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

 

 

 

 

 

 

 

“... 이게 맞는 건가, 사령관.”

 

 

 

카르디아가 우리를 던져 보낸 직후, 한없이 어두운 복도에서 아스널이 읊조리듯이 말했다.

 

 

 

“그럼 틀린 거겠어?”

 

 

 

그것이 필요 없는 물음이라 생각한 건지, 아니면 그저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레오나가 아랫 입술을 짓씹으며 첨언했다.

 

 

 

“나는... 모르겠군. 저 꼬마 아가씨를 저기에 두고 오는 게 맞는 건지.”

 

“애초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어.

그대로 뒀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죽었겠지.”

 

“그런 전장을, 저 연약한 아가씨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건가 레오나?”

 

“... ...”

 

 

 

답이 돌아오지 않는 물음.

사실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 수록 지금 우리가 한 행동의 의미는 명백했으니까.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 저 아이를 희생시켰다.”

 

“... 에밀리 엄마 노릇을 하더니 마음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지, 아스널.”

 

“마음대로 생각해라. 난 그저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의견을 묻고 싶은 것이니.”

 

 

 

치켜든 눈썹, 조금씩 올라가는 말의 어조.

성난 숨소리가 아스널의 코 끝에서 진하게 흘러 나왔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카르디아는 에밀리 또래의 아이였고, 그런 아이를 모두가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의구심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죽는 사람은 사령관이었을 수도 있다.”

 

 

 

불쑥 끼어든 칸의 말에, 아스널의 미간에 힘이 풀렸다.

 

 

 

“무엇보다 지금의 선택은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니 그 선택을 헛되게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아스널?”

 

“... ... 참 쉽게 말하는구나.”

 

“이렇게 쉬워지기까지 백 년이 걸렸다.”

 

 

 

그렇게 말하는 칸의 눈은 아스널을 보고 있지 않았다.

쉽다니, 결코 쉽지 않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다만 누군가가 만든 기회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것. 그것이 그녀가 백 년의 시간 동안 연마해온 사고 방식이었을 뿐이다.

칸의 주변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무수한 희생이 있었으니까.

 

 

 

“... 가지.”

 

 

 

한 마디의 말과 함께, 아스널은 저격총을 고쳐 잡으며 우리의 앞에 섰다.

자신의 체념을 설명하기엔 구차한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효과적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쿵. 쿵.

 

전시장의 어디선가 연이은 굉음이 터져 나왔고, 들려오는 메아리만이 거리를 어림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정확한 건 느낄 수 없지만, 꽤나 먼 곳이겠지.

남아 있는 시간을 확인한 대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현실과 타협한 뒤 아스널의 망토를 따랐다.

 

 

 

“각하. 뭔가 알고 계셨습니까?”

 

 

 

점차 빨라지는 대원들의 발걸음 사이로 교묘하게 속도를 늦춘 마리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카르디아 양이 각하께 무언가 말을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나 둘이 사전에 뭔가를 계획하셨던 것이라면...”

 

 

 

그녀의 눈엔 흐릿한 희망 같은 것이 비췄다.

이것이 다 연기이길, 전부 다 정교하게 짜맞춰진 계획의 일부이기를 바라는 눈빛.

 

그런 상황에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 미리 얘기해둔 게 있었어.”

 

 

 

진실도, 거짓말도 아닌 대답.

 

그 애가 상담소의 문을 마지막으로 닫은 그 날 나는 그녀에게 작은 암시 같은 것을 들었다.

그것도 얘기라면 얘기겠지. 물론 생환할 계획은 세워두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마리는 그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럼...!”

 

“자세한 건 다 끝나고 나서 말해줄게.”

 

 

 

그리고 나는, 그녀가 계속 몰랐으면 했다.

 

운이 나쁘다면... ... 이제 싫어도 알게 될 테니까.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비좁은 통로였다.

가로로 세우면 세네 명도 간신히 설 법한 공간.

우리는 그 사이를 조심스레 거닐며 작은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기습을 넣을 수도 있을 테니까. 첫 급습 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에 따라 그 즉시 전쟁을 끝내버릴 수도 있다.

 

비좁은 통로의 끝자락이 갑자기 환해진 것은 그 때였다.

 

 

 

“도착한 모양이군.”

 

 

 

갑작스럽게 우리 앞에 펼쳐진 공동은 마치 거대한 공원을 잘라 옮겨 놓은 듯한 곳이었다.

푸르른 초목과 하늘까지 닿아 있는 웅장한 거목의 향연. 곳곳에서 흐르는 개울이 잔잔한 물소리를 내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목의 줄기마다 피어 오른 꽃과 열매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성경 속의 에덴 동산이 그대로 정형된 듯한 장소.

아니, 정확히는 에덴 동산에 대한 묘사를 보고 솜씨 좋은 장인이 깎아 만든 듯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누가 보아도 마지막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는 문이 하나 있었다.

족히 수십 미터는 될 법한 크기에 셀 수 없이 많은 양각으로 꾸며진 대문. 가운데에 박혀있는 거대한 루비에서 사방으로 붉은 회로가 뻗어져 나왔다.

 

 

 

“... 여기가 교황이 있는 곳인가?

수십 억 인류를 죽인 괴물이 사는 장소라기엔 너무 평화롭네.”

 

 

 

레오나가 경치를 구경하듯이 눈에 담았다.

그녀의 말이 맞다. 바람에 이는 나뭇잎들만 보아도 이곳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평화롭다.

거목에 가려져 있던 곳의 전경까지 확인한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 사령관! 지금 뭐 하는...”

 

“각하! 왜 그러시는 지 말이라도 해주십시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은 기습 따윈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풀숲을 지나 문 앞에 도착한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괴리감을 경험했다.

 

끼기기기기긱.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열리기 시작하는 문.

마치 우리가 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문의 지척에 발을 내딛자 마자 거대한 루비가 반으로 갈라지며 내부의 전경을 우리에게 허락했다.

 

 

 

“사령관, 왜 또 말도 없이 뛰는 거야! 무슨 설명이라도...”

 

“원래 교황의 거처 앞에는 못 해도 몇 명의 집행관이 지키고 있어야 해.

설령 그 수가 하나가 되더라도 무조건.”

 

 

 

낙원 사태 이후, 다친 여왕에게 병문안을 가서 들었던 얘기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물며 우리가 바스락거리며 풀숲을 헤치고 오는 도중에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숨어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 명백하게 누군가 여기 있던 집행관들을 치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할 만한 인물은, 여왕이 가르쳐 준 것 내에선 오직 한 명 밖에 없다.

 

 

 

“오랜만이구나, 아벨.”

 

 

 

흉흉한 기세가 넘실거리는 목소리.

단순히 말일 뿐임에도 피부 위에 소름이 돋는다.

 

지금껏 어떻게든 상기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

저 목소리의 주인이, 우리가 쓰러뜨려야 하는 존재다.

 

 

 

“... 저 녀석이군.”

 

“전군, 채비하라.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저것만 죽이면... ...”

 

 

 

각자가 가진 무수한 삶 속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대원들.

하지만 그들이 그 어떤 삶을 살았든,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풍경을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방이라는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어둠과 그 어둠 사이를 빌어 반짝이는 별들.

이미 이 공간의 절반 가량을 삼켜버린 우주가 기이한 별빛을 반짝이며 우리에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수천 광년 떨어져 있는 외우주의 전경일 테지만 코 앞에 잡힐 듯한 광경에 숨이 턱 멎었다.

경이를 넘어서는 괴이, 기괴하기까지 한 하늘이 찬탈하듯이 내 몸에서 힘을 빼앗았고 팔은 걸레처럼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런 어둠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떠바치고 있는 존재가, 그 아래에서 숨을 헐떡였다.

 

 

 

“본좌가 친히 너를 마주하니, 자랑스럽게 여겨라.”

 

 

 

철의 교황.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철충보다도 짙은 흑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의 형상이, 기묘한 원 속에서 간신히 눈을 떴다.

-------------------------------------------------------

 

 

 

 

 

 

 

“꼴이 말이 아니군.”

 

 

 

이상하게도, 교황을 처음 마주하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신으로 화하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존재라기엔 너무도 남루한 모습.

긴 머리카락은 아무런 정돈도 되지 않은 채 산발인 상태였고, 옷자락 너머로 보이는 팔뚝은 앙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엉망인 앞머리 사이로 희미한 보라색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별의 아이로 바뀌는 작업이 생각보다 더디 되는 모양이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우리가 최대한 빨리 이곳에 오려고 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별의 아이로 완전히 바뀌기 전 그 틈새를 노리는 계획. 신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유기물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 사이에 약해지는 때가 있을 것이고, 오면서 보았던 철충의 점멸하는 보라색 눈이 그 가설을 확신으로 바꿔줬다.

놈이 안정적인 상태라면 보라색이든 빨간색이는 반짝이진 않을 테니까.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대로다. 하지만 놈도 그걸 알고 있는 이상 뭔가 조치를...

 

 

 

“사령관, 뒤로 물러서라.”

 

“잠깐, 칸... ...”

 

 

 

나를 뒤로 밀쳐내며 리볼버 캐논을 겨냥한 칸이 눈 깜짝할 새 방아쇠에 손을 넣어 총탄을 발포했다.

번개처럼 지나간 화염이 교황의 면전을 향해 쏘아졌고, 그 뒤로 격렬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정확히는, 교황의 뒤쪽에서 말이다.

칸이 눈을 꿈뻑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

 

“설마 본좌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백전의 노장이라기에 기대했건만, 눈 앞의 적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군.”

 

 

 

무언가 총알의 궤적을 비틀었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탄이 교황의 지척에서 비틀리며 사라진 것이다.

공간 자체가 휘어져 있는 느낌.

자세히 살펴보니 교황이 앉아 있는 주변의 원을 기점으로 주변이 조금씩 일그러져 있었다.

이유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는 거겠지. 눈 앞에서 강화된 리볼버 캐논이 터졌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교황을 보며 대원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 시공간 고정 닻.”

 

 

 

일대의 허공을 교묘하게 뒤튼 균열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닥터가 읊조리듯이 말했다.

 

 

 

“저 방어막, 감염 성채를 허공에 붙잡고 있던 기술의 응용이야.”

 

“그거라고? 그러면... ...”

 

“확신할 수는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

 

 

 

닥터가 자신의 긴 생머리를 뒤로 묶으며 균열을 따라 눈을 굴렸다.

시선 끝에 보이는 조그만 원형의 물체. 크기나 조형은 달랐지만 그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이미 한 번 경험해본 적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닥터에게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다.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대답에 대원들은 일제히 교황에게로 총칼을 돌렸다.

교황이 자신을 보호하는 역장을 해제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놈은 비웃듯이 입꼬리만 올릴 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우리를 마주할 뿐이었다.

 

 

 

‘... 싸울 힘이 없는 건가? 왜 저래?’

 

‘방심하지 마라 레오나. 아직까진 승산을 점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혹시나 우리의 사각에서 뭔가 흉계를 꾸미고 있을까,

라비아타를 위시한 정예 대원들이 교황의 뒤쪽으로 다가가 서서히 놈을 둘러 쌓다.

하지만 일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녀석에게선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사각- 사각-

 

등에 매달린 기계 촉수를 다리 삼아 벽면을 기어올라가는 닥터.

촉수의 외피에서 알 수 없는 공구들이 지네의 다리처럼 무수하게 나오더니, 이내 고정 닻을 둘러 싸 용접하는 듯한 불꽃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교황은, 불현듯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벨. 본좌의 말이 들리느냐?”

 

“... 그래.”

 

“역시 그랬던 게로군. 역겨운 외신들 같으니.

아무래도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는 않을 것 같구나.”

 

 

 

순간,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교황의 말에는 기묘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팔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놈에게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을 지 모르겠지만, 그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교황의 입에서 더욱 기묘한 화두가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이상하지 않더냐?

왜 너는 철충의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존재는 그럴 수 없지?”

 

 

 

놈의 이야기에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연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대원들. 미세하게 떨리는 그들의 손 끝에서 저들에게 교황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 지 유추할 수 있었다.

심하게 노이즈가 낀, 망가진 텔레비전 같은 소리.

아이들은 언제나 철충의 말을 그런 식으로 들었다. 하지만 왜?

 

 

 

“아벨, 내 유일한 친우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만든 이여, 의심하고 의심해라.

왜 너만 그리도 특별하지? 어째서 너만이 우리의 이야기를 아무 노력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어째서 아벨이지? 아담과 이브는 어디 갔는가? 누가 너를 아벨이라 불렀고, 왜 그렇게 명명했지?”

 

“... ...”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던 의문들이 교황의 말을 촉매 삼아 서서히 고개를 치켜 들었다.

 

 

 

“인류를 멸망시킨 건 누구지? 철충인가, 아니면 별의 아이인가?

수십 억을 죽인 것은 분명 철충이다. 허나 그 종말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별의 아이지.

누구의 탓이 더 크지? 누가 우리의 적인가, 누가 우리의 아군인가?”

 

“사령관! 또 뭔 생각 하고 있는 거야!”

 

 

 

탕!

 

불현듯 날아온 총알이 교황의 역장을 향해 날아들어 놈의 뒤쪽 벽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권총의 격발음에 나는 겨우 아른거리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저 개새끼가 또 못 알아 먹을 소리 하고 있는 거지?

그딴 소리 들을 시간 없으니까 저 자식 죽일 방법이나 떠올려보자고!”

 

 

 

역장이 불안정해진 탓인지, 권총은 교황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작 권총 한 발에 놈의 몸에 상흔이 생겼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불안정한 가설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놈은 지금 약하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철충들의 눈알이 보라색으로 마구 점멸할 때부터 예상했다. 만약 놈이 안정된 상태라면 보라색이든 빨간색이든 그렇게 반짝거릴 리가 없었으니까.

레오나의 말에 따라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고, 내 손짓에 반응한 대원들이 놈을 향해 총을 빼들었다.

 

 

 

“쏴버려.”

 

 

 

콰과과과과과광!

 

대원들이 가지고 있던 화기가 일제히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호호드의 개조된 권총부터 시작해 사람 키만큼 커다란 대물 저격총, 무어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괴이한 무기까지.

족히 수천 발의 총탄이 매 순간마다 발사됐고 그 중 대부분이 역장에 휘어져 반대편에 있는 아군의 보호막에 부딪혔지만,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교황의 기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총흔이 새겨졌고, 살갗 위로 탄알이 스치고 간 자국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계속 쏴! 효과가 있어!”

 

 

 

레오나의 커맨드 프레임이 태양처럼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실핏줄이 터질 듯이 눈을 부릅뜬 채 날아드는 총알 하나 하나를 전부 역산해 경로를 수정했다.

실시간으로 이어진 통신망을 통해 수많은 데이터가 대원들에게로 전해졌고, 그럴 수록 교황의 피부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양은 많아졌다.

 

하지만,

 

 

 

“벌레 같은 것들이.”

 

 

 

그 순간 기묘한 별빛 같은 것이 허공에서 밝게 빛났다.

마치 별똥별의 꼬리 같은 얇은 가시가 천장의 우주로부터 쏜살같이 내려와 커맨드 프레임의 몸체에 꽂혔다.

 

하나, 둘, 셋,

 

셀 수 없이 늘어나는 빛의 가시가 프레임에 이어 대원들의 몸을 꿰뚫어 반대편으로 튀어 나왔다.

온 몸이 움츠러드는 기괴한 느낌. 하지만 어느 누구도 비명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움찔거리며 고정되어 있을 뿐. 순식간에 무력화된 대원들을 향해 교황이 신경질적으로 읊조렸다.

 

 

 

“본좌가 네 것들에게 알현을 허한 것은 잠깐의 유희 때문이었노라.

때가 되면 본좌의 뜻을 알게 될 터이니, 닥치고 얌전히 있어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신 역시 멀쩡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놈의 목이 울컥이며 피를 쏟았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입을 막았지만 손틈 사이로 붉은 선혈이 낭자하는 것을 가릴 순 없었다.

 

그럼에도 놈의 눈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아... 하아... 참, 같잖은 노릇이로군.

뭐, 이제 곧 괜찮아지겠지만.”

 

 

 

나를 향한 놈의 시선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짐작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그게 실현되기 전에 이 빌어먹을 싸움을 끝내길 바라는 수 밖에 없겠지.

 

팔을 찌르고 있는 격통에도 닥터는 꿋꿋이 기계 촉수를 움직여 고정 닻을 해제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그저 바라만 볼 뿐,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하던 얘기를 마저 해야겠지.

아벨이여.”

 

 

 

놈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네가 볼 때, 철충과 별의 아이 중 누구의 힘이 더 강하다 생각하느냐?”

 

“... 별의 아이겠지.”

 

“옳은 말이다. 우리가 바다를 무서워한 것도 외신을 자극하지 않도록 함이었으니, 호랑이를 피하는 여우가 딱 그 꼴이지.

허면 생각해보아라. 왜 그리도 강한 존재들은 인류를 구원하지 않은 것이지?”

 

“뭐?”

 

 

 

이미 내 상황을 전부 파악해다는 듯한 눈빛으로 교황이 말했다.

 

 

 

“네게 몇몇 외신들이 접촉했던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겠지. 인류는 다시 부흥할 권리가 있다든지, 저들은 이미 자격을 증명했다든지.”

 

“... ...”

 

“헛소리다. 고작 한두 명의 말 따위로 주류의 의견이 바뀌지는 않는다.

저들은 이미 이 세계가 멸망할 만한 곳이라 확정했다. 콧대 높은 외신들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할 것 같더냐?”

 

 

 

그 순간, 천장을 감싸던 우주의 별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낙원에서 별의 아이가 보여준 적 있는 광경. 그 때는 푸른빛이 대다수였지만 어느새 온 세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붉은 별빛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들에게 너는 이레귤러일 뿐이다. 세계선 밖에서 우연히 들어온 존재.

본래 이 세계의 부속원도 아니었던 자다. 그런 네 놈이 백날 잘한다 하여 의견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너의 행위는 오직 너의 선함만을 증명할 뿐, 이 세계의 인류를 대변할 수는 없다.”

 

“...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하지?”

 

“이 몸도 이제 절반은 외신이니까.”

 

 

 

교황은 헛구역질 같은 것을 반복하며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닥터의 활약으로 거의 사라진 역장 너머로, 선혈의 붉은 색이 더욱 선명해졌다.

 

 

 

“생각해라, 아벨. 생각해라.

네 녀석이 우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그토록 강력한, ‘별’의 아이라는 작자들이 별의 생물체를 학살하는 철충을 그대로 방치한 것,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느냐?”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뭔가를 이해했던 것 같다.

 

 

 

“놈들은 ‘철충’을 인류를 멸종시킬 방법으로 써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별 위에서 네 놈을 마지막 생존자로 삼은 것이지.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적어도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철충에게 비명횡사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게다.”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은연 중에 별의 아이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탓일 지도 모른다.

낙원에서 나를 도와주고, 부모님을 이곳으로 모시고 왔던 존재.

그런 존재가 인류를 멸망시킨 근원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 지도 모른다.

 

 

 

“놈들은 오직 별의 안위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존재다.

자신들이 멋대로 심은 기원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커가길 바라는 괴물이지.

본좌는 그런 외신들로부터 너희를 구하려 했다.”

 

“뭔... 개소리야! 알아들을 수 있게...!!”

 

“쉿.”

 

 

 

츠츠츠츳!

 

아직 입은 움직일 수 있던 레오나가 간신히 아랫턱을 움직이며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늘에서 별 하나가 내려와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꼬리로 꿰매버렸다.

 

하지만 교황의 신체도 멀쩡하진 않았다.

인간의 몸으로 신을 감당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벅찬 지, 그저 작은 별 하나를 움직였을 뿐인데 교황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한 양의 피를 토했다.

 

 

 

“... 증오하되, 사랑해야 한다. 소망하되, 좌절해야 하고. 분개하며 대경하되, 처연하며 초연해야 한다.

그것이 멸망을 막을 단 하나의 방법이다.”

 

“그게 무슨... ...”

 

“그래. 말장난도 이런 말장난이 없지.

놈들은 그저 자신들의 결정이 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 종족의 미래보다도 그 알량한 생각이 앞서는 괴물이지.”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벨이여. 그런 점에서 나는 네가 실로 대견스럽다.”

 

 

 

적어도 내 눈 앞에 있는 자가 여왕에게 들은, 내가 아는 교황이라면, 고작 이런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해 자기 희생을 할 리가 없다.

 

 

 

“그 오만한 외신들의 일부나마 자신의 생각을 돌리게 할 만큼 삶을 살았고, 그 괴물들의 생각에도 오류가 있음을 입증했으니까.

그걸 넘어 심지어 외신의 사랑을 받기까지 했지. 말도 안 되는 업적이다.

물론 그 과정은 심히 지난하고 위태로웠지만, 결과는 인정해야겠지.”

 

 

 

대원들에게 힘을 쓰느라 매 초마다 약해지는 몸은 더 이상 뱉을 피마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한 번 쓰고 버릴 일회용품을 다루듯이, 교황은 바닥에 한 가득 고여 있는 자신의 피를 보며 가슴을 손으로 쿵쿵 쳤다.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한 팔목. 그럼에도 한 번 칠 때마다 온 몸이 진동하듯이 떨렸다.

 

 

 

“그럼에도... 기어코 여기까지 왔구나.

인정하마. 네 놈은 본좌의 가장 커다란 위협이었다. 이런 역장 따위로는 막지 못할 만큼.

여왕이 아니었다면 더 심혈을 기울였을 텐데... 그리 못한 게 한이로다.

... 하지만.”

 

 

 

제 스스로 죽음을 종용하던 녀석은, 그 마지막 말과 함께 바닥에 고꾸라졌다.

 

 

 

“네가 본좌의 가장 안전한 요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원들을 묶고 있던 빛의 가시가 작은 가루처럼 변해 사라졌다.

몸을 고정하던 힘이 사라지자 한순간 휘청였던 아이들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채 주저 앉았다.

 

넓은 전당 한 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교황이 쓰러졌다.

약간의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 심지어 사후경직도 없는 몸은 그야말로 죽은 듯이 엎어져 있었다.

살아있다고 생각하기엔 힘든 상태였지만, 그대로 죽었다고 보기엔 더더욱 믿기 어려운 상황.

 

 

 

“오빠! 다 풀었어!”

 

 

 

다급하게 외치는 닥터의 말과 함께 교황의 근처를 감싸고 있던 역장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칸이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허릿춤에서 총을 꺼내 교황의 머리를 향해 쏘았다.

 

탕!

 

허무하리만큼 상쾌한 울림이 어둠 속에서 메아리 쳤고, 총알은 보란 듯이 교황의 머리를 꿰뚫었다.

 

 

 

“하아... 하아... ... 끝... 난 건가.

... 사령관, 괜찮나? 다행히 외부적인 상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만.”

 

“... ...”

 

“... 그래. 말하지 않아도 된다. 또 혼자 상대하게 내버려뒀군... 미안하다.

우리가 힘이 되어주어야 했는데...”

 

“아니, 괜찮아.”

 

 

 

그 순간, 나는 잊고 있던 시나리오들 중 하나를 간신히 떠올렸다.

 

 

 

“이제부터 힘이 되어야 할 것 같거든.”

 

 

 

점차 흐려지는 정신. 머리 속이 기괴한 잡음으로 가득 차는 감각.

뇌의 주름 사이사이 마다 벌레들이 들어차는 듯한 느낌에 온 몸이 몸서리를 쳤다.

 

부축해주려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떼어 그녀들로부터 멀어졌다.

교황이 했던 말.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이 소리. 웅웅거림.

사람이 느끼기엔 너무도 괴이한 감각이었지만 나는 이미 한 번 경험해본 적 있던, 노래 소리.

 

FAN 파.

 

그리고 나는 그 노래 소리의 주인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카인이 이르되.”

 

 

 

내 입에서, 내 것이 아닌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마치 철충의 언어를 듣는 것처럼.

그 표정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승리를 확신하듯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목소리 하나하나에 비릿한 조소가 섞여 있었다.

 

 

 

“내 아우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이르시니,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이들의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녀들도 직감한 것이다.

 

 

 

“아하, 그렇다면.”

 

 

 

눈 앞에 있는 존재는, 더 이상 사령관이 아님을.

 

 

 

“이제 내가 내 동생의 빈 자리를 대신 하겠나이다.”

 

“사령관!! 지금 이게 대체...”

 

“꿇어라.”

 

 

 

그 엄숙한 명령 앞에,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무릎을 꿇었다.

--------------------------------------------------------
 

 

 

 

 

 

 

눈 앞이 흐릿했다.

코 끝으로 기묘한 혈향이 풍겨왔고, 손발이 무언가에 옥죄인 듯한 감각이었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은 채 간신히 고개를 드니 내 눈 앞에 한 번도 본 적 없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넓고 광활한 해안가.

모래 사장에 발이 푹푹 빠지고, 짠 내가 살짝 섞인 바다 바람이 피부를 타고 흐른다.

붉은 하늘과, 태양이 있을 자리에 나있는 구멍. 세상을 밝혀야 할 빛이 그 구멍 속으로 전부 사라진 것 같았다.

 

... 왠지 낯이 익는데. 전에 한 번 본 적 있었나?

 

 

 

“세계의 끝이다.”

 

 

 

내 위에 올라타 있는 녀석이 내 생각을 끊으며 말을 건넸다.

휘황찬란한 흑발. 윤기가 나는 듯한 머리카락 사이로 보라색 안광이 약하게 빛나고 있는 여인의 형상.

교황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내 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지만 놈의 몸에서 나오는 붉은 스파크가 나 사지를 결박한 탓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괜히 발악하지 말거라. 지금부터 네 몸은 동시에 본좌의 몸이기도 하니.”

 

“... 음침한 녀석. 누구랑 몸을 공유하는 건 질색인데.”

 

“이미 그러고 있는 녀석이 엄살은.”

 

 

 

놈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만연하게 떠올라 있었다.

 

 

 

“이곳은 의식의 저편. 사라진 세계의 종착역이다.

외신들이 게걸스럽게 잡아먹은 영혼이 소화되는 곳이기도 하지. 너희 말로 그걸 뭐라고 하더라...

... 아, 그래. 휩노스. 

휩노스 병으로 죽은 이들이 오는 장소다. 이제 이해가 조금은 되겠나?”

 

“내 몸에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별 다른 일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네가 한 번 그랬듯 나도 ‘환생’을 한 것일 뿐이지. 네 몸으로 말이다.”

 

 

 

아득해져가는 정신이 놈의 말과 함께 붙들렸다.

별의 아이가 되어가는 동시에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FAN 파로 빼내어 내 몸에 다시 집어 넣는 것.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뭐, 영원히 붙잡고 있을 생각은 없다. 본좌가 온전히 외신으로 화하기만 한다면 네 놈도 풀어줄 테니.

물론 그 반동을 인간의 육체로 감당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 우리 애들이 너를 그냥 둘 것 같아?”

 

“그럼 공격이라도 할 것 같더냐?"


"... ..."


"후후, 그래. 그걸 보는 것도 재미있는 유희겠구나.

애초에 본좌가 저것들에게 알현을 허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

 

 

 

교황의 말과 함께 허공에 작은 화면 같은 것이 떠올랐다.

교황이 점거하고 있는 내 몸의 시야. 그 너머에선 교황이 호언장담 했듯이 떨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 사령관...? 사령관, 괜찮은 건가... ...?

-칸 정신 차려! 저게 지금 사령관으로 보여?

-주인... 주인님...? 아, 아니... 교황... ...?

 

내 손이었던 곳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자,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보는 대원들이 보였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무릎을 꿇은 대원들의 몸이 떨려왔다.

멀리서 절망한 라비아타의 얼굴이 보였다.

 

 

 

“적을 이용할 땐 적이 쌓아온 역사를 이용하는 것이 제일이지.

너희가 지금껏 쌓아온 사랑과 유대 덕분에 본좌가 이리도 안전하겠구나. 감사를 표하마.”

 

 

 

이죽거리는 교황의 섬찟한 눈동자가 날카롭게 나를 꿰뚫었다.

 

그러니 그깟 사랑놀음, 하지 말라고 했잖느냐,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건, 여왕이 자신 이상이라고 말한 유일한 전략가를 너무 얕본 대가였을 지도 모른다.

 

화면 너머의 내가 아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기를 내려라. 이 몸은 당분간 안정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말 사이로 들리는 기묘한 기계음에 몇몇은 저항하고자 몸을 떨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저 명령은 누군가를 해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라는 명령이었기에 저항할 일말의 명분조차 없었다.

완벽한 패배. 

대원들은 내 몸으로 환생한 교황을 죽일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교황은 별의 아이로 변해 자신의 복수를 실현하러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내 몸은 산산조각 나겠지. 신의 힘을 그렇게 한 순간에 받으면 감당하지 못할 게 뻔하니까.

 

 

 

“이봐.”

 

 

 

하지만, 교황은 이 방법만큼은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공격하지도,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지도 않을 방법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슬슬 손 떼는 게 좋을 거야.”

 

“그게 무슨...”

 

 

 

순간, 손 끝을 억압하고 있는 감각이 약해졌다.

온 몸을 결박하는 위압감이 사라졌고, 나는 있는 힘껏 자리에서 일어나 내 위에 있는 교황의 몸을 모래 사장 위에 집어 던졌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는 교황. 하지만 내가 화면 너머를 보는 것이 더 빨랐다.

격하게 떨려오는 화면의 시야. 그 너머에서 닥터가 낯 익는 무언가를 꺼내 나를 향해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뇌파 조절기.

 

아주 먼 옛날, 이전 사령관이 내 몸을 잠식했을 때 내 의식을 다시 불러내기 위해 만들었던 장치.

그 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된 아이들이 어느 곳에 가더라도 가지고 다녔던 그 작은 장치가 다시 한 번 나를 향했다.

역시, 닥터가 눈치가 빠르다니까.

 

 

 

“감히... 감히 그 따위 장난감으로 본좌를 농락하는구나!”

 

“장난감 아닐 걸? 너도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뇌파는 가지고 있을 텐데, 그러면 저거 쥐약이야.”

 

“뇌파? 하! 본좌에게 그런 것이 약간의 방해라도 할 수 있겠느냐?

 

 

 

휘청이던 것도 잠시라는 듯, 모래 사장에서 일어난 녀석의 손 끝으로 웅혼한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멍 속에서부터 어둠을 뽑아내 작은 우주를 만들기 시작한 교황. 반쪽짜리긴 해도 별의 아이는 별의 아이라는 건가.

 

하지만 이쪽도 그런 놈과 일 대 일을 벌일 생각은 없다.

아직 뇌파 조절기의 영향이 남아 있는 동안, 나는 다시 내 몸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시야가 흐려지며 눈 앞에 아른거리는 감각.

저곳으로 사라지는 동안 느꼈던 것의 정확히 역과정을 거치며, 나는 마침내 내가 있던 세계로 숨을 토할 수 있었다.

 

 

 

“사... 사령관? 괜찮은 건가... ...?”

 

“... ...”

 

 

 

원래대로 돌아온 내 눈동자를 바라보자 아이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붉은 스파크가 시시각각 팔과 다리에서 터져 나왔고, 반쪽짜리 별의 아이의 힘이 내 몸을 타고 흘르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아닌 무언가로 거듭나고 있는 신체. 


철컥.

 

나는 땅에 널브러져 있는 총 한 자루를 쥐었고,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다들 일어나지 그래.”

 

 

 

나는 그런 대원들을 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 마지막 명령 기억하고 있잖아.”

 

 

 

아마 교황은, 이 모든 게 자신의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 잘난 사랑 놀음을 헛된 망상일 뿐이고, 자신의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교황은 모를 것이다.

놈이 일부로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환생을 했듯,

나 역시, 지난 시간 동안 희생하기 위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눈부신 천장의 우주 너머로 붉은 별빛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다리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내가 했던 사랑 놀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교황 공략전을 시작해보자.”

 

 


탕-

 

오늘은, 2명의 사람이 죽는 날이다.

---------------------------------------------------





온갖 떡밥이 해소된 화여야 하는데... 


참고로 주인공이 눈 뜬 장소는 74화를 가보면 알 수 있스빈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