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사령부에서 회의를 거친 후, 오르카 호는 가장 먼저 감마를 치기로 결정하였다. 감마 본인의 전투광적 기질 때문에 용과 맞붙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면서 동시에 미하일을 막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현재 감마는 지브롤터 해협에 있는 포세이돈 인더스트리의 감시 기지들 중 하나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미하일과의 연락 이후 곧바로 이동한 것이었다.


"감마가 지브롤터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잠입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 녀석의 특성상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거야. 분명히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바다를 순찰하거나 여타 항구 도시로 가서 병력을 재정비하겠지."


"그리고 부사령관 각하와의 접선 이후 곧바로 이동했으니 다소 경계가 산만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완전히 경계 태세를 복구하기 전에 우리 쪽에서 지중해를 접수해야 할 겁니다."


"주인님, 그리고 현재 구 프랑스 파리 지역에 델타 또한 도착했다는 소식도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빠르게 정비를 끝내고 바로 출격을 준비하는 게 좋겠네. 감마와 맞서기 위해서는 해군 병력이 필요할 테니, 호라이즌과 머메이드 팀에게 출격을 명령할게. 공중에서 요격할 가능성도 높으니 둠 브링어와 스카이 나이츠도 필요할 거야."


"알겠습니다." 사령관의 말에 지휘관들이 모두 동의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부사령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부사령관은 회의를 하다 말고 어딜 간 거지?" 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하일이 회의실 내부로 들어왔다.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중간에 나갔다 와서 죄송합니다. 근데 방금 새로운 첩보를 하나 들었거든요. 제타도 지브롤터로 간답니다."


이는 오르카 호에게 있어 의외의 부수입이었다. 중립적인 레모네이드 1명을 확보함으로써 미연에 위험을 방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타가 지브롤터로 갈 것이다, 라.. 그 이유는?"


"바르셀로나 시가지에서 아메리카로부터 들어오는 물자들을 받아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는데, 감마가 유럽으로 오자 만나기 위해서 그쪽으로 가 보려는 모양입니다." 뒤따라 들어온 시라유리가 보고했다. 아마 080기관이 조사한 것인 듯 싶었다.


사령관은 이 보고를 듣고 말했다. "감마와 제타 둘을 모두 잡아 놓는다면 펙스의 해군 병력은 힘을 어느 정도 잃게 될 거고, 제타의 세력도 그 우두머리가 억류된 이상 항복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구태여 바르셀로나로 이동해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을 것이오."


"좋아, 그러면 항로를 돌리자. 일단 모로코에 상륙한다."


"네!" 하고 모든 지휘관들은 대답했다.





하루 반나절 이후 오후 12시, 오르카 호는 모로코 북부에 있었던 도시이자 과거에는 페니키아의 항구로 사용되었던 탠지어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 그 광경은 몹시도 아름다워 사람들을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게 만들었다.


"전투만 아니었으면 바로 수영복 입고 다이빙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네요."


"말 나온 김에 분대장님, 함 다이빙 해보지 않겠슴까?" 브라우니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야!! 2922번 브라우니! 당장 안 멈춰!" 이프리트는 마치 호랑이처럼 달려가서 바다에 뛰어드려는 브라우니의 귀를 잡고 병영으로 끌고 들어왔다.


"수영은 이번 전투 끝나고 시켜줄테니까, 일단 진정해. 지금은 전시 상황이니까 말이야." 사령관은 볼이 햄스터처럼 부푼 브라우니를 타일렀다.


"사령관, 저것 좀 봐." 바다 쪽을 관찰하고 있던 메이가 사령관에게 쌍안경을 건네주었다.


사령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르카 호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의 핵잠수함에서 한 여성이 나와 감마와 악수하는 모습이었다. 황금빛 머리칼에 170 초반대로 보이는 키였고, 각 손가락엔 보석이 박힌 반지들을 하나씩 끼고 안에 셔츠 없이 최고급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있었다.


(대략적인 이미지)


"제타네요."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미하일이 말했다.


"과연 탐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레모네이드답네요. 마이다스 왕이 황금을 좋아했던 것처럼 온 몸을 값비싼 옷으로 둘렀어요.  꼭 자기 재력을 과시하는 졸부들 같다 해야 할까요." 사령관은 그러한 제타의 모습에 솔직한 평가를 내렸다. 이에 대해 미하일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자기 자매의 거만한 모습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


"...."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심란하실 텐데."


"괜찮아요. 제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데 불평하면 안 되죠." 그는 담담히 이야기했다. 자기 아버지의 악행을, 자매들의 죄를 모두 십자가로 삼고 살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그였기에 자신의 처지를 함부로 탓하고 원망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쯤 공격을 가하면 될까? 지금 사격을 개시하면 저쪽에서도 금방 눈치챌거야."


"아직 대장들이나 사령관한테서 지시가 안 왔으니 대기하는 수밖에 없어. 만약 가장 빨리 한다 하더라도 내일 새벽 즈음이 되겠지. 그때는 감마의 병력들도 조금 경계가 풀릴 테니까."


"그러면 그동안 잠깐 원카드나 해보실까!" 하고 네레이드는 품에서 트럼프 뭉치를 꺼냈다.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그리폰은 어어 하고 조금 당황했지만 금새 게임에 첨가했다.


"다들 뭐 하는 게요! 적이 곧바로 우리 쪽을 공격할 수도 있거늘 카드게임을 하려고 하다니!" 용이 풀어진 감시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둘은 금새 시무룩해졌지만 그녀는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아예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오. 물론 불안하겠지. 하지만 최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본인이 맡은 바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요."


그 말을 듣자 부사령관의 머릿속에는 생각 하나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령관님, 혹시 이 근방에 교회나 성당 같은 곳이 있나요?"


"성당이요?"


"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기도 좀 하고 싶어서요."


"기도라.. 아까 아르망이 알려준 건데, 이 항구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작은 공소가 한 곳 있다고 하더군요. 잠깐 다녀오세요."


사령관의 허락이 떨어지자 미하일은 곧바로 공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음이 빨라서일까, 공소 앞에 약 3분 정도 만에 도착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안에서 잠긴 것인지 통 열리질 않았다.


'하는 수 없지. 주여, 부디 제 행동을 용서치 마소서.' 하고 미하일은 문 양 옆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돌로 부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안에는 나무와 강화 철판으로 일련의 용접이 되어 있었기에, 부사령관은 안으로 그것을 녹이는 장치를 던진 후 잠시 기다렸다.


약 1분 30초 정도가 지나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공소 안은 의자가 어지럽게 쓰러져 있고 먼지와 거미줄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정도면 양호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놓인 제단 앞에 꿇어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오르카 호의 모두가 무사하기를.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달라는 간청을.

자신의 자매들이 잘못을 반성하기를.

마지막으로 자신이 참회하며 살아갈 앞으로의 삶을 도와 달라고 빌었다.


멸망 전의 인류는 대부분 코헤이 교단의 사이비 교리와 자기합리화에 빠져 철충이라는 지옥이 그들을 찾아왔지만, 미하일은 그들과 달리 '진짜' 신을 믿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자신을 키우면서 당신 외에 의지할 것은 하느님의 말씀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시며 세례를 받게 하고 성당에 보냈던 것이 지금의 그를 지탱해 주었다. 만약 신앙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온화한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유형의 인간이 되었겠지. 아니면 멸망 전 인류처럼 금수만도 못한 존재로 살았을 테고. 수면관에 들어갈 때도 꼭 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성서를 품에 안고 들어갔던 그였다.


전투가 목전으로 다가온 이 상황에서도 기도는 그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미하일은 싸움의 의지를 굳건히 다지며 공소에서 캠프로 내려왔다. 다들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브롤터 감시 기지 내부의 응접실.

"너답지 않게 융숭한 대접이네." 제타가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고 말했다. 그것을 듣는 상대는 자매인 감마였다.


"전에는 내 대접이 시원찮았다는 얘기야?"


"그랬지, 뭐. 넌 싸움밖에 모르는 근육뇌니까 말이야." 오메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거만한 말투였다.


감마는 제타의 불손함에 조금 열 받았지만, 미하일을 막고 용과 맞붙음으로써 최강을 가린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서는 이러한 자잘한 것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얘기는 들었어, 미하일이.. 돌아왔다고."


"그래, 게다가 우리를 친다고 하는군. 오르카 호의 부사령관으로서 말이야."


"오르카? 아, 그 잠수함으로 바다 돌아다니는 난민 녀석들? 그런 오합지졸들하고 팀이 되면 그 애한테는 굉장히 손해가 많이 날 텐데." 제타는 '손해'라는 단어에 특히 더 힘을 주었다. 탐욕을 기본으로 장착한 그녀로서는 온정보다는 그 자신의 이득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말투에서도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얕잡아 보지 않는 게 좋을거야. 그 애는 펙스에 대한 거의 모든 걸 꿰고 있기도 하거니와, 오르카에서도 우리와의 전투를 위해 수없이 훈련했다는 첩보를 받았거든. 아마 무력을 써서라도 우리를 굴복시키려 하겠지."


"훗. 그래 봤자야. 우리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면 금새 이쪽으로 붙을걸.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마음이 아니라, 이거거든." 하고 제타는 손가락으로 OK표시를 만들었다. 그녀는 아무리 회장에게 원한을 가진 미하일이라도 간단한 '성의'만 있어도 바로 아군으로 포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 말이 옳기를 바라야지." 하고 감마도 조용히 커피를 들이켰다. 바로 그 때..


"감마 님. 방금 발신자 불명으로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습니다만.." 감마의 비서로 있는 콘스탄챠 개체가 조용히 들어와 말했다.


"그래? 띄워 봐." 감마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콘스탄챠는 스크린에 메시지를 띄웠다. 내용은 간단했다.


[약 한 시간 후, 너희들을 잡으러 갈 테니 조용히 발 닦고 앉아 있어. - M.B]


그리고 곧바로 영상통화 하나가 걸려왔다. 다름 아닌 미하일이었다.


"...연결해." 콘스탄챠가 단추를 누르자, 미하일의 얼굴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감마, 메시지 보낸 거 잘 받았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안녕, 제타?" 


"어.. 안..녕?" 얼떨결에 제타는 오랜만에 만난 형제에게 인사했다.


"한 시간 후라, 모로코 해안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공격해 올 줄은 몰랐어."


"빨리 정리하는 게 나한테, 아니 우리한테는 더 편하거든."


"진짜로 싸울 생각이야?"


"그러면 내가 가짜로 싸우겠어?"


대화의 내용은 간단했지만, 북극처럼 냉랭한 공기가 감돌았다. 결국 미하일이든 감마든 서로의 목적을 위해 칼을 부딪히고 총을 겨눌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타, 더 늦기 전에 빨리 기지에서 나오는게 좋을걸? 까딱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폭격 맞을 수도 있거든."


"만약 내가 지금 도망쳐서 너희한테 투항하면 받아줄거야?"


"난 받아주겠는데 사령관님하고 다른 분들 결정도 필요하겠지."


"내.내가 펙스의 중요한 정보를 줄 테니 좋은 자리 하나만 마련해 주면 안될까?" 과연 사익을 우선순위에 두는 제타다웠다. 곧바로 전향할 의향을 드러내다니.


"이 비겁한..!"


"비겁하다니, 나 먼저 살고 봐야지. 그.그래서 미하일, 내가 정보를 주면 오르카 호에서 높은 자리 하나만 줘. 지휘관이든, 아니면 대대장이라도 좋으니까 하나만."


"안돼."


"뭐라고?"


"이미 자리가 만석이거든."


"그러면 내가 얻는 건?"


미하일은 곧바로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얻는 거? 없어. 투항 안 하면 그냥 뒤지는 거야."


"부탁할게, 바르셀로나에 있는 것들 다 가져도 되니까.."


제타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지키려고 하였지만, 이미 미하일은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한번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까지 속물적으로 굴고 싶은 거야? 좋아. 잡히고 나서 후회나 하지 말라고."  하고 그는 통신을 종료했다.


"전투 준비 하라고 해. 지금 당장. 그리고." 감마는 콘스탄챠에게 지시했다. "너는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하고 제타에게 으름장을 놓은 채 응접실을 박차고 나갔다.





계속


제타는 약간 속물+자기 안위만 걱정하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잡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