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미호를 데려다주고 난 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페로의 시선을 느꼈다.


관심가져달라는듯이 빤히 쳐다보는 하치코와 달리, 페로는 시선을 고정하다가도 내가 뭔가 시선을 눈치챘다 싶으면 고개를 돌리는 등 하치코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뭘 하려는건지 몰라도, 왜 그렇게 열심히 나를 쳐다보는지 말이라도 해줄래?"


"여, 열심히 쳐다본건 아닙니다."


"쳐다보긴 했다는거네. 얘기좀 해줄래?"


페로는 내 말에 딱히 부정할 수 없다는걸 아는지 나를 쳐다본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게, 리리스언니의 말대로라면 어제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오늘의 주인님께서는 근섬유 손상과 근육통으로 움직임에 지장이 있을거라 했는데...너무 멀쩡히 돌아다니셔서..."


그냥 어제 운동해서 지친놈이 어떻게 이렇게 잘 돌아다니냐...그거지?


"아, 그거? 하루 자고나니까 회복되더라. 근육통은 아직까지 좀 있는데, 어디가 끊어진것처럼 아프다거나 하진 않아."


나 아직 20대다...건강하다고...군대 제대한지도 얼마 안됐다...? 운동을 좀 쉬어서 그렇지 아예 재기불능이 됐다거나 한게 아니야!


금방 회복해! 나 아직 젊다고!


"젊으니까 그렇지, 뭐. 원래 어린애들도 근육통 올때까지 뛰고 놀고 그래도 하루이틀이면 회복되잖아?"


"성인인데...그런 회복력이 가능한지는 못들어봤습니다만..."


나도 못들어봤어. 근데 실제 사례가 눈앞에 있잖아?


"나도 몰라. 근데 자고 일어나서 멀쩡해진거 보면 맞는거 아니야?"


야, 나도 10대 딸내미가 넷인데 아직 30대나 20대후반으로 보이는 사모님을 직접 안보고 말로만 들었으면 못믿었을거야.


"그,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렇게 페로와 같이 집에 가려는데...누군가가 전화를 해왔다.


대충 안보고 전화를 받은 뒤,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여보세요?"


-미스터!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는데 뭐부터 들으시겠어요?


목소리랑 말버릇 보니까 오드리씨다. 그보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라...


원래 떡상을 위해서는 떡락이 있어야 하는법이지. 올라갔다 내려가는것보다는 내려진 상태에서 올라가는게 좋잖아?


"나쁜 소식부터요."


-Well, 좋은 소식은 말이죠? 미스터의 옷이 완성됐다는거에요!


나쁜 소식부터 말해달라고 했는데?


"저는 나쁜 소식을 선택했는데요?"


-미스터, 맛있는걸 나중에 먹는 버릇은 좋지 않아요. 가끔은 기쁨부터 추구할때도 있어야죠.


...오드리씨가 내 버릇은 어떻게 알았대. 내가 맛있는걸 나중에 먹는 타입이라는건 누구한테 들은거지?


"그럼,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 나쁜 소식차례네요. 나쁜 소식은요?"


-으음, 그걸 말해주면 재미없지 않겠어요? 직접 와서 확인해보도록 하세요.


"결국 말 안해주는건가요..."


-기다림도 즐거움의 일부분이랍니다? 그럼, 의상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어요.


오드리씨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나는 한숨을 쉬며 목적지를 바꿔야 했다.


"후우, 집에 가는게 조금 늦어지겠네. 뭐 옷만 받아가면 되겠지."


"상관없습니다. 제가 계속 경호하고 있으니까요."


페로의 자신감넘치는 대답과 함께, 나는 오드리씨를 만나기 위해 의상실로 향했다.


"Welcome, 미스터. 옷이 완성됐어요. 하루빨리 입혀보고싶어서 재촉했는데 정말 바로 와줄줄은 몰랐는걸요?"


"그래서, 나쁜 소식이라는게 뭐죠?"


그 나쁜 소식이라는걸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별거 아니면 실망할것같다.


"완성된게 이것 한벌뿐이라는거죠. 다른 한벌과 미스터를 모델로 삼고싶은 옷은 나중에 제작될거랍니다. 후우, 원래대로라면 두벌 다 완성했을때 연략해야 했지만...미스터가 제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만..."


"...의외로 그렇게 나쁜 소식은 아니네요."


그다지 나쁜 소식은 아니다...사실, 좋은 소식이라는것도 그렇게 극적으로 좋은건 아니었으니 둘 다 비슷한건가?


하지만, 오드리씨에게는 그게 극적으로 좋고 나쁜것 같았다.


"무슨 소리! 저에겐 나빠요! 주문은 2벌이었는데 1개만 만들고 바로 연락하다니, 프로가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프로의 규칙을 어길정도로 보고싶었다는 그 말인가요?"


"Yes, of course! 그런의미에서, 미스터? 온김에 한번 입어주세요."


....뭐, 나로서도 나쁜건 아니다. 옷이 만들어졌는데 입어봐야 알지, 그냥 옷걸이에 걸린걸 구경만 한다고 내가 알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탈의실 경호를..."


"거기까진 좀 아니다."


탈의실까지 따라들어오려고? 거기에서 닌자가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습격은...아, 닌자가 있긴 하지? 그럼 들어오게 해야하나?


"탈의실? 미스터, 이 white lady는 누구?"


"저는 주인님의 경호원, 페로라고 합니다."


"아! agent! 미스터에게 경호원이 붙다니, 의외인걸요? 그치만, 어울리기도 해요."


오드리씨는 나한테 경호원이 있다는것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것 같았다.


"으음...Ms.페로에게도 뭔가 어울릴법한 옷들이 있긴 하지만, 기성복이나 만들어둔것과는 매치가 안되네요."


"제, 제 옷은 만들어주실 필요 없습니다."


"아, Don't worry. 그냥 디자이너의 직업병같은거에요. 그 사람을 봤을때 어떤 옷이 어울릴까...하는. Ms.페로? 잠깐 스케치를 위해 거기 서계셔주시겠어요?"


"네? 하지만 저는 경호를..."


오드리씨는 페로를 보자마자 뭔가 영감이 떠오른건지 곧바로 그녀를 모델로 스케치를 시작하려 했고, 페로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하치코였다면 특유의 친화력으로 하기싫으면 싫다고 했거나, 싫은 마음이 없었으면 이미 오드리씨의 모델이 되어있었겠지.


경호실력은 몰라도,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페로가 조금 약한것 같았다.


"괜찮아, 금방 끝낼거야. 그럼 그동안 갈아입고 나올게요."


나는 오드리씨가 만들어둔 옷을 가지고 탈의실...의상실에는 피팅룸이라고 적혀있는 방에서 옷을 다 갈아입고 나왔다.


"다 입었어요."


남색 정장을 입고 바깥으로 나오자, 오드리씨와 페로 둘 다 나를 놀란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래요? 미스터...Awesome 하네요."


"앗, 주인님.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둘 다 정말로 내 모습을 보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남자의 패션, 그 끝에는 수트가 있다더니...


학창시절에 어떻게 비춰졌는가를 생각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지 알 수 있을거라 하더니, 과연 맞춤 정장은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거울에 내 몸을 비춰봐도, 몸에 딱 맞는 정장이 여러가지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음, 좋네요."


이대로 완벽해진건가 싶었지만...역시나 전문간의 눈길은 확실히 달랐다.


"Well, 그보다 이렇게 보니 미스터의 전체적 스타일에 헤어가 못따라가고있네요. 나중에 헤어스타일도 추가적으로 다듬어야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부분에 대해 동의합니다."


페로도 알 정도라니, 그만큼 내 헤어스타일이 구린건가? 아니, 오드리씨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간단하게 다듬기만 한 내 머리스타일이 못따라가는거겠지. 아무리 보련이 전문가라고 해도, 주문하는 고객이 대충 주문하면 거기에 맞춰줄 수 밖에 없으니까.


본인의 역량을 있는대로 발휘한 오드리씨와, 내 주문에 따라 맞춰줘야했던 보련. 누가 더 능력을 발휘하기 쉬웠는지는 안봐도 뻔하다.


"으음, 조만간 또 머리손질하러 가야겠네요."


내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하자, 오드리씨가 내 옆으로 다가와 머리카락을 만지셨다.


"미스터? 완벽하게는 힘들어도 harmony를 이룰 수 있게 간단하게 손보는 정도라면 지금도 할 수 있는데. 어때요?"


"부탁드릴게요."


"좋아요, 미스터를 지금보다 더 멋진 미남으로 만들어드리죠."

오드리씨는 곧바로 포마드랑 이런저런것들을 가지고 내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했고, 이내 눈을 뜨자 거울에는 내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내 얼굴이 아닌것같은 훈남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어때요? 간단하게만 건드려봤어요. 오늘 이대로 여유가 있다면 보련양에게 가보는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오늘은 금요일이잖아요? 아마 문을 닫았을거예요."


"...금요일날 문 닫아요?"


금요일? 보통 미용실이 문닫는 날이랑은 안맞지 않나? 아, 개인적으로 쉬려고 쉬는건가?


"아니요, 오늘 저녁에 패션쇼가 있거든요. 거기에 갔을거예요. 저도 거기에 낼 작품을 의뢰받아서 미스터의 옷을 제작하는게 조금 늦어졌거든요."


그렇구나, 일단 오늘은 못간다는거네.


"어차피 헤어스타일도 옷에 맞춘거니까 나중에 갈아입으면 큰 문제는 없을것같고...오늘은 이대로 다녀봐야겠네요."


"그게 좋아요. 미스터, 옷을 입었을때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날 보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분이 다른지도 느껴봐야 하는거랍니다."


난 그렇게 입었던 옷을 대충 챙겨 오드리씨의 의상실에서 나왔고, 아침에 힐끗힐끗 보던 페로는 이제 거의 대놓고 날 쳐다보고 있다.


그렇게 어울리나?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음...아."


어울리는지 아닌지 확인해줄 사람이 있다. 옷을 주문한 사장님이라면 확실하겠지.


그렇게 사장님에게 연락하려 할 때, 내 휴대폰에 선수를 쳐서 연락해온 사람이 있었다.


-여보세요? 왓슨!


"리앤? 갑자기 왜?"


리앤이 전화를 해왔다. 그래, 얘한테 물어봐도 되겠다.


-내일 놀러가는거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또 왓슨 너랑 만나서 밥도 먹으려고! 우리...데, 데이트 한지 일주일쯤 되어가잖아? 그동안 얼굴을 못봤다싶어서!


"그래? 그럼 어디서 볼까? 지금 밖에 나와있어서 금방 갈 수 있을거같은데."


-어? 지금 밖이야? 혹시, 차타고있어?


"응."


역시 형사 겸 탐정님이라는걸까, 추리가 예리하다.


뭐, 추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이야기지만.


-잘됐다! 그럼 오는길에 태워줘! 이 주변 대중교통이 안좋은 편인데다가, 왓슨이 모는 차 한번쯤 타볼래!


...너 그냥 이동하기 힘든게 아니라 내가 모는 차에 타보고 싶어서 태워달라 하는거지?


"어딘데? 내가 갈게."


나는 리앤의 위치를 듣고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고, 뒷좌석의 페로는 못마땅하다는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내가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게 못마땅한건 아는데, 이것도 내 일상이라고."


"...전혀 그런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흥! 소리만 뺐을 뿐이지, 못마땅해하고있네.


....벌써 하치코가 보고싶다. 세상 해맑고 활기넘치는 애였는데.



하치코를 그리워하며 리앤이 있는곳으로 향하자, 제법 떨어진곳에있는 리앤이 운전석의 나를 발견하고 인사하기 시작했다.


"아! 왓슨! 여기야 여기!"


제자리에서 뛸때마다 흔들리는 흉부를 보니...과거에 비해서 많이 성장했구나, 리앤. 마음이...아니, 마음씨! 마음씨! 그러니까 자비가 넘쳐보인다.


"후아! 왓슨, 지금 봄 맞아? 날이 너무 더운것같은...엣."


리앤은 내가 차를 대자마자 곧바로 조수석에 올라탔고,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굳어버렸다.


"와, 와와와와 왓슨...너...그 모습..."


"아, 어때? 새로 뽑은 정장이야."


내가 정장을 자랑하듯 살짝 팔을 벌려보이자, 말을 더듬던 리앤은 작게 중얼거렸다.


"반칙..."


"어?"


그리고 이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 리앤.


"이건 반칙이야! 너무 멋지잖아! 왓슨! 설마 오늘이 2회차 데이트인거야?! 나, 나 옷 준비 안해왔는데! 이것봐! 평소처럼의 바지에 셔츠차림이라고! 왓슨 너무해! 데이트는 내일일거라고만 생각해서 오늘은 기운빼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나만 초라하게!"


"리앤...?"


"아! 이건 그거구나?! 오늘 날 함락시키겠다는거지?! 그런거라면 이미 함락된것같아! 왓슨! 우리 이렇게된거 밤까지 데이트나 해버릴까? 나 오늘은 지난번 데이트를 이어서 진행할 수 있을것같아!"


리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듯, 흥분하여 계속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리앤, 진정해. 진정."


나는 리앤의 양 어깨를 잡고 진정시켰고, 페로 또한 뒷좌석에서 몸을 내밀어 리앤을 가라앉혔다.


"친구분?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리앤은 눈앞에 새하얀 무언가가 튀어나오자 깜짝 놀랐고, 그 놀람의 수준이 상당했는지 방금전에 흥분한 모습이 마치 거짓말같았다.


"어, 어어?! 누구야?"


"으음, 설명할게 많지만...요약하면 내 경호원."


"뭐야? 왓슨! 너 누구한테 쫓겨?"


리앤은 나한테 자세한 사정청취를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설명을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 가면서 설명할게."


총이나 각종 무기를 들고오는 암살자 이야기는 적당히 치우고, 나는 흉기를 지참하는 스토커가 있다는것만 간략히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된거야. 그러고보니, 이건 원래 너하고 상담했어야 하는건데..."


"아니, 잘한거야. 스토커가 일을 저지르기전까지 경찰에서 할 수 있는건 별로 없거든. 몸의 안전부터 챙기는건 당연한거야."


과연 리앤은 형사님답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고, 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것과 리앤이 자신을 찾아주지 않았다는것에 섭섭해하지 않는걸 보자 안도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그, 그보다 왓슨...우리 진짜 밥먹으러 가는거야? 나 가슴이 너무 뛰는데?"


아니, 이제보니 섭섭해하지 않는게 아니라 섭섭이고자시고의 감정까지 신경을 못쓴게 아닌건가 싶기도 하고...?


"...그럼 여기서 내릴래?"


"아니, 그건 싫어! 나 왓슨이랑 갈래!"


리앤은 가슴의 두근거림과 이성 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결국은 그 큰 가슴이...아니 마음이 시키는대로 나를 끝까지 따라와 식사도 하고, 놀이공원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떠나갔다.


"그럼 왓슨! 내일봐~"


...리앤과의 점심식사와 내일 놀이공원에서의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벌써 미호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오늘따라 집에 갈 여유가 없네~"


나는 곧바로 차를 돌려 미호네 학교로 향했고, 학교 정문에서도 뜻밖의 일을 맞이했다.


"여어, 선생! 어제는 내가 너무..."


"여어, 바바리아나. 오늘은 왜?"


바바리아나가 어제처럼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고, 도망쳤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가볍고 쾌활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차를 향해 반쯤 다가왔을 때 바바리아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어? 어어?"


"왜? 뭔데?"


"그, 그게...아무것도 아니야!"


바바리아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곧바로 등을 돌려 달려갔고, 그녀는 오늘도 도망쳤다.


"....왜 저러는걸까."


"주인님께서는 참...여러가지로 문제가 있으시군요."


"내가 뭘?!"


내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안면 튼 애가 맨날 별 말없이 도망치는거라고! 내가 저걸 어떻게 대처해! 뭐 말이라도 해줘야 알지!


그리고 그 때, 옆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찰칵.


"응...잘 나왔네."


셔터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자, 거기에는 에밀리가 서있었다.


"안녕, 아저씨."


"안녕, 에밀리. 근데 사진은 왜 찍은거야?"


"나, 나비 잡고싶은데...못잡아. 그래서, 추천받았어. 사진으로 찍으라고. 이건, 연습하는거야."


나비? 그러고보니 지난번에도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비를 쫓아서 사라졌었지, 아마.


에밀리는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어딘가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찰칵.


"...흔들렸어."


아무래도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는것같다.


"그럼 아저씨, 안녕. 나이엔 안맞지만, 아저씨...교복도 어울려."


"잠깐...교복이라니, 내가 입은건 교복이 아니라..."


아무래도 교복과 양복이 비슷해서 착각한것같은데...에밀리를 멈춰세우려 해도 나는 차에 타있는 상황이라 그건 불가능했다.


뭐, 그리 심각한 오해도 아니니 다음에 오해를 고쳐주면 되려나.


그렇게 두명정도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미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에, 금요일이다! 쌤! 집에 가요!"


"그래, 그래. 빨리 타."


미호가 차에 타자, 내 옷차림을 본 미호는 리앤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아니, 격하지 않은게 아니라 그냥 너무 조용하다. 평소에는 뭐라도 말하는 애였는데....


'쌔, 쌤이 너무 멋지잖아...겨, 결혼식때도 저렇게 입으시려나? 나, 나 그러면 제정신으로 못 있을것 같은데...결혼식?'


'쌤이랑 결혼해서 너무 행복해. 앞으로 잘 부탁해, 여.보?'


'으아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미쳤어, 미쳤어!'


쿵. 쿵. 쿵.


미호가 창밖을 바라본 채, 말없이 발만 구르고 있었다.


무섭다...아무런 표정변화랑 움직임은 없이 발만 쿵쿵거리는게 무서워...


"....어디 마음에 안드는게 있으면 말로 해주길 바래..."


그날도 과외를 진행하긴 했는데...30분 밖에 못했다.


30분쯤 수업하고 나니까 철용이를 선두로 미호네 자매들이 쳐들어와서 놀이공원 가서 놀 계획을 짜기 시작했으니까.



"롤러코스터 타자!"


그래, 철용이 넌 왜 안들어오나 했다. 얘는 어째선지 내가 과외하던 도중에 쳐들어와도 이상할게 없었다.


그리고 철용이가 들어오자 나머지 애들이 들어오는건 시간문제였다.


"다같이 놀 수 있는 범퍼카 타자!"


"저기...우리 그냥 평온하게 탈 수 있는거로 하면 안될까?"


서로의 취향은 달라도, 이것만큼은 똑같았다.


하나같이 내일 놀러갈 생각밖에 없다는것을.


그리고, 그건 미호도 마찬가지였다.


"저기 저기, 쌤. 저희는 여기 갈래요?"


각자 휴대폰으로 놀이공원 지도를 띄워놓고 원하는곳을 확대해서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재잘재잘 떠드는 10대 소녀들.


휴, 나같은 20대 아조씨는 거기에 어울릴만한 정신력과 체력이 없단다...내일 피곤하겠네.


"미호야, 과외는 못할것같으니까 내일 계획 알차게 짜고 오늘 일찍 자. 어디갈지 어디서 뭐하고놀지 의논하는것도 나쁘진 않은데, 쌤이 주체가 아니니까 끼어들수는 없을것같네."


"앗, 네."


결국 내일 놀러갈 계획으로 가득찬 아이들을 두고, 바깥으로 나오자...거기엔 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 철남군. 집에 가려고요?"


평소의 묶은 머리와 다르게, 집안이라 그런지 사모님은 머리를 풀고 계셨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집에서 머리 푼 모습을 보니까 확실히 미인이라는게 체감됐다.


"네, 애들 이야기하는걸 듣고만 있어도 진이 빠지는것같네요. 하하."


"어머, 그런가? 그보다, 식사는 안했죠? 먹고 갈래요?"


"식사라...."


저녁, 안먹긴 했다. 그리고 배도 고픈것같고...


"바깥에 경호원이 있어서 그런데, 실례 할 수는..."


"그정도는 괜찮아요. 두명분 식사야 금방 준비할 수 있어요."


"네? 그치만 애들도 있는데..."


"지금 얘기 하는거로 봐서는 8시쯤 되어서야 끝날것 같은데, 그때까지 10인분을 차려도 차릴걸요? 철남군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식사는 안하더라도 면담정도는 하고 가요."


...면담이라면 어쩔 수 없지. 페로한테 이야기 하자.


"페로? 사모님이 너도 식사하라고 하시는데 동석할래?"


"괜찮습니다."


"뭐 어때, 그냥 먹어요. 설마, 애 넷 딸린 아줌마가 갑자기 총이라도 꺼내서 철남군을 죽이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건 아니죠?"


사모님의 권유에, 페로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페로까지 들어오자, 사모님은 식탁 위에 반찬들을 내려놓은 뒤 미소지었다.


"그럼...차린건 별로 없지만, 맛있게들 먹어요."


이걸 보고 차린게 별로 없다니, 식탁이 가득찰 정도인데...?


"으음..."


나는 일단 찌개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 순간 페로가 나보다 빠르게 찌개에 손을 뻗어 한숟갈을 입에 가져갔다.


"앗, 뜨거워..."


"....?"


뭐지? 나보다 빠르게 찌개를 떴으면서도 안먹어? 뭘 하려는것이지?


"후, 후우...음."


페로는 찌개를 후후 분 뒤 다시 입에 넣었고, 잠시 우물거리고 내용물을 삼킨 뒤 눈을 감고 나한테 보고했다.


"이상은 없습니다, 주인님. 드셔도 될것 같습니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건 좋지만, 그걸 요리한 장본인의 앞에서 그러는건 무례하지 않니...?


"여기서 기미상궁 역할 하지마. 사모님도 보고 계시는데...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나의 사과에 더불어, 페로도 고개를 숙이며 사모님에게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침상 어쩔 수 없었기에..."


지침인건 알지만 여기서 독 검사하고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괜찮아요, 철남군. 저도 직장에서 경호원들을 본 적이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딸들도 먹는 음식에 나쁜 짓을 할만큼 못된 사람이 아니랍니다?"


저것 봐, 사모님도 화나셨잖아.


"다시한번, 거듭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페로는 다시한번 고개를 숙였고, 결국 면담따위 없는 묵묵히 식사만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럼, 잘 먹었습니다."


나는 페로와 함께 사모님의 집에서 나왔고, 이내 차를 타고 집에 갔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페로와 함께 야간...정확히는 자정까지 동행해야하지만...


"그냥 퇴근할래?"


"앗, 그건..."


페로가 잠깐 주저했지만, 나는 페로와 계속 있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썩 마음에 드는 부분도 없다고 해야할까...나중에 몇번 더 만나게된다면 모르겠지만, 오늘 받은 느낌은 딱 그거다.


너무 원리원칙에 얽매인 느낌이랄까.


"난 이대로 집에 들어갈거라서. 내 야간 호위조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오늘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페로는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돌아갔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시라유리가 묶여 있는데, 하루종일 와본적이 없네. 뭐, 여러가지로 일이 있었으니까..."


아니, 뭐. 묶여있었다는것만 빼면 큰 문제 없겠지....잠깐, 하루종일 묶여있었는데? 식사는 하루 거른다고 문제 안생기니까 상관없지만 용변이라던가 그런 문제는 어떡하지?


"어어어 안된다!"


나는 다급히 시라유리가 갇혀있는 욕실로 들어갔고, 거기에는 내가 생각했던것 이상의 상태가 된 시라유리가 있었다.


눈뜨고 보기 힘들정도로 처참한 그런 상태가 아닌, 그러니까....


"흐으, 후웅. 흐으-"


눈은 반쯤 풀려있고, 온몸이 땀이랑...기타등등 액체에 젖어있고, 호흡은 거칠고, 또....


"여러모로, 굉장한 상태네."

온몸을 감싼 검은색 잠행복의 지퍼가 쭉 내려가있었다. 그래, 그...가랑이부분까지.


그리고 그 가랑이부분에서는 점성이 있고 나한테 최근 친숙해진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시라유리는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나를 발견하자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 했고, 동시에 뭔가를 소리치고 있었다.


"흐으으! 으으! 흐으으으!"


"잠깐, 저거..."


지금 시라유리가 물고 있는거, 내 팬티 아니야? 내가 분명히 아침에 얘 입에 물려놨었던건 그냥 양말이었는데.


이런걸 할 사람은 두명밖에 없다....정확히는 그 두명중에 한명같지만.


"카엔, 제로."


"네, 주공. 부르셨습니까?"


"주공. 불렀어?"


내 옆에 모습을 드러낸 두 쿠노이치를 보며, 나는 시라유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입에 팬티가 물려있고, 손도 발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손목과 발목을 서로 묶어둔 모습....


"저거..너희가 한거야?"


"재갈. 내가. 바꿨어."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 알아서 결박 방식을 바꾼건 저입니다."


그래, 역시 너희들이겠지. 뒷처리를 저런식으로 할줄은 전혀 몰랐지만.


두 쿠노이치의 만행과 그 결과물을 앞에 두고, 나는 둘을 혼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적어도 칭찬은 아닌것 같았으니까.


"...할거야? 주공."


"그다지 취향이 아닌데."


"그게, 그쪽의 질문이 아니라 심문입니다...저렇게 몸과 마음 둘다 지친 상태로 만들어두면 심문하기에 최적의 상태이니..."


아, 그쪽 방면이구나. 그런식으로 실토하게 하는것도 있구나?

"...그럼, 닌자의 방식을 한번 보자."


내가 닌자들의 심문 방식을 보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자, 카엔이 내 셔츠자락과 양복재킷의 소매를 동시에 잡았다.

"그럼. 주공도. 준비."


이내 카엔은 내 옷을 벗겨내려했고, 나는 일단 저항했다.


"어? 나까지? 왜?"


"잘 풀리면, 포상. 안풀리면. 눈앞에 들이대고. 고문."


"...결국 내가 생각한대로 흘러가는거 아니야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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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향기 페로몬 뿌리는 철남씨-시라유리편에서 계속...


3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