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37576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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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제법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 하나가 무사히 끝난 탓일지, 긴장감이 풀리면 늘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인생이란 두꺼운 책은 쓰기도, 읽기도 어렵다.

그만큼 쉽게 써지거나, 쉽게 읽혀서도 안 된다.

더군다나 타인의 삶을, 가상이지만 문서화 된 삶을 빌린다는 것의 대가로 새로이 일대기를 쓴다는 것은 평생을 바쳐 풀어야 할 숙제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이 두꺼운 책을 완성하여 온전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는 것이 사령관에게 주어진 천명이었다.

비참했던 삶 이후에 주어진 타인의 삶은, 축복일지 저주일지는 사령관을 이 세계로 보낸 이만이 알고 있는 듯했다.

 

이미 짜여있는 각본에 놀아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늘 그렇듯이 사령관의 존재 자체가 변수로 작용하는 이상은 새로운 전개방식으로 이끌어 가야만 했다.

어쩌면 그렇게 이끌리도록 각본에 이미 쓰여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난이네요.’

 

키르케가 수정구로 보았던 여난.

전생에서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사령관은 기억한다.

어쩌면 어릴 적 만난 할아버지도, 이 삶을 이미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을의 바다는 겨울만큼 차가웠다.

할로윈이라는 특별한 날 이야기를 모두 끝내야 했기 때문에, 일 분 일 초가 아까웠던 사령관은 다소 무리한 끝에 마감기한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여파로 지독한 감기가 찾아와 오르카호에 복귀하자마자 수복실에 누워있는 현재, 사령관은 이 인생이란 이야기에도 휴재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수복실의 다프네는 늘 그랬듯이 사령관이 불편한지 자리를 떴고, 간간히 바이오로이드들이 병문안을 오곤 했다.

적갈색 머리카락의 저격수도 마찬가지였다.

 

“각하. 몸은 괜찮으신지요.”

“아, 발키리구나. 왠지 오랜만이네. 부관 자리를, 약속했었는데 말이야.”

“네.”

 

평소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병문안을 온 발키리는 평소보다도 감정을 알 수 없었다.

연속으로 이벤트가 찾아와버리는 바람에 무척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일지 본의 아니게 약속을 저버리게 된 사령관은 어쩐지 양쪽 색이 다른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미안, 아무래도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어.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사령관은 눈앞의 여성의 눈치를 살폈다.

사령관의 옆에 항상 붙어있어야 하는 부관 자리.

그 자리에 앉힐 것은 불완전한 미래를 내다보는 사령관을 보조할 아르망을 생각하고 있었다.

 

선약을 깨버리고 염치없이 하는 부탁.

분명히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동등한 인간이라면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실제로 그런 반응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것은 그녀의 뒤로 공허가 담긴 눈빛이었다.

 

“…레오나 대장이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각하를 감쌌던 것도, 제가 아닌 온전한 정신이었다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발할라의 레오나와 발키리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아무리 둔한 사령관이라도 눈치채고 있었다.

억지로 무언가를 참는 듯한 목소리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지않아. 그때 날 구해준 것이 너라서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 다른 누구도 아닌 너라서 말이야.”

“그게 무슨…….”

“아무것도 모르던 과거에, 너를 전장으로 홀로 보냈던 것을 기억해?”

“기억합니다.”

 

처음으로 기적같이 인터넷에 연결되었을 때, 들었던 ‘발키리를 던져보라’라는 조언.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식한 방법이었다.

게임이었다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도 수복하면 될 일이었지만, 여긴 엄연히 전장이다.

총열이 내뿜는 열기와 화약 냄새가 곁에 있으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실제 전장.

 

“오랜만에 단둘이 되었으니, 이제야 진심을 전할 수 있겠네. 뭣도 모르는 시절 고생시킨 점, 약속을 깬 점, 정당한 보상을 내리지 못한 점, 챙겨주지 못한 점. 전부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제야 말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모두의 도움이 있었어도, 그 중 ‘첫 번째’는 다름 아닌 너야.”

“‘첫 번째요’….”

 

공허했던 그녀의 두 눈이 다시 생기를 되찾는듯했다.

입가에 자연스레 지어지는 옅지만 은은함을 내뿜는 미소.

저 어여쁜 얼굴에 저 미소를 띠게 하고 싶었다.

 

“일 처리를 아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해를 사는 일이 종종 있어. 나는 모두를 좋아하는데, 모두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더라. 발키리, 나를 너무 미워하진 마.”

“다,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각하를 사모하고 있…아…!”

 

발키리의 두 눈이 요동쳤다.

날은 쌀쌀하건만, 사령관의 한 마디에 가슴속에 봄바람이 잠시 불었는지 불필요한 말을 꺼낸 발키리가 서둘러 입을 막아보았으나, 새어 나온 말은 다시 입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이 사모하는 남자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

 

“흐읍?!”

 

급하게 입을 막은 손이 거두어지고, 남녀의 입술이 포개졌다.

냉철하고 무표정이 어울리던 그녀는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 무슨 반응을 보일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눈을 감고 그저 입안에 얽혀오는 애정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아…각하….”

 

포개졌던 입술이 멀어졌다.

마치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오작교와 같은 얇은 타액이 작별을 고하듯 중간에서 툭 끊어졌다.

내년 칠월칠석을 고대하듯, 이별의 아쉬움만이 서로의 입술에 은은한 열기로 남아있었다.

 

“아, 생각해보니 나 감기 걸렸는데. 옮으면 어떡하지?”

“…….”

“발키리? 화났니……?”

“아, 아닙니다. 같은 병을 앓는 것도 낭만 있지 않을까요…….”

 

방금까지와는 달리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 채,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발키리는 평소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저 이런 면도 있다고, 그녀의 캐릭터성을 한 줄로 정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령관은 느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닌 두 번째 현실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불안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음, 그래서 부관 자리는 말고, 포상은 무엇으로 하는 게 좋을까.”

“저기, 각하. 그, 괜찮다면 그 포상. 방금 그거 한 번 더 해주실 수 있나요…….”

“…진짜 그거면 돼?”

“네, 넵. 과분합니다!”

 

처음이 어렵지만 두 번째는 쉬웠다.

어색하게 놀던 손은 그녀의 허리와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고, 그녀의 손은 사령관의 허리를 감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한참을 떨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탕-

 

어디선가 울리는 총기의 발포 소리에, 둘은 눈을 끔벅 뜨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갔다.

사령관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총소리가 들려온 곳은 다름 아닌, 사령관의 집무실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집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곳엔 날카로운 것에 스친 듯, 흰 얼굴에 얕은 상처를 입고 바닥에 넘어져 있는 아르망이 있었다.

그 뒤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옅은 연기를 내뿜는 권총을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경호 대장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리리스!”

 

*

 

아르망은 사령관이 테마파크로 가 있는 동안, 오르카호에 남아 자신이 벌였던 일을 수습하고 있었다.

사령관과 단둘이 있을 수 있도록, 이곳저곳에 잘못된 정보를 흘려 모두의 동선을 꼬아버린 것이었다.

 

특히나 가장 어려웠던 것이 사령관의 옆에 항상 붙어있는 경호 부대, 컴패니언이었다.

하치코의 후각을 경계해 가장 먼 곳으로 배치하고, 나머지의 경호 배치 지역을 정해서 서로의 근무지로 교대하게 만들었다.

 

컴패니언이 받아 들었던 근무지표에는 잘못된 정보가 적혀있었다.

사령관과 가장 먼 곳에 배치된 하치코가 먼저 사령관을 경호 중인 것으로, 서로 잘못된 근무지 위치를 받아든 나머지는 2시간 주기로 서로의 근무지를 빙빙 돌기만 했다.

각기 다른 누군가가 사령관의 옆을 경호중이라는 생각을 품게 하고, 각자의 근무지표에는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사령관의 옆에 경호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교대 없이, 긴 시간을 사령관과 격리할 수 있었다.

 

“이런, 경호 시스템에 허점이 있었군요. 이 점은 확실히 보완해야겠어요.”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아르망은 고개를 숙여 페로에게 사과했다.

페로는 당연히 누군가 사령관의 곁에서 경호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저는 괜찮지만, 언니는…….”

“네, 설득은 조금 힘들겠죠. 어찌 보면 그녀의 자존심, 경호 대장이란 직책에 흠이 생겼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르망은 고개를 다시 한번 꾸벅 숙이고는 사령관의 집무실로 향했다.

지금 상태로서는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리리스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집무실을 지키고 있던 그녀는, 아르망을 보자마자 인사를 건넸다.

 

“어머, 안녕하세요.”

“아, 리리스 씨. 오늘자 경호 임무는 끝났습니다.”

“네? 저는 주인님을 아직 뵙지 못했는데요?”

“죄송합니다. 사실은 폐하가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우려한 제가, 근무지표에 손을 조금 써놨습니다. 폐하 옆에는 컴패니언의 누구도 있지 않아야만 했고, 오직 저만 폐하의 곁에 남아있도록 했어야만 했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리리스의 분노는 당연하고도, 정당한 것이었다.

경호라는 고유의 영역, 모두 한곳에 모여있더라도 서로의 부대가 가지는 가치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철칙이었다.

 

리리스 눈앞의 소녀는 그 철칙을 어기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부대 외부의 인원에게 한 부대 전체가 휘둘린 것과 경호 대장이란 지위, 연달아 발생한 경호 실패에 리리스의 자존심은 날카롭게 할퀴어졌다.

 

“아르망, 당신은 선을 넘었어요.”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집무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미래를 아는 아르망이 이토록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는 것이 리리스는 불안했다.

믿는 뒷배가 무엇이 있는지, 분명 잘못한 것은 아르망일텐데도 리리스는 왜 자신이 무조건 저 소녀를 이해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사령관에 대한 애정이 넘칠지언정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그가 필요로 할 때마다 곁에 없었던 것은 뼈아픈 실수다.

한, 두 번은 실수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는 실수가 아닌 실력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무능한 경호 대장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리리스는 아르망이 자신에게 모종의 블러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신체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소녀에게 놀아났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호 대장의 자리를 우습게 보면 곤란해요. 경호 인원을 경호 대상으로부터 떼놓는다는 것은, 주인님의 안위에 큰 위협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요? 그렇다면 경호 대장으로서 아르망씨를 저는 적으로 둘 수밖에 없어요.”

 

서늘하게 웃는 표정을 짓는 리리스의 권총이 장전되었다.

정작 아르망은 자신의 안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별로 좋은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도 실망하실 거에요.”

“아니요? 주인님은 저희를 아껴주시고 사랑하시는걸요? 그런 주인님의 기대를 배신할 수 없기에, 저는 경호 대장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필요가 있어요.”

 

아르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늘 온화한 미소를 짓는 아르망이었으나 같은 여자인 리리스는 느낄 수 있었다.

사령관에게 짓는 사랑스러운 얼굴이 아닌, 명백한 비웃음.

 

“뭐가 그리 웃긴 거죠?”

“확실히 웃기네요. 폐하께서는 생각도 없는데 누구를 아끼니 마니, 세 번이나 경호에 실패한 무능한 경호 대장을 누가 아끼겠어요?”

“……다시 한번 지껄여봐.”

 

리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정면으로 그녀의 아픈 곳을 쑤셔오는 아르망의 독설에 생글생글 웃던 리리스의 표정이 한층 험악해졌다.

 

“좋네요.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저도 예지하기 편하지요. 그러니 저도 핸디캡을 주어야겠죠?”

 

아르망의 표정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집무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마치 서로에게 권총을 겨누는 서부극의 카우보이처럼, 단 한 마디로 서로를 향한 무자비한 사격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적당히 사과하면 받아주셔도 좋잖아요? 매일 얼굴 볼 사이일지도 모르는데.”

“이 위치가 그리 호락호락한 자리는 아닌데요.”

“무능한 자리에 굳이 가치가 있을까요?”

 

리리스는 위협용으로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 고민했다.

총구는 그녀의 머리 옆을 향하고 있었고, 이 정도는 그녀의 예지로 리리스의 첫 탄환이 위협 사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리리스의 이성은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양보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무릎 꿇고 저자세로 나와도 모자랄 판에 경호 대장이라는 이름을 모욕했다.

자신이 참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을 텐데도, 본능이 참으라고 머리의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폐하는 듣던 대로 대단한 분이시더군요. 과거의 기록처럼 또 누군가를 구원하셨어요. 무능한 누군가와는 다르게 말이죠.”

“닥쳐.”

“폐하와 맨살을 맞대는 경험은 처음 겪는 부끄러운 경험이었어요.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주 황홀한 이야기더군요. 누군가가 그 자리에 없어서 말이죠.”

“닥…치라고 했어.”

 

리리스의 손가락이 방아쇠 앞에서 덜덜 떨렸다.

이대로 손가락에 힘을 주어도, 힘을 풀어도 당겨질 것 같은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소녀는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가지 조언을 해드릴까요? 폐하는 무작정 들이대는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권총의 총구가 아르망의 머리를 향했다.

이성과 본능이 머릿속에서 싸워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를 겨눴다가, 다시 그녀 뒤의 벽으로 향했다가 미세한 떨림이 손잡이를 쥔 손에 전해졌다.

 

“한 마디만 더하면 쏠 거야. 이건 마지막 경고야.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사과한 후 주인님께도 자초지종을 설명해.”

“제가 왜요? 제가 폐하랑 이뤄지려면 그쪽이 무능한 상태로 쭉 있는 것이 저한테는 도움이 될 텐데요?”

“하, 이 망할 년이 뚫린 입이라고…. 내가 못 쏠 줄 알아?!”

“쏴 보시죠.”

 

아르망은 자신의 이마 정중앙을 가리켰다.

마치 쏠 테면 쏴보라는 양.

 

“불쌍하니 말씀드리죠. 폐하로부터 얻을 평판을 신경 쓰시나 본데, 안심하시길.”

“불쌍? 주인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해. 나도 그렇고. 언젠가는 나만을 봐주시겠지.”

“그런가요? 제가 예지한 수많은 미래 중, 리리스 씨가 폐하와 이루어지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리리스의 손에 든 권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아르망의 머리를 피해 허공에 쐈지만,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아르망은 오히려 자신의 고개를 총구 방향으로 가까이 돌렸다.

 

아무런 피해가 없어야 했다.

위협으로 끝냈어야 할 일이었다.

실제로 리리스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아르망의 뺨에서는 선혈이 스멀스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총알이 스치고 피부가 상처가 난 것을 늦게 파악하고 서둘러 피를 흘려보내는 것만 같았다.

 

“너?! 피할 수 있었잖아…! 어째서….!”

“그럴 수 있었죠. 그러려고도 했고요.”

 

아르망은 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마치 연극 배우처럼 아련하게.

 

“리리스 씨가 폐하를 좋아하는 만큼,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보통은 연약한 여자아이에게 더 애정을 쏟으시지 않겠어요?”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리리스가 사랑해 마지않는, 남자의 투박한 발소리도.

 

“체크메이트네요.”

“너, 이…망할…!”


자충수였다.

아르망은 여기까지 내다 본 것이 분명했다.

못 참고 위협사격을 할 대화, 들려오는 발소리의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졌다. 


“다시 한번 소개하죠. 제 이름은 아르망. 덴세츠 소속이며 이 능력을 이용해 복원 전에 맡았던 시대극에선, ‘악역’을 맡았답니다.”

 

뺨에서 피를 흘리며 온화하게 웃는 얼굴에는 게임에서 진 패자에 대한 조롱만이 담겨있었다.

리리스는 소녀의 잔혹함에 섬뜩함을 느꼈다.

리리스의 명백한 패배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리리스!”


이윽고 사령관이 들이닥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리리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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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그만두니 쓸 시간이 평일에 잘 안나넴... 주말에 달려봐야겠심.

요새 겜 분위기도 심상찮고...완결...할때까지 겜이 살아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