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성교. 성행위.

둘이 몸을 겹치며 하나 되는 것.

숭고하고도 상스러운, 성애의 종착지.

“…그걸 빔으로 쏘는 초인은 히어로일까 빌런일까?”

[…]

그 질문에, 나와 세 AGS만이 참여하고 있는 음성 채팅방에 미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그, 사령관님? 이번 역전패에 마음이 좀 싱숭생숭한 건 제가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먼저 들려온 것은, 나를 위로하려는 듯한 Mr. 알프레드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거 때문에 한 생각 아니야. 그냥 얼마 전부터 궁금하더라고.”

[아하, 그런 거였습니까…그 생각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한 겁니까?]

“어림잡아 한 달?”

[흠, 성교의 에너지를 담은 광선이라…그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이어서 진중한 골타리온 XIII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네. 애초에 섹스를 빔으로 쏜다는 이미지 자체를 좀 구체화해야 할 것 같은걸.]

페레그리누스도 이 주제에 바로 올라탄 것 같았다.

“음…그렇구나.”

[그래서, 그 광선…이름이 있습니까?]

“음, 그냥 섹스빔이라고 붙여놨는데.”

[아주 직설적인 이름이로군. 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은 좋은 것이다.]

[이거는 직설을 넘어서 외설의 수준 같지만.]

“다른 이름을 지어볼까 했는데, 저게 너무 입에 짝 하고 붙었지 뭐야.”

[으흐흠, 그렇군요. 그런데 그 빔, 정확히 뭘 하는 겁니까?]

[그렇지 그렇지. 결국 중요한 건 빔의 효과니까.]

“음, 그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에너지계인가, 아니면 효과계인가?]

[아, 그렇게 나누는 겁니까?]

[에너지 자체를 쏘는 거냐, 빔에 맞은 대상에 어떤 효과를 부여하는 거냐의 차이는 크니까.]

“그렇게 분류한다면 아마…효과계가 아닌가 싶은데.”

[하긴, 섹스의 에너지라고 해봐야 운동 에너지 아니겠습니까. 그 에너지 자체를 쏜다는 거는…그냥 빛의 속도로 사람이 나체로 날아가는 거 아닐까요?]

“이야, 그렇게 상상하니 되게 없어보이네.”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나체의 존재라, 그건 확실히 공포스러운 병기로군.]

[그건 진짜 변태 빌런이 아니고서야 못 쏠 것 같은 기술이네.]

[그렇다 하면 효과계인 것은 확실한데, 그렇다면 매료의 능력인가?]

“아니지 아니지. 매료는 섹스를 ‘하고 싶게 만드는’ 거잖아. 나는 ‘섹스를’ 쏘고 싶은 거라고.”

[음, 매료도 정확히 그런 효과는 아닌 것 같은데…]

[뭐, 그건 넘어가도록 하고, 섹스가 줄 수 있는 효과라는 게 대체 뭘까요?]

섹스가 줄 수 있는 효과…뭐가 좋을까.

대상과의 유대감? 관계의 진전? 으음…아냐. 뭔가 좀 더 직관적인 효과가 필요해. 섹스 때문이라는 것을 팍 하고 알 수 있는 효과가…아!

“맞으면 오르가슴을 느끼는 빔으로 하는 게 어때?”

[흠, 단순 명쾌. 기본은 그렇게 잡고 차차 개선해 나가는 것이지.]

[좋아. 기본은 정해졌고, 이제 이 기술이 히어로에 어울리냐 빌런에게 어울리냐 생각을 해 봐야 하는데…]

[맞으면 뿅 가는 광선이 히어로가 쓸 만한 물건이 맞기는 합니까?]

“왜, 좀 아니다~싶은 능력으로 활약하는 거, 좋잖아.”

[아아, 알지 그런 거. 나도 그런 거 좋아해.]

[으으음, 뭔지 대충 알 것 같네요.]

[군단장 나으리는 어떻게 생각해? 히어로에 어울리는 능력일까, 빌런에 어울리는 능력일까?]

[흐음, 지금의 형태로는 빌런에게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것은…히어로에게 통하지 않을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지.]

[아아, 그렇네요! 보통 주인공 캐릭터는 연애적으로 엮이는 게 옅은 편이니까요.]

[으음, 주인공 타입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좀 변주를 넣어서 평소엔 좀 뺀질뺀질하다가, 중요할 때에는 팍! 하고 진지해진다든가.]

“아니면 히어로에게 통하지 않아서 패배한 빌런이 능력을 강화했다고 하면서 돌아와도 괜찮지 않을까?”

[흐음.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면서 정의를 꺾고자 하는 마음! 중요한 것을 알고 있군 사령관.]

[근데 이거 역으로 히어로가 쓴다고 해도 말이죠. 빌런은 섹스를 많이 합니까?]

[…으으음…]

“아니,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마 골타리온.”

[뭐, 설정이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빔’이면, 히어로든 빌런이든 경험자가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은데?]

[흐흠, 하긴 그래야 그 기술의 존재 가치가 있겠군요.]

[근데 오르가슴만 따지니 아무래도 활용도가 너무 없는 것 같네.]

“그럼 이런 건 어때? 오르가슴 한 번 오면 머리가 좀 맑아지는 그런 느낌이 있거든.”

[아하, 현자타임이라고 부르는 그거 말이군요?]

“응 그거. 그렇게 해서 뭔가 격앙된 감정도 좀 누그러뜨리는 그런 건 어때?”

[오호, 전의를 상실시키는 기술이라, 평화주의적인 캐릭터가 쓸 만한 물건이네.]

[또는—터무니없는 압제자가 쓸 수도 있지요.]

“…아아, 확실히…그렇네.”

[과연. 자신에게 거스르는 자를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겠지…]

[…그건, 관용적으로 말해서, 구역질이 나는걸.]

“…”

[…으흠! 주제로 돌아오죠. 그런데 섹스를 한 적이 없으면 이 기술은 통하지 않는 걸까요?]

“오르가슴 후 현자타임이라면 그냥 혼자 하는 것으로도 느낄 수 있으니까,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여전히 가용 범위는 좁네. 섹스든 자위든 적령기라는 게 있으니까.]

“…으응, 그, 그렇…지?”

[아, 뭐…사령관님은 왕성하신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기술의 초반은 약점이 뚜렷한 편이 좋다. 강화 에피소드를 사용할 수 있으니.]

[단역 악역이라면 약점 파훼당하고 얄짤없이 끝이겠지만.]

“’으윽 이럴 수는 없어!’ 하고 말이지.”

[그런데 이 뿅 가는 빔…]

“섹스빔.”

[…아무튼, 이거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요?]

“음…멸망 이전하고도 그 이전에는 엄청 맛있는 걸 먹거나 큰 것을 성취하면서 ‘이게 섹스다’라고 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하는 것 같더라.”

[그것은 그저 안쓰러운 자기만족이 아닌가?]

[따져보자면 오르가슴도 성취감도 도파민의 작용이라 화학적으로는 차이가 없긴 합니다만…]

[육체적 만족을 넘어서서 행복감을 주는 기술로의 변화라 본다면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러면 맞는 사람이 ‘이것이…섹스인가?’하면서 쓰러지는 건가?”

[섹스를 버릴 생각이 없구나, 너.]

[헌데, 순식간에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그렇군요. 만족감은 작은 것으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보니.]

“그러면 감정을 제거한 적이 등장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조금 시시한 것 같은데…’만족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설정의 적은 어때?]

[크으, 감정은 가지고 있지만 한 번도 만족하지 못해 영향을 받지 않는 적이라, 좋군요!]

“뭔가 빌런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존재네.”

[어떠한 조직의 스카우트도 거절하고 홀로 방랑하는 타입이겠지.]

“자기에게 계속 덤비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싸움에서 조금씩 기쁨을 느끼게 되고…”

[마지막 일기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족하며 쓰러진다! 인기 많은 플롯이지.]

[크으, 좋군요! 거기에 뭐 더 추가할 만한 건 없을까요?]

“이런 캐릭터라면 아마 주된 악역 측도 다짜고짜 공격할 것 같은데.”

[‘내 적수를 건드리지 마라’라는 느낌으로?]

[에이, 그건 좀 츤데레같아서 별로인데요.]

“음, 그런가?”

[아마 그 정도의 캐릭터라면 주인공을 넘어선 강자일 거야. 아마 최종보스 급이 아니라면 관심도 안 줄 걸.]

하긴, 그 정도의 강자면 주인공 미만의 캐릭터들과는 싸워봐야 시간낭비라고 여기겠구나.

“그런데 그런 캐릭터가 마지막에 ‘이것이 섹스인가, 만족했다’ 하고 쓰러지면 좀 웃기겠다.”

[…그냥 ‘만족했다.’ 하며 쓰러지는 게 낫겠죠 아무래도.]

[그런데 이렇게 보면 결론적으로 섹스빔의 주인은 히어로가 되는 것 같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되는군요.]

“흠, 빔이 아니라 플래시로 바꾸면 악역이 쓸 법한 기술이 되지 않을까?”

[전방위를 절정에 다다르게 하는 기술이라…훌륭하군!]

[훌륭하게 고약한 기술이네 그거.]

[으음, 그러면 일단 결론은 났으니…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판 더 돌릴까요?]

“그러자.”

[좋다! 이번에야말로 승리를 취하도록 하지!]

[좋아, 가볼까?]

[갑시다!]


친구들이랑 노가리 깔 때 터무니없이 시작해 대책없이 흘러가는 대화의 흐름을 생각하며 짧게 써봤음

섹스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