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카엔을 품고, 카엔의 동생인 제로를 품고, 그녀들을 본명인 하츠나와 스미레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침을 맞이했을 때, 그녀들은 내 앞에 비장한 표정과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젯밤, 내 아래에서 가녀리고 약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들이었지만, 오늘 아침의 둘은 듬직한 쿠노이치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주공, 앞으로는 저희를 본명이 아닌 쿠노이치의 이름으로 불러주시지요."


어제는 잔뜩 그렇게 이름으로 불렀는데?


"왜?"


"저희의 본명은 쉽게 밝혀지면 안되는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응. 그게. 당연해."


"그런가....난 너희 이름 예뻐서 좋았는데."


둘다 꽃이름이잖아. 되게 예뻤는데. 카엔이랑 제로라고 부르면 좀 딱딱하다고. 특히 제로쪽은 더더욱.


"그, 그렇게 칭찬하시면...소녀는, 소녀는 마음을 다잡을수가...."


"주공. 그냥. 하츠나라고. 부를래?"


제로는 내 말에 당황하여 갈팡질팡했지만, 카엔은 기회를 보자 냅다 물었다.


"언니!"


하지만 나름 똑부러지는 상식인? 선의 제로가 한번 소리치자, 카엔도 뜻을 굽혔다.


"...알았어. 주공. 하츠나를. 하츠나라고. 부르는거. 우리둘만. 있을때."


"언니, 둘만 있을때라뇨!"


"..우리들.만. 있을때."


"...네. 저희들만 있을때,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주공, 속하들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과연 욕망에 지지 않는 정상인은 누구인걸까. 카엔? 제로? 아니면 나?


....사실 아무도 없는걸지도?


그렇게 과연 이성을 유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고민하던 찰나, 사라지지 않고 남은 카엔이 나에게 무언가를 얘기해주었다.


"아, 맞다. 주공. 중요한 정보. 있어."


"중요한정보?"


"주공. 호위. 두배. 늘었어. 하지만. 습격 위험. 그 이상. 호위. 진짜 필요해."


호위가 필요하다고 충고하는 카엔의 말에, 난 의문을 품었다.


"호위가? 어째서? 너희 둘이 있는데 그걸로 해결이 안될정도야?"


카엔이 혼자 있을때야 제로의 습격에 대처하기 위해서 여유 전력을 둬야하는거였다고 쳐도, 지금은 둘 다 내편인데...?


"주공을 노리고 저희를 보낸 인물이, 그럴만한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주공을 납치하겠죠."


왜? 어째서? 대체 왜 나같은 일반인을...? 그보다, 대체 어떤 변태 또라이가 나를 납치하려는건데?! 납치할거면 잘생기고 멋진 모델이나 배우 납치해!


"대체 누가....?"


아, 설마 장기밀매?! 크윽! 내가 신체건강하고 어릴때부터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컸다는것을 어떻게 알고!


"주공. 그사람. 만난적 있어."


"내가 장기밀매범을 만난적 있다고?"


"...?? 그런것과 관련이 아주 없는건 아니지만, 주공께서도 그 사람을 익히 아실겁니다."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중에 그런 범죄자가...핫, 설마!"


그래, 내가 아는 사람중에 범죄에 빠져들만한 사람이 있다.


"셜록이 범죄 전문기자의 길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자작 범죄에 손을....?!"


큭, 옛날에도 호기심이랑 모험심에 머리 들이미는걸 못참는 녀석이었지만 결국 거기까지...


"...아니야. 그건. 누구?"


뭐? 아니라고?! 그럼 나랑 사이가 안좋았던 인물 중 하나인가?


"사이 안좋은 인물...최근에 그런 인물이라면....군대 선임, 군대 동기, 군대 후임, 부사관, 신임장교, 행보관, 부대 원사, 차량정비관, 수송반장, PX병, 휴가나올때 만났던 TMO근무 장병, 그리고 초소 위병들 밖에 없는데...?"


"주공, 대체. 무슨삶. 살았어?"


"군대에 대해서는 잘 모르긴 합니다만...그만큼 적을 만들고도 용케 살아서 나오셨군요, 주공..."


"주공, 동성 인간관계...광인."


둘은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봤고, 카엔은 광인이라는 말까지 했다.


"아무튼, 주공한테. 우리 보낸거. 남자. 아니야."


"남자가 아니라고? 그럼 누구야? 아니, 처음부터 속시원하게 말해줬어야지."


너희는 정답을 알고 있는데 내가 온갖 추측을 꺼내드는게 뭔가 재밌었겠다?


"극적. 긴장감."


"혹여나 짚이는 인물이 있으실까 하여..."


"그래서, 누구냐고?"


"주공께서 자주 만나는 인물...시라유리입니다."


".....학생회장이?! 닌자를?!"


제일 안어울리는것 같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런 모범생이니까 뒤에서 닌자를 부려도 어울리는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오전.


나는 미호를 학교로 데려다 준 뒤 경호업체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쓰읍....닌자뿐만이 아니라 총기를 쓰는 암살자까지 올 수 있다고 했지...?'


밤중에서의 암살이나 침투형 암살이라면 쿠노이치 자매의 선에서 정리되지만, 현대에서 은닉된 총기를 사용하는 습격형 암살의 경우에는 쿠노이치 자매가 곧바로 나설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곁에 붙어있는 호위가 있어야 하고 그것에 적합한 업체를 찾아왔는데......


"여기인가."


[컴패니언]


뭔가 좀 부실해보인다. 경호업체스럽게 입구에서부터 막 개쩌는 경광등 달린 차라던가 무장 차량, 듬직해보이는 어깨형님들이 있다던가 할줄 알았는데....


그래도 일단 사장님이 추천했으니 속는셈 치고 상담부터 해볼까 싶은 마음에 문 손잡이를 잡은 그 순간.


벌컥!


"와! 손님이다, 손님! 어서오세요!"


안쪽에서 한 소녀가 튀어나왔고, 나는 손님맞이가 아니라 손님을 맞춰서 강제로 데려오는것같은 역 방문을 거하게 받았다.


뭐지?! 호객행위를 위한 삐끼인가!


"......?"


그렇게 내가 깜짝 놀라 가만히 굳어있을 때, 튀어나온 소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앗, 손님이....아닌가?"


손님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튀어나온거냐?! 누가 지나가기만 하면 반갑게 뛰어나와서 앞발들고 달려드는 시골 댕댕이도 아니고.


하지만 난 손님이 맞으니, 손님으로 왔다고 밝히자.


"일단 경호가 필요해서 찾아오긴 했는데요."


"앗! 어서오세요, 손님! 저는 하치코라고 해요!"


아아, 이건...그거다. 너무 밝다. 세상 밝다.


"아, 네...하치코 씨."


나보다 연하처럼 보이지만, 너무 밝은 분위기 탓에 존대가 나가버린다. 나같은 어둠의 자식 방구석백수 출신이 이런 밝은 아이한테 반말을 써도 될까?


"하치코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네...하치코."


하치코라는 소녀는 내 팔을 끌고 실내로 들어가더니 나를 소파에 앉혔다.


생글생글.


그저 사람을 맞이한다는것 자체가 기분이 좋은듯 하치코는 계속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손님 맞이만 하고 그 다음단계는 안하는거니?


"저..."


경호를 상담하고 싶...


"네! 뭘 도와드릴까요? 차? 커피? 아니면 간식으로 미트파이? 하치코는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으아악 밝은 분위기 멈춰! 내주면 좋지만 상담부터 하면 안될까 우리?!


"그게 아니라..."


내가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하치코는 나보다 앞서서 반응했다.


"아앗, 그러면...다른게 필요하신가요? 어쩌죠? 하치코는 연습하지 않은건 잘 못하는데...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해볼게요! 하치코에게 맡겨만 주세요!"


아직 아무것도 요청 안했어! 성실한건 좋은데! 아직 아무것도 부탁 안했...아니 못했어!


내가 하치코의 밝은 분위기에 짓눌려 차마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던 그 때, 안쪽의 사무실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하치코? 손님이 오시면 방문목적부터 여쭤보라고 했죠? 대접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요."


검은머리와 옅은 갈색 머리가 대비되는 하치코와 달리, 지금 나타난 소녀는 완전한 순백색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앗, 헤헤...까먹었다."


"후우, 언제쯤 나아질련지...."


이제 들어보니 하치코의 저런 행동은 하루이틀 일이 아닌듯했다.


"반갑습니다, CS페로라고 합니다. 방문목적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오, 이제 좀 프로답다. 뭔가 믿음이 팍팍 생기기 시작했어.


"개인 경호를 요청하고 싶은데요."


내 요청에, 페로라는 소녀는 종이를 꺼내와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개인 경호라...혹시 경호가 필요한 위험의 종류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도검, 둔기, 차량 등. 위험의 종류에 따라 다른 경호원들을 배치해드리고 있습니다."


오오오! 진짜 전문가같아! 믿음이 수직상승한다!


"으음...."


그런데, 위험의 종류라...날붙이도 있고 총기도 있는데...


"혹시, 위험의 종류가 일정치 않으시다거나 단언할 수 없으시다면 가장 평균적인 경우인 도검을 전제로..."


일단 카엔이랑 제로가 말해준 총기를 전제로 하자. 스토커는 쿠노이치 자매들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수 있을테니까.


"으음, 총탄요."


"총탄, 말입니까? 한국에서?"


내 대답에 페로는 깜짝 놀라 펜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네, 말로는 팔만한 크기의 대형 날붙이도 있다는데. 총이 더 위험한것같아서."


"대형도검에, 총기까지? 고객님, 혹시 하시는 일이...?"


뭐지? 대답해야하나? 평범한 과외선생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데.


"꼭 필요한 질문인가요?"


고개를 재빨리 저은 페로는 내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앗, 아닙니다. 절대로..."


이내, 메모를 해나가던 페로는 또다른 질문을 해왔다.


"호, 혹시 교통사고의 위험은 있으신가요? 쉽게말해, 자가용을 사용하시는지?"


"네. 제가 승용차를 끌고다녀서."


"차량추돌 위험...있음...그리고, 최근 위협을 받으신적이 있나요?"


"네, 스토커도 하나 있고...밤에 기습당한적도 있고..."


"스, 스토커? 기습?"


페로는 내가 말을 꺼낼때마다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내 적을것을 다 적은 종이를 보더니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음...이정도면...펜리르는 위험하고, 페더...? 아니...으음. 저, 고객님. 혹시 2인 이상의 경호가 되어도 문제가 없으신가요?"


뭔가를 고민하던 페로는 나에게 2인 경호를 물어보았고, 경호원을 둘이나 쓸 여유가 안되는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2명은 조금 부담스러운데...1인으로는 안되나요?"


내 거절 직후, 페로는 머리를 싸매며 더더욱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아, 으으음..."


"뭔가 문제라도?"


"아니, 아닙니다. 다만 지금 저희쪽 인원 몇몇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대표님이 돌아왔을때 연락드려도 될까요?"


음? 뭐야, 대표? 아아, 하긴. 사원이 일을 물어와도 그걸 보고받고 결정하긴 해야지.


페로는 직급은 좀 있어보여도, 결정권자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대표님은 언제 오시는데요?"


"아마, 30분 뒤..."


30분이면...금방이네.


"그럼 기다리죠."


내가 소파에 등을 기댔을 때, 얌전히 나와 페로의 대화를 듣던 하치코가 다시 끼어들었다.


"와! 손님! 그럼 그동안 하치코와 놀아요!"


"하치코, 그러면 안된다고...!"


페로가 하치코를 말리려 했지만, 나도 기다리는동안 아무것도 안하기는 심심해서 하치코의 제안에 응해주었다.


"좋지, 시간 때울것도 없었는데."


"와! 그럼 저희 뭐하고 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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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업체, <컴패니언>의 일원인 CS페로는 오늘 파견근무를 나간 다른 자매들과 맡은 의뢰의 마지막 처리를 하러간 언니를 대신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평소에도 손님은 많은 편이 아니었고, 어지간하면 계약한 사람이 다시 계약하는 형태였기에 대부분은 전화로 업무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전화기 앞을 지키던 페로였으나...


사무실 바깥쪽에서 들리는 그녀의 자매, 하치코의 목소리를 듣고 손님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와! 하치코는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하치코가 누군가를 맞이한 모양이네요. 직접 찾아오는건 드문일인데...뭐, 없는 일은 아니니.'


페로는 곧바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고, 역시나 아니나다를까 활달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자매는 손님에게 달라붙어서 손님이 이곳에 온 용건도 못꺼내게 이런저런말을 재잘대고 있었다.


결국, 페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을 수습하기로 했다.


"하치코? 손님이 오면..."


손님의 방문목적은 간단했다. 개인경호 요청.


사실, 경호업체에 그것 말고 찾아올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이번 손님은...특이했다.


총탄이 위협한다거나. 스토커도 있다거나, 대형 도검류와 차량습격 위험까지 있었다.


'총은...어렵지만 대처 가능해요.'


총탄까지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


'도검도...아니, 오히려 도검인쪽이 낫겠네요. 펜리르만큼은 아니지만, 근접전은 저도 나름 특기이니.'


도검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차량습격은...스노우페더라면 쉽겠지만...저도, 할수는 있어요.'


페로는 컴패니언의 일원이었고, 어떤 경우에라도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방금 말한 그 모든걸 자신 혼자서 대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뭐, 뭐하는 인물이길래 이런 경호요청을 하지? 이런건 두명이 붙거나, 언니가 와야할텐데...?'


결국 자신이 판단할 수준의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 페로는 잠시 뒤 돌아올 예정인 언니에게 판단을 맡기기로 하고, 손님을 기다리게 하기로 했다.


"그럼 기다리죠."


손님은 흔쾌히 기다리기로 결정했고, 손님이 이곳에 있게된다는 소리를 들은 하치코는 곧바로 달려나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와! 손님! 그럼 그동안 하치코랑 놀아요!"


"하치코, 그러면 안된다고...!"


페로는 자신의 자매를 막으려 해보았지만, 손님이 하치코의 제안에 냅다 응해버렸다.


"좋지, 시간 때울것도 없었는데."


그저 신나서 고객과 어울리며 웃고있는 자신의 자매에 대한 한숨을 마음속으로 내쉬는 페로.


그녀는 그녀의 언니가 한시라도 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언니...빨리 돌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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