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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다니?"


사령관은 깜짝 놀랐다.


"알비스. 그게 무슨 소리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알비스는 악몽을 꾼 아이처럼 굴었다.

하지만 무서워하기보다는 슬퍼했다.


"사령관이 영원히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음."


사령관은 미간을 오므렸다.


"알비스. 꿈을 꿨니?"

"응."

"어떤... 아니, 우선 좀 앉을까?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하자."

"응."


사령관은 알비스를 데리고 가까운 자판기로 가 음료를 두 개 뽑았다.

누군가의 방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긴 복도 중간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두 사람의 앞 벤치에는 심해를 내다볼 수 있는 두꺼운 유리창이 있었다.

현재 그 너머에는 암흑 뿐이었다.

오르카호가 깊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꿈을 꿨는지 말해줄래?"

"꿈에서 사령관이 바람을 피웠어."

"으, 응..?"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오르카호에 있는 대원은 아니야."

"무슨 소린지 몰?루겠는데...."


그렇게 말하자, 알비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본다.

알비스의 눈빛은 단호하면서도 슬픔에 젖어 있었다.


"알비스는 사령관이 좋아."

"나도 알비스가 좋아."

"레오나 대장도, 다른 언니들도, 좌우좌도 너무너무 좋지만 사령관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

"하지만 사령관은 아닐 거야."

"알비스...."


그는 가볍게 알비스의 손을 쥐었다.

알비스는 뿌리치지 않았지만 마주 잡지도 않았다.


"꿈은 꿈을 뿐이야. 주위를 보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 뿐이잖아."

"나도 알아. 사령관이 떠나지 않는다는 건."

"...."

"그런데 꿈에서 본 그 언니도 가슴이 컸어. 키도 컸고. 사령관이 좋아하는 체형이잖아."

"하하..."


그는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잠투정인가? 그럴 나이는 아닐 텐데....'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지운다.


'그럴 리가 없지.'


알비스는 진지했다.


"꿈은 꿈일 뿐이야, 나도 알아."

"그렇지."

"그 꿈을 꾸고 사령관이 우리를 떠나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 생각해봤어. 만약... 우리가 만약 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헤어질 일은...."


사령관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겠구나."

"응...."

"이런, 알비스."


그는 알비스를 꼭 안아준다.


"그런 고민은... 너만 힘들게 만들 거야."

"하지만 알고 싶어."

"...."


사령관은 슬며시 포옹을 푼다.


"나는 지금까지 너희와 함께하면서 즐거웠어. 알비스, 너는?"

"알비스도 너무 즐거웠어. 너무 즐거워서... 그래서 더 걱정되고 슬퍼."

"그래. 헤어지는 걱정과 아픔은 애정에서 오는 법이니까."


애정이 크면 클수록 이별 또한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나도 알비스와 같아. '만약 헤어지게 된다.'라는 가정을 하면 마음이 아려와."


가정만 할까.

이별을 겪지 않기 위해 안팎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다.

누구 하나라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누구 한 명과도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럴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고이기도 해. 나도 그 아픔을 잘 알아."

"....사령관은... 어떻게 이겨내?"


알비스는 울먹이고 있었다.


"이겨낸다라...."


사령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사실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알비스는 고뇌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총을 잡은 아이들은 순식간에 성장한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아직 몸도 다 자라지 않은 자신을 갈아 칼로 만들고.

장난감을 만지고 조립하던 손으로 총을 손질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며 복수를 다짐한다.

소년병들은 그렇게 괴물이 되어간다.


그러나 여기 이 아이는....


'한 번 아물었던 상처이기에 더 크게 와 닿겠지.'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나, 순수함을 간직한 채 무기가 되었다.


전쟁에서 소년병들이 골치를 썩이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성인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악독함 때문이다.


그들은 포탄을 품에 안고 탱크를 향해 달려간다.

총 한 자루를 들고 홀몸으로 적의 대장을 향해 돌격하며,

빗발치는 총알에 몸이 갈가리 찢겨도 끝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는다.

앳된 몸과 정신으로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순수함이 박살나며 생긴 마음의 힘 때문이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자신의 짊어진 짐과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수 년 동안 마음을 죽이는 훈련을 받아 탄생한 괴물 같은 힘을, 소년병들은 며칠 만에 얻게 되는 것이다.

육체적인 기술은 차이가 있지만 그 간극은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꺼이 목숨을 내줄 만큼 탄탄한 정신을 가진 자들은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의 목숨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계 같은 병사를 만들어내는 데 들어간 비용과.

전쟁의 아픔으로 괴물이 된 아이에게 총 한 자루를 쥐어주는 비용.


어느 전쟁에서나 소년과 소녀병들이 있는 이유는 끔찍하기 짝이 없다.


소년과 소녀들은 순수함 때문에 마음이 쉽게 무너지고.

그 반동으로 목숨을 던지며 적에게 돌진한다.


'알비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왜 굳이 어린아이의 외형과 정신으로 만들어서 전쟁터에 보냈을까?

순수함이 꺾여 무너졌을 때.

순수한 동료애를 밟고 서 그것이 분노가 되었을 때.

아이의 형상을 한 괴물이 되기 때문이다.


지킬 동료를 모두 잃어 혼자가 되었을 때.

마음이 무너진 소녀는 방패를 휘두르며 달려갈 거다.

복수를 위해 적진을 향하는 그 소녀에게는 후퇴란 없다.


그렇게 설계된 알비스기에, 어쩌면 이런 사색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르카호에 와, 사령관을 만나 안전과 행복을 얻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비극을 상정하고 그에 몰입한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니.... 난 사령관이 답을 알려줄 거라고 믿었는데...."


알비스가 고개를 푹 숙인다.


"....."


사령관은 은근슬쩍 호출기의 버튼을 눌렀다.

항로를 조금 수정하라는 간단한 지시였다.


"알비스."

"응...."

"세상에는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어. 지금 네 고민도 그래. 정답이 없는 일이거든. '만약'이라는 말은 위험한 말이야."

"하지만 자꾸 생각이 나."

"그건 네가 너무 한 부분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야."


만약.

멸망 전 인간들이 정말 그런 의도로 알비스를 만들었다면.

뇌리에 각인된 터무니없는 지시가 그런 생각을 유도하게끔 만드는 거라면.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정답을 알려줘, 사령관. 사령관은 뭐든 알잖아."

"땅을 보고 있으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지."

"...?"


알비스가 고개를 든다.

이해하지 못해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봐."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에 내려간다.

아니, 오르카호가 상승하고 있었다.

저 깊은 심해에서 조금씩 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있다면."


빛 한 줄기가 내리쬐기 시작한다.

방금까지는 심해 깊은 바다에 있었기에 한 줄기의 빛만으로도 세상이 밝아진 듯했다.


"고개를 드는 간단한 행동으로도 빛을 볼 수 있어."

"...."


알비스는 입을 살짝 벌리고 창밖을 본다.

빛이 점점 밝아지며 검은 바다가 검청색으로, 다시 조금 짙은 청색으로 변한다.


이윽고 어떤 경계를 지났을 때.

바다의 풍경이 돌변했다.


"아...."


알비스가 살짝 탄성을 뱉었다.

사령관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자신도 창밖을 본다.


창밖에는 여러 줄기의 빛이 바다를 뚫고 내려오고 있었으며,

수많은 물고기들이 그 사이사이를 무리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어때?"

"예뻐..."

"알비스."


사령관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일부로 그러지 않았다.


'숙녀에게 그런 행동은 실례니까.'


알비스는 사색하며 성장했다.

다행히 소년, 소녀병들과는 그 궤도가 다른 성장이었다.


그가 알비스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가 많아."

"응..."

"아무리 고민해도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들이 가득하고, 네 고민도 그 중 하나야."

"....응."


알비스는 살짝 웃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보이지?"


사령관은 그녀의 앞에서 비켜서며 다시 창밖을 가리킨다.


"어둠의 뒤에는 항상 빛이 있어."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태초에는 어둠마저 없었을 테니까.

만약 태초에 어둠만 존재했다고 한들.

지금은 아니었다.


"빛에 머물렀다가 큰 상처를 입고 어둠으로 온 사람들이 항상 놓치는 게 있어."

"뭐야?"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다시 빛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빛과 어둠은 항상 같이 다니니까."

"...!"


이제야 알비스의 표정에 조금 화색이 돌았다.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마. 나는 여기 있고, 너는 내 옆에 있어."


그렇게 말하며 사령관이 손을 뻗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남성의 손.

그것을 본 알비스가 탄성했다.


"아....!"

"함께하자."


그가 웃으며 말한다.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케시크의 경우에도 그랬다.

멸망 전 인간들은 반강제로 정신적인 각성을 유도했다.

정신을 산산 조각 내 피폐해지면,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걸 그들도 알기에.


그렇다면 유일한 인간이자, 모두를 사랑하는 그가 할 일은 하나.

순수함을 지켜주고 결코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사령관과 알비스는 두 손을 꼭 잡고 복도를 걷는다.


오르카호가 다시 깊은 바다로 내려가자, 복도에는 서서히 어둠이 깔린다.

주변이 어두워졌을 때, 알비스는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왼손에 꽉 잡고 있는 사령관의 악력과 온기에서, 그녀는 빛을 느꼈다.


"헤헤. 알비스는 사령관을 좋아해."

"나도 알비스를 좋아해. 정말로."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미소를 교환했다.


"이젠 어둡지 않아."


알비스는 소녀로써 존재했다.


순수함을 간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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