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이 예쁘다는 칭찬을 듣고도 이런 대답이라니, 퍽 멋없고 여성 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솔직한 심정을 담아 그에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군인으로 태어나 군인으로 살아온 덕분일까. 다른 대원들처럼 그에게 애교 있는 말 한마디를 못하면서도 용케 이런 낯 뜨거운 수영복을 입고 그를 대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시간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음.. 그래도 레드후드가 이런 수영복을 입어줄 것이라고 솔직히 생각하진 못했거든.. 정말 예뻐."

"사령관 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만든다고 하던가. 그의 계속되는 칭찬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린다. 걱정 반, 설레임 반으로 그의 앞에 당도했을 적에는 적잖이 긴장했으나, 다행히 그의 마음에 이 수영복은 쏙 든 모양이었다.


여성 답지 못한 잔근육이 잔뜩 낀 몸매며 그렇다고 다른 대원들보다 풍만하지 않은 가슴 때문에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그것은 기우였고, 그는 연신 칭찬을 연발하며 웃어주었다.


"저도... 사령관 님께서 예, 예쁘다고 해주시니... 정말 기쁩니다."


그 후로는 무난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같이 커피를 즐기고, 함께 어깨를 맞춰 해변도 거닐고. 아마 지금까지 누려본 행복 중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매일같이 그저 싸우는 것만 생각하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군인 정신이 결여된 얼간이 녀석이라 칭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평소와 전혀 다른 행복을 누렸다.


"이게... 마리 대장 님의 마음..."

"응?"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린 말에 그의 고개가 돌아가며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예전 마리 대장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의 곁에는 내가 아닌 마리 대장이 더 어울리는 자리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 큰 변함은 없었지만 이렇게 행복하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도 그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마리의 마음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많이 웃어주었다는 것은 확실해."

"그렇습니까?"

"응, 지금 레드후드 처럼 예쁜 미소였어."

"아..."


가벼운 농을 섞은 그의 칭찬 한마디에 다시금 얼굴이 붉어졌다. 기쁨, 환희, 창피함, 당혹감.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이며 머릿속의 회로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느낌이었지만, 무척 기분 좋은, 행복한 감정이라는 것에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리의 마음은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 아뇨..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좀 더 알려주시겠습니까?"


평소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거짓을 토해내며 그에게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더 지금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지금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음... 거짓말 같은데?"

"아... 그, 그게..! 죄송합.. 꺄악!"


거짓말을 타박 하는 듯한 대답에 서둘러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고하려는 찰나, 갑작스레 그가 날 안아 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성의 품과 손길에 가슴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지만, 이 두근거림이 과연 놀라움 때문일까, 설레임 때문일까 는 정해진 답이리라.


"사, 사령관 님!"

"내가 레드후드에게 확실히 알려주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이 장소에선 조금 부적절 하니까."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말하는 어투며, 처음부터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는 듯 도망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우악스러운 손짓.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 아무리 쑥맥이라도 능히 눈치챌 수 있겠으나, 나 역시 그의 행동에 대한 답은 내려졌다.


"저 같은 여성에겐 마음이 동하지 않으실 거라 걱정했습니다만.. 이렇게 좋아해 주실 줄은.."

"그 걱정, 기우였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려줄게."

"으... 잘 부탁 드립니다.."


그의 앞에서는 군인이 아닌 여자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그 꿈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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