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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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숨이 필요했다. 잠시라도 내쉴 수 있는 짧은 호흡 한 번, 생의 마지막 욕망이라기엔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아, 나 수영 못했지, 참.’

 

빛보다 어둠이 가까운 깊은 바다는 그 어떤 밝기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 사령관의 조그마한 생명의 빛마저도 앗아가려 했다.

보잘것 없는 몸은 바다에 삼켜져 점점 아래로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마치 꽃잎이 지듯 사령관의 몸은 천천히 아래로 낙화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바닷속에는 사령관의 행동을 질책하려는 양, 그의 심장 소리만이 갈수록 거세게 쿵쿵 울려대었다.

그리고는 생의 마지막을 바다의 표류물이 되었다는 웃지 못할 상황에, 사령관은 입을 비뚤게 웃어 보이고는 눈을 감았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번 생도 열심히 살았다며 이쪽 세계로 보낸 신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의 앞에 무릎 꿇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 …세요! 제발… 일어나세요!”

“크헉! 쿨럭! 파하! 으, 우욱!”

 

힘껏 아우성치는 폐와 가슴께의 고통에 역류하는 물을 뱉어내며, 있는 힘껏 뛰어내렸던 그 함교 위에서 사령관은 다시 눈을 떴다.

자신과 같이 물에 홀딱 젖은 금발의 소녀, 같은 장소에서 아까까지도 자신을 몰아세우던 소녀가 눈물에 얼굴이 엉망이 되어서는 가녀린 팔로 사령관의 옷깃을 부여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흑, 흐으으, 이대로 잘못되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워서… 잘못, 잘못했습니다, 폐하…!”

 

연신 콜록대며 앓는 사람처럼 기침하던 사령관에게, 아르망은 잘못을 저질러서 혼난 아이처럼 울어대었다.

그렇게 모질게 몰아세웠으면서, 이제는 서럽게 우는 아르망을 앞에 두고 여자는 참으로 난감하다며 사령관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다가 이내 아르망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살려줘서 고마워, 아르망.”

“히끅!”

 

아르망이 본 사령관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보았던 사령관은, 비록 상해를 입히진 못했으나 소완에게 칼을 휘둘렀다.

무슨 연유에선지 다른 전투원을 두고 발키리 혼자서만 전투를 나가게 했던 전적도 있다.

심신이 불안정한 백토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과거의 사료로 아르망이 생각한 사령관은 악인이었다.

그렇기에 아르망은 사령관을 멸망 전 인류의 모습과 겹쳐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와 대비되어 기록된 서류와 함 내 분위기는 아르망의 머리를 어지럽히기엔 충분했다.


모두 거짓이라 생각했다.

성품이 악한 인간이, 모종의 이유로 착하고 어진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고, 그래서 그를 ‘가짜’라고 부른 것이었다.

완벽하다고 믿어왔던 불완전한 예지를 가지고 사령관을 몰아세워 소중한 인간의 목숨을 해칠 뻔하였다.

사령관은 이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정상이었다.

적어도 아르망이 사령관을 악인이라 단정 짓고 예지했던 미래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놀란 자신을 위로하는 사령관에게, 아르망은 자신이 예지했던 미래가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진정이 됐어?”

“…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폐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저도 어느 정도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 네가 본 미래는 어떻지?”

“…폐하가, 테마파크에서 본 것을 토대로 저희에게…아얏!”

 

아르망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뭐가 좋은지 딱밤을 때리고는 실실 웃는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이것도 네가 본 예지에 있나?”

“이런 진지한 상황에서 누가 그런 짓을 한다고요! 역시 폐하는… 바이오로이드를 대체 뭐라고 생각…읏!”

 

사령관이 다시 손을 들어 아르망의 이마를 노리자, 아르망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가렸다.

 

“이번엔 막았네?”

“그거야 이미 당했으니까…!”

“아르망, 네가 해왔던 것을 부정하는 얘기지만, 정해진 미래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미래를 바꾼 내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야.”

“하지만…하지만…!”

“네가 내 두 번째 딱밤을 막았듯이, 과거의 인류가 했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게 막을 의무가 너와 내게는 있다. 미래를 알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너와, 내가.”

 

아르망의 예지 능력에는 내뱉은 말에 대한 진위를 판단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늘 정확했던 그녀의 예지를 보란 듯이 피해내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사령관의 눈에서 묘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솔직히 폐하를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 제 예지를, 보기 좋게 틀리게 만든 폐하를 믿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 나와 함께해주라. 완전히 같은 곳을 바라보진 못해도, 새로운 길을 알려주라. 내가 놓친 것들을 주워 담아 함께 길을 가주라. 모자라지만, 그런 내 옆에 있어주라. 잘 부탁한다, 아르망.”

“…네! 잘 부탁드립니다, 폐하!”

 

자신감 넘치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에, 아르망의 가슴에 두근거림이 일었다.

앞으로 엎어지면 입술이 맞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차가운 물에 젖은 몸이 무색하게도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아르망으로서는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자신의 예지를 부정하는 남자를 앞에 두고, 불안감에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

 

마녀는 테마파크를 안내하는 와중에도 손에 들린 삼각 플라스크 안에 담긴 술을 연거푸 뱃속에 채워 넣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령관은 저 공업용 알코올 같은 액체를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늘 의아했으나, 키르케의 정보를 파악하고서야 조금이나마 이해는 하게 되었다.

그래도 안내역을 맡은 이상, 술에 절어서 비틀거리며 안내하는 키르케의 모습에서 그 자질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단둘이 있고 싶다고 하셨을 때는 깜짝 놀랐답니다. 설마 이런 코스튬 페티쉬가 있으시다거나? 꺄하핫!”

“뭐, 색다른 것도 좋으니까.”

“좋아요, 여긴 모든 쾌락의 종착역이니까요.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죠.”

 

물에 젖은 생쥐 꼴로 테마파크의 입구에 나타난 사령관은, 아자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키르케와 독대하겠다고 했다.

아자젤은 적어도 호위 한 명 정도는 함께하길 원했으나, 아르망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치를 주자 입을 앙다물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보내주어야만 했다.


“자, 여기가 저희 테마파크의 A구역입니다! 그리고 저희 파크의 자랑인 ‘특급 마녀 일루젼’! 어때요, 얼른 타고 싶어서 근질거리지 않나요?”

 

키르케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사령관이 시선을 옮기니,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롤러코스터의 레일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고개가 아플 정도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놀이기구는 흥미로워 보였지만, 올라타면 ‘죽는다’라는 사실을 아는 사령관은 실없이 웃으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여기 팝콘 드실래요? 조리 한지는 몇 년 지났지만, 방부처리를 완벽하게 해 놨으니까 괜찮을걸요, 아마도.”

“나름 건강을 신경 쓰는 편이라서.”

“흐응, 쉽지 않네요. 꼬마 친구들이 말하던 ‘뭐든지 다 안다’라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적어도 네가 나를 죽이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겠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후후.”

 

키르케는 너스레를 떨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항상 영업용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였어도, 저 멀리 보이는 굳게 잠긴 문에 가까워 질수록 어색한 웃음은 점점 굳어갔다.

마침내 출입자를 멈춰 세우는 위용을 뽐내는 문에 도착하였을 때, 그녀도 사령관도 발을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아…. 자, 여기가….”

“긴말 필요 없어.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게.”

“……네?”

 

사령관은 안으로 들어가기가 점점 겁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벤트의 내용을 미리 확인했고 정확히 묘사되어있지는 않았으나, 이 테마파크의 안쪽에는 무척 끔찍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고작 몇 줄의 대사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게임 속에 들어온 이상 그 광경을 실제로 봐야 한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기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 것이 마치 들어가지 말라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발목을 붙잡는 것만 같았다.

 

“내게 초대장을 보낸 이유가 뭘까 생각했지. 이 앞엔 네가 막지 못하고 몰아넣은 철충들이 가득할 거야. 그리고 나는 이곳에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고, 전투능력이 없는 나는 아마 필시 죽겠지. 너는 안내역을 맡아 이곳을 안내할 의무가 있고, 그렇지?”

“…….”

 

키르케는 이곳에 사령관을 끌어들여 철충들과 함께 테마파크의 ‘일부’를 정리하려 했다.

그리고 인간의 마지막 명령이었던 ‘안내역’이라는 명령이 주어진 이상, 그녀는 사령관을 이 테마파크의 끝까지 안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령관은 전투에 필요한 그 누구도 데려오지 않았다.

이대로 B, C구역에 들어가는 것은 사령관과 키르케에게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사령관으로서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가 단 하나인 제안을 내민 셈이었다.

 

“후후, 역시. ‘뭐든지 아시는 분’은 다르군요. 그래서 어떡하실 거죠? 이대로 가면 개죽음이에요.”

“여기서 안내에서 손 떼. B, C구역은 오늘 우리 아이들의 도움으로 사라질 거야.”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위험하다는 것을 진즉에 알면서도, 혼자서 저를 따라온 이유가 뭐죠? 제가 거절할 가능성은요? 이미 안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아시잖아요?”

“같이 따라온 녀석들에게 끔찍한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테마파크의 밝은 면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 후훗, 하하핫!”

 

키르케는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

무엇이 웃긴지 키득거리는 광인(狂人)같은 그 모습에 소름이 끼칠 때쯤, 입과는 다르게 사령관을 노려보는 눈에는 묘한 증오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아아……, 들어갈 생각이 없다면 그냥 돌아가세요. 제 안내는 여기까지군요. 아쉽게 되었어요……. 잘 가요, 무척 오랜만의 반가운 손님.”

 

키르케는 여기까지라는 양, 매몰차게 뒤돌아서 사령관을 돌려보내려 했다.

그 당당한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사령관이었다.

 

분명 키르케는 사령관의 도움을 바라고 있었을 터였다.

게임에서의 사령관은 분명 B, C구역을 폭파했고, 이곳의 참상을 기억하는 사령관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령관은 예상치 못한 변화에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키르케 그녀로서도 나쁘지 않을 제안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로서는 A구역의 추억만을 남긴 채 B, C구역을 없애고 자유를 되찾고 싶었을 터였다.

사령관이 그녀가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려고 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매몰차게 사령관의 호의를 거절했다.

사령관으로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아니, 잠깐만! B, C구역을 없애고 자유를 얻고 싶은 게 아니었어?”

“분명히 그랬죠. 저는 안내역이란 명령에 묶여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랍니다.”

“그럼 어째서 자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 거야?”

“후후, ‘뭐든지 아시는 분’이면 스스로 답을 찾아보세요. 마녀가 주는 힌트랍니다.”

 

아무래도 이번 이벤트의 내용도 원작을 똑같이 따라가기에는 아무래도 어렵게 된 것만 같았다.

씁쓸한 뒷맛을 느끼면서, 사령관은 발이 떨어지지 않음에도 서둘러 발을 돌려야만 했다.

 

한 시 바삐 조용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 곳을 찾아야 했다.

사전에 이야기의 이탈을 손보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것을, 이미 잘 알고 경험해왔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멀어져가는 키르케를 뒤로하고 테마파크 입구로 돌아가며, 사령관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또 운명에 놀아나는 듯한 자신의 모습에, 여태껏 잘 막아왔던 감정의 댐이 넘치는 것만 같았다.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파고드는 아픔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관음하는 신에게 고개 들어 독기에 찬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신은 구름 뒤에서 언제나 사령관을 비웃고 있었다.

어차피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목소리가 닿지 않을 곳에 있는 녀석에게, 사령관은 이를 갈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 연극도 내 탓이란 말이지.”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은 엑스트라에게 주어진 뒤바뀐 이야기는, 마치 주인공의 자리가 결코 만만찮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조롱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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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9개월만의 연재 재개.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기다려주시던 소수의 소중한 독자들에게 무단 연중이라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입이 열 개 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지금은 개인사정이 해결되어 다시 글을 잡았습니다.

실력이 부족해도 글 쓰는 재미로만 버텨오던, 안그래도 못 쓰던 글이 결국 무너진 것을, 오늘 이 짧은 한 편을 쓰면서 체감했습니다.

앞으로는 수련 겸 자주 써보려 합니다.

붐비는 시간대에 올리면 돌맞을까 무서운 새가슴이 새벽에 몰래 올려놓고 도망갑니다.

앞으론 종종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