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바다란 풍랑이 심해 높은 파도가 일렁인다. 그 덕분에 가까이에서 좋아하는 바다를 볼 수 없었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바다 역시 좋아했기에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나와서 바닷가를 하릴없이 바라보고는 했다.


"소첩은 본래 비 오는 날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부정의 대답에도 딱히 아쉽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모든 감각이 예민한 금란에게 비 오는 날이란 괴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오나, 소첩.. 이제 비가 내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거리로는 반 걸음, 살며시 떨어져 우산을 들어주던 금란이 그렇게 대답하며 몸을 밀착 시켰다. 어깨 너머로 느껴지는 따스한 그녀의 온기. 사박사박 내리는 빗소리와 선선하게 부는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며 잔잔한 분위기를 연출해주었다.


딱히 금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도, 딱히 행동으로 보이지 않아도. 금란은 충분히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 내어 웃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다소곳한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주인님의 곁에 있으면.. 소첩도 비 오는 날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다행이다. 꼭 너랑 지금 이 순간을 감상하고 싶었어."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금란을 떠올린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역시 금란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이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좋은 것은 나누고 싶고, 괴로운 일은 덜어주고 싶다. 살며시 팔에 감겨오는 금란의 팔을 느끼면서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예전에는 이렇게 그녀를 안아줄 때면 그녀는 흠칫 하며 놀라기 일수였지만, 이제 와서는 자연스럽게 품에 안겨 들었다. 그만큼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가 편안하고 머리를 기댈 장소가 되었다는 충족감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신기해요.. 주인님의 품에선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어요."


귓가를 때리는 강렬한 빗소리도 금란의 작은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란 그토록 좋아하던 빗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음에 틀림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나면서부터 원치 않았을 예민한 감각. 그 감각을 얻은 대가로 아름다운 것들을 시각이 예민해 볼 수 없었고, 아름다운 선율을 청각이 예민해 즐길 수 없었던 금란이기에. 더욱 안쓰러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맴돌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가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하찮은 내 품으로, 네 괴로움이 줄어들 수 있다면.. 언제든 나에게 기대."

"주인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던, 소첩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안식처랍니다."


살며시 눈꺼풀이 들리며 호박색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것에 홀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 금란의 연홍 빛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공개된 장소에서의 입맞춤은 역시 창피한 모양인지 그녀는 잠시 몸을 꿈틀거렸으나, 그런 그녀의 수줍음을 감추어주듯 지평선 너머의 무지개가 남녀의 짧은 애정 표현을 가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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