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그날 저녁, 오메가의 공격을 격퇴한 오르카호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에게 들러붙은 피로와 긴장을 떼어내고 있었다. 비전투병과라서 일선에 나서지는 않은 이도 몇몇 있었으나, 그런 이들도 전체의 위기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전투를 하고 돌아온 이들을 융숭히 맞이했다. 소완이 저녁 식사로 내놓은 안심 스테이크와 훈제 청어, 아우로라가 만든 딸기 로마노프라는 최고급 식사로 하루의 노곤함을 털어낸 이들은 각자 휴식시간을 만끽하러 떠났다.

 

“칸,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다치지는 않았죠?”

 

“당신이 걱정해준 덕분에 무사해.”

 

휴식시간은 칸과 리마토르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호드가 귀환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호드의 숙소 앞에서 기다리던 리마토르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칸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칸 역시 그와 생각이 다르지 않았기에 둘은 칸의 개인실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서로의 흔적을 새겼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칸이 그렇게 많이 서운한 것도 모르고 제가 실언을 했네요.”

 

“흐음, 미안하다는 말로 다 끝난 거야?”

 

“그럴 리가요. 칸이 기분 나빴던 거 풀어주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리마토르는 그렇게 말하더니 칸의 손을 잡았다. 전선에서 살아가는 군인의 손이지만 부드럽고 고운 칸의 섬섬옥수에 깍지를 낀 그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이서 분위기 잡아보려고 하는데, 같이 걸을래요?”

 

그의 말을 들은 칸은 살짝 볼을 붉혔다. 눈이 호선을 지으며 그녀는 장난기 한 스푼을 담은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이거 데이트 신청이야?”

 

“아, 그렇게 들렸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리마토르는 말꼬리를 흐렸다. 부끄러움과 사랑이 얼굴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을 본 칸은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래, 같이 데이트하러 가자. 장소는 정해놨지?”

 

“어디 걸을지는 생각해놨지만 칸이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좋아요.”

 

“난 당신 가는 데만 따라가고 싶어.”

 

칸이 그의 손을 쥔 손깍지에 지그시 힘을 주면서 그를 바라보자 리마토르도 그녀의 손을 꼬옥 쥐었다. 어느새 귀가 새빨개진 칸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한 그는 준비해둔 곳으로 출발하고자 문을 열었다.

 

“다들 푹 쉬도록. 잠시 나갔다 올 테니 긴급한 상황 외 업무는 부관인 페더에게 일임한다.”

 

칸이 호드 대원들에게 외출 사실을 일러두자 세상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큐브를 돌리던 스카라비아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둘이서 데이트 나가?”

 

“뭐?”

 

스카라비아의 말에 호드 전원의 눈이 둘에게 쏠렸다. 탈론 페더는 눈보다 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얼굴에 홍조를 띄운 리마토르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아, 아니! 딱히 데이트는 아니에요!”

 

“흐음, 아니었어~?”

 

당황해하는 리마토르를 골리는데 자연스럽게 동참한 칸은 그의 어깨에 팔을 얹어 감으면서 물었다. 말꼬리를 길게 빼면서도 고혹적인 눈매로 자신을 바라보는 칸에게 눈을 돌리지 못한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당신이 데이트가 아니라면 오늘은 그만해야지. 난 들어가서 쉴게.”

 

리마토르가 답을 꺼내지 않자 칸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깍지 꼈던 손을 풀었다. 그녀가 발걸음을 돌리자 당황한 리마토르는 여태까지 부인하던 내용을 바로 뒤집어서 그녀를 잡았다.

 

“맞아요! 데이트 맞으니까, 오늘은 들어가지 마요...”

 

그로부터 듣고 싶은 답을 들은 칸은 입꼬리를 위로 올리면서 다시 그와 팔짱을 꼈다. 종이 한 장 들어올 간격도 없이 딱 달라붙은 그녀는 그를 바라보면서 속삭였다.

 

“첫 데이트네.”

 

“...그렇죠.”

 

어느새 서로의 얼굴에 주홍빛 연구를 한 흔적이 남자 호드 대원들은 모두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방을 나가자 카라멜 팝콘을 입에 넣던 워울프는 하이에나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을 끼워 넣었다.

 

“아무래도 교수는 대장한테 잡혀 살 거 같은데?”

 

“그러게나 말이야. 폭탄처럼 빵빵 터지는 재미가 없으니까.”

 

“그래도 교수님은 은근히 챙겨주는 매력이 있지 않으신가요?”

 

나초에 칠리 소스를 찍어 입으로 가져가던 케시크가 심드렁한 하이에나에게 의견을 말하자 샐러맨더가 붉은 눈을 뜨면서 질문을 찔렀다.

 

"칸 대장의 과거라서 취향도 같은 거야? 대장은 NTR을 주의해야겠는 걸~"

 

“그게 아니죠! NTR로 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대장님도 로리 칸 대장님도 모두 같은 존재라는 사실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3P을 하는 거에요!”

 

탈론 페더가 눈에 하트까지 띄워가면서 탈론 허브 랭킹 1위를 찍을 법한 발언을 하자 퀵 카멜이 치즈 팝콘을 한가득 집어 탈론 페더의 입을 막았다. 츄러스를 한 입 깨문 퀵 카멜은 스카라비아를 보면서 물었다.

 

“두 분을 위해서 이벤트 하나 준비해볼래? 괜찮은 물건 있으면 하나만 꺼내줘.”

 

“음... 찾아볼게.”

 

언제나 피곤에 절어있는 스카라비아가 웬일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자 다들 재밌는 모습을 볼 것 같다는 생각에 탈론 허브 스트리밍 준비를 시작했다.

 

 

 

그 시각, 리마토르는 여전히 홍조를 붉힌 채 칸과 복도를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갈지 정해두기는 했으나 칸과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모든 바이오로이드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자 그는 얼굴에서 좀처럼 붉은색을 지우지 못했다.

 

“리마토르, 얼굴이 많이 빨가네?”

 

칸은 그의 은근한 쑥맥 기질을 즐겼다. 팔짱에 몸을 더욱 밀착한 그녀는 리마토르의 얼굴이 더 새빨갛게 물드는 걸 보며 쿡쿡 웃었다.

 

“뭐야, 이런 경험 처음이야?”

 

“그렇죠...”

 

리마토르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자 칸은 놀리는 것도 이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의 팔에 몸을 밀착한 그녀는 지금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카페 아모르 한 번 들러요. 훌륭한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연락을 넣어뒀거든요.”

 

“케이크 좋지. 이번에도 크림 닦아주기 할래?”

 

“그, 공공장소니까 자제해주세요...”

 

그만 놀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쑥맥 반응을 보는 재미를 멈추지 못한 칸은 다시 장난을 걸었다. 공공장소를 내세워 거절을 표한 리마토르 역시 부끄러움에 그런 말을 했지만 내심 칸과 그런 달달한 관계회복을 바랐기에 케이크를 포장해서 방으로 갈까 생각했다. 동상이몽이 교차하는 사이, 바니걸을 입은 아스널이 카페에 도착한 둘을 환대했다.

 

“어서 오도록. 케이크라면 잘 준비해뒀다.”

 

아스널이 손짓을 하자 3단 케이크가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모습에 케이크를 본 칸도, 발주를 넣은 리마토르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스널은 호탕하게 웃더니 둘을 보면서 선을 그었다.

 

“오르카호 내부 공식 커플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케이크라고, 순순히 내어줄 수는 없어.”

 

“네? 분명 200 참치나 냈잖아요?”

 

“참치는 노동에 대한 타당한 대가지. 하지만 그 노동은 육체 노동에만 해당할 뿐 감정 노동까지 포괄하지 않아. 우리 카페 아모르 직원들의 케이크 감정 노동까지 지불해야지 않겠어?”

 

“아스널, 케이크를 만드는데 감정 노동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처음 듣는군. 케이크가 수라상이라도 되는 건가?”

 

아스널이 궤변을 꺼내자 리마토르와 칸 모두 납득하지 못했다. 칸이 원하는 걸 빨리 말하라는 투로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아스널은 말을 더 질질 끌지 않았다. 아스널은 왼손에 들고 있던 스탠딩 마이크를 기울이면서 제안을 꺼냈다.

 

“리마토르, 칸을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노래 한 곡 부르는 건 일도 아니겠지?”

 

“저, 노래는 자신 없는데요...”

 

아스널의 제안에 리마토르는 난색을 표했다. 합류한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는 아직 합류 초기에 있었던 저녁 만찬 사건의 기억이 아직 뚜렷했었다. 하지만 아스널은 그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신이 없다는 사람이 뮤지컬 주연을 했다는 게 말이나 돼? 

 

뭐, 노래가 어렵다면 다른 선택지도 있지. 대신 그건 칸의 몫이야.”

 

“나?”

 

아스널은 무슨 일인가 하는 칸을 향해 씨익 웃더니 바니걸 복장을 내밀었다. 아스널이 뭘 요구하는지 말하기도 전에 파악한 칸은 그녀답지 않게 당황한 낯빛을 비쳤다.

 

“칸이 바니걸 복장을 입는다면 허락해주겠어. 어때,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

 

“충분히 나빠! 그렇지, 리마토르?”

 

칸은 리마토르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으나, 리마토르는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신, 뭘 고민하고 있는 거야?”

 

“잘 생각해보니 칸이 바니걸 복장을 할 기회는 적을 거 같아서요. 나쁘지 않은 조건 같은데요.”

 

“한다는 소리하고는...!”

 

기가 찬 칸이 리마토르도 남자인 건 못 속인다면서 혀를 내두르자 아스널이 귓속말로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이거 입으면 오늘 밤에 끝까지 갈지도 몰라. 사령관도 바니걸 복장에 바로 넘어갔잖아.”

 

그 말을 들은 칸은 어금니를 악물면서 생각을 굳혔다. 사령관이 일전에 바니걸 복장에 빠진 건 사실이나, 역바니에 더 환장했었기에 칸은 이 제안을 수락하면 역바니까지 가야할 거라는 계산에 자연스럽게 도달했다. 역바니를 한 자신의 모습은 분명 길이길이 부끄러운 흑역사로 남을 테지만, 그 창피함보다 리마토르와 같이 보낼 수 있는 정사의 시간에 더 마음이 기운 그녀는 결국 아스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한 번만이야.”

 

“정말? 무르기 없기다.”

 

아스널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칸에게 바니걸 복장을 내밀었다. 옷 치수를 보던 그녀는 자신의 치수에 딱 맞게 제작된 맞춤의상을 보고 아스널에게 처음부터 계획한 거냐고 물었다.

 

“계획은 했지만 치수는 리마토르가 알려준 거야.”

 

“뭐? 리마토르, 당신이 내 신체 사이즈는 어떻게 알고...”

 

칸의 질문에 리마토르가 눈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자 칸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오늘 밤은 재우지 않을 거라고 각오를 다지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자 카페 아모르에는 감탄과 놀람, 경외의 눈빛이 교차했다.

 

“...어때?”

 

“와...”

 

리마토르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감탄사만을 흘렸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부들부들 떨던 칸은 그를 보면서 대답을 요구했다.

 

“겨, 겨우 감탄만 할 거야?”

 

“...진심으로 아름다워요.”

 

리마토르가 머릿속에 가득 찬 감정을 전부 형용하지 못하고 압축해서 말하자 칸은 성에 차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다가가 목에 팔을 두른 그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시선을 교환했다.

 

“더 구체적인 대답 없어?”

 

리마토르는 머릿속이 혼란해지는 걸 느꼈다. 삐진 칸의 마음을 풀어주려 기획한 데이트에서 뜻밖의 바니걸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게다가 바니걸을 한 칸의 모습이 상상 이상의 황홀경이었기에 그의 머리는 이성적인 판단 대신 감성적인 감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말을 포장하려고 애쓰던 그는 미사여구를 지우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녀에게 전했다.

 

“지금 이대로 손잡고 결혼식장으로 가고 싶어요.”

 

“....!”

 

그의 말을 들은 칸은 귀까지 선명한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열이 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소화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불시에 화재로 번질 것 같았다. 칸이 무슨 말을 하려 그의 머리를 끌어당기자 리마토르는 그녀의 심장이 매우 빠르게 쿵쾅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심장도 별반 다르지 않게 뛰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심장박동과 헷갈린 건가 의문도 들었다. 칸은 그의 귀에 입술을 갖다 대더니 숨결에 바람을 담아 속삭였다.

 

“웨딩드레스는 이것보다 더 예쁠 거야. 이 옷으로 갈 곳은 침대지.”

 

리마토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도 그녀처럼 귀까지 적색으로 물들이고 그녀의 등 뒤로 팔을 둘러 안아줄 뿐이었다. 주변에서 다른 이들이 직관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그러고 있는 둘의 모습에 아스널은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먹으면서 중얼거렸다.

 

“크, 이게 바로 영화지.”

 

그 말 그대로였다. 탈론허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된 화면은 또 다시 실시간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주변인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었음을 깨달은 칸과 리마토르는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급히 케이크를 포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스널이 짓궂게 먹고 가라고 권유했으나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던 둘이었기에 칸은 옷을 갈아입고 케이크를 받아 바로 밖으로 나섰다.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아스널은 남은 케이크 한 입을 입에 넣었다.

 

 

“....”

 

카페를 나온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여전히 불콰하게 물든 색이 빠지지 않은 서로의 볼은 분위기에 취해 부끄러운 짓을 한 자신들을 책망하는 견책의 신호등인 동시에 서로를 향해 거리를 두라는 횡단보도의 표지였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길 맞은편에서 보고 있기만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에 솔직한 서로였기에, 둘은 가지 말라는 빨간 볼의 신호등에 신경을 끄고 무단횡단을 했다. 여전히 진한 빨간색 신호등이 들어온 볼을 한 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던 칸과 리마토르는 상대가 불편할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서로를 생각하는 말이 교차하자 둘은 가뜩이나 붉은 뺨에 빨간색을 한 겹 덧대면서 웃었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리자 리마토르는 칸에게 이제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다.

 

“당신이랑 함께 가면 어디든 좋아.”

 

“그럼 걱정이네요. 저 같은 놈 따라서 칸이 지옥으로 가면 안 되는데 말이죠.”

 

“지옥행도 나쁘지 않지. 감옥보다는 낫잖아.”

 

“큭큭, 그게 뭐에요.”

 

시답잖은 말장난을 하는 둘을 먼발치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바라보았다. 파란 머리에 노란 눈을 하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둘을 바라보던 여성은 리마토르와 칸이 발걸음을 옮기자 들킬 새라 조심스럽게 뒤를 밟았다.

 

“리마토르, 아까 사랑노래 부르는 선택지 골랐으면 내가 바니걸 안 입어도 됐잖아. 나 고생시킨 대가로 노래나 들려줘.”

 

“자신 없다니까요. 못 불러도 괜찮아요?”

 

“괜찮아. 못 불러도 뭐 어때.”

 

칸과 리마토르가 손깍지를 끼고 노래방으로 향하자 둘을 쫓던 하얀 여성은 귀에 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팀원에게 둘의 동선을 전달했다. 귀환 조치가 떨어지자 그제야 한숨을 쉬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뺀 여성은 착잡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

 

“언니, 이런 방식이 정말 옳은 걸까요...”

 

멀어져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던 여성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 사이 LRL과 안드바리를 만나 술래잡기를 도와줄 줄은 그녀 본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노래방에 들어선 리마토르는 마이크를 잡고 무슨 노래가 좋을지 목록을 쭉 내렸다. 마땅한 곡을 찾지 못했는지 그는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한 곡을 고르고 그녀에게 말했다.

 

“멸망 전에 노래방 가서 이 노래 부르면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당신 목소리로 들으면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

 

정말 불러도 괜찮냐고 에둘러 물은 걸 이해하고 칸이 받아치자 리마토르는 알겠다며 시작 버튼을 눌렀다. 전주가 나오자 그는 심호흡을 하더니 마이크를 든 손에 힘을 넣었다.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감히 제가 감히 그녀를 사랑합니다

조용히 나조차 나조차도 모르게

잊은척 살아간다는건 살아도 죽은겁니다

 

세상의 비난도 미쳐보일 모습도

모두 다 알지만

그게 두렵지만 사랑합니다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신가요

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께요

허나 그녀만은

제게 그녀 하나만 허락해 주소서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신가요

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께요

허나 그녀만은

제게 그녀 하나만 허락해 주소서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없는 제 사랑을 알고 계신가요

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그녀만은

제게 그녀 하나만 허락해 주소서”

 

 

노래가 끝나자 리마토르는 마이크를 입에서 떼면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뮤지컬을 연습했을 때의 기본기가 여전히 탄탄히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에 칸은 기쁘게 박수를 쳤다. 그가 부족한데 잘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마이크를 건네자 그녀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제 목소리 들었으니까 칸 목소리도 들어야 공평하지 않나요?”


“당신은 내가 바니걸 입은 모습 봤잖아. 그 대가로 노래 들려주는 거 잊었어?”

 

“기억하고 있어요. 그치만 여기까지 왔는데 칸이 부르는 노래를 못 들으면 손해 같아서요.”

 

“훗, 그럼 어쩔 수 없지. 대신 듣고 못 부른다고 뭐라 하지 마.”

 

“제가 누구 노래 실력을 지적할 처지가 되나요. 칸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이미 행복해요.”

 

“뭐야, 지금 작업 거는 거야?”

 

“글쎄요, 그렇게 느껴지나요?”

 

칸의 말에 리마토르는 시선을 피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보여주는 그의 다양한 표정 중 한 면을 또 확인한 칸은 미소를 지으면서 노래 한 곡을 선곡했다.

 




 

“숨을 크게 쉬어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숨을 더 뱉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지만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지만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남들 눈엔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이제 다른 생각은 마요

깊이 숨을 쉬어봐요

그대로 내뱉어요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칸이 마이크를 입에서 떼자 리마토르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자신 없다고 말한 것과는 정반대로 뛰어난 가창력을 보여주자 그는 뮤지컬 때 그녀가 주연을 맡았어도 괜찮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때?”

 

“대단해요, 칸! 솜씨가 그렇게 좋은데 왜 숨기고 있었어요?”

 

“숨기긴 뭘. 자, 이번엔 당신 차례야.”

 

“이번에도 듣고 뭐라고 하면 안 돼요. 난이도 있는 노래지만 소화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 무슨 노래인지 더 궁금해지네.”

 

칸의 말에 리마토르는 선곡으로 답했다. 멸망 전에 들은 노래의 한 소절을 떠올린 그는 목소리를 긁어 거친 음을 내며 노래를 시작했다.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쉽게 말해도 내가 말이 안 돼도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설명 못 해도

내 맘이 그래 나 죽어 버릴까

내 맘이 그래 나 죽어 버릴까

내 맘이 그래 나 죽어 버릴까


헤어지자는 너의 말에

난 화가 나 소리치고

술에 취해 벽을 치고

괜한 사람 어깨를 부딪치고

욕하고 뭘 보냐며 시비 걸고

그렇게 세상 모든 게 다 싫고

그런 내 모습에 넌 또 실망해

하지만 나 심각해 앞뒤 다 자르고

니가 없으면 미치겠는데 어떡해

오죽하면 내가 이래 너도 울잖아

아직 나 사랑하니까 무릎 꿇잖아

내가 미안하니까 그러니까 붙잡아

구차한 변명 거창한 약속 따윈

하진 않을게 돌아서지 마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쉽게 말해도 내가 말이 안 돼도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설명 못 해도

내 맘이 그래 나 죽어 버릴까


너는 왜 나를 못 믿어

말하면서 속으론 찔려

우리 사랑했던 1년 그 시간 동안

못할 짓 많이 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싫어 이런 싸움 끝엔

언제나 사랑을 잃어

남잔 바람도 필 줄 알아야 돼

여자에 얽매이면 안 돼

그렇게 말했던 이 남잔

니가 떠나고 홀로 남자 가슴에

불이 난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나에게 정답은 너야

이제서야 니 소중함을 알았던 거야

니가 떠나면 난 다 잃어

다 잊어 다시 한 번만

날 믿어줘 제발


오 나를 견뎌준 내 사랑아

지금껏 네게 준 건 눈물뿐인

이 못난 놈은 그래도 널

언제나 너만 생각해

네가 내 옆에 있어야 힘이나

잘 알잖아 돌아와

Oh Oh Oh Oh Oh Oh Oh Oh


네가 내 옆에 있어야 완벽해

잘 알잖아 돌아와 줘

Oh Oh Oh Oh Oh Oh


80 넘은 부부도 싸우고

보름도 안 되서 또 티격태격

하지만 오늘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잖아 넌 나에겐 그런 존재

매일 핑계뿐이고 승질 부리고

우기고 참 못났지만 나에겐

니가 꿈이고 사랑이야

사랑에 답은 없지만

나에겐 니가 답이야

그게 내 진짜 마음이야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쉽게 말해도 내가 말이 안 돼도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설명 못 해도

내 맘이 그래 나 죽어 버릴까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쉽게 말해도 내가 말이 안 돼도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설명 못 해도

내 맘이 그래 나 죽어 버릴까”

 

노래가 끝나자 리마토르는 조심스럽게 칸의 반응을 기다렸다. 칸은 훌륭하다는 칭찬으로 시작해 가사가 특히 좋았다고 평했다.

 

“가사가 인상 깊네. 한 사람이 오직 답이라니, 나한테도 당신이 그래.”

 

“고마워요, 사실 제가 칸에게 그 말을 해야 맞지 않나요?”

 

“그럼 쌍방으로 하자. 일방통행보다는 양쪽 다 오가는 게 좋으니까.”

 

“그래요. 다음 노래 정했어요?”

 

“어, 이 노래를 알까 모르겠네.”

 

칸은 리마토르에게 마이크를 받더니 예약해두었던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가 고른 노래의 반주가 시작되자 리마토르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흥미를 갖고 그녀의 노래를 기다렸다. 그가 무슨 노래인지 아는 눈치를 보이자 칸은 미소를 지으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한시간마다 보고 싶다고

감정없이 말하지 말아

흔하게 널린 연애지식은 통하지 않아

백번을 넘게 사랑한다고

감동없이 말하지 말아

잘 잡혀가던 분위기마저 깨버리잖아

 

여자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도

조금씩은 달라

하루에 네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번 웃고

여섯번의 키스를 해줘

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수 있도록

You're my secret boy boy boy

boy boy boy

 

아무데서나 나타나지마

항상 놀라지만은 않아

화장기없는 얼굴 보이면 화도 나는걸

남자는 여자만큼 섬세하질 않아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면

다 된다고 믿어

하루에 네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번 웃고

여섯번의 키스를 해줘

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수 있도록

You're my secret boy boy boy

boy boy boy

 

어렵다고 포기하진 말아줘

너 하나만 원하는 날 알아줘

바람둥이 같은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늘 속곤 하는걸

날 애태우고 달랠줄 아는

니가 되길 바래

하루에 네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번 웃고

여섯번의 키스를 해줘

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 수 있도록

 

You're my secret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칸은 마이크를 그에게 건네면서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리마토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노래 실력을 추켜세웠다.

 

“이런 시도도 신선한데요? 기본적으로 발성법이 잡힌 게 느껴져요. 칸, 따로 노래 배운 적 있어요?”

 

“배운 적은 없어. 그냥 야매로 하는 거지.”

 

“그 뛰어난 실력이 야매라뇨, 믿을 수가 없네요.”

 

“고평가해줘서 고맙지만 이번에는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네. 당신도 나한테 비밀번호 486을 눌러줄 수 있어?”

 

칸이 한쪽 눈을 감고 그에게 얼굴을 밀착하면서 묻자 리마토르는 평소와 달리 그녀가 요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도 좋았기에 그는 기꺼이 긍정의 답을 표했다.

 

“물론이죠. 4번부터 한 번 눌러볼까요? 사랑해요, 칸.”

 

“나도 사랑해.”

 

4번을 누르자마자 둘은 눈웃음으로 8번을 한 번 눌렀다. 칸은 6번도 눌러주기를 바라는 투였으나 리마토르는 능구렁이가 담을 타넘듯 리모컨을 들어 선곡했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발라드 노래에요. 칸이 부른 노래처럼 가사가 좋으니까 한 번 가사에 집중해주세요.”

 

“싫은데, 난 당신 목소리에 집중할 건데.”

 

“참나, 왜 그렇게 귀엽게 투정해요.”

 

칸이 장난삼아 어린아이처럼 굴자 그도 직설적인 표현으로 답했다. 그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귀엽다’라는 표현에 칸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모습에 그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지금 곁에서 딴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그대

설레는 마음에 몰래

그대 모습 바라보면서

내 안에 담아요

사랑이겠죠

또 다른 말로는 설명 할 수 없죠

함께 걷는 이 길

다시 추억으로 끝나지않게

꼭 오늘처럼 지켜갈게요

사랑한다는 그 말 아껴둘 걸 그랬죠

이젠 어떻게 내 맘 표현해야 하나

모든 것이 변해가도

이 맘으로 그대 사랑할게요

 

망설였나요

날 받아주기가 아직 힘든가요

그댈 떠난 사람

그만 잊으려고 애쓰지마요

나 그때까지 기다릴테니

사랑한다는 그 말 아껴둘 걸 그랬죠

이젠 어떻게 내 맘 표현해야 하나

모든 것이 변해가도

이 맘으로 그대 사랑할게요

 

눈물이 또 남아있다면 모두 흘려버려요

이 좋은 하늘 아래 우리만 남도록

사랑할 수 있나요 내가 다가간만큼

이젠 내게 와줘요 내게 기댄 마음

사랑이 아니라해도 괜찮아요

그댈 볼 수 있으니

괜찮아요 내가 사랑할테니”

 

 

노래를 마친 그는 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볼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리마토르는 어땠냐고 쓱 물었다.

 

“이번 노래는 어땠어요?”

 

“조, 좋았어...”

 

“왜 그래요, 칸? 얼굴이 많이 빨개요.”

 

그는 알면서도 일부러 그녀를 놀릴 요량으로 노을처럼 물든 그녀를 바라보았다. 칸은 늘 보여주던 당당한 군인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사랑에 빠진 수줍은 소녀의 모습으로 말을 꺼냈다.

 

“당신한테 귀엽다는 말... 처음 들어봐서...”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리마토르는 자신의 생각을 더욱 굳혔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녀는 너무나도 귀엽다는 확신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맞는 말을 한 건데요.”

 

“계속 놀리지 마...”

 

“어제 사투리 썼을 때가 특히 더 귀여웠어요. 우리 늑대 아가씨.”

 

“그,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빽 지른 칸이었으나 잘 익은 홍시의 색을 만연에 띠고 그리 말해봤자 리마토르에게는 앙탈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도 그런 생각이었기에, 칸은 우물쭈물하면서 어제의 느낌을 다시 들었다.

 

“내, 내가 이라면 될 꺼 아이가... 그니까 그만 놀리고 같이... 같이 노래나 부르자...”

 

부산 사투리로 말하면서 선곡한 제목도 그녀가 지금 고른 말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자 그는 알겠다고 웃으면서 답했다. 여전히 화끈거리는 얼굴로 마이크를 든 칸은 자신을 살살 놀리는 리마토르의 눈길을 피해 노래를 시작했다.

 




 

“오빠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혼자 끙끙

앓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얘기를 한다

눈 앞에 아른아른거리는

잘생긴 얼굴 자꾸

귀에 맴도는 그의

촉촉한 목소리 예”

 

 

“네가 좋아하는 그 남자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나 들뜬 거니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너무나 궁금해”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말을 하면 멀어질까 너무 두려워

너를 잃기가 나는 너무 무서워

말을 하면 멀어질까 너무 두려워

너를 잃기가 나는 너무 무서워 예

 

좋아하는 마음에 떨리는 날들에

더 없이 덧없이 마음이 커지고

두근대는 마음에 설레는 날들에

난 헤어 나올 수 없어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노래가 끝나자 리마토르는 칸에게 박수를 쳤다. 아까보다 가라앉았지만 아직 홍조가 남아있는 그녀의 귀를 본 그는 그만 놀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노래를 잘 불렀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먼저 그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빠야... 내랑 둘이 딱 있자.”

 

“칸...”

 

부끄러한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칸의 모습에 리마토르는 그녀에게 동물귀가 달렸으면 아마 파닥거렸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본심을 알 수 있었기에 그는 슬슬 데이트를 끝낼 생각을 했다.

 

“알겠어요. 둘이서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갈까요?”

 

“그, 그러자!”

 

칸은 바라던 바였다는 듯이 반색했다. 노래방을 나와 얇은 화선지 한 장도 들어갈 틈 없이 서로의 팔을 꼭 끌어안은 둘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끝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칸과 리마토르 모두 말없이 그의 연구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도중, 갑자기 칸의 지휘패드에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연락의 발신처가 호드임을 본 칸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잠시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락을 읽었다.

 

“스카라비아가 긴급한 보고를 올려야 하니 지금 당장 오셔야 한다고? 이것 참...”

 

모처럼 분위기를 잡았는데 또 찬물이 끼얹어지자 칸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묘하게 기대에 찬 그녀의 모습이 180도 뒤집어지자 리마토르는 아직 그녀에게 분위기가 안 깨졌음을 일깨워주고자 다독여주었다.

 

“잠깐 들렀다가 가면 되죠. 같이 갔다가 연구실로 가요.”

 

“알겠어. 이해해줘서 고마워.”

 

말은 그리 해도 칸의 표정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리마토르는 분위기를 띄워볼까 생각했으나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만 일어날 것 같아 그저 말없이 그녀의 옆을 걸었다. 호드의 숙소에 도착하자 칸은 금방 갔다 오겠다며 홀로 숙소로 들어갔다.

 

“그래 스카라비아. 긴급한 보고라는 게 뭐지?”

 

복도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별개로 다시 공무를 다루는 상관의 모습으로 돌아온 칸은 상자를 들고 숙소 소파에 앉아있던 스카라비아에게 물었다. 스카라비아는 흘러내리는 와이셔츠를 대충 내버려두면서도 묘하게 의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한테 줄 선물을 찾아서. 워울프, 하이에나!”

 

“오케이!”

 

스카라비아가 신호를 주자 워울프와 하이에나가 잽싸게 튀어나와 칸의 양팔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일에 칸은 프래깅이라도 일으켰나 생각하며 반격하려 했으나 샐러맨더가 가세하자 양팔이 완벽히 봉쇄되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죄송해요, 대장님. 단지 교수님과 진도를 더 빨리 나갈 수 있도록 저희가 도움을 드리려고 해요.”


“그게 무슨 말이지?”

 

탈론 페더가 불가피한 무례에 사과하며 카메라를 들자 칸은 어떻게든 도망쳐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퀵카멜이 하체를 눌러 도주경로를 막은 채 워울프가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자 그녀는 꼼짝없이 당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 대장! 거의 다 끝났다고.”

 

“키야... 이거면 교수님이 절대 못 참을 거에요!”

 

“이런 건 어떻게 찾은 거야, 스카라비아?”

 

“약간의 의욕을 발휘했을 뿐이야.”

 

부하들의 손에 강제로 옷을 갈아입혀진 그녀는 화만 안냈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마저도 역정을 낼 수 있으나 그래도 부하들이 자신을 생각해서 준비한 선물이라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었다.

 

“잘 어울리는데 대장. 이제 저 소파에 준비한 선물까지 잘 찾아봐. 우린 나갈게~”

 

샐러맨더가 칸을 옮기며 귀띔을 해주자 칸은 ‘설마 문제가 되는 물건은 아니겠지’라며 되물었다. 샐러맨더는 감고 있던 눈을 떠 붉은 홍채를 보여주면서 도박사의 말을 신뢰하냐 마냐는 언제나 상대의 몫이라고 덧붙인 뒤 다른 호드 대원들과 함께 숙소를 나왔다.

 

한편, 숙소 밖에서 칸을 기다리던 리마토르는 갑자기 우르르 나오는 호드 대원들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워울프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면서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말했다.

 

“교수님, 아주 큰 선물을 하나 준비해두었으니까 방에서 한 번 찾아봐.”

 

“네? 갑자기요?”

 

“갑자기 벌어져서 재밌는 거 아니겠어?”

 

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이에나는 그를 문 안에 밀어 넣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 방 안에 들어간 그는 시야에 바로 들어오는 칸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이건... 그러니까 다 설명할게...!”

 

소파에서 샐러맨더가 남긴 선물을 찾던 칸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홍조를 띠고 그를 돌아보던 그녀는 대원들이 준비한 일에 꼭 설욕을 해주어야겠다면서 속으로 갚아줄 목록에 올렸다. 그녀와는 별개로 리마토르는 그녀의 곁에 다가가 앉더니 말했다.

 

“...정말 예뻐요.”

 

“고마워...”

 

둘 다 카페에서 아스널의 꾐에 빠져 바니걸을 입었을 때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다르리라는 생각에 칸은 적극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예쁘다는 말보다 더 듣고 싶은 말이 있어.

 

일단... 만져본 뒤에 이야기해야할 거 같은데?”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그를 뒤로 눕혔다. 살결이 닿자 전해지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자 리마토르의 얼굴도 점점 달아올랐다. 그가 뭐라 말을 꺼내려는 걸 손가락을 올려 막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했다.

 


“...오늘 안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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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편은 본편이다. 갑자기 분위기 끊기는 일 없이 끝까지 갈 거야.


중간에 칸과 리마토르가 대화하는 내용이 어색하지는 않을지 모르겠네. 연애하는 친구한테 에피소드 조언+소설 문체 따와서 재구성했는데, 정작 글을 쓰는 내가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저 대화가 보기에 지나치게 작위적이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네. 혹시라도 의견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줘. 반영할 수 있도록 할게.


다음 편까지 연애 에피소드 진도를 나간 만큼 사령관 에피소드 진도도 뺄 예정이야. 대형 사건 하나 터지기 전까지는 일상 에피소드 몇 개와 사령관과의 눈치 싸움으로 진행될 건데, 이번에는 초반부와 달리 리마토르 측도 세력이 생긴 만큼 첩보전으로 갈 예정이야. 영화 <공작>, <남산의 부장들>, <헌트> 같은 느낌이 나도록 구상하고 있어.



언제나 모자람 많은 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들 좋은 일만 가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