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한기가 느껴져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여긴 내 방이 아닌데.

아, 맞아. 아가씨께서 부탁하신 바람에 억지로....

그렇다면 아가씨는?


"아가씨...?!"


옆에 아가씨가 안계신 것을 확인하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께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상황인데,

태평하게 잠이나 자다니 이 멍청한 새끼!

옆에 놓여있는 검을 쥐어들고 침대를 벗어났다.


그때.


"본녀 때문에 깨버렸군요. 미안해요."


발코니 쪽에서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코니를 바라보았고,


잠시 호흡이 멈췄다.



상징과도 같은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아가씨께서,

달빛의 호위를 받으며 그곳에 서계셨다.

빛을 받아 투명해진 잠옷.

그 속에 숨어있는 보드라운 살결을 드러낸채로.


"달이 예뻐서요. 잠시 보고 싶었답니다.

걱정을 끼쳤다면 사과하겠사와요."


그녀는 졸음이 덜 가셨는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헛기침을 하고 다가갔다.


"밤공기가 차갑습니다. 그리고...."

"쉿. 알고 있사와요."


안으로 모시려던 내 입술에 아가씨의 손가락이 닿았다.

그대로 굳어버린 내게,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잠시... 대화라도 하시겠나요?"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


"정말로 아름다운 광경이지 않나요?"

"실로 그렇습니다."


당신이 더 아름답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답했다.

다음에는 어떤 질문이 나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당장에 아가씨께선 그런 일을 겪었다.

진정할 필요가 있다.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별일은 없었다.

아가씨께서는 시덥잖은 문답만을 나누실 뿐.

오늘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불행 같은 것들은

하나도 물어보지 않은채, 일상 이야기만을 하셨다.

그래서 방심하고 말았다.


"당신은 본녀와 있어서 행복하신가요?"


무언가를 걱정하고 계신지 조금 슬픈 표정.

하지만, 언제나 내 대답은 정해져있다.


"물론입니다. 저는 아가씨와 함께해서 행복합니다."


내 말을 들은 아가씨께선 다행이라며 긴장을 푸셨다.


그리고.



"본녀도 당신과 이렇게 대화를 나눠서, 행복하답니다."


발코니에 몸을 기대며, 이쪽을 바라본 아가씨의 모습.

달빛 아래에 드러난 색정적인 모습.

누구보다 신뢰하고 믿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

그 모습이 방심한 내 가슴을 찔러들어왔다.


심장박동이 멈추질 않는다.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숨길 수 없는 마음이 심장에서 넘쳐흐른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가씨께서는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셨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기며 말씀하셨다.


"조금 졸린 것 같사와요. 본녀를 침대로 옮겨주세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들었다.

내 심장소리가, 긴장이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며.


-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침실.

그 속에 있는 침대에 아가씨를 눕혀드렸다.

이제 곁을 지키기만 하면 되겠지.


"가지마."


라고 생각한 내 옷깃을 아가씨께서 붙잡았다.

그녀의 손은,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아, 아가씨..?"

"무섭사와요... 사실은... 무섭사와요..."


아가씨는 오늘 장남이 보낸 살수의 손에 죽을 뻔했다.

그녀의 측근은 배신자였고, 사용인들마저 첩자.

자칫하면 나도 그녀를 지켜내지 못할 뻔했다.


"당신조차 배신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온몸이 떨려서 잠도 이루지 못했사와요...."

"아가씨.... 저는...."

"하지만 알 수 있었사와요. 당신만이. 오로지 당신만이 이 머큐리의 편이었사와요...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제 사람'이에요."


그녀는 조심스래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입고 있던 가운을 슬며시 내렸다.


"아, 아가씨?"

"제 부탁은 오늘 밤.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이었지만..."


가운이 바닥에 떨어진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하나 더 하겠사와요."


그녀가 양팔이 벌어지며 완전한 무방비 상태를 보인다.

그리고.


"저를 당신의 여자로 만들어주세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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