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소문은 빨랐다. 칸과 리마토르가 정사를 치렀다는 사실은 탈론 허브를 타고 오르카호 속속히 스며들었다. 말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 그대로 나이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을 제외하면 오르카호 구성원 모두가 둘의 소식을 접하자 탈론 허브는 서버가 터질 정도로 많은 댓글을 받았다.

 

 

폭탄마: 아주 빵빵 터뜨리고 있어요!

 

양파튀김: 각하보다 작지만 엄청난 테크닉이지 말임다!

 

전역을 위하여: 절륜하다 절륜해

 

얼음여왕: 뜨거워. 여왕, 더워.

 

천사: 이, 이런 불경한 생각은 안 돼요!

 ㄴ메스카키: 그러면서 즐겨찾기 눌렀네? 변태~

 

오늘도 17살: 사랑이란 정말 좋네요. 아름다워요.

 ㄴ가위: 햇츙, 양심 있으면 아이디 바꿔.

 ㄴ오늘도 17살: 리제야, 예절 전문가 전 선생님 만나자^^

 

 

“크, 이것 보세요! 두 분의 영상에 달린 댓글이 벌써 100개를 넘어갔어요!”

 

“...그걸 굳이 보여주는 이유가 뭔가요.”

 

탈론 페더가 활짝 웃으면서 패널을 보여주자 리마토르는 그녀의 의도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는 투로 대꾸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맨 처음 들어온 게 서로의 나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차오른 둘이 급히 씻고 단정히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에 처음 듣는 대화가 탈론 페더의 말이었기에 그는 더더욱 그녀가 자신에게 어제 있었던 영상을 보여주는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탈론 페더는 그의 말이 내포한 ‘안 보여줘도 괜찮다’라는 뜻을 알아들었음에도 상큼하게 무시하고 대답했다.

 

“이유가 뭐라뇨, 이제 저희 대장님 울리면 오르카호가 뒤집어지니까 대장님 잘 챙기라는 말이에요!”

 

“조용히 해!”

 

내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싸매 쥐고 부끄러움을 삭이던 칸은 탈론 페더에게 베개를 던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부하를 끔찍이도 아끼는 그녀가 보인 모습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었으나, 누가 봐도 연인과 첫날밤을 보낸 여인이 앙탈을 부리는 모습이었기에 탈론 페더도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베개를 잡았다.

 

“왜 그러세요, 대장님~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 부부나 다름 없죠~”

 

“페더, 그 캠코더 오늘부로 압수야!”

 

“네?! 아직 못 찍은 장면이 많은데요?”

 

천생 군인다운 모습으로 부하들을 지휘하던 그녀가 감정에 북받쳐서 부하와 술래잡기를 벌이는 광경을 본 리마토르는 이런 광경에 진국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칸을 말리지 않으면 탈론 페더가 수복실 신세를 질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만해요. 아직 몸 피곤하잖아요.”

 

“그, 그치마안 탈론 페더가-”

 

“칸 입에서 그치만이라는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네요. 이런 모습은 널리 알려야 이롭지 않겠어요? 탈론 페더 씨가 그래주면 행복의 총량이 늘어나죠.”

 

“...몰라, 바보.”

 

리마토르가 장난스러우면서도 사뭇 진지하게 그녀를 달래자 칸은 못 이기는 척 몸을 돌려 그를 끌어안았다. 공주님 안기로 가뿐하게 그녀를 든 리마토르는 어제 거사를 벌인 소파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앉히더니 자신도 옆에 앉았다.

 

“정말 끝내줬어. 교수, 누나한테도 로망 넘치는 사랑 줄 생각 없어?”

 

“에이, 첫날 보낸 사람한테 뭘 그리 많이 바래 워울프. 아직 대장이랑 교수랑 충분히 즐기지도 못했다고.”

 

둘에게 커피를 건네면서 오고가는 워울프와 하이에나의 대화에 리마토르는 곁눈질로 칸을 슬쩍 보았다. 말없이 교차하는 서로의 눈길에 실린 칸의 감정을 전달받은 그는 얼굴에 자신의 존재를 내비치는 홍조를 커피 잔으로 가렸다. 그 광경을 본 탈론 페더는 바로 캠코더를 켜면서 입으로 뭔가 위험한 내용을 중얼거렸다.

 

“크으, Tag: 암컷타락...”

 

“그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 텐데요?”

 

머릿속으로 회로를 돌리던 탈론 페더를 제지한 케시크는 그나마 정상인답게 둘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샐러맨더도 축하한다면서 선물로 막대과자를 꺼냈으나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교수, 대장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겠어?”

 

“당연하죠. 굳이 물어봐야하나요?”

 

“오오! Tag: 순애! Tag: 순정남!”

 

확고한 리마토르의 대답에 탈론 페더는 이제 감출 생각도 없는지 큰소리로 외치면서 캠코더를 들이댔다. 칸이 매서운 눈초리로 탈론 페더를 쏘아보자 탈론 페더도 그 시선을 의식해서 자중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캠코더는 돌아가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끝까지 실천 못하는 건 아니야?”

 

“그럴 리가 있겠어요?”

 

“좋아, 그렇게 자신만만하면 증명하라고!”

 

샐러맨더는 걸려들었다는 표정으로 리마토르를 보면서 막대과자의 포장을 뜯었다. 도박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짧은 사이에 새로운 판을 짠 그녀는 과자 하나를 집어 들어 리마토르에게 건넸다.

 

“증명하기 위한 듀ㅇ, 아니 커플 게임이야. 규칙은 간단해. 서로가 입에 막대과자를 물고 끝까지 먹으면 끝.

 

하지만 과자는 정확하게 반씩 나눠먹어야 올바른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겠지?”

 

샐러맨더의 말에 따라 막대과자의 끝을 물고 칸과 리마토르는 얼굴을 마주했다. 어젯밤에 질리도록 보았는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 같아 그는 슬그머니 눈동자를 굴려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길 피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칸은 그를 향해 눈동자를 고정했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한 광경에 호드 대원들은 나태한 스카라비아까지 모두 숨을 죽이고 관람에 집중을 기울였다. 샐러맨더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손가락을 내려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준비, 시작!”

 

“으, 읍!!”

 

게임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샐러맨더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칸은 과자를 씹어 먹으면서 리마토르에게 닿았다. 혼자서 과자의 80%를 다 먹은 그녀는 그의 입술에 자신의 도장을 꾹 찍고 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나한테서 눈 돌리지 마.”

 

“알겠어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한 건 리마토르만이 아니었다. 적극적인 늑대의 모습을 보여준 칸이 손쉽게 목표물을 제압하자 호드는 역시 대장이라면서 찬사를 보냈다. 칸이 겸손하게 받아도 늑대의 기질에 감탄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호드가 달달하면서도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리리스가 설치한 감시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령관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리리스에게 말문을 향했다.

 

“리리스. 리마토르 씨가 특이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어?”

 

“특이사항이라면 온갖 부대를 다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했어요.”

 

“흠, 그게 전부인가?”

 

“아니요. 강의를 한 부대와는 모두 눈도장을 찍어두었기에 이리저리 접점이 한 번씩 있었어요.”

 

“그런가... 알겠어. 계속해서 동선 확인하고 감시 붙여.”

 

“네, 주인님.”

 

리리스가 총총 물러나자 사령관은 생각에 잠겼다. 컴패니언을 시켜 리마토르를 감시하고 있기는 했으나 그가 보기에도 뚜렷한 혐의점은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는 아예 포르노 테이프를 본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사령관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접근하는 게 맞나 회의감까지 들 지경이었다. 이대로 감시를 지속해야할지 생각하던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아르망을 불렀다.

 

“아르망.”

 

“네, 폐하.”

 

“네가 보기에는 리마토르 씨가 숨기는 게 있어 보여?”

 

“현재 배틀 메이드와 컴패니언이 보고한 정보를 취합하면 특별히 수상한 점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네가 보기에도 그런가...”

 

“하지만-”

 

사령관이 여태까지 걱정한 것들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아르망의 평을 듣고 불길한 생각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아르망이 역접의 접두사를 사용해 앞의 내용이 뒤집힘을 시사했다. 사령관은 아르망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리마토르님께서 받은 시술이 어떤 것이며, 리마토르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현재로서 아는 게 없는 이상 혐의점이 명확히 소명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역시 그게 문제가 되는군. 다른 사항은 없어?”

 

“리마토르님이 다양한 부대를 순회하시면서 강의를 한다는 점은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리마토르님이 오르카호 내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가능성’에 해당합니다.”

 

“전에 반란은 아니라고 못 박았지?”

 

“그렇습니다. 리마토르님께서 반란의 의지는 없는 것으로 사료되어지나,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리마토르님께 국한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리마토르님께서 받은 시술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도 여태까지 리마토르님께서 고수해온 의견에 지대한 변화를 만들 정도의 영향이라면 이 전제는 재고되어야 합니다.”

 

아르망의 말에 사령관은 미간을 구겼다. 현 시점에서 리마토르가 받은 시술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게 급선무였으나 닥터와 아스널, 칸과 하르페이아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080기관을 끌어들였다가는 공연히 판만 키우는 일이었기에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고민했다.

 

“폐하. 현재까지의 정보를 종합하면 리마토르님께서 받은 시술은 기억 재생시술로 사료되어집니다.”

 

“그래, 그건 전에 이야기했어. 하지만 증거가 없잖아.”

 

“폐하께서는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진술 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르망이 한 가지 사실을 넌지시 귀띔하자 사령관도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치 챘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컸기에 그는 일부러 자신의 생각이 그녀의 생각과 일치하는지 한 번 떠볼 요량으로 한 번 거절했다.

 

“글쎄, 탐문이라면 컴패니언 측에서 최선을 다해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달리 방도가 더 있나?”

 

“공개적이지만 첩보 수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들을 기용하자는 뜻입니다.”

 

아르망의 생각이 자신과 같음을 확인한 사령관은 슬쩍 미소를 흘리면서 호출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이 호출을 받았다는 신호가 울리자 그는 마이크에 대고 새로운 정보원을 불렀다.

 

“카엔, 제로. 내 방으로 한 번 와봐.”

 

둘을 부른 사령관은 올 때 초코우유 한 잔을 갖고 오라고 덧붙였다. 생각이 많아질 때는 단 음식으로 뇌에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한다고 아르망에게 농을 건넨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현재로서 문제가 되는 점은 리마토르가 기억 재생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의 사실 여부. 그리고 그게 참이라는 가정 하에 리마토르가 인격적인 변화가 있었는가의 사실 여부. 이 둘만 검증하면 문제는 없어.

 

둘 다 문제가 없다고 하면 괜찮지만 만약 둘 다 사실이라면? 특히 합류 초기에 갑자기 인격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등 다른 측면을 보여준 일이 몹시 마음에 걸려. 둘 다 참이라고 한다면 아르망이 말한 반란 모의도 최악의 경우로 상정해 둬야해.

 

현재까지 리마토르가 접촉한 부대 명단을 전부 가져오라고 해야겠어. 포섭 여부는 리리스를 시켜서 알아내는 편이 빠를 거야. 사실관계가 뚜렷해지지 않는 이상 080기관을 움직여서는 안 돼. 리앤이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연막 작업을 해둘 필요도 있겠지만, 만약 걸리더라도 리리스의 과잉충성으로 몰고 가서 내가 처분한다고 하면 수긍하겠지.

 

우선 기억 재생시술 부문은 카엔과 제로에게 맡겨두자. 공연히 리리스가 들쑤시고 다니는 것보다 카엔이나 제로가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서 닥터에게 접근하게 만드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야. 뒷감당할 일도 적고.’

 

그가 생각을 하는 사이 카엔과 제로가 방으로 들어섰다. 둘이 아이사츠를 하려하자 사령관은 손을 휘휘 저어 생략하자는 의견을 전달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카엔, 제로. 이번에 리마토르 씨가 닥터에게 어떤 시술을 받았다는 제보가 들어왔어. 그런데 나한테 말을 보고가 안 올라와서 말이야.”

 

“주공. 그거, 수상해.”

 

“네. 주공에게 감추려는 사실이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의심이 갑니다.”

 

“맞아. 나도 너희와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너희 둘이 조사를 해주었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사령관의 말을 들은 카엔과 제로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존명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해서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둘에게 그러지 말라고 다시 손짓을 한 사령관은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단, 이 사실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해. 너희 둘에게 의뢰한 건 나와 아르망, 너희만 아는 사실이야. 알겠지?”

 

“알겠어, 주공.”

 

“그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아,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볼 수 있길 기대하지.”

 

둘이 모습을 감추자 사령관은 이제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초코우유를 홀짝였다. 달달한 초콜릿의 풍미가 위장을 부드럽게 채워주었다.

 

“리마토르. 감추려는 게 뭔지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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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적어서 미안하다. 스토리 라인은 잡아놨는데 한동안 달달한 이야기만 썼더니 사령관과 두뇌 싸움하는 부분 묘사가 잘 안 되더라.  그래서 이번 편에는 사령관 쪽만 나왔어. 리마토르가 대응하는 부분은 이르면 다음편, 늦어도 다다음편에는 나올 거야.


부족한 글 읽어준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