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에 신중함을 기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다면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니 잔뜩 인상을 쓰며 작전 지도를 바라보는 그에게 안심하라는 듯 충고의 말을 해주며 커피 한잔을 건넸다.


"좋은 상관이란, 부하의 걱정을 해주는 것 역시 중요한 덕목이지만..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부하들의 불안을 야기하는 법이니."

"아, 고마워. 표정에 너무 드러났나?"


연전연승, 파죽지세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지금의 오르카 호는 큰 어려움 없이 순항중에 있으니 조금 쉬는 것 역시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여겼지만, 적어도 눈 앞의 그는 안심하지 못한 듯, 커피를 마시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눈은 작전 지도로 향해 있었다.


"그대는 표정을 잘 감추지 못하오.. 게다가 여성의 권유를 그리 매몰차게 무시하는 것 역시 좋은 버릇은 아니리라 여긴다오."

"미안, 미안~ 그럼 잠깐 쉴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항상 자신을 극한까지 내몰며 지휘에 임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 모습이었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 남성이 무리하는 것은 내심 불안했기에 그를 가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소관의 무례를 용서해주시오. 그저.. 무리하는 모습을 보기 괴로워서.."

"괜찮아.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겠지."


결국 반 억지로 시작된 티타임에도 살가운 말 한마디를 못하는 스스로의 성격에 조용히 쓴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마주 보는 시간이 길었지만, 지금까지 먼저 그에게 애정을 표현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아쉽게도 '애교 많은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아까 그대가 보고 있던 작전도 말이오."

"응, 해상 작전에 관한 것이었지."

"우리 호라이즌이 맡은 구역이니 괘념치 마시오. 호라이즌은 좋은 병력이오. 그대가 맡아주어 다행이지."


출격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가량. 따라서 그가 더욱 집중하며 작전도를 보고 있던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마음에 둔 남성의 관심이 오직 작전으로 향해있다는 질투 반, 걱정 반으로 이렇게 무리하게 찻잔을 나누는 것에 스스로도 창피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예전과 같았다면 함께 작전을 수립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창피함은 더욱 크게 달아올라 얼굴의 혈기를 붉게 만들었다. 속으로는 내심 함께 보내는 지금의 시간에 감사하면서도, 그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생각에 별다른 말도 못하고 있지 않던가.


"호라이즌 아이들은 참 뛰어나. 역시 용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일까?"


차를 음미하며 대화하는 주제 역시 결국 처음의 걱정이 무색하게 작전에 관한 것들 뿐이다. 지금도 눈 앞에서 호라이즌의 우수성에 대해 칭찬하는 그의 모습에 수장으로써 뿌듯함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관심이 호라이즌 전체에 쏠리는 것에 알게 모르게 옅은 질투심이 일어난다.


"가, 가끔씩은... 병사들이 아니라 그대가 나를 바라보기를 바란다오."

"...응?"


잘못 들은 것일까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의 모습에 스스로가 한 언행을 자각했다. 스스로도 '아차!' 싶을 정도로 마음속의 생각이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것에 이 정도로 냉정함을 잃었나 하는 자괴감과 당혹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아, 그것이.. 그러니까.."

"하핫! 하하하하! 무적의 용도 당황이라는 걸 하는구나?"

"무, 무적이라니! 그런 부끄러운 별명은 그만둬 주시오!"


유쾌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좋아했지만, 그 웃음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손사래를 치며 그를 만류했다. 화기애애한 친밀감 있는 농담일 뿐이었어도 역시 '무적'이라는 별명은 스스로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지금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음, 난 용의 그 별명.. 멋져서 괜찮다고 봐."

"그렇게 칭찬을 해도... 전쟁을 잘 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오."


결국 전쟁이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다. 살육을 하는 자도, 살육 당하는 자도. 모두 전쟁터를 벗어나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연인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살기 위해 죽이고, 살아남은 자가 '승리자'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그런 생각을 그에게 털어놓으며 스스로의 별명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했다.


"음, 용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야. 결국 전쟁은 그런 것이니까."

"....."

"그래도 지금의 내게 용의 그 능력이 필요해. 압도적인 승리를 보장하는 능력, 무적의 이름을 갖고 있는 용이 그래서 필요해."

"아..."


덥석 손을 잡으며 말하는 그의 눈에는 올곧은 신념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리는 것처럼 짧게 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죄책감을 홀로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어. 아니, 죄책감을 갖지 마! 그건 내 몫이야. 내가 결정하고, 내가 진행하는 일이니까.. 용은 그저 내 곁에서 날 따라주었으면 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용은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야."


기댈 어깨를 빌려준 첫 남자이자, 마음을 준 첫 남자의 말이어서 그럴까. 그의 말에 구원을 받은 감정이 들었다. 비록 모순 투성이에, 올바른 길이 아닐지라도 그저 눈 앞의 이 남자가 가고자 하는 길을 곁에서 함께 걷고 싶었다.


"용이 처음 만난 날 내게 그랬었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우릴 찾아올 때까지, 나를 모시겠다고."

"그랬소.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으니."

"그러니 이번 작전도 용에게 맡길 거야. 난 용의 그 맹세를 믿으니까."


믿는다는 그의 말에 복잡한 머릿속이 뻥 뚫리고 나아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서로 맞잡은 두 손에서 각자 빛나는 반지처럼, 처음의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 그 길을 나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나며 그의 뺨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이만.. 시간이 된 것 같소.. 출격의 시간이오."

"응, 오늘도 무사히 다녀와."

"부디, 맡겨주시길."


서방님의 병력, 잘 보존해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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