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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어디로 가?”

 

“음, 여기서는... 왼쪽.” 

 

“왼쪽?”

 

“그러니까... 지금 들어온 방향 기준으로.”

 

 

 

철의 탑.

사각형 필드로 구분되어 있는 맵 위를 거닐며 함정을 피하고 보급품과 퀘스트를 얻는 로그라이트 게임.

게임사는 로그라이크라고 했지만 그렇게 불리기엔 어림 반분어치도 안 되는, 엔딩 없는 반복 노가다 뿐이었기에 금세 없어져버린 비운의 컨텐츠다.

 

하지만 가장 커다랬던 문제는 바로 맵의 랜덤성이 전무하다는 사실. 한 층의 맵은 존재하는 몇 가지 지도 패턴 중 랜덤하게 한 가지를 고르는 방식으로 생성됐다.

로그라이크란 이름을 달고 나온 주제에 그랬으니 온갖 욕을 처먹은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임사의 게으름이 되려 고마울 정도다.

 

 

 

“어때? 안전하지?”

 

 

 

덕분에 패턴들을 모조리 외우고, 가장 안전한 루트를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가지고 있던 패턴 자체가 원채 적었던 탓에 누구나 철의 탑을 몇 판 정도만 해봤다면 다 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으응... 안전하네. 소름끼칠 정도로.”

 

“너무 걱정하지는 마. 이전 오비탈 와쳐 팀도 이곳에 온 적이 있었데.

그 탐사 팀이 남긴 자료를 보고 진행하는 중이니까 철충을 만날 일은 없을 거야.”

 

 

 

내 말에 트리아이나가 뾰루퉁해져 투덜거렸다.

 

 

 

“사령관은 정답을 다 알고 있고, 나는 그걷로 따라 가기만 하고...

내가 생각했던 모험은 이런 게 아닌데...”

 

 

 

누가 중증 모험 덕후 아니랄까봐, 적진 한 복판에 와서도 모험 타령이다.

하긴, 심해 7000m 깊이에서 잠수정 유리창에 금 가는 소리를 웅장한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비교할 만큼 스릴 중독자니 그럴 만도 하지.

허나 나는 그럴 정도의 강심장이 아니다. 저러다가 어디서 뭐가 툭 튀어나오면 그대로 사망인데, 저런 사고 방식부터가 정상이 아닌 거다.

 

 

 

“... 그래도 뭐, 나도 눈치는 있어.

이런 위험한 데에서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거지?”

 

 

 

내가 한 소리 하기 전에, 트리아이나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이, 안전은 확보되었지만 만의 하나를 대비하며 움직이는 그녀는 수풀을 지나가는 뱀처럼 민첩하고 조용하게 이동했다.

 

 

 

“일단 이곳 방 안의 크기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대로만 가면 금방 가겠는데?”

 

“... 그래. 금방 코어로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좌우를 살피며 어느 쪽으로 가야 할 지 살피는 트리아이나의 모습이 보인다.

칠흙 같은 어둠에 섬찟, 손을 뻗으려다 다시 움츠리는 모습을 보니 이미 마음 속에선 저 방 안에 있는 연결체라도 본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무의미한 조심성임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곳은 적이 없는 지형이니까.

 

 

 

“이번에는 왠지 저쪽으로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사령관 생각은 어때?”

 

“그래, 그쪽으로 가는 게 안전해.”

 

“역시! 거 봐, 내 감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운 좋게 맞춘 것에 으스대며 거들먹거리는 트리아이나.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간다 해도 나는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층의 구조는,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으니까.

엡실론의 탐사팀이 남긴 데이터에 따르면, 이곳의 넓이는 그리 크지 않다. 성채의 가장 밑부분이었으니 그렇겠지만, 탑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보면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다.

이건 ‘보너스 스테이지’라는 뜻이니까.


철의 탑에서 맵 패턴이 간단한 경우는 ‘보너스 스테이지’ 단 한 가지뿐이다.

탐사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고,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문지기 하나만이 고정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테이지.

물론 성채 내부에 보급 물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건 당연하다. ‘삼안 물자취급소’나, ‘군수 공장’ 같은 게 여기 있을 리가 없으니까.

다만, ‘문지기’ 하나만큼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쿠구구구구.

 

그 순간, 미로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카메라를 통해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쿵, 하고 넘어진 트리아이나. 하지만 나는 안부를 전할 새도 없이 진동의 근원이 있을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보려 했다.

검게 칠해져 있는 부분. 탐사 팀이 기록하지 못해 미지로 남아 있는 부분이 진원이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그곳은, ‘문지기’가 있어야 하는 곳이다.

 

 

 

“저긴가? 저기로 가야 하는 거 맞지?”

 

“맞긴 하지만... 안 무서워?”

 

“모험이 안 무서우면, 그게 모험이겠어?

그런 두근거림이 있어야 진짜배기 모험이라 할 수 있다고!”

 

 

 

두 번 모험했다간 심장마비로 뒤질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이 다리를 푸는 트리아이나를 진정시키며, 나는 속으로 생각을 반추했다.

 

문지기.

일개 나이트 칙부터 시작하여 라이트닝 붐버, 스파르탄, 슬래셔, 헌티드 포트리스, 이윽고 연결체까지 각종 철충들이 바글거리는 마지막 관문.

하지만 저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제대로 된 보급 물품도 없던 마당에 이곳이 철의 탑과 완벽하게 같으리란 상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위험한 게 없길 바랄 수 밖에.

 

트리아이나가 거북목 같던 고개를 쭉 빼들고 진동이 전해지는 쪽의 그림자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관찰했다.

 

 

 

“일단 안에 철충은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약간 밝은데?”

 

“밝다고?”

 

 

 

그림자가 밝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 역시 카메라가 비추는 광경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희마한 어둠 속에 작은 알갱이처럼 박혀 있는 빛들. 전등이라기보단 반딧불들처럼 보인다.

저런 게 여기 있을 리가 없단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가운데, 트리아이나는 성큼 성큼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씩, 천천히 가까워지는 반딧불들.

그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열되어 있는 방들을 꽤 많이 지나쳤음에도 저 빛 알갱이는 가까이 다가올 기척조차 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또 다시 강렬한 진동이 성채를 스치고 지나갔다.

쿠구구구구.

 

 

 

“... 아.”

 

 

 

저것의 정체를 생각하면서, 나는 패널 위의 지도로 그녀가 걸어간 궤적을 살폈다.

온전히, 일직선으로 걸어가며 그녀는 지도에 업데이트 되지 않는 그림자로 들어갔고, 그 모습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문지기’가 있는 곳. 그녀가 거기에 도착했음을.

 

반딧물인 줄 알았던 것들은, 별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별들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곳.

마치 거대한 궁전 속 알현실을 보는 듯한 쭉 뻗은 방 안에서, 왕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한 초록색 구 하나가 놓여 있다.

구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생생한, 마치 고깃덩어리 같은 질척거림이 쿡, 쿡, 심장처럼 격동하며 연결되어 있는 수천 가닥의 관으로 녹색의 액을 퍼트리고 있었다.

 

 

 

“저게... 코어인가?”

 

 

 

나는 워울프가 남겨놓고 간 좌표와 트리아이나의 위치를 대조해보았다.

일치율 99.992%.

 

 

 

“그런 것 같네.”

 

“...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조금 무서워지는데?

나도 살면서 저렇게 큰 심장은 처음 보거든. 저렇게 크고... 초록색인 심장은.”

 

 

 

하긴, 저런 걸 직접 목격한 사람은 지구 전체를 둘러봐도 찾기 쉽지 않을 거다.

 

나는 트리아이나에게 챙겨온 물품들을 꺼내 놓으라 말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주머니에서 투두둑 떨어지는 기계 장치들. 그녀는 그 중에서 작은 발판 같은 것을 꾹 하고 눌렀다.


츠즈즈즛.

작은 스파크가 튀는 듯 하더니, 이내 패널 위로 다른 화면이 툭 튀어 올랐다.

홀로그램 투영 수신기. 내 모습을 푸른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띄우는 일종의 화상 통화기다.

마치 내가 거기 있는 듯한 감각.

360도 전방위를 볼 수 있는 카메라 화면으로 나는 성채의 얇은 유리창을 응시했다.

바깥의 전경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 이러니 워울프가 밖에서도 코어를 볼 수 있었겠지.

 

 

 

“... 사령관.”

 

 

 

트리아이나가 돌연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여긴 뭔가 이상해.”

 

“이상하지 않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그런 얘기가 아닌 거 알잖아.

코어라는 게 엄청 핵심 부품이라면서?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방해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말이 돼?”

 

“없었던 게 아니라 피해서 온 거야.”

 

“그걸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지도가 끊겨 있던 부분에서 이곳까지 우리는 일직선으로 들어왔다.

철충은커녕, 도중에 우릴 방해하는 함정조차 없었다.

 

 

 

“... 일단 저걸 부수는 것부터 해야겠어.”

 

 

 

홀로그램 수신기와 함께 떨어진 기계 장치 중 하나를 집으며, 트리아이나가 조심스럽게 코어로 걸어갔다.

 

 

 

“부순다고?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내가 괜히 고래랑 붙어 있었는 줄 알아?”

 

 

 

고래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저건 엡실론이 준 게 분명할 텐데...

하지만 난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다. 매 초당 수십만 요타바이트를 처리해야 하는 탓에 길게 통화할 수 없었던 탓이다.

다만, 그 녀석이 헛소리를 할 만한 애는 아니다.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저벅.

불길한 발소리가 내 사고를 어지럽힌 것은 그 때였다.

 

 

 

“역시 이곳까지 왔군요.”

 

 

 

어둠 속에서, 그림자 같은 장발의 머리카락이 흐드적거리며 내려왔다.

그 뒤로 천천히, 별빛을 머금은 붉은 안광이 기둥의 위에서부터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성하께서 말씀하신 이단자.

탑을 타고 올 거라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지만 결국 당신이 오게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 얘기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미소가 그을린 듯이 붉게 번진다.

 

 

 

“저희도 모두 대비를 해놨다는 얘기지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조금만, 대화를 해볼까요?”

 

 

 

추기경. 

엔딩 없는 컨텐츠 속의 엔딩 속에서, 녀석이 마지막 ‘문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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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게 된 건 반갑습니다. 헌데... 홀로그램이라?

직접 올 용기가 없었던 건가요?”

 

 

 

놈이 마딱잖은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길... 이런 경우만큼은 피하려고 했었는데. 우린 아직 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미지는, 으레 공포로 번지기 마련이다.

 

 

 

“... 사령관.”

 

 

 

트리아이나가 속삭이듯이 나를 불렀다.

몇 번이고 숨을 씹으며 내뱉은 말. 자신은 아직 괜찮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가냘프게 떨려오는 목소리는 이미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었다.

물론, 합리적인 선택이다. 놈의 홈그라운드 위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간 무슨 짓을 당할 지 모르니까.

 

 

 

“... 그래요. 위대한 창조주께서 미천한 피조물 따위를 직접 대면할 이유는 없으시지요.”

 

 

 

검은색 드레스로 곱게 차려 입은 추기경.

밖에선 지금도 매 순간 수십의 목숨이 사선을 오가는 상황인데, 놈의 차림은 마치 고풍스러운 유럽 귀족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조심스럽게 홀로그램 수신기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더니, 궁금하다는 듯이 이리 저리 돌려 보았다.

쩌적!

놈이 살포시 손가락에 힘을 주자 수신기에 균열이 일었다.

일순 내 신형을 담은 홀로그램이 저적거렸고,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놈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닥에 내려 놓았다.

 

 

 

“실로 감탄스러운 끈기입니다. 인근 시설은 전부 부숴버렸을 텐데 꾸역꾸역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행여 제가 놓친 곳이 있었을 지요?”

 

“... 뭐, 덕분에 고생 좀 했어. 누구 때문에 발품 좀 팔았거든.”

 

 

 

내 말에 추기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짙은 묵빛과도 같은 장발. 우주의 암흑 속에서 그을린 듯이 칠흙빛은 별빛에 닿으며 조금씩 푸른색을 띄었다.

마치 엡실론을 연상시키는 듯한 헤어 스타일.

가슴이 반쯤 드러나는 드레스에 기다란 스타킹을 입고 있는 녀석은 먼지투성이가 된 채 구석에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트리아이나와 너무도 대비되었다.

 

 

 

“이 땅에 있는 자들 중, 고생 정도로 이곳에 닿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적어도 목숨을 걸어야지요.”

 

“누가 들으면 우리가 콧노래 부르면서 산책 온 줄 알겠네.

우리도 나름대로 목숨을 걸면서...”

 

“목숨? 지금 저것을 말하는 겁니까?”

 

 

 

놈의 왼쪽 팔이 기형적인 꾸물거림으로 일렁이더니, 이내 순식간에 기다란 창처럼 변했다.

날 끝에 도는 완연한 광택. 꼭 강철로 만들어진 듯이 섬뜩하게 번쩍이던 창의 끝 부분은 트리아이나의 목 끝부분을 가리켰다.

 

아주 조금, 놈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트리아이나의 목 위로 실처럼 얇은 상처가 생기며 피를 흘렸다.

 

 

 

“이쪽은 두 명의 추기경을 잃었습니다. 하나는 만백성과 상처받은 이들의 구원자셨고, 다른 하나는 그의 후계였지요.

그런데 고작 해야 살덩어리 인형이라니.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못해도 직접 올라오셨어야지요.”

 

“... ... 손 치워라.”

 

“명령이십니까?”

 

“그래. 명령이다.”

 

“오호... 창조주의 명이라. 그리 하다면 기껍게 손속을 거두도록 하지요.”

 

 

 

놈은 그렇게 말하며 창으로 변한 자신의 팔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혈관, 급격한 수축과 이완으로 살결 전체에 물결 무늬의 상처가 일었고, 이내 몇몇 부위에선은 퍽 퍽 거리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다시 돌아온 팔 위에, 근육이 찢겨진 부위에서 푸른 물감을 떨어뜨린 듯이 멍이 생겨났다. 단지 기괴하리만큼 비상한 회복력 덕분에 그새 치유되었을 뿐.

 

자신의 목을 더듬는 트리아이나를 보며 나도 거칠게 숨을 내셨다. 겁에 질린 그녀가 추기경을 상대로 대단한 무용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코어를 부술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두긴 했지만 저 정도 크기 앞에선 요원한 일이다. 

눈 앞이 캄캄하다.

 

그런 내 얼굴을 읽은 것인지, 추기경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두려우십니까?”

 

“... ...”

 

“응당 그러시겠지요. 그리 아껴 마지 않는 아이를 이 먼 타지에 보내셨으니 어찌 공포스럽지 않겠습니까?”

 

 

 

놈의 시선이 트리아이나의 새하얀 목덜미로 향했다.

붉은색으로 손톱을 칠한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지그시 올렸다.

 

 

 

“아아, 제가 조금만 강하게 쥐어도 바스러질 목입니다. 스치듯이 베어도 피를 흘릴 살입니다.

두 추기경을 상대해보셨으니 당신께서도 이해하시겠죠. 추기경에게 바이오로이드란 그런 존재라는 것을.”

 

“... ...”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습니다.”

 

“... 이해한다.”

 

 

 

내 대답을 들은 추기경이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허면, 이 아이를 사지로 보내셨다는 것을 인정하시겠지요?

자신이 직접 오는 대신 말입니다.”

 

“이곳에 오는 건 트리아이나가 직접 요청한 일이다. 난 단지 그 요청을 받아들여줬을 뿐...”

 

“불길 속에 타죽고 싶다는 요청을 허하신 게지요.

이곳에 오면 저를 만나게 될 것을 알려주긴 하셨습니까?”

 

“... ...”

 

 

 

비수처럼 날아드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추기경이란 게 얼마나 기이하고 기괴한 존재인지 당신이라면 알고 있었겠죠. 

여왕과 카르디아 같은 조언자가 곁에 있고, 이 성채를 감시하는 수천 개의 눈이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져다 주었을 테니까.

허나 이 아이는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위로 올라가고 싶다 꿈 꿨을 뿐이고, 그 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요.

당신은, 그저 이 무지를 이용했을 뿐입니다. 이 위험한 곳에 발을 담그기 싫어서.”

 

"... 내 탓이라 하고 싶은 거냐?"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하란 얘깁니다.

이 광활한 우주 앞에선 당신도 이전 사령관과 다를 바 없음을."


 

 

내 환영을 바라보며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추기경.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트리아이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아닌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철충의 언어는 저릿한 잡음으로 들리니 그런 것이겠지.

그럼에도 트리아이나는 피 흘리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용기를 내어 놈의 말을 끊어냈다.

 

 

 

“시... 시끄러워!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령관은 그냥 나를 올려 보내줬을 뿐이라고!

설령 내가 죽게 되더라도 그건 사령관 탓이...”

 

“우둔한 꼬마야.”

 

 

 

콰직!

어느새 트리아이나에게로 다가간 추기경이, 일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수신기 밖으로도 들려오는 섬찟한 우직거림. 분명 손목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눈을 떠라. 창조주는 너를 버렸다.

이곳이 위험한 땅임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을 대신하여 너를 보낸 것이다.”

 

 

 

신경을 타고 흐르는 불타는 듯한 격통에 트리아이나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입술을 씹었다.

씹은 자리가 찢기고 피가 흘러 턱을 타고 흘렀다.

 

 

 

“내...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왔을 뿐... ... 사령관은 아무 잘못도... 크헉!”

 

 

 

으드득!

추기경이 다시 한 번 쥐는 손에 힘을 주자, 손목이 힘없이 허공에 늘어졌다.

 

 

 

“기이한 말이구나. 불꽃에 타죽고 싶다 하여 장작을 모아오는 부모가 있더냐?”

 

“으... 으으으...!!”

 

“지키고자 했다면 응당 그 무모한 꿈으로부터도 보호 했어야지.

그것이 너희가 말하는 ‘사랑’의 의무 아니었나?”


 

 

추기경의 손 틈으로 터질 듯이 붉어진 트리아이나의 손목이 보인다.

몇몇은 이미 보랏빛으로 물든 상태. 인대, 근육, 관절, 전부 다 엉망이 되었다는 얘기다.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 쉴 새 없이 흘려대는 식은땀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때, 트리아이나가 추기경 너머의 나를 흘겨 보았다.

정말이냐고, 자신을 버림말로 보낸 거냐고,

그녀가 그리 말했을 리 없지만, 나는 그 눈빛을 그렇게 해석했다.

 

잔인하게도, 추기경의 손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트리아이나를 쥐고 있던 추기경의 손 주변으로 혈관이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이윽고 그 끝이 기다란 주사 바늘 같은 것으로 변하며, 트리아이나의 몸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꿈틀거렸다.

 

 

 

“꼬마야. 입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이곳까지 올라오며 네가 각오했던 ‘위험’이라는 건, 대체 뭐였느냐.”

 

“커... 커흑!!”

 

“자신들의 임무를 빼앗겨버린 오르카의 텃세? 비행 중 사고로 터져버리는 죽음? 

그도 아니라면, 모험 끝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릴 허망함?

만약 그리 생각했다면, 내 친히 가르쳐주마.”

 

 

 

실지렁이처럼 흐느적거리던 혈관들이, 순식간에 트리아이나의 손등 위를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반쯤 죽어버린 트리아이나의 손 안쪽 혈관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며 자리를 잡던 것들이, 이내 각이 지며 하나의 회로 같은 것을 형성했다.

 

 

 

“이 ‘감염’ 성채에서 네가 겪을 위험이란 건, 네 상상 이상임을.”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놈이 지금 트리아이나를 ‘감염’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점차 철충처럼 검게 변해가는 트리아인의 손등을 보며, 결국 내 쪽에서 먼저 손을 들었다.

 

 

 

“... 그래! 인정한다!”

 

 

 

내 말에 움직임을 멈춘 추기경이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그 애를 실험용으로 보낸 거, 인정한다!

알려줘야 할 위험을 알려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 애가 먼저 나선거란 거, 인정한다!”

 

“... 오호라. 이 세계에 마지막으로 남은 창조주의 입에서 나오기 참으로 기꺼운 말입니다.”

 

“인정했잖아! 그러니까 당장 풀어주라고!!”

 

 

 

내 말에 추기경은 통쾌하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었다.

초승달 같은 호를 그리는 눈썹. 녀석이 나를 향해 몸을 돌리자 드레스가 빙그르르 회전했다. 

그 모습이 마치 즐거운 소식을 들은 귀부인처럼 고아했다.

 

 

 

“아아, 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이 땅의 마지막 생존자가 드디어 창조주의 위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으니 이 어찌 기쁜 날이 아니겠습니까?

바깥이 조금 소란스럽긴 하나, 저기 들리는 비명 소리 역시 이단자의 입교를 환영하는 교향곡이겠지요.”

 

“교향곡...?”

 

“창조주의 우직한 뜻을 따르기 위해 한 데 모여 죽음을 불사르는 나방 같은 저들의 목소리.

당신에게는 들리지 않는 겁니까? 조금이지만 안타깝군요. 후후.”

 

 

 

녀석이 하는 얘기에 나는 잠시 꺼놓았던 엡실론의 데이터를 확인해보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분류시켜 보냈음에도 어느새 산처럼 쌓여 있는 데이터들.

그 중 몇몇 음성 기록들을 확인해보았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죽기 싫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오르카에 사령관이란 사람은 대체 어디 있는 건데!]

[젠장... 젠장... 젠장!!!]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수천 명의 비명 소리.

 

[설마 말만 그렇게 하고...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않은 거 아냐...?]

[뭐야... 우린 그냥 버림말로 썼던 거야?]

 

자신들의 목숨을 소모품처럼 써버린 인간을 향해 원망하는 아이들의 목소리.

원거리 포격을 위주로 전술을 바꿨음에도 시시각각 늘어가는 사망자들이 그나마 그 원한들 사이에 공백을 만들어주었다.

원망보다도 끔찍한 공백을.

 

절망감. 무력감. 후회. 한탄.

하나의 단어로 서술할 수 없는 것들이 내 등골을 벌레처럼 갉아먹기 시작했다.

허나 나는 내색할 수 없었다.

 

 

 

“이단자여.”

 

 

 

추기경은 아직도 트리아이나의 몸 속에 회로를 쑤셔 박은 채로 있었으니까.

간을 보고 있는 거다. 입교를 환영한다 어쩐다 하는 것도 전부 개소리다.

내가 변할 때까지, 사랑이란 감정을 볼모 삼아 내가 누구 하나를 희생시킬 때까지, 추기경은 이 짓거리를 반복할 셈인 것이다.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첫째, 이 우둔한 피조물을 희생시키십시오. 그렇다면 내 친히 성채의 병력을 뒤로 물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매 순간 죽어가는 수천의 목숨을 살릴 수 있겠지요.”

 

“... 우리의 병력은 너희를 압도한다. 그깟 공갈 따위에...”

 

“그 ‘병력’ 때문에 지금 이러는 거 아닙니까?”

 

“... ...”

 

“당신 같은 자에게 압도적인 머리 수는 이점이 아닙니다. 발목을 붙잡는 짐일 뿐이지요.

본디 성하의 축복을 받아 입교를 하기 위해선 그런 쓰잘때기 없는 감정은 버려야 하지만, 지금 당장 요구하기엔 당신에겐 너무 가혹한 일일 듯하군요.

일종의 배려라 생각하시지요.”

 

 

 

지난 추기경과의 싸움으로 나에 대한 판단은 다 끝난 것인지, 추기경은 한 마디 한 마디를 벌처럼 쏘아 붙였다.

 

 

 

“... 다른 선택지는 뭐지?”

 

“뭐겠습니까. 이 피조물을 살리고 다른 수천을 죽이는 게지요.

이곳은 감염의 온상이자, 모든 철충의 번식지입니다.

매 시간 수천 마리의 유충이 알을 뚫고 태어나 우주 공간에 널브러져 있는 잔해들을 감염시킬 겁니다.

이쪽의 병력은 시시각각 늘어가겠지만, 당신은 그러지 못하겠지요.”

 

“... ...”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 한 다음, 나는 눈을 돌려 패널 쪽으로 향했다.

철충을 나타내는 붉은색 점들이 성채 주변을 조용히 맴돌고 있다. 우주 전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펼치던 놈들이 전부.

 

숨을 고른 오비탈 와쳐 대원들이 거리를 벌리고 원거리 포격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왜곡장에 막혀 변변찮게 뒤로 흘려갈 뿐. 뚫고 들어갈 만큼의 화력은 모이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추기경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지금의 평화가 어떠냐는 듯이 물어보는 기이한 눈동자. 마네킹의 양각처럼 이질적인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 알았다. 첫째로 하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최선을 다해 트리아이나의 눈을 피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격통에 몸부림치는 눈빛. 지금만큼은 그녀가 철충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비겁하게도 감사했다.

 

 

 

“후후, 좋습니다. 그럼 병력들은 퇴각시켜놓기로 하지요.

저 위에 있는 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목숨을 살린 창조주의 위엄을 소리 높여 칭송할 겁니다.”

 

“헛소리 하지 마라.”

 

“익숙해지시지요. 이것이 성하께서 옹립하신 위대한 본교의 교리입니다.”

 

 

 

마치 신자 한 명을 교회로 데려온 사람처럼, 놈의 얼굴에는 기괴한 종교적 카타르시스가 가득했다.

황홀함을 감추며 나를 향해 품격 있게 허리를 숙이는 추기경. 검은 드레스 위로 트리아이나의 붉은 선혈이 낭자하여 어둡게 빛났다.

 

 

 

“미천한 피조물이 교의 위대한 창조주께 인사를 올리옵니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언제든 ‘명령’해주시길.”

 

 

 

고개를 살며시 들어 반개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놈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놈들의 교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지 아닌지.

만약 내가 트리아이나를 살리라고 명령한다면, 놈은 망설이지 않고 그 즉시 죽여버릴 것이다.

그건 피조물을 ‘지배’하는 창조주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니까.

 

 

 

“그럼 이제 창조주의 뜻을 행하겠나이다.”

 

 

 

물론, 내가 첫 번째 선택지를 택한 마당에 놈이 트리아이나를 살려줄 리는 만무하겠지.

일전에 창으로 변했던 추기경의 왼팔이 이번에는 두껍고 거대하게 일그러졌다.

날의 끝이 뭉툭한 도끼처럼 바뀌어가는 팔, 수천 개의 미세 혈관이 근섬유처럼 굳으며 도끼의 날을 형성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트리아이나는 저 날에 몇 번이고 부딪히면서 목뼈가 으스러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만두라 명령하면 이단자라는 명목으로 죽일 것이다.

완전한 외통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보기 거북하실 터이니 부디 고개를 돌리시지요.”

 

“잠깐.”

 

 

 

하지만,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지. 그 시간만이 일개 바이오로이드가 추기경으로부터 살아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녀석이 눈치채지 않고 조용히 패널을 살펴보았다.

오비탈 와쳐에 있는 데이터에 따르면... 이제 조금만 있으면 된다. 그 전에 녀석을 이곳에서 떠나 보내야겠지만.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멈추라 했다. 창조주의 명령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것이 행여, 이 피조물을 살리려는 불경스러운 짓이라면 그리 해야겠지요.”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생각해 보니까 그거를 굳이 네가 할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무슨 뜻이온지...”

 

 

 

철충 중 가장 약한 나이트 칙도 사람 한 명은 거뜬히 죽일 수 있다.

그러니 트리아이나를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그걸 집행하는 사람이 굳이 추기경일 이유는 없단 얘기다.

 

 

 

“그러니까, 너 말고 다른 애가 대신 하면 안 되냐는 얘기야.

네 조건에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 왜 굳이 다른 이가 해야 하는 것인지 설명을...”

 

“그런 도끼로 하는 건 조금 뻔하잖아.

나는 조금 색다른 모습을 원하거든. 그 정도면 이유가 되겠지?”

 

“... ...”

 

 

 

추기경은 말없이 나를 찌푸린 눈으로 응시했다.

그래. 의심스럽겠지. 애들 때문에 못 죽어 살던 사람이 한 순간에 색다른 모습의 처형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창조주의 마음이라는데 뭐로 반론할 수 있겠나?

지금이라도 내 말을 무시하면 그대로 죽일 수 있겠지만, 놈은 지금 상황이 온전히 자신에게 유리하다 믿는 상태.

전시 상황에 교리가 어쩌니 하는 모습을 보면 녀석을 절대 이걸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 그러지요. 마침 좋은 실험체가 하나 있습니다.”

 

"실험체?"


 

 

하지만 놈도 내가 생각했던 만큼 호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추기경이 손을 들어 박수를 세 번 치자, 천장 위 어디선가 쿠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 속에서 곧 이어 모습을 들어낸 존재는,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다.

 

자주색 촉수 수십 개를 팔 다리처럼 흐느적거리는 존재. 보라색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홀로 빛을 냈다.

족히 3m는 될 법한 크기. 약간 투명한 살덩어리 안에서는 뼈와 내장, 그리고 심우주 같은 기괴한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람피스. 데우스의 제 2 위계 서기관.

창조주께서 색다른 처형을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속히 봉사하도록 하시죠.”

 

“저건 대체... ...?”

 

“놀라지 마시지요. 운 나쁘게 몰락해버린 실험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성하께서 말씀하신 명령을 따르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이지요.”

 

 

 

하나뿐인 눈을 반짝이며 추기경 앞에 조용히 조아리는 녀석.

짐승처럼 생겼지만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것인지 화난 늑대처럼 으르렁대던 놈은 순한 양처럼 모든 촉수를 땅으로 내려놓았다.

너무도 작은 체구에 눈치채는 것이 늦었지만 난 그 모습을 보고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별의 아이’다.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녀석이 트리아이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목과 연결된 아랫턱을 쩌억 벌리자 추기경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이라면 창조주께서도 충분히 만족하실 것이라 믿고, 미천한 존재는 교황 성하의 명을 완수하러 그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 교황이 대체 뭘 명령한 거지?”

 

“많은 것을 말씀드릴 수는 없사옵니다만, ‘신으로의 화(化)함’이 그 목적임은 밝히겠습니다.”

 

“신이라...”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

주변에 알터리움이 널려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여왕의 말이 맞았다. 

교황은 스스로 별의 아이가 되려고 한다.

순간 엄습해오는 충격에 내색하지 않으려 나는 얼굴에 힘을 바짝 주었다.

 

나에게 다시 한 번 공손한 인사를 남기며, 추기경은 괴물이 뚫고 나온 통로를 향해 위로 향했다.

이런 말도 통하지 않는 괴물에게 맡기면 내가 트리아이나를 살릴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겠지.

 

놈은 트리아이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다음 주변을 서서히 배회했다. 새로 만난 생물체를 탐색하려는 본능만 남은 것처럼.

트리아이나는 나를 조심스럽게 쳐다본 다음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래 별의 아이를 보면 누구라도 공포를 느껴야 하지만, 저것이 그 능력까진 복사하지 못한 모양이다.

 

 

 

“트리아이나, 손목은 괜찮아?”

 

“버티려고... 버티려고 한다면... 버틸 수는 있어.”

 

 

 

그녀는 자신의 옷깃을 찢어 곧장이라도 잘릴 듯이 흐느적거리는 손목을 동여맸다.

그럴 때마다 으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년간의 모험의 경험이 고통을 인내하는 능력을 길러준 것 같다.

그러고는 서서히, 최대한 피식자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트리아이나도 일어서 놈을 마주하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걸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저걸 이길 방법은 없는 것 같은데...”

 

“생각이 있어. 일단 코어 뒤쪽으로 붙어봐.”

 

 

 

내 말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초록색 구를 향해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잠시 뒤, 트리아이나의 뒤통수에 코어가 톡 하고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에 당황해 하는 트리아이나. 하지만 나는 그녀의 개인 카메라를 통해 주변 지형을 찬찬히 살폈다.

 

물컹거리는 살덩어리들. 코어 주변을 제외하면 발을 딛고 서기도 힘들 정도로 말랑말랑하다.

이거라면 된다. 후사르와 스파토이아에게는 시기가 됐다고 말해줄 때가 됐다.

이윽고 마치 내 생각을 증명해내듯이,

 

쿠구구구구구.

 

성채의 코어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사, 사령관! 이게 대체...!!”

 

“조금만 버텨!”

 

 

 

오비탈 와쳐의 성채 관찰 목록.

그 중에는 성채의 생물체적 특성을 다룬 항목이 있었다.

 

[성채는 코어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일종의 괴생물체다.]

[현재까진 어떤 원리로 성장하는 것인지, 성장 이후 내부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관찰했는데,]

 

이곳으로 들어오기 직전,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 다음 부분이었다.

 

[성장 직전, 코어는 일정한 주파수의 진동을 발생시킨다.]

 

맨 처음에 들려왔던 진동. 나는 그걸 녹음해 엡실론에게 보냈고, 내가 첫 번째 선택지를 택한 덕분에 여유가 생긴 엡실론은 그걸 분석해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이제 곧 성채가 성장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성장 방식이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안심해. 트리아이나.”

 

 

 

오늘은 더 이상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같이 있을 테니까.”

 

 

 

콰르르르르!!

 

탐색을 마친 놈이 짐승 같은 괴성을 내지른 뒤 트리아이나를 향해 돌진했다.

앞길을 가로 막는 기둥들은 모조리 부숴버리며, 코어를 향해 자신의 기다란 촉수를 재빠르게 휘둘렀다.

순간 소닉붐이 일 정도의, 채찍과도 같은 움직임. 촉수의 길이를 생각하면 분명 다음 순간에 트리아이나의 목이 떨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는 빠른 것이 있었다.

 

쿠르르르?

 

[최근에 성채의 확장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되고 있다.]

 

쿠르라라라라!!

 

[수백 미터 급 정거장이었을 땐 성장을 거의 체감할 수 없었지만, 킬로미터 단위로 성장한 이후부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만일 지금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성장이 진행된다면.]

 

추기경이 만든 별의 아이가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으나 밀려드는 격벽의 파도의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속도는, 아마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물에 담가둔 건미역처럼 불어나던 성채는 한 순간 진동을 멈추고 다시 잠잠해졌다.

물론 그 규모가 규모였던 터라 거대한 기계음들이 마치 작은 잡음처럼 들렸다.

괴물은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휩쓸려버렸다. 어디선가 작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마 저 어딘가에서 애먼 벽이나 부수고 있겠지.

 

 

 

“하아... 하아...

사... 사령관... ...?”

 

 

 

가까스로 그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그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이미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 된 손목을 바라보던 트리아이나.

저런 손으로 성채의 성장 진동을 견뎌야 했으니 아마 손목뿐만 아니라 팔 전체가 엉망이 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 아... 안 들리는 거야? 사령관! 내 말에 대답 좀 해줘!”

 

 

 

애타게 내 목소리를 찾고 있는 그녀였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아니, 그녀보다 빠르게 몇 번이고 부르짖었지만 성채가 성장하는 동안 수신기가 망가져버린 것이었는지, 아무 말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 하하... 아, 안 들리는 구나...

...

... 혼자가 모험하기 편하다곤 했지만, 이렇게까지 혼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투둑,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몇 방울 쏟아졌다.

아파서 그런 것인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인지. 한 순간 고요해진 방 안에서 그녀는 엉망이 된 팔로 자신의 눈을 닦아댔다.

 

유리창이 남아 있는 방 안, 코어는 마치 잠에 빠진 듯이 조용히 맥동했다.

트리아이나는 말없이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지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 ... 사령관. 보여? 지구야. 사령관이 있는 별.

... 예쁘네. 우리 별...”

 

 

 

자신의 모험이 마침내 끝에 도달했다는 듯이, 잔잔한 미소를 짓는 트리아이나.

비틀거리며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목을 유리창에 가져다 대던 그녀가 그 자리에 픽 하고 쓰러졌다.

 

힘겹게 눈을 뜬 채 숨을 몰아 쉬는 트리아이나.

그런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완전히 깨져버린 헬멧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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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글이 왜 이렇게 안 써지는지 몰루겠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