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우리집 브닐라 모음집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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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정신이세요?”

 

인상을 찡그리는 이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내지르는 기쁨과 안심의 환호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오만상을 구기고 있었다. 이비의 밝은 갈색 눈에서 무슨 레이저라도 나오는 것 같다. 힐난의 시선이란 게 이리도 따가운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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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열렬한 환호가 끝난 뒤에서야 제대로 못다 한 말을 나눌 수 있었다. 홍련의 말에는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대충 요약하면 ‘너는 승인만 해라,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한다’ 정도였으니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A님.”

 

임시 명령권자 등록을 마친 홍련이 재차 인사를 건네왔다. 그녀의 장갑 낀 손은 꽤나 서늘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애써 침착한 얼굴을 하곤 있지만, 그녀 본인도 긴장을 내려놓기 힘들다는 듯.

 

“자, 그럼 작전을 간략히 설명해 드리죠.”

 

시라유리가 흠집 가득한 화이트보드를 밀어왔다. 여전히 그녀에게선 표정을 읽기 힘들지만, 어째 아까보다 기분이 한결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기분 탓은 아닌 느낌이다.

 

“최근에 발견된 사실이지만, 철충에 감염된 AGS는 물이 있는 곳을 극도로 꺼리는 행동 양상을 보입니다.”

 

그녀의 손이 보드에 붙여놓은 지도를 톡톡 두드린다.

 

“...특히 연안이나 도서 지역을 기피하고 있죠. 마치 바다를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는 인간분들을 우선 인근의 안전한 해안으로 옮긴 후,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릴 생각이었습니다.”

 

가볍게 한숨을 쉬는 홍련.

 

“그 계획을 실행할 권한이.....우리에게 있었다면 말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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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세웠다는 계획은 이랬다.

 

이 도시에는 오래전에 쓰다가 현재는 폐쇄된 지하철 노선이 있는데, 그게 도시 외부로 곧바로 통한단다. 지하에 파묻혀서 현재는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지만, 그간 교전으로 시끄러울 때마다 착실히 발파 작업을 해 둔 덕에 준비만 마치면 바로 갈 수 있다나.

 

“대형 쇼핑몰의 지하 주차장 벽면과 통해있더군요. 덕분에 차량을 이용해서 곧바로 민간인분들을 이송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단다.

 

예상 외로 철충들이 지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데서 문제가 기인한다. 생각없는 짐승같은 존재들이 아닌만큼, 놈들의 눈과 귀 -뭐 그런게 있다면 말이지만-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많은 인원과 차량들이 움직이는 소리는 반드시 놈들의 이목을 끌 테고, 놈들이 그 통로의 존재를 눈치채버리면 죄다 끝장나는 거니까.

 

그래서 저 친구들이 내놓은 계획이 무엇이었는고 하니.... (대피 행렬 호위를 맡을 전력을 제외한) 경찰 전력과 전투 가능한 바이오로이드들을 동원해서 적들을 교란하는 거란다. 그들이 놈들을 바쁘게 만들고, 전투의 소음으로 연막을 치는 사이에 호송대는 재빠르게 민간인들을 데리고 내빼는 거라나.

 

“그러면 교란작전에 투입된 인원은 어떻게 퇴출합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이비가 물어온다.

 

“앞서 말씀드린 통로를 통해 순차적으로 퇴각할 예정이며, 최후까지 남아있던 인원들은 최후 저지선인 이 빌딩에서 퇴출합니다.”

 

그들의 탈출구인 지하철 선로. 홍련이 가리킨 빌딩은 그곳에서 아주 멀지는 않았지만, 뛰어서 빠르게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퇴출하란 거죠? 도로로 나갔다간 순식간에 포위될 게 뻔하고, 지하에 따로 이동로가 있다는 이야기도 없었는데요.”

 

교란조가 버림받는다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일까, 이비의 말투는 물론이요, 표정까지도 상당히 날이 서 있었다. 

 

그런데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시라유리, 그에 반해 홍련은 곧 이해했다는 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맞는 말씀이에요. 도저히 걸어서 나올 수는 없는 구조죠.”

 

그러더니 옆에서 짐을 나르던 택배 바이오로이드(익스프레스랬나 하는)를 가리킨다.

 

“.....진심입니까 지금?”

 

이비가 대경실색하고,

 

“네.”

 

홍련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허?”

 

어이가 없어진 이비가 역정을 내려고 했지만, 그녀도 이어진 홍련의 설명을 듣고 조금은 화가 풀린 듯 보였다.

 

적 철충 중에 대공 능력을 가진 개체는 거의 없다시피 하며, 최소한의 하중만 지고 이륙한 기동형 바이오로이드들이라면 다른 바이오로이드 하나씩을 들고서도 충분한 속력을 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소방 및 구조용으로 제작된 프로스트 서펀트 모델들과, 다량의 화물을 운송하는 익스프레스 76 모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동안 이비와 홍련, 시라유리의 문답이 이어졌고, 간간이 리리스도 끼어드는 식으로 논의가 계속되었다. 

 

 

 

 

 

이제는 무슨 태블릿까지 들고있구만. AGS 전력들과 아직까지 가동 중인 무인 포탑 등을 이용한 방어 전술이니, 공중을 통한 안전한 퇴출을 위한 방안이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들에 대한 의견교환이 –때로는 언쟁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한참 동안 이어졌지만 내가 끼어들 만한 여지는 없었다. 뭐, 나름대로 유익한 자리기는 했지만.

 

그야 영화 같은데서 말고는 이렇게 군인들끼리 작전 회의하고 그러는 거 볼 기회도 없었거든. 진지하게 전술을 논하는 이비의 옆얼굴도 꽤 멋지게 느껴졌고. 그리고 내가 듣기에도  계획이 점점 보완되는 게 눈에 보여서 신기하기도 했다. 이비와 리리스에도 그런 쪽으로 식견이 나름 깊었다는 게 새삼 체감되는구먼.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듣던 홍련의 표정도, 점점 탄탄해지는 계획에 한결 편안해지는 듯했다. 

 

슬슬 따분해져 갈 때쯤, 주변으로 고개를 돌려보니.....유미와 어깨를 맞대고선 침까지 흘려가며 졸고 있는 드라코와 유미가 보였다. 쟤들은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다냐.  누가보면 원래부터 친한 사이인줄 알겠구먼. 반면에 아라와 미호는 상관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소완은 뭐....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고.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누군가가 내 볼을 콕 찌른다. 심드렁한 얼굴로 눈길을 줬더니, 경찰복을 입은 주황 머리 바이오로이드가 보인다. 높으신 분을 봤다고 그러는지, 신기하다는 얼굴이다.

 

“앗, 죄송합니다.”

 

.....그....특정 부위가 출렁이는 게 시선을 빼앗는다. 자기 머리보다 큰 느낌인데. 

 

가히 폭력적인 존재감이라고까지 할만한 그 덩어리들과, 저 순진무구한 표정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분명히 둘 다 같은 몸뚱이에 붙어 있는데도. 

 

“응? 저한테 뭐 묻었나요?”

 

아니.

 

근데 그냥 눈을 뗄 수가 없네.

 

나는 그 두 덩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정신을 흘려보냈다. 간간이 이비와 리리스, 그리고 홍련 일행이 나누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오긴 했지만, 내 두뇌는 저 말도 안 되는 사이즈를 감상하는데 처리 용량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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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 시라유리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작전에 참여하시는 건가요?”

 

그 말에 나는 리리스와 이비, 그리고 아라와 소완을 돌아보았다. 소완은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아라는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딱히 싫다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각오를 다진 듯한 얼굴이기도 했다. 유미는 아직도 곯아떨어져 있으니 논외고.

 

“....현재 전투 능력을 보유한 바이오로이드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휘 능력이 있는 것도 저와 여기 계신 시라유리 양 정도 뿐이고요. 현장에서 지휘해주실 분이 생긴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어렵사리 말을 이어가는 홍련이 나와 이비의 눈치를 분주히 살핀다. 블랙 리리스야 말할 것도 없이 전투력 최상위권이고 (저 친구가 지금 온전한 상태는 아니라곤 하지만), 이비의 경우는 태생적 한계를 경험으로 극복한 특이 케이스에, 소부대 지휘 경험이나마 가지고 있는 귀중한 인재라서 협조를 구하고 싶다나.

 

리리스는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으며, 이비는 ‘할 말은 많은데 차마 다 하지는 못하겠다’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허허, 미안하게 됐다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본다.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까부터 켈베로스라는 경찰 친구의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기는 했다만, 그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아주 안 들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해한 대로는 그 계획이란게 본질적으로 정신 나간 짓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에겐 달리 대안이랄 게 없으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순전히 우리의 생존만을 도모하자면 스리슬쩍 야반도주해버리는 게 더 유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게 또 그리 간단하지 않단 말이지. 도시 외곽까지 가는 길은 아까 같은 거대한 철충들이 득시글하게 깔려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고작 여섯 명이 그걸 뚫고 간다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큰 일이고. 그렇게 보면 이 바이오로이드들의 작전에 묻어가는 게 제일이겠지. 

 

하지만 이 무모한 작전에 직접 참여한다는 건.....조용히 묻어간다는 선택지가 없어져 버린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머릿속에서 바쁘게 이해득실을 따져본다. 어느 쪽이 생존확률이 높을지, 이왕 이렇게 찍혀버린 거 어느 쪽이 불필요한 시선을 덜 받을지 등등....

 

그런데, 이렇게 애써 속물인 체 해 보아도, 본심은 이 친구들에게 모종의 책임감 같은 걸 느꼈기 때문이라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내가 저렇게 이것저것 따지고 사는 놈이었으면 애초에 수락도 안 했겠지.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붙일 껀덕지도 없었다.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서 저지른 거니까.

 

이비와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아, 물론 이비는 나처럼 생각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번엔 나도 물러설 기분이 아니다. 이미 말해 놓은 것도 있고, 한번 뱉은 말은 사람이 지켜야지. 떠나간 바니와 H가 문득 떠오른다. 그래. 내 눈앞에서 사람들 죽어 나가는 꼴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엔 양보 못 한다, 이비야. 미간에 힘을 주고 내 딴에는 가장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데 웬걸, 이비는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할 수 있는 건 해 보겠다고 대꾸하는 것이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이랑 너무도 똑같은 말투로.

 

이비가 그렇게 나오자, -아직도 깨지 않은 유미를 제외한- 나머지도 고개를 끄덕인다. 말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지만, 저렇게 선뜻 나서는 건 또 상당히 의외였다.

 

......나중에 따로 불려가서 꾸중 듣는 건 아니겠지.

 

“감사합니다. 밤이 늦었으니 일단은 휴식을 취하시죠. 숙소를 배정해드리겠습니다.”

 

홍련의 말에 시라유리가 안내역을 자청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지휘소 텐트를 막 나서려던 때, 이비가 내게 다가와 말을 붙여온다.

 

“지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에 뛰어드신 건지 알고는 계세요?”

 

어째 저러니까 꼭 바니처럼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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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머머멈뭠머뭐라고요?”

 

시라유리의 안내를 받아 우리가 배정받은 텐트까지 가던 길. 유미가 조는 동안 오갔던 이야기들을 전해주니, 아주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파랗게 질려간다.

 

“그럼 저도 아까 봤던.....저런 것들이랑 싸우라는-”

 

“얌마, 진정해, 진정해. 너랑 나 같은 비전투 인원은 쟤들하고 마주칠 일도 없댔어.”

 

“일이 계획대로 돌아간다면 그렇겠죠.”

 

유미를 안심시키려는데 초를 치는 시라유리. 유미의 눈은 아까보다도 더 공포로 물든 듯한 느낌이다. 어허허, 그걸 보니 나도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질러놓고 이게 무슨 추태람. 시라유리는 어째 저게 재밌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자발적으로 협조해주시겠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덕분에 일을 덜었군요.”

 

“일을 덜다뇨?”

 

이비가 미심쩍은 얼굴로 반문한다. 그러자 시라유리의 반반한 얼굴에 음흉한 기운이 사악 번져나갔다.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이라서요. 특히 당신처럼 경험이 풍부한 인원은 더더욱이요. 그래서 필요하다면 조금.....‘동기부여’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종류로 말이죠.”

 

.....그러면서 나를 슥 쳐다본다.

 

시라유리의 수상한 기색에 이비는 눈에 띄게 얼굴을 찡그렸지만, 굳이 그녀와 마찰을 빚을 생각까지는 없다는 건지 그대로 고개를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아까 그건 농담이었지?” 

 

“네. 일단은 그런 걸로 해 두죠.”

 

신경쓰여서 물어봤더니 더 신경쓰이게 만드는구만.

 

이비나 리리스 말로는 쟤들이 원래 이런 친구들이라니, 요런 걸로 스트레스 받는 게 바보짓이겠지. 그렇게 고개를 흔들고 마저 다리를 놀리고 있으려니, 갑자기 앞에 가던 이비와 유미가 우뚝 멈춰 서는 것이었다. 

 

“......”

 

노기 가득한 표정으로 –아까보다도 더 심하게- 미간을 구기는 이비.

 

“....저....저...저!!!”

 

붉으락풀그락한 얼굴로 말도 제대로 못 이어가는 유미.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려봤더니.....

 

 

 

 

 


그곳에는 어딘가 낯익은 세 명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낡은 작업복에 두 갈래로 땋은 주황 머리. 거기에 애꾸눈 하나까지. 

 

그때 우리에게 커다란 엿을 선사하고 튀어버렸던 그 녀석들이었다. 저 꼬맹이들 때문에 그 강변에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그때보다 윤기도 자르르 흐르고 눈깔에 생기도 도는 게, 여기 와서 그런대로 잘 먹고 지내셨던 모양이다. 

 

녀석들도 허겁지겁 수저를 놀리던 손을 멈추고,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얼어붙어 있다. 아마 우리가 누군지 기억하는 모양이지. 그리고 자기들이 잘못한 것도 아는 것 같고.

 

“이익!”

 

노기를 참지 못한 이비가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선다. 그러자 셋은 잔뜩 쪼그라든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비의 얼굴에 가득한 것은 그야말로 분노 그 자체였다. 하치코와 노부부, 바니와 H의 죽음에 녀석들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인 건가.

 

그녀가 손찌검이라도 할듯한 분위기로 팔을 들어 올리고, 꼬마 광부들이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멈추시옵소서!”

 

내내 가만히 있던 소완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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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써놓고 두 달 넘게 방치했던 부분.

이하는 26화의 나머지 플롯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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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완은 세 더치걸을 감싸고 두둔합니다. 인간의 악의를 직접 경험했던 자로서, 이들이 우리를 믿지못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노라고요. 그러면서 이비에게 당신이 가진 인간에 대한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았느냐 꼬집습니다. 


시라유리 또한 그들이 이번 작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두둔해줍니다. 오래전 버려졌던 선로로 향하는 길을 뚫어준 건 저들이었다면서요. 이비는 아직 감정이 풀리지 않았지만, 소완과 시라유리의 제지에 그들을 손찌검하려는 것은 그만 둡니다.


잠시간의 휴식 후, 시라유리와 홍련은 이비에게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을 소개해줍니다. 이들은 지휘 경험이 있는 이비에게 배속된 군용출신 바이오로이드들로, 모두 블랙리버 출신이었습니다.




바니걸 테마 바에서 일하던 브라우니, (이비와는 다른) 또다른 브닐라, 메이드카페 레프리콘, 그리고 HOODAS 노움이 그들이었습니다. 기막힌 우연으로, 아라(이프리트)와 같은 부대 출신으로, 같이 삼안측에서 복무하던 구면들이었지요.


새로 배속된 지휘관이 아라라고 생각한 그들은 반가운 얼굴을 하지만, 이비(브닐라)가 그들의 새 지휘관이란 말을 듣고는 반신반의하며 의문을 표합니다. 노움은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을 하며 '우린 이제 다 죽었다'는 투의 푸념을 하지요. 이비를 겪어본 아라만이 그들에게 이비를 가볍게 여기면 안된다고 충고합니다.


또다른 브닐라를 만난 이비는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자기와 거의 똑같은 모습인데, 하는 짓은 웬만한 브라우니다도 대책없이 밝아보였거든요. 게다가 이 친구는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이비는, 주저하면서도 그녀에게 바니 언니(이전에 친했던 진짜 바닐라)가 쓰던 소총을 건네줍니다.

유용한 악세사리들이 가득한 소총에 신참 브닐라는 마냥 즐거워하지만, 이비는 복잡한 마음을 속으로 꾹 삼킬 뿐이었습니다.




 죽은 바니 언니의 유품이라는 사실을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신참 브닐라에게 그건 소중히 다루라고 당부합니다.


어쨌든 일행의 작전 참여가 확정되고, 작전 개시도 승인되면서 이비와 아라는 대피소 일행이 보유하고 있던 군용등급 탄약과 기타 장비들을 지원받습니다. 아라는 이때 본래 주특기인 박격포도 다시 획득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정비를 마치고 작전 개시를 기다리며 휴식을 하고 있던 일행에게, 홍련 휘하의 몽구스팀이 관심을 보이며 접근해옵니다. 진작에 끼어서 아라를 귀찮게 하고 있던 토모와 마찬가지로, 그런대로 붙임성이 좋았던 몽구스 팀원들은 금세 주인공 일행과 친분을 쌓기 시작합니다. 


소완은 대피소 인원들에게 (한정된 재료로나마) 그런대로 인상적인 식사를 제공하고, (삼안산업  본사 IT팀에서 근무했던) 주인공은 특기를 살려 커넥터 유미와 함께 통신망 점검 및 세팅을 돕습니다. 그리고 작업 와중 이따금씩, 소완이 사람들에게 불어넣는 (약간이나마의) 즐거움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다른 일행들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며칠 후, 마침내 대피 작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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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썼던 분량을 버려두긴 뭐해서 굳이 추하게 따로 떼어서 올렸네요.


앞으로는 2-3번에 걸쳐서 엔딩, 그리고 에필로그까지의 전개를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 전해드릴까 합니다.

글은 놔버렸어도, 그리고 있던 삽화들은 어떻게든 완성해서 같이 올려보겠습니다.


실력없고 역한 글그림싸개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완결을 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만큼 이렇게나마 끝을 보고 싶어서요.

모쪼록 몇번만 더 제 모자란 똥글을 참아주셨으면, 하고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