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전투가 저항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장이 된 들판에는 치열한 폭력의 흔적과 잔여물이 가득했다.

싱그러운 초록빛 바다 위의 수많은 섬들처럼 널려 있는 포탄 구덩이, 파괴된 AGS들, 그리고 마리오네트의 시체들.

최근 점차 수세에 몰린 레모네이드 델타는 발작적으로 병력을 내보냈고, 저항군은 그 모든 발버둥을 묵묵히 분쇄하며 전진했다.

석양으로 붉게 물든 하늘에 수많은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는, 전형적인 전투 종료 후 전장의 풍경 속 한 구석.


치천사 아자젤은 한 마리오네트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하반신은 없었고, 상반신도 엄청난 열기에 녹아내려 겨우 물컹한 형체만 유지하고 있었다.

전장의 거의 대다수의 시신들처럼, 초고열의 광선 공격에 당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자젤 자신의 공격으로 죽었겠지.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


아자젤은 눈을 감고 그 이상 사고를 진행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결국은 불경한 생각으로 이어질 테니까.

하지만 원래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는 법이다.

아자젤은 결국 그 불경한 생각까지 하고 나서야, 다시 눈앞의 시신으로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


마리오네트는 고통스럽게 죽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무리 모든 자아가 말살된 존재라고 해도 통각까지 사라지진 않았으니.



아자젤은 두 손을 맞잡고 눈 앞의 마리오네트를, 그리고 전장에 널린 모든 마리오네트와 AGS를 애도했다.

바이오로이드는 몰라도, 마리오네트와 AGS도 영혼이 있는 존재라고 봐야 하는가는 아직 코헤이 교단도 교리를 정립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자젤은 그들 모두 최소한 애도받을 자격은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는 자격이 아니었다.


아자젤은 그들을 애도하면서도, 정확히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몇 달 전이었다면, 그들을 자비로운 빛께서 가엾게 여기사 그분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아무렇지 않게 기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기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자젤의 주변이 점차 환해졌다. 마치 등 뒤에서 밝은 조명이 다가오는 것처럼.

아자젤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고, 그녀에게 다가온 존재를 맞이했다.



빛은, 지금 여기 있었으니까.




2미터 남짓한 크기의, 사람의 형상을 한 빛이 서 있었다.

주변을 한낮처럼 만들 정도로 환하지만, 기묘하게 아무리 바라보아도 눈이 부시지 않는, 얼굴도 성별도 의복도 없는 순수한 빛.


"......"


아자젤은 무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여 빛에게, 그녀가 섬기는 신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빛을 바라보는 눈빛은, 신도이자 천사가 신을 바라보는 눈빛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웠다.



두려움, 의혹, 불신이 뒤섞인, 복잡하지만 어쨌든 절대로 긍정적이라고는 해석할 수 없는 눈빛.

그러나 빛은 그 불경한 눈길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마리오네트의 시체를 흘끔 내려다보곤 아자젤에게 말했다.


"몇이나 지졌어?"


아자젤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자젤은 울컥하는 기분을 억누르며,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빛이시여, 당신의 비천한 전령이 감히 아뢰옵건데, 저들은 마리오네트와 AGS지 개미나 부침개는 아닌 줄 아옵니다."


"그래서, 얼마나 지졌냐고?"


"......정확한 수효는 세지 못했나이다. 대략 수백은 되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흠, 나는 한 수천은 지져버렸는데 말이야. 좀더 노력해야겠어, 치천사."


아자젤은 더 참지 못했다.


"빛이시여, 저들도 당신의 어린 양이나이다."


빛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이, 치천사. 내 백성과 적을 네가 규정하려는 거냐? 너도 저들을 태우기로 작정했으면, 굳이 양자를 합치려는 건 집어치우지 그래?"


"저들이 비록 사특한 흉계에 이지를 잃고 악의 주구로 전락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당신의 어린 양인 저희 모두와 다를 것이 없나이다.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었던 이들의 사정에 눈을 감고 한낱 파괴해야 할 물건으로 치부하라 하심은, 너무도 감당키 어려운 하명이십니다."


아자젤은 천사가 신의 뜻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신이 없을 때 신실하던 천사는, 신이 나타나자 오히려 불경해졌다.


빛은 이목구비가 없었음에도, 아자젤은 어째서인지 빛이 빙긋 웃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빛은 발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물컹하게 녹아내린 마리오네트를 걷어찼다.


순수한 빛으로 이루어진 다리가, 마치 물리력이 있는 것처럼 녹은 시체를 부숴 피와 살점을 산산이 흩뿌렸다.

아자젤은 입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녹은 유해가 그녀에게 묻지는 않았다. 빛도 마찬가지였다.

초록의 캔버스 위에 피와 살점으로 그려진 난해한 그림 위에서, 빛은 해가 넘어간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니야."


"예?"


"너절한 단어로 처지 골치 아프게 만들지 말라고. 가로막으니까 태우는 거야. 살을 지지고 뼈를 녹이고 골수가 끓어오를 때까지 태워버려.

잿더미 위에 네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 그러면 돼."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겸허함을 알게 되지."


"네?"


빛은 반복하지도, 부연하지도 않았다. 빛은 공중에 살짝 떠서, 아자젤을 남겨둔 채 들판을 떠났다. 신은 날아가며 말했다.


"사도에게 전해라. 이 주위에 숨어 있는 놈들 몇 놈 더 태우고 돌아가겠다고."


흩뿌려진 피와 살점이 서서히 말라붙었다. 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치천사는, 잠시 후 몸을 돌려 날개를 펼쳐 신의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빛이 공인한 자신의 사도, 사령관에게 신의 전언을 전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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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빛의 신을 만난 저항군.


그런데 저항군을 도와주긴 하지만, 코헤이 교단이 생각하던,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던 신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그냥 '눈물을 마시는 새'에 나오는 화신과의 대화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대로 베꼈음......


아무튼 1화 빌런은 ㅌㅌ하니 누가 소재 주워가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