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권속이여, 봉생마중 불부자직(蓬生麻中 不扶自直)이 무슨 뜻이냐?”

 

리마토르가 쓴 어린이용 사자소학 해설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은 LRL은 그에게 직접 물어보러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LRL은 리마토르의 입에 물린 하얀 막대를 보았다.

 

“어서와요, 사자소학 보고 있었어요?”

 

마냥 쉽지는 않을 텐데 열심히 책을 읽는 LRL의 모습이 기특한 리마토르는 반색하면서 LRL을 맞았다. 하지만 LRL의 시선은 그의 입에 향해있었다.

 

“권속도 담배를 피웠느냐?”

 

“아, 저는 비흡연자에요.”

 

“그럼 그건 뭐냐?”

 

리마토르는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올렸다. 오르카호 내부에 마련된 흡연실에서 워울프를 포함한 몇몇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LRL은 그가 왜 비흡연자이면서 담배에 불도 안 붙이고 입에 물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리마토르는 멋쩍게 웃으면서 알려주었다.

 

“워울프 씨가 저보고 담배 피면 느낌 있을 거 같다고 한 개비를 물려줬어요. 불은 안 붙이겠다고 하니까 그냥 물고만 있어도 괜찮아 보인다고 했는데, 제 모습을 본 칸이 색다르다고 말해줘서 계속 이러고 있어요.”

 

“칭찬 한 마디에 넘어갔느냐? 이런 이런...”

 

“크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답니다.”

 

LRL은 리마토르를 보면서 쿡쿡 웃었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정신적인 성장이 있었음을 감안해도, 어린 아이인 그녀의 눈도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그와 칸 사이에는 진한 사랑의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둘이 정식으로 사귀는 관계라는 사실은 훌륭한 소재가 되었기에 오르카호 내부 게시판은 둘의 관계를 드라마 보듯이 흥미진진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말석이라 해도 탈론 허브 주간 인기 동영상 목록에 둘의 일상을 도촬한 영상이 올라갈 정도였으니 그 파급력은 상당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리마토르의 얼굴도 칸을 언급하자 살짝 볼이 빨개지는 걸 본 LRL은 짓궂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리마토르 역시 LRL이 자신을 보며 창고털이 계획을 세울 때의 악동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급히 화제를 돌렸다.

 

“맞아요, 사자소학을 물어보러 왔죠?”

 

“아! 그렇도다. 봉생마중 불부자직이 무엇이냐?”

 

“한자부터 한 글자씩 살펴보죠. 쑥 봉(蓬), 날 생(生), 삼 마(麻), 가운데 중(中), 아니 불(不), 도울 부(扶), 스스로 자(自), 곧을 직(直)이에요.

 

앞의 네 글자부터 맞춰볼까요? 삼 가운데서 자라는 쑥이라는 뜻이에요. 뒤의 네 글자도 조합해보면 돕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자란다는 뜻이죠.

 

합치면 삼 가운데서 자라는 쑥은 도움 없이도 스스로 곧게 자라난다는 말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환경 안에 있으면 타인의 도움 없이도 주변을 보고 바르게 자란다는 의미에요.”

 

“그렇구나! 근묵자흑(近墨者黑)과 같은 뜻이었군!”

 

“근묵자흑이 부정적인 의미라면 봉생마중 불부자직은 긍정적인 의미라는 차이가 있어요. 핵심은 같아도 구성에 차이가 있답니다.”

 

“알겠다. 알려줘서 고맙다 나의 권속이여!”

 

활짝 웃는 LRL의 미소에 심신이 안온해지는 걸 느낀 리마토르는 카페 아모르에 예약한 쿠키를 떠올렸다. 마침 쿠키가 나올 시간이었기에 그는 자신을 찾아온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에게도 달콤한 맛을 보여줄 생각으로 LRL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프린세스님, 이 권속이 카페에 쿠키를 예약해뒀어요. 금방 찾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죠?”

 

“쿠키? 당연히 기다릴 수 있노라!”

 

눈을 빛내며 좋아하는 LRL의 모습에 리마토르는 흐뭇함을 느끼며 카페 아모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나간 사이 그의 의자에 앉아 책상을 보던 LRL은 그가 담배를 내려놓은 재떨이에 눈을 주었다.

 

“권속이 담배를 물고 있으면 멋있어 보인다고 그랬지? 그럼 이 진조의 프린세스가 물고 있으면 위엄이 넘칠 거야!”

 

리마토르가 입에 물고 있어서 필터가 눅눅했지만, LRL은 담배를 물고 폼을 잡았다. 벽에 걸린 거울을 보려고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던 LRL은 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오, 나쁘지 않구나! 역시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뭘 해도 어울리는 것이니라!”

 

“리마토르, 뭐하고 있어?”

 

LRL이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는 사이, 출격을 나갔다가 돌아온 칸이 그의 방을 찾았다. 방문을 열고 그가 앉아있을 의자로 시선을 향한 칸은 그의 의자에 서 있는 LRL을 보다가 그녀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를 보았다.

 

“어?”

 

“앗!”

 

0.5초의 정적이 흐른 뒤, LRL이 인지하기도 전에 칸은 순식간에 달려와 담배를 LRL의 입에서 빼앗았다. 불은 안 붙인 걸 보고 한시름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절대 아이의 입에 물려있어서는 안될 물건이었기에 칸은 LRL을 따끔하게 혼냈다.

 

“LRL! 담배에 손을 대서는 안 돼!”

 

“히잉... 하지만 권속이 담배를 물고 있으면 멋있어 보인다고 해서...”

 

“뭐?!”

 

“LRL, 쿠키 배달 왔어요. 아, 칸도 왔네요?”

 

하필이면 좋지 않은 상황에 들어온 리마토르는 쿠키와 버터밀크 병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갓 만들었으니 맛보라고 권유하려는 찰나, 칸은 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그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리마토르, 이 화상아! 애한테 담배를 권유해?!”

 


철썩 소리가 리마토르의 등에서 울리는 걸 시작으로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칸에게 대판 혼났다. 다행히 LRL이 상세히 설명하고 리마토르도 최선을 다해 항변한 끝에 진상이 밝혀졌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칸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급히 그 자리를 떴다.

 

이 일은 탈론 허브에 [애 아빠_혼내는_아내.avi]로 올라와 실시간 조회수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칸은 그날 밤 리마토르를 찾아와 등에 남은 새빨간 손자국을 연신 사과해서 용서를 받았다. 영상을 본 사령관은 아이들 앞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담배 피는 모습을 엄격히 금지하라는 지시와 동시에 워울프를 불러서 문책했다.


-----------------------------------------------------------------------------------------------------------------------------------------------------------------

에피소드가 끝났다고 한 편만 올려두기는 미안해서 뇌물로 일상 단편 한 편 두고 갈게. 이우혁 작가의 소설 <퇴마록>을 보면 세계편부터 주인공들을 지원하는 백호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캐릭터의 트레이드 마크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빙빙 돌리는 거라서 한 번 써봤어. LRL이 어린 아이의 몸이라고 해도 오리진 더스트의 영향이 있으니 더치걸처럼 담배를 피워도 아주 해롭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애한테 담배를 물리는 건 도의적으로 아닌 것 같아서 교훈적인(?) 결말로 마무리 했어.


모자란 글이지만 읽어줘서 고맙다. 좋은 일만 가득한 하루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