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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허억...”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숨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처연한 애절함까지 느껴지는 흐느낌. 마치 날개가 부러진 제비 같은... ...

 

 

 

“이... 이 미친 놈이 뭘 타고 가는 거야!”

 

 

 

에이, 그런 게 어디 있겠어? 그냥 무시하자.

 

 

 

“야!!”

 

“발키리, 생각보다 늦었네.”

 

“내 말 무시하지마!”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발키리의 두 눈이 꿈뻑거리더니, 이내 내 몸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고장난 눈동자가 가끔 발작적으로 튀곤 했지만 침착함이 묻어 나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프로는 프로다.

그렇게 발끝까지 스캔을 마친 발키리가 만족했다는 듯 숨을 뱉으며 말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군요. 아까 뵀을 땐 허리를 고정하는 벨트 부분이 약간 헐렁해보였는데.”

 

“그리 빠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야 뭘.

게다가 전에 몇 번 타본 적 있거든.”

 

 

 

내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한 명은 놀라움이 서려있는 눈빛이었고, 다른 한 명은 뭔 개 같은 변명거리냐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 이봐.”

 

“왜?”

 

“이번에도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이야?”

 

“뭐가?”

 

“내 날개를 마음대로 써먹은 것도 그렇고!

아니, 그건 그렇고 비행은 왜 그렇게 잘하는 건데?”

 

“칭찬 고마워.”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수하자 슬레이프니르의 입꼬리가 빠직거렸다.

 

 

 

“이... 이 놈이고 저 놈이고 하나 같이 왜 나만 바보 취급 하는 거야!”

 

“슬레이프니르. 그만하시죠.”

 

“그만은 무슨? 저 녀석이 뭐 하는 놈일 줄 알고 그래?

내 날개를 어떻게 그렇게 자유자재로 썼는 지 실토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아주... 으헥?!”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슬레이프니르.

발키리가 조심스럽게 발을 걸어 그런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그녀.

 

쿵-

 

충격에 함께 흔들리는 전등. 심해지는 등불의 점멸.

딱딱한 두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에 한 움큼 울려 퍼졌다.

 

... 오우, 저건 좀 아플 것 같은데.

 

 

 

“아야!

바, 발키리! 뭐 하는 거야!? 지금 환자인 사람한테... ...”

 

“환자요? 누가 말입니까?”

 

“당연히 나지! 염동력까지 쓸 수 있는 인간이랑 싸우느라 내 다리가 얼마나 저렸는 줄 알아?”

 

“아까는 헛소리니 어쩌니 했으면서 믿는 겁니까?”

 

 

 

반쯤 뜬 눈으로 어깨를 으쓱거리던 발키리의 태도에 슬레이프니르의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왠지 묘한 기색이 흐른다 했더니만, 자세히 보니 발키리의 눈동자가 미세한 호를 그리고 있었다.

숨을 잔뜩 머금은 그녀의 볼에선 당장이라도 헛웃음이 나올 것 같다.

 

 

 

“미, 믿기는 누가 그런 오컬트 같은 얘기를 믿는다고 그래?

저런 것쯤은 닥터에게 물어보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

 

“그 닥터가 지금 뭔 꼴인지 몰라서 하는 얘기겠죠?”

 

“그... 그건... ...”

 

“그리고, 애시당초 누가 환자라는 겁니까?

저나 각하도 아니고, 사지 멀쩡한 당신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야기된 질문에 슬레이프니르가 나와 발키리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한 명은 며칠 동안 자원 탐색만 하다가 쉬지도 못하고 온 바이오로이드.

다른 한 명은 염동력인지 뭔지 모를 힘을 쓰다가 코피로 치사량의 피를 쏟아낸 인간.

 

 

 

“... ... 엣헴.”

 

 

 

그에 비해 그녀는 나에게 주먹질 하다가 조금 피부가 까진 것 정도가 전부다.

심지어 이 인간이 다친 건 절반 가량이 자기 탓이니 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손을 뒤로 숨긴 채 꼼지락대던 슬레이프니르가 괜시래 천장을 바라보며 화두를 돌리려했다.

 

 

 

“아, 앞장 서지 그래, 사령관? 아까 보니까 엄청 바빠 보이더구만...”

 

“... 몰염치하군요.”

 

“... ... 휘이...”

 

 

 

애석한 휘파람 소리만 복도에 맴돌 뿐이다.

 

 

 

“하, 하하하... 오, 오랜만에 오니까 여기도 감회가 새롭네?

칙칙한 회색빛 복도나 낡아빠진 전등에 전경도... ...”

 

“전경이 왜요.”

 

“어... ... 아냐.”

 

 

 

슬레이프니르의 시선이 복도를 비추는 전등을 향했다.

 

끼익- 끼익-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있다면 딱 이런 느낌일까, 녹슨 철이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소름끼치는 파찰음이 들려온다.

그래도 제 할 일은 잘 하니 괜찮겠지.

애들 먹일 식량도 없는데 고작 등불 따위에 신경을 쓸 수는-

 

퍽!

 

 

 

“흐헥?!”

 

 

 

순간 터져버린 전구.

한 순간 밝은 빛이 눈 앞을 감싸더니 이내 칙칙한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 역시, 아까 했던 말은 고쳐야겠다.

저 녀석은 지 할 일도 제대로 못 한다. 나중에 아예 부숴버리든가 해야지.

 

 

 

“저건 수리하는 것보단 그냥 새로 끼우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나중에 처리할게. 일단은 빨리 가자.”

 

“각하께서 전등도 가실 수 있으십니까?”

 

“... 그거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발키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세월에 닳고 닳은 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비꼬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건지 도통 읽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아무리 오래 전 일이라곤 하지만 스틸라인 숙소 설립 당시 잡일을 도맡아 했던 나다.

미숙하게나마 공구리 치는 것도 해봤는데 전구 가는 것쯤이야.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인간이란 종족에 대한 기대치가 이토록 낮을 줄이야.

 

 

 

“죄송합니다만 제가 농담을 잘하는 성격은 아니라.

농담처럼 들리셨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 ... 아냐. 됐다.”

 

 

 

하긴, 내가 아는 그 애도 아니고, 이 발키리가 나에게 농담 같은 걸 할 리가 없지.

 

그래도 이런 막연한 질문을 할 사이까진 발전한 것이라 여기며,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구 터져버린 건 갈아 끼울 건데, 애초에 저건 배선 자체가 낡은 탓이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돼.”

 

“그걸 보시면 아십니까?”

 

 

 

그야 그걸 전부 뜯어 고친 게 나랑 닥터였으니까.

물론 내가 한 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뭐가 문제인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 나중에 설명해줄게.”

 

“각하께선 참 비밀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내 팔자가 개팔자라 그런가 보지.”

 

 

 

내가 비밀이 많은 것은 인정한다.

숨기는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지금은 부연 설명을 할 시간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영원히 숨기고 있을 생각도 없다.

 

 

 

“뭐, 그래도 이제 전구 갈아 낄 힘 정도는 있단 걸 보여줄 수 있겠네.”

 

“예? 그게 무슨...”

 

“내가 너 만나러 오기 전에 다른 애 한 명을 보고 오려고 했었어.

아마 지금쯤이면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가 발키리를 수복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사실 패널로 또 다른 누군가를 불렀었다.

이 오르카 호에서 그 아이를 빼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

발키리가 연이은 탐색 임무로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한 인물이라면, 그 애는 정신적인 피로가 극단에 달한 아이다.

 

그리고, 그 애를 그렇게 몰아붙인 이유가 있는 곳이 지금 내가 가려는 목적지다.

 

 

 

“... 사령관?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 ...”

 

 

 

낡아빠진 전등.

삐걱거리는 유리창.

내가 가는 발걸음을 눈치 챈 슬레이프니르의 입에서 순간 말이 사라졌다.

 

철컥-

 

어느 쇳소리가 힘없이 늘어지는 복도의 끝.

 

 

 

“저... 사령관...?”

 

 

 

 

철퍽-

 

살점이 짓밟히는 소리.

몸 속에 손을 집어 넣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헤집는 듯한 불쾌한 음성이 들려온다.

 

 

 

“... 각하. 지금 제대로 가는 게 맞는 지...”

 

“맞아.”

 

 

 

복도의 으슥한 그림자 속으로 몇 번이고 들어선 뒤에야 나는 이곳이 정말 내가 아는 그 오르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지할 수 있었다.

 

-으... 아... 아아... ...

 

생과 사의 경계에 허덕이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너저분하게 버려져 있는 곳.

코 끝에 감각을 집중하면 맡을 수 있는 내장 썩은 내.

 

 

 

“사, 사령관? 나는 여기까지만 갈래. 여, 여기서부터는 뭔가 힘들어서... ...”

 

 

 

연신 헛구역질을 하는 슬레이프니르.

나는 그녀를 붙잡은 채 천천히, 복도 끝에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놀부 심보라 해도 좋다. 날개를 부러뜨렸을 때 그 정도 모욕을 당할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네가 봐야 한다.

나란 인간이 누구인지, 내가 지금 오르카 호를 앞에 두고 무엇을 하는지, 똑똑히 봐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이 이야기에서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사라질 테니까.

 

 

 

“도착했다.”

 

 

 

조잡한 가위질로 오려 붙여놓은 색종이들.

낡아빠진 놀이동산의 입구처럼, 말라 비틀어버린 핏자국의 오묘한 갈색이 녹처럼 입구에 가득 묻어 있는 곳.

 

비밀의 방.

 

저 끔찍한 지옥의 입구가 드디어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나 각오를 했지만 여전히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마치 돼지 도살장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어린 아이처럼. 어떤 의미에선 저 안쪽이 도살장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운을 내야만 한다.

그러려고 슬레이프니르와의 만남도 30분 안에 끝낸 거고, 발키리도 숙소로 돌아가 쉬게 하지 않고 부른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 오셨습니까, 주인님.”

 

 

 

이미 리리스를 불러버렸으니까.

 

비밀의 방을 담당하던 바이오로이드.

정신적 피로의 해일에 반쯤 폐인이 되어버린 아이가, 내 눈 앞에서 희미하게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스.”

 

“네.”

 

“내가 준비하라 한 건 다 챙겨왔겠지?”

 

 

 

리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가지고 오라 한 것으로 생각하는 중이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지금부터 보여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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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프니르와 발키리를 문 옆에 둔 채, 나는 리리스에게로 다가갔다.

 

적의도, 살의도, 아니, 그 어떤 ‘의’라 부를 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죽어버린 사람의 눈동자.

 

그건 내가 기억하기 싫었던 리리스의 모습이었으며,

또 내가 기억할 수 없는 그녀의 얼굴이었다.

나를 복수의 대상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제일 먼저 받아준 것이 그녀였으니까.

 

 

 

“말씀하신 대로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권총, 밧줄, 구급 상자...”

 

“설명은 나중에.”

 

 

 

철컥-

 

색종이로 얼기설기 꾸며져 있는 방문을 있는 힘껏 밀었다.

 

끼익-

 

문이 막혀 있다는 것은 내 발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들어갈 수 없던 그 발을 처음으로 내디딘 순간, 이 지옥은 나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라며 아우성쳤다.

 

철퍽-

철퍽-

 

단순히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심장이 멎을 듯하고,

 

-으... 어... ...

-아아... 아... ...

 

그 뒤로 구슬프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흐느낌,

 

웅-

웅-

 

그녀들의 주황색 눈동자를 보관하고 있는 거대한 수족관.

 

그 옆에서 더치걸들의 몸 속 오리진 더스트를 체취하는 키르케까지.

 

내가 감당해야 했던 대가는 그런 것들을 눈으로 담아야 하는 것이었다.

 

 

 

“... 얘들아.”

 

 

 

들려오지 않는 대답. 검고 어두운 방 안은 이미 그 안의 존재들까지 함께 삼켜버린 듯 고요하고 적막했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팔에는 진심 어린 소름이 돋아났다.

자신의 실수를 덮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 같은 무력감이 몸을 휘감았고, 그럼에도 변명 거리를 찾는 비겁한 어른 같은 뻔뻔함이 고개를 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지옥을 땅 위로 불러낼 수 있단 말인가.

 

 

 

“사령관... ...”

 

 

 

저벅- 

 

슬레이프니르가 나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물린 채 홀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한 발자국.

 

발 끝에서 무언가 짓이겨지는 감각이 스친다.

 

두 발자국.

 

벽을 더듬어 전등의 버튼을 찾아 눌렀다.

깜빡거리며 들어오는 불.

 

그리고, 주황색이 가득한 세계.

벽지 대신으로 쓰인 아이들의 가죽에는 아직 벗겨지지 않은 주황색 머리카락이 꽁지를 튼 채 거기 있었다.

 

 

 

“... ... 아.”

 

 

 

세 발자국.

 

네 발자국.

 

사후(死後)라는 것이 있다면,

이미 지옥 속에 갇혀있던 이 아이들에게 그곳으로 갈 한 줄기 기력이 남아있다면,

벽에 매달린 육신과 달리, 그 영혼만큼은 자유로이, 질릴 때까지 구천을 떠돌 수 있다면-

 



"... ..."




그 이상으로 생각하기를 멈췄다.


무의미하고, 무기질적이고, 무가치할 뿐인 가정.

그런 가정으로 덮고 가기엔 너무 많은 생명이 사그라들었다. 


지쳤다.

 

난.

 

 

 

“... 역시 안 되겠다.”

 

 

 

처음에는, 웃으며 재회하고 싶었다.

나는 너희를 구하러 온 영웅이고, 지금 이 지옥에서 건져줄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절대 웃지 못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이 세계에서 웃음이란 가냘픈 감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천장에 달린 컨베이어 벨트와, 그곳에 연결된 쇠 갈고리, 

그리고 온 몸이 갈고리에 꿰뚫린 채 허공에 떠다니는, 살아있는 더치걸들.

 

아.


멍청한 것.


웃음이라니.

 

웃음이라니!

 

 

 

“리리스.”

 

“네, 주인님.”

 

“위에 있는 애들부터 꺼내.”

 

“... 예?”

 

 

 

나는 조용히 눈을 든 채 벽지에 달려 있는 아이들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아니, 그저 벽을 보고 서있고 싶었을 뿐이다.

나를 향해 질시하듯이, 경멸하듯이 향하는 저 눈빛을 보고 견뎌낼 수가 없었으니까.

 

손 끝에 스쳐 지나가는, 한 때 살아 움직였을 어떤 아이들의 살갗.

 

 

 

“지금 상태를 보니까 앞으로 3분.

그 안에 못 구하면 저 위에 달려 있는 애들은 전부 죽는다.”

 

“주, 주인님...? 갑자기 무슨 말씀을...”

 

“빨리 시작하자.”

 

 

 

나는 과거의 기억을 찬찬히 떠올려보았다.

이 안에 있는 더치걸 중 위태로운 아이들이 12명.

그들 모두가 천장에 죽은 돼지처럼 매달려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중 내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극히 소수였다.

내가 허둥대기도 했고, 컴패니언 대원들이 급하게 구하느라 명확한 우선 순위를 가지고 꺼내지 못했으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된 리리스가 세상 떠나가라 울부짖었던 오열을, 나는 벽 뒤에서 조용히 훔쳐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어제까지만 하시더라도... ...”

 

“2분 30초 남았다.”

 

 

 

적어도 1회차에서는.

 

하지만, 나는 여기 있다.

 

 

 

“매번 천장까지 점프해서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위에 있는 갈고리에 밧줄로 묶어서 그걸 타고 다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수백 번 죽을 사향과의 혈전을 감수했고,

 

 

 

“가지고 온 구급 상자로 치료할 수 있는 애들은 아래 있는 애들뿐이야.

발키리, 슬레이프니르, 부탁한다.”

 

 

 

데우스 앞에서 무너질 각오를 하며 돌아왔다.

 

살릴 수 있다.


이미 멸망해버린 세계지만, 누군가의 세계는 아직 살아있다.

 

낮은 눈높이로, 주황색의 눈동자로 바라볼 수 있는,

더치걸의 세계가,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다.

 

 

 

“리리스.”

 

 

 

나는 아직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며 이야기했다.

 

 

 

“난 너에게 명령을 했고, 그거면 됐다.

넌 그 이상으로 생각할 필요 없어.”

 

“어... 떻게... ...?”

 

“2분 남았구나.”

 

 

 

그녀가 한 평생 꿈꿔왔던 일이다.

 

이 빌어먹을 방을 깨끗이 치워버리고, 그 속에서 매일 밤 비명 지르던 아이들을 구해내는 꿈.

 

그 꿈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그 당혹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당혹감을 하나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법.

나는 리리스의 머리 위로 조용히 손을 올린 채,

 

 

 

“구해라.”

 

 

 

명령했다.


그 뒤로, 약간의 침묵이 흘렀고,




"알겠습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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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