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는 들어올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단호한 대답을 하는 페로. 보편적인 고양이라면 물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으나, 페로는 그것이 불만인 듯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계속했다.


"당연히 물에도 들어갈 수 있죠."

"아.. 그래."


혹 페로의 기분이라도 상할까 싶어 수긍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머리에서 살랑살랑 움직이는 고양이 귀로 시선이 옮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락없는 고양이의 귀와 슬그머니 엉덩이 뒤로 보이는 꼬리는 아무리 봐도 고양이 그 자체였으니까.


"뭔가요?"

"응?"

"전 고양이 유전자가 섞였지만, 엄연히 완전한 고양이는 아니라구요!"


이 도도한 척 하지만 도도하지 못한 고양이는 끝내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물론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되는 마음에 물에 들어갈 수 있겠냐고 물었을 뿐. 그러나 페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팽 돌리는 페로의 모습에 결국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머리를 굴렸다. 그녀는 의외로 한번 삐지면 꽤 달래는 것이 힘들었기에 더욱 신중한 결단이 촉구 되었다.


"미안, 미안."

"냐앙~ 헛!"


살며시 페로의 등을 쓰다듬자 흘러나온 고양이 울음소리. 그리고 그것을 자각한 것인지 고양이 소리를 낸 당사자는 자신의 입을 양 손으로 틀어 막는다. 방금 전 분명 '전 고양이가 아니에요.' 라고 했음에도, 결국 정체성을 완벽히 부정하진 못한 그녀를 보며 결국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핫! 하하하하!"

"으으... 이건, 유전자 때문에... 어쩔 수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고양이는 좋아했지만, 역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이상 놀리는 것은 자중해야겠지. 모처럼 시간을 맞춰 단 둘이 해변으로 데이트를 나온 만큼, 함께 즐기고 싶은 것들은 많았으니까.


"자, 바다에 들어가 볼까?"

"네? 바, 바다요?"


해수욕장에 왔으면 당연히 바다 입수는 당연한 절차이리라. 그러나 페로는 크게 당황한 듯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으.. 물을 묻히지 않고 해수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고양이가 아니에요.' '당연히 물에도 들어갈 수 있죠.' 똑똑히 들었던 페로가 했던 말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까지 고양이가 아니라고 어필했던 주제에, 역시 그녀는 본능을 숨길 수 없는 귀여운 고양이였다.


"그럼 나한테 안겨. 그러면 괜찮지?"

"앗.. 네.."


못이기는 척 품에 안기는 페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고로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깊지 않은 구역으로 입수했지만 페로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더욱 강하게 밀착감이 느껴졌다.


"왜 그런 표정이시죠?"

"아, 그렇게 밀착하면 안보여서 말이야."

"안 보이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을 즐기는 대신 잃어버린 것이라면 단 한 가지. 그녀의 수영복 가슴에 뚫려있는 고양이 모양의 귀여운 구멍을 통해 보이는 살갗 뿐이지. 이렇게 끌어안고 있으려니 행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영 아쉬웠다.


"가슴 말이야. 그 앞 트임으로 보이는 가슴이 보이지 않으니 아쉽잖아."

"....변태."

"더 가슴을 비비면서 말해도 설득력은 없는데."


페로는 더 이상 붉어질 수가 없을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로 짧게 중얼거렸지만, 이렇게 안기면서 말해봤자 설득력은 전혀 없었다. 보아하니 수영을 잘 못하는 것 같으니 그녀를 어루만져 주려면 지금이 기회이리라.


"으읏.. 주, 주인님..."

"응?"


끈질긴 애무에 결국 뜨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애처로운 저항을 포기한 페로는, 체념한 것인지 해변 구석에 있는 간이 탈의실을 살며시 손 끝으로 가리켰다.


"여긴.. 개방된 장소에요.. 적어도 때와 장소는 가려주세요.. 예를 들어.."


결국 때와 장소만 가린다면, 어떻게 하든 다 용서하겠다는 듯 말하는 페로였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오드아이가 욕망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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