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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추기경.

바이오로이드와 같은 크레아투라로 태어났으면서 추기경이란 지위까지 오른 싸이코.

그런 이유로 그 놈 곁에는 서기관도, 이렇다 할 성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사람 모양을 하는 철충이 여기에 나타날 이유는 없다는 것. 덕분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킥.”

 

 

 

지금 내 100 m 밖에서 나를 향해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짓고 있는 저것은 추기경 본인이라고.

 

나는 아이들을 뒤로 물리고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섰다.

 

 

 

“이렇게 대면하는 건 처음이군.”

 

“그... 그렇습니까...? 저... 저는 원채... 오랫동안 당신을 봐와서... 말입니다...”

 

 

 

꼭대기에서부터 낙하한 충격 때문인가, 놈의 아랫턱은 오른쪽은 완전히 뜯겨졌고 왼쪽만 힘줄이 조금 붙어 있는 형태였다.

말을 더듬는 것도 그 때문. 사실 저 몸 중에서 멀쩡한 곳을 찾는 게 더 힘들 지경이었다.

 

왼쪽 어깻죽지는 커다란 도끼에 찍혔던 것처럼 너덜너덜해졌고, 오른 다리는 뼈가 다 부러졌던 것인지 이리저리 꼬여 있었다.

팔, 가슴, 갈비뼈, 멀쩡하다 할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으나 그나마 허우대가 멀쩡했던 곳이 바로 얼굴이었다.

온 몸이 걸레짝이 되었음에도 환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눈에 미인이라 칭할 만한 형체였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교황네 얼굴을 따라 한 거냐?”

 

“마... 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러게. 누구 취향인지 더럽게도 고상하시다 전해줘라.”

 

 

 

낄낄대며 좋다고 웃어대는 놈.

농담이라도 한 것인지 웃느라 덜컹거리는 놈의 상체에서 붉은 살점들이 철에 붙은 녹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트리아이나가 기겁을 하며 등을 돌려 헛구역질을 했다.

 

으득! 으드득!

자신의 턱을 양 손으로 잡아 억지로 끼워 맞추기 시작한 추기경.

철충 특유의 놀라운 회복력은 벌써 얼굴 부위의 근육들을 재생시키기 시작했고, 덕분에 턱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후우... 이거, 볼썽 사나운 모습을 보여버렸군요.

고작 이 정도 부상으로 이 모양이라니, 성하의 모습을 따라 하기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저런 광경을 여러 번 봤을 다른 대원들과 달리, 트리아이나에게 이런 철충의 존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얼굴이 무너질 듯이 일그러진 트리아이나를 부축해주며 놈에게서 눈을 고정시켰다.

사향도, 데우스도, 정체 모를 능력으로 무장했던 놈들이니 방심은 금물.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는 것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야 한다.

 

 

 

“이번 일은 놀라웠습니다. 가히 경히로웠지요.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의 적으로 적을 친다는 방법을 제가 왜 모르고 있었을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뿌리를 뽑아버릴 것 그랬습니다.”

 

“그게 가능했을까? 어차피 네가 만드는 철충으론 저것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 텐데.”

 

“예, 뭐, 저것이 제 아이들을 먹고 다닌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러네.

내 평생 식재료에게 맞아 죽은 요리사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과식 때문에 질식할 수는 있겠죠.”

 

 

 

추기경이 자신의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만신창이가 된 탑의 저편. 거대 AGS들이 아직 기어 올라간 자리에서 철충의 유충들이 검은 파도를 만들어 내며 튀어나왔다.

징글징글한 것들. 정말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사령관.”

 

“그래.”

 

 

 

달링이 아닌 사령관이라 부르기 시작한 레오나가 내 옆에서 소리 없이 권총을 장전했다.

뒤에 있는 대원들도 마찬가지. 각자 비어 있는 탄창을 사각에 숨어 갈아 끼웠다.

그야 지금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적은 추기경. 어줍잖은 잽을 날렸다간 그대로 스트레이트를 맞을 게 뻔하니까.

제압하려면 순식간에 해야만 한다.

 

치명적인 것들을 제외하곤 어느덧 대부분의 상처가 치유된 추기경을 향해 레오나가 권총을 빼들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탕! 파팍!

추기경의 왼쪽 눈에 바람 구멍을 내버렸다.

그 뒤를 이어 수십 발의 총알이 날아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파밧!

님프의 일격에 오른쪽 눈에 더욱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피비빅!

샌드걸의 자동권총이 순식간에 5발을 쏘아 놈의 왼팔을 으스러뜨렸고,

슈숙!

베라가 방아쇠를 당겨 오른쪽 골반에 총알을 한 다발 선물했다.

입을 다물 새도 없이 쏟아드는 일격에 추기경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고, 몇 초 뒤 놈의 뒤통수가 바닥에 쾅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죽은 건가?”

 

“아마도.”

 

 

 

놈이 쓰러지며 일어난 먼지들을 헤치며 나는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움직이지 않는 가슴, 들리지 않는 숨소리.

몸의 칠공(七工)에 더해 총알에 관통 당한 수십 개의 구멍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피를 보면 어느 누구라도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방심할 만한 이유는 아니다. 추기경이란 작자들은 심장을 믹서기에 갈아버리더라도 일어나는 게 이상하지 않는 놈들이니까.

 

탕! 탕! 탕!

나와 함께 걸어 나온 레오나가 차갑게 내리깐 눈으로 추기경의 시체를 바라보며 세 발의 총성을 울렸다.

뿜어져 나올 구멍이 세 개 더 생긴 혈액들이 더욱 빠르게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심박수, 맥박, 생체 신호, 멀쩡한 게 하나도 없어.

죽었네.”

 

 

 

사망 선고를 하는 의사처럼 레오나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레오나는 놈의 좌측 이마에 총알을 하나 더 박아 주었다. 저렇게 말해도 조금 의심스러웠던 것이리라.

 

 

 

“샌드걸, 수거 팀에게 와서 이 사체 좀 가지고 가라고 해.

맥 빠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고위급 철충 개체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대장. 막사까지는 제가 옮기도록 하죠.

님프, 베라. 와서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레오나의 커맨드 프레임에서 푸른 레이저가 나오며 차가워진 추기경의 시체를 이리 저리 스캔했다.

빛이 꺼진 다음엔 의료용 장갑을 낀 님프와 베라가 질퍽거리는 살점 사이를 뚫어 놈의 뼈를 잡고 샌드걸의 끌차에 추기경의 신체를 실었다.

만신창이가 된 탓에 달랑거리는 놈의 손을 잡는 것보단 뼈를 쥐는 것이 더 단단했던 탓이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던 찰나,

 

 

 

“... 달링.”

 

“응?”

 

“내 뒤에 숨어.”

 

 

 

슈우우우웅.

하늘에서 붉은 섬광에 휩싸인 캡슐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이전에는 고작 하나에 불과했던 캡슐이, 다발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내가 그걸 눈치챈 것은 레오나가 내 몸을 와락 끌어 안은 뒤였다.

 

콰과과과광!!

 

이윽고, 내가 있던 땅의 지축이 굉음을 내며 진동했다.

그 뒤로 들려온 것은 십 수 개의 캡슐들이 흰 연기를 내뿜으며 열리는 기괴한 바람 소리였다.

소란스러운 황무지의 소음을 뚫고 익숙해진 목소리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왜 대화를 거부하시는 겁니까? 어린 이단자여.”


 

*


 

마치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려는 듯 놈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철충 무리를 손짓 하나로 멈춰 세웠다.

탑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 AGS들을 피해 빠져나온 철충의 유체들.

타이런트가 전투의 흥분에 빠져 있는 사이, 놈들은 널브러져 있는 철 조각들 사이로 기어 들어가 침식을 시작했다.

덕분에 아직은 얼기설기 어설프게 엮여 있는 유체들.

하지만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질식시켜드리겠단 말이 허세는 아니었음을 아시겠나요?”

 

 

 

인근의 땅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철충들.

제작자라는 이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저 정도라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겠지.

땅 위에 넘실대는 검은 파도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하, 보기 흉한 표정입니다.

전에 제가 보낸 철충과 싸울 때도 그런 표정을 짓곤 하셨죠.

당신들이 성가대라 부르던 그 철충 말입니다.”

 

 

 

놈의 말에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 보았다.

무장한 병력들 사이로 드문 드문 껴있는 스피커들. 다시 보니 무장한 놈들도 거대한 확성기를 양 옆에 끼고 있던 상태였다.

 

성가대. 내 머리 속에 있는 놈을 유일하게 다시 깨웠던 전적이 있는 것들.

그걸 조종하고 있던 놈이 이 괴물이었단 생각에 조금이지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교황 성하께선 당신이 마음에 들었었어요.

아니, 정확히는 당신 머리 속에 있는 그 자가.

교만하고, 게으르며, 본교의 대업을 방해할 능력도 없을뿐더러, 누구보다 지배하는 자로서의 권리로 풍족했던 자.

오직 복종시킴 하나로 충만해 하던 그 인간을 성하께선 제법 좋게 보셨죠.”

 

“몰래 관음 하는 꼴이 상당히 악취미인데.”

 

“어라? 당신께 그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어린 여아들의 팔 다리를 수수깡처럼 부러뜨리고, 산 채로 머리털을 베틀에 집어 넣어 천을 짜던 사람이 악취미라뇨.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은 전도되었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트리라이나를 흘겨 봤다.

앞뒤 맥락 다 자르고 저 지랄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없던 오해도 생길 것 같았으니까.

 

 

 

“저... 저게 무슨 소리야, 사령관? 베틀이라니...?”

 

 

 

나를 보던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제길, 이미 말로 설명하기엔 글렀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레오나가 다시 놈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헛소리 하지 마. 그 인간은 죽은 지 오래야.”

 

“레오나 대장님...?”

 

“뭐라고 대꾸도 안 하는 걸 보면 답답한 건 이 애나, 사령관이나 다 똑같네.

누가 들으면 당신이 그런 짓거리를 한 줄 알겠어?”

 

“그럼...”

 

 

 

레오나가 트리아이나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저 사령관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것만 알고 있어.

뒷 얘기는 나중에 하지. 여기도 말 못할 사정이 있거든.”

 

 

 

레오나를 보며 왼쪽 눈을 찌푸리는 추기경. 아무래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윽고 얼굴을 피며 두 손바닥을 마주쳤다.

짝! 그 소리를 시작으로 추기경의 뒤편의 성가대들이 낮은 소리로 웅웅거렸다.

수상함을 느낀 레오나가 내 귀를 두 손으로 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 파란 머리 아이는 이곳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죠? 고작 그런 감언이설로 넘어가게?

역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직접 보는 게 낫겠군요.”

 

 

 

짝!

박수 소리 한 번에,

 

짝!

수많은 철충들이 하모니를 하듯이 감미롭게 웅얼거린다.

듣기만 해도 사지가 흘러 내리는 듯한 몽환적임. 이것이 성가대들이 따라 하던 별들의 노래였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파동. 적어도 내게 그것만큼 치명적인 일격이 없었다.

 

짝! 짝! 짝!

웅. 웅. 웅. 웅. 웅. 웅.

땅 위로 쏟아져 내린 캡슐들 속에서 추기경과 똑같이 생긴 존재들이 관물대에서 나온 인형들처럼 삐걱거리며 걸어 나왔다.

똑같이 박수를 치는 추기경’들’.

내가 비틀거리자 레오나가 내 어깨를 부축하며 벗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달링! 달링! 정신 차려! 여기서 쓰러지면...”

 

“조금만...”

 

“뭐?”

 

 

 

그 때 나는 속으로 5초를 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초만.

 

마침내 영원 같던 5초가 마침내 끝이 나고, 나는 놈들의 노래 소리를 꿰뚫는 거친 소닉붐에 정신을 차렸다.

내가 다시 앞을 바라 보았을 땐,

콰과과과광!

땅에는 가루가 되어버린 철충들이 있었고, 하늘에는 기다란 비행운이 늘어져 있었다.

 

 

 

“어이, 사령관!!!”

 

 

 

아직도 땅 위에서 울려 퍼지는 충격파.

단순 속도만으로 이 정도 공명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오르카에 단 한 명 밖에 없다.

전투용 고글을 내려 쓴 슬레이프니르.

그녀가 거진 10 m가 넘는 불꽃을 내뿜으며 다시 한 번 철충의 진형을 휩쓸었다.

 

슈슉!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 슬레이프니르는,

 

콰과광!

땅 위를 갈아버리며 철충들 사이를 매섭게 비행했다.

그녀의 날개가 주변 공기를 전방에 집중시켰고, 폭탄과 다를 바 없게 된 공기층이 철충들을 문자 그대로 분쇄시켰다.

그녀의 잔상이 10개를 넘게 되었을 때, 슬레이프니르는 비행을 멈추고 내 옆자리에 안착했다.

 

 

 

“... 전대장은 또 언제 부른 거야, 달링?”

 

“저 놈이 첫 번째 박수를 쳤을 때부터..

여기서 오르카 호까지 거진 90 km는 되니까 40초면 될 거라 생각했지.”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돌려 슬레이프니르를 보았다.

씩씩대며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는 슬레이프니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가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8.4초. 마하 10이 넘는 속도를 30초 동안 유지하며 달려온 것이다.

아무리 오르카의 최속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힘들었을 텐데, 숨을 가쁘게 몰아 쉬는 그녀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울먹이는 그녀를 한 번 쓰다듬어준 다음, 나는 추기경을 향해 다가갔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을 텐데 고작 한 명에게 박살난 것이 충격이었겠지.

하지만 제대로 된 AGS도 아닌 잔해들로 급하게 꾸려진 철충 무리가 슬레이프니르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쪽도 똑같은 방법으로 당할 만큼 바보는 아니라서.”

 

“... 하하. 그랬군요.

이거 참, 제 입장이 난처하게 됐습니다. 전 그저 대화를 하러 온 것일 뿐인데.”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꼴불견인 거 알아?”

 

 

 

쓰러져 있던 놈의 목을 잡고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천천히 무릎을 올리던 놈은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되었을 때쯤, 켁켁거리며 내 손등을 바들거리는 손으로 때렸다.

 

 

 

“한바탕 해보려고 이 많은 물량을 데리고 왔으면서, 이제 와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추해도 너무 추하잖아.”

 

“그, 그렇다고 저를... 죽을 생각이십니까...?

그게 의미가 없단 건... 알고 있을... 텐데?”

 

 

 

놈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라는 듯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말없이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추기경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마치 남일을 보는 듯이 덤덤하게 보고 있는 저것들이 마치 시체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내가 이 놈을 죽인다고 해도 다음 추기경이 말을 이어서 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컥, 컥!”

 

 

 

그럼에도 풀려난 놈은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숨을 갈구했다.

목각 인형들 속에 놓인 피노키오처럼, 추기경의 형상을 한 존재 중에 그 놈만큼은 사람처럼 발버둥을 쳤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았을 텐데.

그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으스러뜨리고 싶은.

 

 

 

“...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빛입니다.

하기사, 창조주의 위에 있는 자가 피조물을 가엾은 눈으로 볼 리 만무하지요.”

 

“쓸데 없이 의미 부여하지 마라.

넌 그럴 만한 개짓거리를 했으니까 이러는 거야.”

 

 

 

목이 아니라면 머리카락은 괜찮겠지.

나는 추기경의 기다란 흑발을 손으로 웅켜 집어 들어올렸다.

눈물이 아직 맺혀있던 추기경은 그걸 닦지도 못하고 맥없이 들려 올려졌다.

 

 

 

“에바는 어디 있지?”

 

“에바... 아, 그 특이한 피조물 말이군요.

피조물이면서 창조주의 궤에 걸쳐있는 자. 기억이 납니다.”

 

 

 

놈은 헤실거리며 이죽거렸다.

 

 

 

“이미 교황께 진상한 지 오래입니다.

저는 그 분의 하인. 성하께서 내린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니 궤념치 마시길.”

 

“... 명령이라?”

 

 

 

쾅!

 

쥐고 있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땅에 처박아넣었다.

몇 가닥 머리칼이 빠지면서 추기경의 얼굴도 그렇게 됐다.

 

 

 

“그럼 이것도 명령이니까 한 번 따라봐.”

 

 

 

나는 진지하게 놈을 향해 명령했다.

어차피 들을 리 없는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놈의 머리를 땅에 연신 쑤셔 넣었다.

으득, 으득, 코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며 본능적인 거부감이 내 근육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놈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재미 있습니다.”

 

 

 

마치 일부로 내 명령에 순응하려는 것처럼.

 

 

 

“자신의 피조물에는 한없이 관대한 자가, 남에게 이리도 폭력적일 줄이야.

그대의 본성도 마냥 선했던 것은 아님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닥쳐.”

 

 

 

나는 명령했고,

 

 

 

“... ...”

 

 

 

놈은 따랐다. 마치, 바이오로이드처럼.

싸이코. 놈에 대한 여왕의 평가는 정확했다.

저건 미친년이다. 놈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내 손은 어느새 거부감이 아닌 모멸감으로 멈춰 서고 있었다.

 

 

 

“... 너 뭐야.”

 

“그것은 제 지위에 대한 질문입니까, 아니면 제 성능에 관한 질문입니까?”

 

“네 그 괴팍한 행동에 대한 질문이다.”

 

 

 

그제야 놈은 알았다는 듯이 피철갑이 된 얼굴을 팔로 닦아내며 말했다.

 

 

 

“제가 당신에 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임무에 방해가 되는 명령도, 목숨에 위험이 되는 명령도 아닌데.”

 

“... ...”

 

“역시, 당신은 어리석습니다.

스스로 창조주의 궤에 있으면서도 그걸 써먹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잖습니까.”

 

 

 

마치 나를 놀리려는 것처럼, 놈은 얼굴의 상처를 회복하려 하지도 않았다.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나 있는 엉망진창인 얼굴로 쓰러져 있는 철충 한 마리를 가리켰다.

 

 

 

“저 멍청한 피조물도 창조주로서의 특권을 써먹고 있지 않습니까?

저 미물이 내뱉는 인간의 뇌파. 

그 때문에 당신이 없으면 이 땅의 피조물들은 제대로 된 항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릴 겁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공격하지 못하니까.”

 

“... 그래서?”

 

 

 

나는 놈의 옷자락이 길게 늘어질 만큼 강하게 멱살을 움켜 쥐며 물었다.

 

 

 

“이제 와서 나보고 뭐, 창조주 노릇이라도 해보라는 건가?”

 

“창조주만의 특권을 누리라는 겁니다. 이단자로서의 오명을 벗어 던지십시오.

이미 한 번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신 성하께서 당신을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체불명의 호의로 가득한 말.

사실상 철충의 편에 서라는 말과 다르지 않는 저 요청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날 죽이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던 놈들이 호의를 베푼다는 건 분명 뒤가 구린 뭔가가 있다는 거니까.

 

 

 

“교황이 또 시간 벌이나 하라고 한 모양이지?”

 

“예?”

 

 

 

덕분에 잡념이 사라졌다.

쾅! 나는 다시 한 번 놈의 머리를 균열이 난 땅 위에 집어 던졌다.

 

콰득!

그리곤 목을 잡아 으스러뜨릴 기세로 움켜 쥐었다.

이번에는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던 추기경의 분신들도 초점 없는 눈으로 움찔거렸다.

 

 

 

“아... 아... 아... ...”

 

“이제 네 놈들은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린다.

그 따위 특권, 줘도 안 누릴 거니까 집어치워라.”

 

 

 

으드득!

뼈가 부러지는 감각이 손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죽었다. 만지고 있는 놈의 피부가 시시각각 차가워진다.

싸이코를 상대하려면 미친놈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했어야만 했다.

 

터벅. 터벅.

내가 죽은 추기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또 다른 추기경이 내게로 다가왔다.

 

 

 

“특권을, 줘도 누리지 않겠다 하셨습니까?

하지만 이미 충분히 누리고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안 죽었다는 것처럼 당연하게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 나는 치가 떨렸다.

다만,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에는 나는 치가 떨리는 것 이상으로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 사랑놀음.

그것이야말로 특권이 아니고서야 무엇이란 말입니까?”

 

 

*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놈이 우리의 사생활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멈춰 있던 추기경의 분신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칼, 검, 망치, 도끼,

손날이 하나의 무구로 변하는 시간은 그래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탕!

레오나가 다가오지 말라며 위협 사격을 달렸지만, 추기경의 반응 속도가 한층 더 빨랐다.

얇은 도신이 원을 그리자 레오나의 총알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당신이 했던 행적들. 잘 알고 있습니다.

사향 님도, 데우스도, 사랑 하나에 목숨 바친 당신을 넘지 못했지요.

그 때문에 당신이란 존재에 호기심이 생긴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 너희는 호기심이 생기면 일단 해부부터 하고 보는 모양이지?”

 

 

 

나는 다가오는 놈들 중, 특히 얇은, 메스 같은 칼을 가진 추기경을 보며 조소를 날렸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대화를 하러 왔을 뿐이니까요.”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래?”

 

 

 

내 말에 추기경은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칫하면 빨려들어갈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

칼을 들이밀고 있다는 걸 잠시 잊을 만큼 자애로운 음성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목소리가 역겨운 괴물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모든 바이오로이드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그럴 권리는 없으니까.

설령 미워한다 한들 그걸 티 낼 수 없죠. 그것이 피조물입니다.”

 

“...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추기경이 섬섬옥수 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옥죄어 오는 듯이 불쾌한 손짓에 나는 얼굴로 혐오스러움을 표현했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고개를 자신의 너머로 향하게 했다.

 

다시 한 번 검은 파도로 일렁이는 철충들.

저 정도 물량이 들이 닥치면 지원을 받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걸레짝이 될 게 뻔했다.

 

추기경은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조용히 웃었다.

그 미소의 의미가 조소하려 했던 것이었음을 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랑하지 않을 권리도 없는 사랑이, 어찌 사랑입니까?

그것은 복종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피조물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 ...”

 

“지금 당장 오르카로 돌아가, 이전 사령관이 했던 것처럼 해보시지요.

과연 몇이나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비밀의 방을 만든다고 하여 어떤 용감한 자가 반기를 들 수 있겠냔 말입니다.

분명 반군도 다시 한 번 생기겠지요. 허나 그들도 결국 똑같은 결론에 다다를 겁니다.

철충과의 싸움에서 저 인간은 꼭 필요한 존재다. 다시 말해, 죽일 수 없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건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 진정 사랑인지, 아니면 그저 복종의 일면이었을 뿐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요.”

 

“... 쓸데 없는 소리를.

나는 이미 저 아이들을 인간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설령 아니더라도 상관 없...”

 

“저들에게도 그럴까요?”

 

 

 

추기경이 내 말을 끊으며 물었다.

 

 

 

“당신이 저들과 같은 선상에 서고 싶다 한 것처럼, 저들도 골방에서 그러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걸어 내려오려 할 때, 피조물도 창조주에게 가까이 가려 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그 발걸음의 무게는 너무도 다릅니다. 피조물들이 만 번 발자국을 찍는다 한들, 창조주의 한 번만도 못하지요.

저들은 여전히 당신에게 복종하고, 순종하기를 기뻐하죠.”

 

 

 

내 턱을 스산하게 스쳐 지나가는 추기경의 손은 검이 베며 가는 것처럼 날카롭고 소름 끼쳤다.

 

추기경의 눈이 레오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그녀에게 말하는 것처럼 추기경은 입을 열었다.

 

 

 

“부인의 부모 없는 상견례는 잘 즐기셨습니까?”

 

“... 이 개자식이...”

 

 

 

추기경의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레오나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지금 저것이 자신을 능욕하고 있음은 누가 보아도 분명했으니까. 

 

그 순간, 추기경 중 몇이 자신의 무기를 목에 가져다 대 스스로 목을 베었다.

스겅! 잘린 단면에서 피가 솟구쳐 무섭게 치솟았다.

족히 5 m는 올라갔을 피분수 사이에서, 나를 매만지고 있던 추기경이 마저 입을 열었다.

 

 

 

“아아, 골방에 갇혀 사랑을 꿈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마음 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망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함과 열등감이 되어버리지요.

그리고 때로는, 죽음마저 불러오기도 합니다. 당신의 경우라면, 상사병이라 해야 할까요?”

 

“... ...”

 

“골방 속에 갇힌 삶... 아무리 활달하게 꿈꾸어도 그 골방은 삶을 푹푹 썩게 만드는 무덤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놈은 오르카 호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골방이라 단어를 강조했다.

마치 저기서 죽어간 아이들을 능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아이들이 발버둥 쳤던 노력들을,

 

 

 

“상상은 자유지만,

자유는 상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짓밟기라도 하는 것처럼.

 

스슥!

검날로 변한 놈의 손이 나보다 먼저 놈의 머리를 베었다.

죽어가는 추기경의 표정은, 마치 다 이룬 듯한 황홀감에 빠져 미소 짓고 있었다.

 

 

 

“이... 근방의 항공 시설은...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

탑을 부쉈을 때... 이미 당신은 저 위까지... 갈 방법을 잃은 거에요...”

 

 

 

구멍 뚫린 성대에서 연신 바람이 새어 나갔다.

말 사이사이마다 거슬리는 숨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추기경은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어디 올라와 보시죠...

고작 인간이란 피조물이... 신에게 닿는 건 불가능할 테니... ...”

 

 

 

툭.

그 말을 끝으로 추기경은 차가운 시체로 변모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목 잃은 사체들.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닮아 있던 놈들은 마치 스스로 피조물이란 사실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소름 끼치게 똑같았다.

 

주변을 감싸고 있던 철충들도 어느새 물러났다.

선명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탑 위로 고개를 돌렸다.

벽마다 빼곡히 붙어 있는 AGS들. 부피가 배로 커진 놈들이 갈 수록 좁아지는 벽에 붙어 있으니 탑은 AGS로 뒤덮여 있었다.

그럼에도 일말의 미동조차 하지 탑. 추기경의 말대로 입구만 끊겼을 뿐, 쉽사리 무너질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 저것들을 내버려둔 이유가 그거였나?”

 

 

 

식사가 계속될 수록 과부하 되는 AGS들의 코어들은 지금쯤이면 피아 식별조차 제대로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저기 있는 것은 적의 적일 뿐, 결코 아군이 아니다.

저 놈들이 빽빽이 박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는 짓이다.

 

어쨌든, 방법을 간구하긴 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등을 돌렸을 때, 내 패널로 전화가 울렸다.

 

 

 

“주인님!”

 

 

 

알파였다.

그러나, 임무를 실패했던 것치곤 너무 밝은 목소리였다.

 

그녀의 보고를 들으며 몇 발자국을 내디뎠을 때, 나는 깨달았다.

 

 

 

“메시지가 왔습니다! 엡실론에게서요!”

 

 

 

저 위로 올라갈 방법이 다시 생겼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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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기준, 800은 넘었던 조회수는 400도 못 찍고, 90~100은 되던 추천수가 50대. 

댓글은 40개는 됐었는데 10개로 뚝. 그것도 매 화마다.

이 정도 주기적인고 갑작스러운 떡락은 처음이라... 글 쓰러 올 때마다 이전화 반응 보는게 무섭네요.

처음에는 추천 받는 게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젠 재미있는 글을 쓸 자신감이 없어요.


그래도. 완결하고 싶단 욕심은 있어서 1년 8개월짜리 글덩어리에 계속 살을 붙이고 있습니다.

가끔씩 옛날에 달렸던 댓글 보면서 위안 삼고 있습니다.

참 사랑 많이 받았었는데, 욕심만 큰 작가라 이렇게 된 모양이네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