하게 해야 했다. 전기에 대한 그것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그것이 공포에 휩싸여 물러날 수 있도록.

 그러나 바닐라 A1은 끝내 사라카엘을 놓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도한 그것이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도, 죽어서라도 사라카엘을 붙잡을 것이었다.

 “놓아라! 정녕 이대로 죽겠다는 것이냐!”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 아자젤님! 얼른 이 주인님의 적에게 최후를 가져다주세요!”

 “시간의 부재로 그대를 짧게 부르는 것을 용서하소서! 끝내 그대를 영접하지 못한 이 불쌍한 양을 그대에게로 보내노니 부디 이 빛의 심판자를 자청하는 자가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고 그대의 앞에서 속죄를 할 수 있게 하소서!”

 아자젤은 손을 뻗었다. 바닐라 A1가 붙잡은 사라카엘의 머리를 향했다. 이제는 피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아자젤의 손에서 밝은 레이저가 발사되었다.

 “아… 그대를 찬양합니다.”

 사라카엘이 만들어내던 번개가 사라졌다. 사라카엘은 죽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죽음에서 부활하지 못했다. 그것의 날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닐라 A1이 주저앉자 사라카엘 역시 그자리에 주저앉고말았다.

 아자젤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진 않았지만 너무 많은 힘을 쓴 그것이었다. 부활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일 몇번 더 겪으면 당신의 신을 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닐라 A1 역시 힘이 빠졌다는 듯, 숨을 거칠게 쉬며 말했다.

 “예배를 마치고 주기도문을 외기에는 이른 시간이야. 맥칼리스터가 남았어. 그 자식, 여기에 있긴 한 거야?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는데.”

 에릭은 작동불능이 된 켈베로스가 떨어트린 권총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집어들며 말했다. 약실에 총알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앞쪽의 좌석을 겨누며 외쳤다.

 “맥칼리스터! 당장 나와! 네가 데리고 있는 사라카엘은 이미 작동불능이 되었다!”

 “이 자가 주인님을 데리고 있습니다!”

 또다른 바이오로이드의 목소리였다. 주인님이라 하는 것을 보니 이터니티가 틀림없었다.

 “조용히해! 이 애새끼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전에!”

 “안돼요!”

 이터니티의 손을 뿌리치고 맥칼리스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릭은 곧바로 맥칼리스터를 겨누었지만 총을 쏠 수 없었다. 맥칼리스터가 한 아이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든 권총으로 아기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네가 그 총을 쏘면 이 아이는 죽는다. 너희들이 목숨을 걸며 구하려 한 아이는 이걸로 끝이다. 어차피 이 아이를 벨아이아에게 넘기지 않으면 난 뒤진 목숨이야. 어차피 뒤질 거면 애새끼랑 뒤지거나 운 좋으면 이 애새끼 데리고 국경을 넘겠지.”

 맥칼리스터의 말에 에릭 발렌타인은 바깥 창을 바라보았다. 바깥에는 도심이 보이고 있었고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필시 애쉬포드 역이었다. 이 역을 지나면 다음 역은 프랑스였다. 프랑스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맥칼리스터를 보내게 된다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주인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바닐라 A1은 이를 악물로 일어서려 했지만 전격으로 고통하던 그것의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자젤 역시 부활의 여파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에릭 발렌타인 자신 뿐이었다.

 “다들 쉬고 있어. 어차피 상대는 인간이야. 나로 충분해. 게다가 저 놈도 총을 쏘진 못할 거야. 총으로 론 브래드버리를 죽이면 차라리 죽는게 나을 고통을 겪게 될 테니까.”

 이 자리에 있는 브래드버리 가문의 두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의 주인을 죽인 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단 몇초만에 맥칼리스터가 제발 죽여달라고 외치게 만들겠지.

 “맥칼리스터! 네게 벗어날 곳은 없어! 정말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 건 아니겠지. 벨아이아 그 작자의 힘만 있으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나? 당신은 여기서 끝이야! 나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는 거야. 최소한 살아는 있을 수 있는 길이지. 모든 걸 포기해. 그리고 자수해. 스코틀랜드 야드에 지인이 좀 있어. 좋은 교도소에서 좆 같은 나날이겠지만 최소한 죽을 걱정은 안하고 살아도 된다고. 그깟 자존심 때문에 전부 다 날려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좆이나 까. 이 애는 내 여권이고 나는 프랑스에서 니들 죄다 죽이고 잘 먹고 잘 살 거야. 이 열차가 출발하면 끝이라고. 처널을 지나면 프랑스야. 해외라고. 나는 벨아이아의 비호를 받겠지만 너희들은 뭐지? 열차에서 내 불쌍한 바이오로이드를 죽인 범죄자라고. 자, 그러면 누가 이 자리에서 제일 쫄리는 거지? 탐정씨?”

 맥칼리스터는 여유를 부리려는 듯, 권총 끝을 에릭 발렌타인에게 겨누며 말했다. 열차는 역에 멈추어섰다. 이 역에서 론 브래드버리와 내려야 했다. 마지막 기회였다. 아자젤이 평소의 컨디션이었다면 그것의 보호막을 믿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아자젤로서는 무리인 일이었다.

 “힘이 다 떨어진 두 바이오로이드와 보잘 것 없는 인간 하나. 이걸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이 천하의 맥칼리스터를? 웃기지도 말라고 그래! 이 싸움은 이 맥칼리스터의 승리라고! 매번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내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거라고! 언제나 그랬어!”

 그리고 맥칼리스터가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렸다. 에릭 발렌타인은 총소리에 움츠러들었고 그 바람에 권총을 쏘지 못했다. 맥칼리스터의 권총을 벗어난 총알은 빠른 속도로 에릭에게 날아갔고, 평범한 인간인 에릭 발렌타인이 그 총알을 피하는 일은 일어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말을 다시 한번 더 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의 벽을 뚫고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에릭을 향해 날아가는 총알의 궤적을 막아섰다.

 작은 권총의 총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에릭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초록색 옷을 입은 금발의 거구가 거대한 방패를 들고 서있었다.

 “가디언 시리즈의 프리가라 합니다. 주인님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열차의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한 바이오로이드는 열차 벽을 뚫고 들어왔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맥칼리스터를 마주하고 섰다.

 “현재 애쉬포드역은 브래드버리 재단의 관리 하에 있습니다. 이 열차는 이 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빈센트 맥칼리스터, 당신은 졌습니다. 포기하시고 주인님을 우리에게 넘기십시오.”

 “으아아아! 그럴 리가 없어! 이 싸움은 내가 이겼다고!”

 프리가의 거대한 모습에 압도당한 맥칼리스터는 겁에 질려 열차 벽으로 물러나며 프리가를 향해 권총을 쏘았다. 프리가는 그 총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신의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방패로 막아냈다.

 “다가오지마! 다가오면 네놈들의 주인을 죽일 테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프리가 언니가 방어를 해준다면 이 아이아스는 공격에 집중할 수 있죠!”

 맥칼리스터의 등 뒤의 벽에서 칼날이 달린 방패가 튀어나왔고, 함께 들어온 팔은 맥칼리스터를 붙잡고 그대로 열차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를 역 플랫폼 위에 눕힌 바이오로이드는 자신의 칼날이 달린 방패로 그의 얼굴을 그대로 찍어버렸다.

 “주인님의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맥칼리스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의 입은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숨을 쉴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한때 갱단을 주름잡던 두목의 최후란 항상 이런 법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자로 죽는 것.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주인님을 주인님으로 뵙게 되는군요.”

 콘스탄챠 S1은 아이아스의 품에 안긴 론 브래드버리를 보며 치맛자락을 살짝 올려 예를 표했다.

 “주, 주인님! 죄송합니다! 이 이터니티가 못난 탓에 주인님께 너무나 많은 고생을 시켜드렸습니다!”

 이터니티는 울며 달려갔다. 자신의 주인을 향해 무릎을 꿇고는 차마 만질수도 없다는 듯 서글피 울었다. 그런 한편 그것은 이제야 자신의 주인이 안전하다는 것에 처음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드디어 끝이군.”

 아이아스가 만들어낸 열차의 구멍을 통해 에릭 발렌타인은 모든 이야기의 끝을 보며 안도했다. 그러나 그는 잊고 있었다. 모든 탐정 소설은 범인을 잡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로 마무리 할 것이 항상 남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화의 방향이 이야기의 결말을 결정짓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