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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란 어떻게 생긴 곳일까?

 

트리아이나는 시간이 있을 때면 늘 그런 고민을 했다.

끝도 없이 깊은 심연. 우주의 모든 빛보다도 강력한 어둠. 조금 오글거리는 수식언들도 너그러이 품어줄 수 있는 우주에 대한 환상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 속에 있었다.

고철 더미로 별 모양 모빌을 만들어 잠수정에 달아놨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주는 그녀의 생각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전방 5 km 내에 30 m급 잔해물 발견!”

 

“왼쪽으로 선회한다!”

 

“왼쪽 말고 오른쪽! 옆으로 빠지면 100 m짜리 인공위성 사체가 있어!”

 

 

 

올라가는 동안 끊임없이 그녀의 앞길을 방해하는 발사체의 잔해들.

오리진 더스트의 발견 이래, 우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발사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지구의 궤도는 설날 귀갓길 같은 빼곡함을 자랑했다.

허구한 날 로켓을 쏘아 보내고 위성을 만드려고 했으니 우주 쓰레기가 많을 수 밖에.

모험의 로망 따윈 진작에 사라진 트리아이나가 핸들을 손에 쥐고 질서정연하게 돌렸다.

 

 

 

“외... 왼쪽? 아니면 위? 아래? 좌? 우?”

 

 

 

... 물론 내 눈으로 봤을 땐 마구잡이로 흔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기술팀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수십 개의 센서들이 주변의 쓰레기 더미들 수십 개를 위험 순위 별로 화면 위에 띄웠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루트를 계산하던 닥터가 내 몸을 밀쳐내고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조종간을 무작정 위로 잡아 당기지 말라고!

정확하게 SW 109도! 거기로 안 가면 15초 뒤에 4번 추진체에 5 m 급 쓰레기가 꼬라 박을 거야!!”

 

“S... SW? 내가 쓰던 방위법이랑 조금 다른데...

전에 줬던 노트에 내가 쓴 주석 있지 않아? 그걸 보면...”

 

“누가 보면 존나 전문적인 방위법을 쓴 줄 알겠네! 고작 해봐야 ‘조금 옆’, ‘조금 더 옆’ 같은 거 밖에 없잖아!”

 

“그래, 그거!”

 

“씨발!”

 

 

 

대체 자신은 무엇을 위해 저리도 정밀한 방위 센서를 설계한 것인가,

그렇게 말하는 듯한 닥터는 분노를 넘어 비참함이 서린 한숨을 내셨다.

천성 이과 공순이에게 저런 방향 지시는 너무도 가혹했던 모양이다.

 

 

 

“그... 그, 아, 씨발 그 뭐였더라...

... 아, 맞다! 자동항법시스템! 하다 못해 그거라도 키라고! 

내가 분명 고도 2000 피트 이상 되면 키라고 했지? 왜 시스템에 그게 안 켜져 있는 거로 나오는데!”

 

“아, 그 뭐야, 파란색 버튼?

그거 눌러도 안 되던데?”

 

“뭐?”

 

“여기까지 오느라 망가졌나 봐.”

 

 


격분한 닥터가 놓치고 있던 것.

우주선 정면에 분명 달아 놓았던 둥근 모양의 항법 센서가 부숴져 있던 것이다.

 

비참 그 다음 단계의 감정이 뭐가 있을까? 참담? 허망?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닥터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고히 출타하신 어이에 동그랗게 떠진 그녀의 눈에서 그 뭔지 모를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니까.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다른 언니들마저도 그녀의 표정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만 찌르면 터질 폭탄처럼 닥터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해진 터였다.

 

 

 

“내가... 내가 씨발... 그거 만들겠다고 며칠을 밤샘을 했는데!”

 

“뭐 어때? 시간 때문에 날림으로 개조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주 여유만만이지!? 앞으로 정지 궤도까지 날아가려면 못해도 20,000 km는 더 날아가야 해!

게다가 추진체 연료가 실시간으로 빠지면서 우주선 무게도 순간순간 변할 텐데 그걸 어떻게 손으로 조종하려고 그래?”

 

 

 

이마에 섬뜩하게 선 핏대를 간신히 가라앉히며 닥터가 말했다.

저 우주선의 시스템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자동항법장치는 그 중에서도 핵심 시스템.

조종간의 입력 수준, 센서의 민감도 등 무수한 요소들을 매 시간마다 정확하게 조정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게 없다는 건 눈을 가리고 비행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날림 공사 때문에 멀쩡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리라곤 생각을 했지만 설마 저게 망가질 줄이야,

닥터의 눈에는 황망함이 가득했다. 몇몇은 심지어 이미 임무를 실패라고 단언했을 정도다.

하지만 트리아이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잔해 위치만 대충 말해줘. 나머지는 내가 대충 해볼 테니까.”

 

“... 대충? 우주에서 하나라도 대충 하면 그대로 뒤지는 거 몰라?”

 

“모르는 건 닥터 아닐까?

내가 한 가지 물어볼게. 우주랑 심해 중에 어디가 더 위험할 거 같아?”

 

“응?”

 

 

 

그녀의 가죽 장갑이 조정 핸들을 꽉 잡았다.

믿음직한 가죽 마찰 소리. 홀로그램으로 올라오는 수백 개의 데이터를 바라보며 트리아이나가 어깨를 풀었다.

 

스슥!

종이 한 장 차이로 잔해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우 피쉬.

물고기의 매끈한 비늘이 사람의 손길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것처럼, 그녀의 잠수정이 우주 쓰레기의 바다를 우아하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에 기술팀과 닥터의 입에선 한탄이 금해졌다.

 

백 년짜리 모험 짬바가 이리도 대단한 것이다.

 

 

 

“내가 전에 리오보로스 무덤 털러 갔다는 거, 얘기 안 해줬지?

거기 수문장 때문에 무덤은 못 털었는데 그 앞까지는 갔어.”

 

“그... 그게 왜?”

 

“거기까지 가는데 내가 뭘 뚫고 갔는 지 알아?”

 

 

 

그러고 보니 그녀가 가지고 있던 골동품들 중에 이상하리만큼 커다란 지도가 하나 있었다.

그녀가 직접 만든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으나 자세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야 그게 뭐였는지 알 것 같다.

 

 

 

“수중 미로야. 함정으로 가득 찬 겁나게 커다란 수중 미로.

10초 내로 주파하지 못하면 조여 오는 벽이라던가, 수중 지뢰가 비 오듯이 떨어지는 함정 지대, 빛을 감지하면 폭발하는 다이너마이트 함정 같은 거.

인간 발굴팀들은 위험하다고 수십 년 동안 못 뚫었는데 나는 삼 일이면 되더라고.

거기 지도 만드느라 일주일을 추가로 쓰긴 했지만 말이야.”

 

"그럼 거기를..."


"응. 내가 뚫었어. 수중 1000m 내에서 헤드 라이트 안 키고."


“... ... 그냥 언니가 아니라 미친 언니였구나?”

 

“미치지 않고서야 모험 같은 짓은 못 하거든?”

 

 

 

또 다시 잔해를 스치고 지나가는 우주선.

거기 달려 있던 카메라가 잔해와 부딪혀 신호가 끊겨버렸지만 나머지 시스템은 모두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 그대도 카메라만 부수고 지나간 잔해. 마지막까지 찍혔던 모양을 보면 결코 작은 크기의 우주 쓰레기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기술팀 대원들이 어깨를 움츠러들이며 기겁을 했지만 트리아이나는 산보를 나온 사람마냥 휘파람을 불었다.

광기의 경지에 다다른 여유로움. 패널로 상황을 중계 받고 있던 지휘관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들이 제대로 된 대원을 보냈다는 것을.

 

 

 

“거의 다 주파했다! 이번만 돌파하면 안정 궤도야.

센서에 있는 잔해들은 어디 있지?”

 

“이, 이번엔 NE 59도. 거리는 901 피트... ...”

 

“그럼 ‘조금 더 더 왼쪽’으로 돌리면 되겠지?”

 

“... ...”

 

 

 

엉망진창인 방위법. 허나 닥터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녀의 실력을 감상했다.

그리고 그 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트리아이나는 마지막까지 화려한 곡예로 잔해 사이를 빠져 나왔다.

무너져 내리는 우주 정거장의 태양 전지를 뛰어 넘고, 시속 수천 킬로미터로 달려오는 어느 정거장의 에어록을 회피 기동으로 피하는가 하면, 심지어 잔해 위에 뚫린 구멍 사이로 들어가는 묘기까지 부린다.

그 모습을 보던 누군가는 탄성을 내질렀고, 누구는 소리 죽여 박수를 쳤다.

 

드디어 우주에 완벽하게 도착한 소우 피쉬.

선체에는 십 수 개의 스크레치가 났다고 화면이 붉게 반짝였으나 자가수복 기능이 있으니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실력을 뽐낸 트리아이나가 기지개를 뻗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때, 이 정도면 선발대로 보낸 거 후회 안 하지?”

 

 

 

어느 누가 이 솜씨를 보고 후회할 수 있을까?

이건 자신의 잠수정을 앗아가고 자기는 진작에 계획 외로 빼놓았던 오르카 호에게 그녀가 나름대로 보내는 복수였으리라.

닥터가 혀를 차며 어색한 침묵을 채워 넣었다. 천하의 그녀도 상정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이었다.

 

 

 

“휴스턴? 아, 아니지. 오르카? 내 말 들립니까?

내가 물어봤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어서 말이야.”

 

“... 들립니다, 소우 피쉬 호. 현재 고도는 어디죠?”

 

“음... 계기판에는 15,015 km라고 나와 있어요. 더 올라가야 합니까?”

 

 

 

트리아이나는 선체 내에 달린 카메라를 응시하며 연료 계기판을 가리켰다.

아직 절반 가량 남아 있는 고체 연료. 귀환할 때 사용할 것들까지 고려해본다 해도 정지 궤도까지 올라가기엔 부족함이 없는 정도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라고 지시했다.

추기경의 정거장이 36,000 km 궤도에 위치하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당장 가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다.

당장의 목표는 레모네이드 엡실론의 주도권 확보.

그 때문에 트리아이나는 저 정도 높이에 머무를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철충 쪽 정거장의 위치는 여기서 경도 140도 정도 차이가 나는데?

너무 먼 곳 아니야? 그것도 아니면...”

 

“조금만 기다려 봐.”

 

 

 

시간 상의 이유로 트리아이나에겐 상세히 설명해주지 못한 작전의 내용.

나는 그녀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화면 옆의 보조 패널로 눈을 돌렸다.

이제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삐리리릭-

 

그래, 그럼 그렇지.

 

 

 

“트리아이나? 우주선 방향을 화성 쪽으로 좀 돌려봐.”

 

 

 

그녀의 무지막지한 방위법을 본 받아, 트리아이나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내용으로 지시했다.

추기경의 위치와는 못 해도 수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

내가 트리아이나를 그곳으로 보낸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트리아이나가 방향을 돌리자 우주선의 콕핏에 달려 있던 카메라가 멀리 있는 화성을 비췄다.

천문학적으로 떨어져 있을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이었지만 무언가 확연히 달라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황토색 대지는 어디 가고 반쯤 검푸른 강철색으로 뒤덮인 화성.

테라포밍 프로젝트의 실패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화성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이 이상한 행성을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삼키는 무언가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한 정거장.

안테나가 담쟁이 덩굴처럼 우후죽순 붙어 있는 펙스의 통신 정거장이 슬그머니 트리아이나의 우주선 앞을 가로 막았다.

 

 

 

-아아, 내 말 들립니까? 통신망이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 어?”

 

 

 

통신망 사이로 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트리아이나가 꿈뻑거렸다.

 

우주라는 광대한 무대.

추기경을 잡든, 철충 정거장을 격추시키든, 거기서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면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

궤도에 표류 중인 AGS들을 일일이 찾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 ‘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팀을 만들기 위한 ‘팀’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저기 있는 아이들은, ‘팀을 위한 팀’이다.

 

 

 

-오, 말 소리 들린다.

-여기는 스파토이아. 오랜만입니다, 오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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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즈즈즛!

우주선이 도킹되는 소리가 두 개의 스피커에서 동시에 들린다.

하나는 후사르의 정거장과 연결된 라인에서, 다른 하나는 트리아이나의 몸에 달린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온갖 역경을 뚫고 마침내 두 팀이 만난 것이다.

 

 

 

“후우, 에어록 설정 완료! 기압 차이 때문에 조금 오래 걸렸네.”

 

“저... 뭐 하는 거야?”

 

 

 

능숙한 솜씨로 우주선 격벽에 붙은 패널을 조종하던 스파토이아를 트리아이나가 멍하니 지켜보았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트리아이나의 시점뿐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어땠을 지는 벌써부터 짐작이 된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뭐하나 뭉뚱하게 쳐다보고 있겠지.이 애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얼굴이 꼭 그랬는데.

 

 

 

“아, 이거? 우주선 내부 대기 조정을 하는 거야.

네가 가지고 온 산소를 이곳 탱크랑 연결시켜야 하거든.”

 

“... 우, 우주에서는 숨 쉬려면 지구에서 공기를 가지고 와야 하는 거야?”

 

“당연하지. 그럼 우주 한 복판에서 공기가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는 줄 알았어?”

 

 

 

예상 외... 아니, 예상 내의 대답에 트리아이나가 얼 빠진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류의 우주 공학 기술의 결정체에서 숨 쉬는 유일한 방법이 저리도 원시적일 줄이야,

마치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의 표정을 보며 꿈뻑거리는 스파토이아의 얼굴에선 되려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공기 재활용 장치 덕분에 에어록에 유출이 발생하지만 않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

 

“하... 하하, 그, 그렇지?”

 

 

 

겨우 여기까지 와서 숨 막혀 죽을 순 없지.

트리아이나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삐리릭.

도킹이 된 후 연결을 시도하던 통신망이 드디어 이어졌다.

정거장 내부에 달린 CCTV를 통해 멀뚱거리는 트리아이나의 모습까지 3인칭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와 함께 분할된 화면 수가 몇 배로 늘면서 크기도 몇 배로 작아진 상태.

대원들이 각자 맡은 부분의 카메라를 수동으로 조작하며 시스템을 점검하는 동안, 나는 스파토이아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 저기인가?”

 

 

 

그녀를 찍고 있던 카메라를 좌우로 돌리자 스파토이아와 트리아이나가 동시에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어리숙하게 돌렸던 것인지 무언가 툭 하고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쿡쿡대며 내 솜씨를 비웃는 스파토이아의 웃음이 들리는 것을 보니 벌써 정체가 들킨 모양이다.

 

 

 

“히히히, 저 아래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 사령관.”

 

“사, 사령관!?”

 

“우리 모습 잘 찍히고 있어? 후사르 말고 다른 사람 만나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멋 부리는 건 진작에 까먹어버렸거든.”

 

 

 

베시시 웃으며 삐친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는 스파토이아.

트리아이나와 만날 땐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내 정체를 알아채자 얼굴을 붉힌다.

정거장 내에 달린 거울로 다가가 얼굴을 매만지는 그녀 옆으로 분홍색 리본이 먼지가 쌓인 채 놓여 있었다.

 

 

 

“이, 이거는... 

에이, 안 한 지 너무 오래됐어.”

 

 

 

뒷 머리를 들어 올려 포니테일을 만들려 했던 스파토이아.

그녀는 먼지를 피해 손 끝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올린 리본을 다시 내려 놓았다.

하지만, 그 손짓에서 오히려 더 많은 미련이 느껴졌다.

오비탈 와쳐에서 임무 때문에 저 리본을 줬을 리는 없겠고, 그녀가 입고 싶어서 가지고 왔던 거겠지.

쓸쓸함을 감추려는 그녀의 웃음은 별로 효과가 없는 듯했다.

 

 

 

“저기, 스파토이아?”

 

“아... 아! 그, 그래. 음성 통신도 이제 되는구나? 왜 그래 사령관?”

 

“그, 다른 건 아니고 혹시 후사르가 어디 갔나 해서 말이야.

다른 카메라로도 계속 보고 있는데 도통 안 보여서.”

 

 

 

사령관 권한으로 모든 카메라를 돌아볼 수 있던 나는 스파토이아의 안위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후사르를 찾으려했다.

우주라는 공간 때문에 이곳 대원들은 언제 어떤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운 나쁘게 우주 유영 중 실종됐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보이지 않는 후사르가 걱정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스파토이아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비죽거릴 뿐이었다.

 

 

 

“거, 혹시 카메라 하나 안 보이는 거 있지 않아?”

 

“응, 있어. 다른 카메라는 다 보이는데... 연결이 안 좋은 건가? 이것만 아까부터 검은 화면이네.”

 

“그거 에어록 C에 4번 방이지?”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스파토이아가 작게 한숨을 내셨다.

 

 

 

“이 가시나가 진짜... 내가 진작에 치워놓으라고 했는데.”

 

“왜? 뭔 일 있어?”

 

“아니, 이딴 걸 가지고 별 일이라고 하고 싶진 않아.

이런 위중한 임무에서 자기 방 더럽다고 카메라 가려놓는 미친년이 어디 있어?”

 

“... 에?”

 

 

 

스파토이아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 후사르! 적당히 좀 하고 좀 나와라!”

 

-시, 싫다 마! 아직 정리 다 안 됐다 아이가!

 

“이 미친 가시나가 이제 일 해야 하는데도 그러네?

그래가지고 집중은 하겄냐? 네 방 때문에 집중할 것도 집중 안 될 거 같은데?”

 

-그거는 내가 알아서...
 

“아, 됐어!”

 

 

 

스파토이아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휘날리며 후사르를 향해 달려갔다.

땅을 다리로 박차고, 부족한 추력은 벽에 달린 손잡이를 밀며 충당한다.

거의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

무중력 상태에서 저렇게까지 잘 달릴 수 있는 지 난 처음 알았다.

 

 

 

-야, 이제 됐지? 이제 뗀다!

 

-아! 손 떼라 마! 이 가시내가 미츴나!? 아직 이거 정리 못 했다!

 

-정리는 무슨... ...

 

 

 

순간 스파토이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아쉽게도 방 안의 입구를 찍고 있는 카메라로 그녀의 동태 정도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을 뿐, 뭘 보고 저런 반응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 그, 그래. 그거만 빨리 정리해라. 그건 안 건들 테니까.

 

-우이이이... 내 부끄러가꼬 우째 고개 들고 다니겠노...

 

 

 

그저 후사르의 애달픈 곡소리에서 그게 무엇이었을 지 겨우 추측만 할 수 있었을 뿐.

그 때문에 나도 자세히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스파토이아가 자신의 우주복에 달린 이어폰을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 사령관. 이 임무 엄청 중요한 임무지...?”

 

“그,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내 말에 그녀가 작게 탄식했다.

 

 

 

“그럼 괜히 뭐 숨기는 거 아니라고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겠지...

그... 오해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우리도 어느 정도는 사람이야.

... 성욕을... 느끼는 사람 말이야.”

 

 

 

그렇다면 그녀들이 어떻게 우주에서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스파토이아가 하는 질문은 되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스파토이아의 의중을 이해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에서 내 모습이 보일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도 내 반응을 알아들은 듯했다.

 

 

 

-히이이잉... ... 이래가꼬 나 우예 시집 가겠노...

 

 

 

부끄러움에 허우적거리는 후사르의 탄식.

끙끙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동정심마저 들 정도다.

그나마 다른 대원들은 자기 일 하느라 바쁘다는 게 위안이 될까?

그 말을 전해줄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내가 괜히 말했다간 저 탄식 소리가 두 배는 커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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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안녕하십니까, 사령관님.”

 

“그래, 후사르.

... 이제 좀 안정이 됐어?”

 

“... ...”

 

“... 알았어.”

 

“고맙습니데이...”

 

 

 

저거 대체 어디 사투리일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그녀는 표준어도, 방언도 아닌 그 어딘가를 자꾸만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리 유하게 보여도 일은 제대로 할 거다. 오비탈 와쳐 대원들의 칼 같은 실력은 이미 지상에선 정평이 나있으니까.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 목을 좌우로 움직였다.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하면, 그거 한 번 할 여유조차 없을 테니까.

 

 

 

“일단 둘 다 내가 보낸 USB 받았지?”

 

“네, 받았습니다.”

 

“받긴 했는데 이거 뭐 하는 거야?”

 

 

 

씩씩하게 USB를 카메라로 가져다 대는 후사르와 조명에 비춰 보며 갸웃거리는 스파토이아.

어디선가 작게 한숨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애들 데리고 무슨 임무를 하겠냐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오비탈 와쳐의 데이터 운용 능력은 결코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줄게.

일단 안에 있는 내용부터 확인해줄래? 조금 오래 걸릴 지도 모르니까...”

 

“다 했습니다.”

 

“5분 전에 말이야.”

 

 

 

계속 원시인처럼 조명에 USB를 비춰보는 스파토이아의 발언에 장내가 고요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담아서 보낸 데이터의 양은 테라바이트 단위다.

직접 가공하려고 하면 못 해도 몇 십 분은 걸리는 양.

하지만 저 둘은 그걸 10분도 되지 않아 끝내버렸다.

 

 

 

“좀 많긴 하더라고요. 전술 데이터만 A-1부터 Z-49까지 있어서 분류 작업이 좀 오래 걸렸습니다.”

 

“하필이면 오늘이 인근 통신 데이터를 취합하는 날이라서 더 그랬고.

다른 때였으면 조금 더 빨리 할 수 있었을 거야.”

 

“... 그래. 잘했어.”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둘.

뭔 일인지 모르겠다는 트리아이나는 둘 사이로 시선을 번가라 가며 옮겼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의 아이들은 저 대원들이 도울 가치가 있는 애들이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트리아이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좋아. 그럼 자세한 설명은 할 필요 없겠지?

둘 다 트리아이나가 타고 온 우주선에 올라 타. 디테일은 가면서 설명해줄게.

물론 ‘그 작업’은 다 끝내놓고.”

 

“후우... 알았어. 대신 그걸 하려면 좀 부스팅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스파토이아가 어깨를 풀어주며 트리아이나의 잠수정 안으로 올라탔다.

유연한 연료 탱크의 설계 덕분에 지금이라면 3인용으로 바꿔도 부족함이 없다.

그와 달리 내 말과 동시에 정거장 내부를 바쁘게 헤집고 다니는 후사르.

역시 스파토이아보다는 유연한 그녀가 지금 직무에 더 어울린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추기경이 타고 있는 정거장의 격추.

엡실론의 케스토스 히마스를 당장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트리아이나가 저렇게 올라간 것이다.

그러니 우주에 도착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병력을 지정 좌표에 집결시키는 것.

 

 

 

“준비 완료 됐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왔다는 메아리가 온 우주에 울려 퍼지도록 목청 터져라 외쳐야 한다.

물론 공기가 없으니 물리적으로 외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말을 전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이 ‘통신’ 정거장만 있다면 지구 전역에 신호를 보낼 수 있으니까.

 

 

 

“휴스턴 쪽에서 이제 곧 메시지 하나가 올 거야.

너희가 해야 하는 건 그 메시지가 온 사방에 퍼지도록 이 정거장을 내버려두는 거고.”

 

“그럼 철충이 감지하고 올 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적어도 너희는 우주선을 타고 도망칠 수 있잖아.”

 

“만약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파괴되어 버리면요?”

 

“그럼 뭐, 후사르가 희생이라도 해줄래?”

 

 

 

통신 패널의 주파 강도를 올릴 수 있을 만큼 올리고 있던 후사르가 덜덜 떨리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올려다 보았다.

 

 

 

“내... 내 버릴끼가...?”

 

“... 안 버려. 그냥 농담 좀 한 걸 가지고...

대충 마무리 하면 어서 올라타렴. 빨리 가야 하니까.”
 

“그, 그런 농담 한 번만 더 들으면 내 죽어뿔겠다... 심장 떨려가지고야 이거 하긋나...”

 

 

 

사과를 강요하는 수준의 울먹거림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말로 토닥거려줬다.

그렇게 얼마나 내 사과를 듣고 있었을까, 후사르는 곧 준비를 마무리하고 트리아이나가 있는 곳으로 올라탔다.

정거장 내부 시스템은 닥터가 해킹해준 덕분에 정거장의 통신 안테나는 우리쪽에서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나는 그 활성화 버튼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의 바이탈 신호를 확인했다.

 

안정적인 심박수 두 명.

그리고 터질 듯이 두근거리는 사람 한 명.

위의 두 명은 이 우주를 지긋지긋한 곳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고, 다른 한 명은 모험의 무대로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자, 시작한다.”

 

 

 

저 세 명 모두 본 적 없는 우주가 이제부터 눈 앞에 펼쳐질 것이란 것이다.

탁자 위에 놓인 버튼을 온 힘을 다해 눌렀다.

카메라에 보이는 통신 정거장이 휘청일 정도로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곧 외곽에 달린 안테나들이 온 사방을 향해 팔을 뻗으며 웅웅거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바이오로이드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메시지가, 나의 뇌파와 함께 우주의 빈 공간을 매질 삼아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지막 인간이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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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애 호 해'라고 한 사람들도 이젠 다 없어지는 거 같더라

하긴, 애호할 스토리가 없는데 뭘 가지고 애호하겠나

없뎃하는 스마조 대신 이거라도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