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데이 R 9화 :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그렇다면 지금부터 저그 무리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캐시가 강단에 서서 입을 열었다. 알파가 파일을 하나씩 열자 화면에 여러 연구 자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꽤 방대한 양이었기에 많은 지휘관들은 이 관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자리에 앉아있는 닥터가 그랬다. 철충과는 또 다른 외계 생명체라는 사실은 닥터의 탐구심을 크게 자극한 것이 분명했다.


"저그에 대해서 테란들이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입니다. 당시 차우 사라라는 식민지 구역에서 처음 등장했던 이 종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 사라, 안티가 프라임등의 식민지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끝내 테란 연합을 끝장내는데에 일조하게 되었습니다. 썩어빠졌었지만 강대했던 테란 연합을 붕괴시킨 이 괴물들은 코프룰루 모든 테란 세력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이 시기부터 테란 세력에서 저그에 대한 연구가 엄청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캐시가 막힘없이 설명을 시작했고 지휘관들과 사령관은 경청하고 있었다. 이전에 주호의 말에 따르면 테란 연합은 조합전쟁이라는 전쟁을 통해 코프룰루 구역의 패권을 장악했던 그 구역의 초강대국이었다. 그런 나라를 멸망시킨 저그. 그런 저그를 상대해야 하는 오르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캐시가 전하는 정보를 귀담아들어야 했다.


"저그 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한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군체의식' 이라는 것입니다. 저그는 군체의식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집단 지성으로 이어진 사회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리어미나 여왕들보다 하위의 개체들에게는 각각의 자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집단 지성의 정점에 있는 상위 개체들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리어미들은 지휘관이니 만큼 전장 곳곳에 자신들의 주둔지인 군락지를 세우게 됩니다. 그 군락지에서 저그의 병력들이 쏟아져 나오는 구조로 이루어져있죠. 그 군락지의 구석구석까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 또 여왕과 대군주라는 개체를 사용합니다."



캐시가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길게 말하다보니 숨이 찼던 모양이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저그라는 종족을 사람에 비유하면 무리어미는 두뇌에 속하고 저그 각 개체들은 우리 몸의 세포나 장기에 속하는 녀석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무리어미들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여왕과 대군주와 같은 개체들은 신경게에 비유가 가능할겁니다. 이들은 어느정도의 의지는 가지고 있지만 결국 무리어미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어있습니다. 상위하달은 있어도 하위상달은 절대 없는게 저그라는 종족의 특징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상위개체를 제거하는데에 성공한다면 이야기가 쉬워지겠군."


무적의 용이 말했다.


"정확합니다. 이 저그 무리의 통제권을 쥐고있는 무리어미를 어떻게 할 수만 있다면 저그는 지휘체계가 그대로 붕괴되게 됩니다. 물론 몇몇 여왕이나 대군주가 무리를 어느정도 통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최고 지휘관이 없기에 이전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수는 없는 오합지졸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과거 지구에서 온 UED 원정대가 당시 저그의 최고 지휘관 개체였던 신생 초월체를 포획해 그 휘하의 저그를 UED의 군대로써 부린 일이 있었습니다. 군체의식이 저그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무시무시한 집단지성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가장 취약한 약점이기도 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잠시만... 그렇다면 이 저그의 무리어미라는 개체를 장악하게 된다면 이 저그들을 우리의 사냥개로 쓸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메이가 말했다.


"이론적으론 가능합니다. 실제로 몇번 예시가 있었으니까요. 다만 무리어미를 잡는건 쉽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하긴.... 그렇게 중요한 개체라면 분명 무리에서도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을것이오. 소관이라도 그렇게 할테니."


"맞는 말이야. 안그래도 무시무시하게 세력을 확장중인데 상위개체 하나 잡는다고 무리하게 전면전을 할 여력은 없지. 다만 기회가 생긴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어."


레오나와 무적의 용이 한마디씩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작전을 짜야하는겁니까 박사님?"


마리가 물었다.


"테란 자치령은 지난 7년간 저그와 싸워오면서 대 저그전 메뉴얼을 어느정도 짜놓은 상태입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메뉴얼에서 강조하는건 하나, 저그의 군락지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기동부대를 편성할 것, 둘, 다수의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저그이니만큼 언제나 고화력으로 상대할 것. 셋째는 저그와 싸울땐 발밑도 항상 조심할 것 등이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저그는 확장을 하면서 점막이라고 하는 액체 유기물을 펼칩니다. 이 물질은 점막 종양이라고 하는 작은 생명체나 부화장이라고 하는 거대한 구조물에서부터 생성되는데 저그에게 필요한 양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점막 위에 있는 저그는 먹이를 섭취하지 않아도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에 작전 반경이 그만큼 넓어지게 되는거죠.


때문에 테란 군대에서는 이 점막을 제거하기 위한 기동부대를 상시 편성해둡니다. 자치령의 감염 전문 처리반 프로메테우스 중대처럼요. 보통 이런 부대는 재빠른 기동성을 가진 부대면서 유기물질인 점막을 태우기 위한 화염 방사기가 달린 장비를 주로 쓰는게 특징입니다."


"이그니스같은 대원들이 힘을 써줘야 하는건가?"


사령관이 물었다.


"이그니스보단... 기동성 좋은 지상부대가 돌아다니며 점막을 제거하는게 더 효과적입니다."


주호가 말했다.


"점막 제거하다가 저그한테 꼬리 잡히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 호드가 가장 적합하겠군. 맡겨만 주게나."


"아예 기동 공격기 대원들이 제거하는건 어때?"


"점막이 있는 지상으로 강하 하는 과정에서 저그에게 입는 피해가 엄청나게 커질겁니다. 호드에 인계할 사이클론의 작업은 거의 완료됬고 점막 제거를 도울 화염차 역시 이미 설계도 전달이 끝났습니다. 이정도면 꽤 할만해질겁니다."


"마침 둥지탑도 없는걸 정찰 지도로 확인했습니다. 당분간은 대군주를 빼면 저그의 공중 개체들도 나오지 않을테니 호드가 안정적으로 작전 수행이 가능할거에요. 둥지탑이 준비되기 전까지 이 시간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캐시가 말했다.


"좋아...."


사령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기동전으로 게릴라를 하며 점막만 줄일 뿐 정면승부는 하면 안된다는것도 분명해. 그리고 아직 철충도 있으니.... 지금은 나름 전선이 형성된 모양이긴 한데...."


사령관이 전술지도를 보며 말했다.


"철충이 너무 속절없이 밀리는 것 같군.... 이대로 철충이 무너진다면 그 다음엔 펙스랑 우리를 노릴텐데.... 당장은 공중 개체가 없다지만 언젠가는 쳐들어오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전면전도 가능할 정도로 준비가 될때까지는 철충이 버텨주는게 우리쪽에 이롭겠는걸."


"그러려면 저그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남유럽 방향의 반대 방향, 즉 북유럽 쪽에서 게릴라전을 펼쳐서 저그가 병력을 분산하게 만드는게 좋겠군. 마침 군락지들이 북유럽 부근에 몇군데 있어. 이 군락지가 사라지는건 저녀석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닐테니까."


"그러려면 우리는 거점 한곳을 확보해야만 하오."


무적의 용이 작전 지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영국. 대륙과 가까우면서 섬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게릴라를 펼치기 위해선 반드시 이 섬을 장악할 필요가 있소."


"근데 이 섬에도 저그가 있나본데? 캐시씨. 정말 공중 개체가 없는게 확실해?"


레오나가 말했다.


"대군주는 지휘개체면서도 수송기의 역할도 하니까요. 아마 대군주가 나른 소수의 무리일겁니다."


"그런 전술도 쓰는 녀석들이라면 해안가에 벙커와 미사일 포탑을 많이 깔아둬야겠군요."


함대와 공군병력도 배치가 필요해보이오. 함대와 함께 바이킹과 스카이 나이츠가 경계를 서야겠군."


불굴의 마리와 무적의 용이 한마디씩 말했다.


"그렇다면 역시 영국을 점령하는 걸로 작전을 시작해야 하는건가...."


사령관이 말했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 영국 탈환 준비를 시작한다. 각 부대는 오늘부터 영국 탈환 작전에 대비한 준비를 해주고 지휘관들은 작전을 구상해 제출하도록. 주호씨는 신병기 생산에 속도 높여주고. 캐시씨는 저그 동태를 계속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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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의 완성단계입니다. 1차 테스트도 완료했고 조만간 실전 테스트를 해보려고요."


사이클론 생산 구역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주호와 신속의 칸이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빠르군." 


칸이 말했다.


"명성이 과장은 아니었나 보군."


"그 말 조금은 섭섭한데요. 무기 공학에서 일한 짬이 몇년인데요."


주호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공장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벽 너머에서 사이클론이 최종 작업을 마치고 있었다. 이미 오르카 저항군의 문양까지 새겨진 사이클론은 매우 위풍당당해 보였다. 


물론 칸은 지금도 이 육중한 차량이 제대로 된 기동전을 펼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하고 있었다. 주호가 걱정 말라고는 말했지만 생긴게 저렇게 생겼으니.... 겉보기로 평가하는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칸 역시도 잘 알지만 선입견이라는 건 그래서 무서운 것이었다.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그 선입견으로 무엇인가를 평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주호가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시라니까요. 이래뵈도 자치령 최고의 기동차량중 하나에요. 시체매와 코브라, 화염차.... 자치령이 기동전을 얼마나 중시하는데 설마 빌빌대는 덩치를 만들었을까봐요."


"자꾸 그런 눈으로 보게 되는군. 선입견이라는게 참 무섭지. 미안하네."


"뭐 미안하실건 없어요. 직접 보시면 그 생각이 싹 사라질테니까."



주호는 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호드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테란 자치령도 저그와의 전쟁마다 화염차와 사이클론, 사신으로 이루어진 기동대의 활용을 중요시하거든요. 무조건 이득보는 싸움을 하시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호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저그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군락지 확장을 방해하는 거니까 저그 무리와의 전투는 필요할때만 하시고 피할땐 피하시라는거에요."


"이미 회의때도 사령관에게도 몇번이나 들은 이야기네. 우리도 명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해."


"아니... 칸 대장님은 걱정 안되요... 다른 호드 대원들이 너무 막나갈까봐 걱정되는거지..."


"그것도 걱정할 것 없네. 할땐 하는 애들이니까."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닙니다... 뭐 아니라니까 아니겠지...."


"참 세상 일이라는게 알 수가 없군. 철충과 싸우다 죽을 운명일줄 알았는데 사령관을 만나더니 이제는 더 무시무시한 괴물 벌레들과 싸우게 되었다니 말이야. 요새 운명이라는게 참 변덕스러운 것 같아."


주호는 그 말을 듣고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죄송합니다... 저때문에 저그까지 딸려오는 바람에......"


물론 의도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좌표를 지구로 정한것도 아니었고 기계의 폭주로 이곳으로 날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주호와 캐시의 차원이동은 저그를 불러들이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주호는 너무나도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자네가 미안할건 없네. 자네 잘못이 아니니까."


칸은 주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주호는 시설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이클론 생산 구역 옆구역에서 번쩍거리는 최신형 밤까마귀가 조립되고 있었다. 제조실 안쪽엔 포츈과 아자즈가 있었는데 포츈의 얼굴이 꽤나 심각해보였다. 이윽고 아자즈가 패널을 조작하자 제조 공정이 잠시 중단되었고 두사람은 밤까마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간 포츈은 슬롯을 열고 열심히 안쪽을 살폈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다시 슬롯을 원위치 시켰다. 


뭔가 제조공정에서 문제가 생겼나? 그렇게 생각한 주호는 제조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기 다들 무슨일이야? 포츈씨? 왜그러세요?"


"아, 팀장님. 마침 잘 왔어. 이것좀 봐봐."


포츈이 주호에게 패널을 내밀었다. 패널을 확인하자 경보 표시가 보였다. 밤까마귀의 감지기가 무엇인가를 감지했다는 의미였다.


"시설 내부엔 우리밖에 없는데 자꾸 뭐가 있다고 뜨거든... 감지기가 계속 오작동을 하는 것 같아... 어기서 생긴 문제인지...."


"혹시 팬텀이나 레이스가 있는거 아닌가요?"


"아니거든. 그 둘은 지금 각자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게 있어서 여기에 올 리가 없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뜯어볼까요?"


아자즈가 물었다.


"뜯지 말아봐.... 뭐... 일단 그럼 감지기는 제가 한번 살펴볼게요..... 어라...? 감지기에 경보 표시가 사라졌는데요?"


주호가 그렇게 말하자 두 사람이 패널을 살폈다. 빨간불이 들어와있었던 부분은 다시 녹색불로 바뀌어있었다.


"갑자기 고쳐쳤나....?"


"밤까마귀가 무슨 TV도 아니고.... 역시 뭔가 이상하거든...."


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감지기가 오작동을 했는데 실전에서도 이러면 곤란하지. 아무래도 한번 정비를 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주호는 전동 스패너를 꺼내 감지기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나사를 하나씩 빼내며 감지기를 분리하던 그때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그 느낌에 놀란 주호는 뒤를 돌아봤고 주변을 살폈으나 그 어떤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왜그래...?"


포츈이 걱정스럽다는듯 물었다.


"아뇨......"


주호가 뭔가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시설을 둘러보며 말했다.


"기분탓이겠죠 뭐." 


애써 이질적인 느낌을 떨쳐내버린 주호는 다시 전동 스패너를 작동시켰다. 마침내 감지기가 분리되었고 세 사람은 감지기를 들고 제조실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조실 안쪽에서 형체 하나가 일렁였고 그 일렁이는 형체는 앞서 세사람이 빠져나간 제조실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제조실 밖으로 나온 투명한 형체는 세 사람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섰다. 이윽고 군수 공장을 빠져나온 형체는 방주의 다른 시설을 향해 유유히 사라졌다. 마치 유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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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황지도>


빨강 : 철충 

노랑 : 펙스 

보라 : 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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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에피소드>

https://arca.live/b/lastorigin/54130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