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천아의 발끝으로부터 참으로 예의 바른 노크가 장화의 방문까지 와 닿았다. 부르르! 하고 방 전체가 떨리는 충격.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장화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손님의 고급진 기별에 걸맞은 예를 갖춰서 화답했다.


덜컥!


"썅년이 아침 댓바람부터 뭐 잘못 처먹었나... 갑자기 지랄이야?"


천아의 호출로부터 문이 열리기까지 단 삼 초. 짜증 섞인 어투이면서도 위협적인 읊조림이었다. 살벌한 분위기의 천아를 겁없이 위아래로 훑어보는 장화. 안그래도 잔뜩 기합 넣고 빡세게 그린 아이라인인데 눈에 힘까지 주니, 어지간한 바이오로이드는 눈빛만으로 깨갱하게 만들 박력이 장화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물론, 천아는 '어지간한'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다. 그 눈빛을 피식 한 번으로 일축한 천아는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야, 니가 대가리에 좆 박은 짓을 하고 다니든 말든 내 알바 아니긴 한데..."


말을 맺기가 무섭게 천아의 등 뒤에 있던 꾸불텅한 그림자가 장화의 코앞으로 홱! 하고 날아들었다.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린 장화는 천아가 면전에 대고 던진 이물을 반사적으로 캐치했다.


착!


손 안에서 뱀장어처럼 꿈틀대는 빨갛고 길쭉한 무언가의 정체를 장화가 파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최근에 잘 때나 화장실 갈 때를 빼면 몸에서 뗀 적이 없는 물건이었고, 익숙해지다 못해 이젠 완연히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으니. 슬슬 없으면 어딘가가 허전할 정도이기까지 했으니까. 앙증맞게 매듭진 까만 리본, 복슬복슬하면서도 심지가 있는 줄기, 그리고 다른 한 쪽 끝부분에는...


"뭐, 뭐야 씹..."


자신의 몸과 '물리적'으로 맞물리는 부분까지 눈에 들어오자, 장화는 다급히 뒷편으로 자신의 꼬리를 내던졌다. 어쩐지 몸단장 할 때 안 보이더라. 방금까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물건임에도, 이런 방식의 뜻밖인 재회는 민망하기만 했다.


"이, 이걸 왜 니가 갖고 있냐?"

"뭐라는 거야. 뇌가리에 우동사리만 쳐 들었냐? 지가 욕실에 싸질러놓고 씨발 진짜 병신같이..."


앗. 달아오른 장화의 머리가 그제서야 어제의 일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일과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뜨거운 물로 샤워하기 위해 메이드복을 벗어 놓았고... 해제하는 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그 장비는, 가장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벗으려고 남겨뒀었지. 하루종일 하고 있을 때에는 마치 없는 것처럼 적응이 되었다가도, 장착할 때나 벗어 놓을 때만 왜 그렇게 존재감이 두드러지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여튼, 그렇게 마지막 장비까지 의식을 치르듯 분리해내고... 뜨뜻한 미온수로 몸을 씻어내면서 주인님을 상상하니 손은 슬그머니 다리 사이로 향했고...


...그 날따라 씻는 시간이 길긴 했지. 탈력감 후의 반쯤 빼 놓은 헤롱헤롱한 정신이 몸의 일부와도 같은 소중한 꼬리를 챙기는 것을 잊었다 하더라도, 그걸 온전히 장화의 탓으로 돌리긴 힘들 것이다. 이건 날 이렇게 만든 주인님 탓이야. 주, 주인님 때문에 꼬리를 하게 되었고... 주인님 때문에 샤워 시간이 길어져버린 거니까...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넘어가려던 장화를, 천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억지로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니 뒷구녕에 쳐박았던 거 욕조 바닥에 나뒹구는 꼬라지 보고 있으면 얼마나 토나오는 지 알아? 씨발 간수라도 잘 하든가! 진짜 드러워 죽겠네 씨빨..."


기분 좋은 망상에 잠기려던 것을 방해받고, 팍 심기가 불편해진 장화는 오히려 역으로 쏘아붙였다.


"뭐... 뭐? 뚫린 아가리라고 썅련이 나오면 다 말인 줄 알아? 좆도 모르는 년이 보자보자하니까 진짜! 내, 내가 얼마나 청결하게 관리하는데! 매, 매일 언제든 주인님이 불러 주셔도 괜찮게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깨끗하게..."

"아이~ 씨발 알려줘서 존나게 고맙네 썅년아! 누가 알고 싶댔냐고! 아, 씨발 나 진짜 토할 거 같아..."


장화가 준비 시간이 유난히도 오래 걸리는 내막을 깨닫자, 모르는 게 나았을 그 사실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핫팩 졸라서 꼭 개인 화장실 얻어내자. 지 잘못도 모르고 발끈해서 적반하장으로 바락바락 대드는 장화를 보며 천아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꼴같잖은 것들끼리 잘들 노는군."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일과같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바르그가 혀까지 쯧 차며 남긴 감상이었다. 못마땅할 정도로 눈꼴시린 복장에, 민폐가 될 정도로 시끄럽게 숙소 밖까지 들릴 정도로 언성을 높여가며 시덥잖게 싸우는 짓거리까지. 바르그 같은 성격이라면 한 마디 안 하고 넘어가기엔 못 배길 광경이겠지만, 바짝 날이 선 둘에게는 안 그래도 불 위에 끓는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이 년은 또 뭐지, 씨발?'

'싸우자는 건가?'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데, 부추기는 시누이는 얼마나 얄밉겠는가? 두 쌍의 부릅뜬 눈과 바짝 선 귀가 새로 난입한 도전자를 향해 홱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