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데이 R 15화  : 파도 앞의 모래성>


"아일랜드 점령이 끝났습니다."


"런던에서도 철충과 저그의 반응이 보이지 않아."


"이쪽도 마찬가지요. 상황이 여유롭게 돌아가는군."


지휘관들의 보고를 받으며 무적의 용이 말했다. 용은 도버항을 바라봤다. 막 의료선을 타고 도착한 건설로봇들과 토미 워커들이 방어시설을 건설하는 모습이 보였다. 본래 무적의 용이 바랬던 시설은 따로 있었다. 주호와 테란 병기 설계도들을 둘러보며 새로운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용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무적의 용의 시선을 끈 설계도는 행성 요새의 설계도였다.


다만 설계도대로라면 이 행성 요새라는 방어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사령부라는 이름의 테란 군사건물을 지어야만 했다. 듣자하니 테란 군대의 자원처리 시설이었지만 야전 기지의 지휘 통제실이 이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양이었다. 물론 오르카의 사정으로 본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저 커다란 사령부 한채를 짓는 것만 해도 얼마나 많은 자원이 들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물론 테란 건물 기술들에 대한 연구 역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을 공중에 이륙시키기 위한 반중력장치와 아틀라스 추진기는 이미 연구가 완료되었고 야전 병영의 테스트도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이 신형 병영은 작전지역에 신속하게 배치되어 병사들의 주둔지를 빠르게 구축하는데에 도움을 줄 예정이었다. 


보급고는 이미 테스트가 완료되어 큰 부대에선 이미 사용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빠르게 건설 후 보급품과 장비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긴급상황 발생시엔 지하로 내려서 보급품을 보호할수도 있었기에 일선 부대에선 평가가 좋았다.


무적의 용은 그동안 봐왔던 테란 기술들과 새로 개발중이지만 반응이 매우 좋은 테란 건물 기술들의 예시로 봤을때 이 행성 요새라는 구조물이 매우 유용하리라는 사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디에 배치시키면 가장 효과가 좋을까? 주요 전략적 거점에 세워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방어 목적의 건물이니만큼 수비의 필요성이 큰 곳에 지을수록 효과는 극대화 될 것이었다. 


언젠가 행성 요새의 건설이 가능해진다면 오르카는 더욱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전술을 짤 수 있을 것일테지. 무적의 용은 생각했다. 다시 항구를 바라보자 벙커와 미사일 포탑이 계속해서 증설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벙커로 스틸라인 부대원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공성 전차가 배치되어 항구에 공성 모드로 자리를 잡는다. 


굉음을 내며 바이킹 편대와 스카이 나이츠가 하늘을 가르며 지나갔다. 함대도 하나둘씩 도착해 정박하고 정비를 받는 배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 장악은 이제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언젠가 오르카는 대륙 탈환을 준비할것이다. 그때가 오면 영국은 든든한 전진기지가 되어 줄 것이다. 조만간 스발바르에 있는 오르카 저항군의 본부도 영국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것을 보며 무적의 용은 앞으로의 작전 전개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어떻게 공격을 해야 유럽 대륙 진출이 수월해질까? 저그가 끼어들면서 난장판이 된 상황이지만 이건 오히려 오르카에겐 기회일지도 모른다. 혼란에 빠진 적은 그만큼 처리하기가 쉬워진다는건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다만 시간이 많지는 않다. 저그가 유럽 대륙을 완전히 정리해버리기 전에 오르카가 먼저 유럽에 끼어들어야만 한다. 저그가 평정해 버린다면 모든게 늦어버린다.


"펙스나 철충이 우리가 준비가 될 때까지 버텨준다면 좋겠지만... 힘들겠지...."


마침내 무언가 결론을 내린 용은 통신 패널을 꺼내들었다. 통신이 연결되자 주호의 얼굴이 나타났다.


"팀장. 용이요. 의뢰하고싶은 물건이 하나 있는데 잠시 이야기좀 들어줄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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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세력이 한창 영국 영토를 되찾아가고 있을 무렵, 유럽 대륙에서는 힘의 균형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철충의 세력은 겉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밀려나면서 전선이 무너지고 있었고 남은 철충 세력들은 철의 탑이라도 방어하기 위해 세바스토폴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자가 있었으니 바로 레모네이드 델타였다.


사실 델타 역시도 정찰대를 통해 저그에 대한 보고는 받고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철충이 저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본 순간 델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철충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지만 자기 앞의 철충들이 무너진다면 그 다음엔 델타의 펙스 세력이 공격목표가 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델타는 휘하 바이오로이드 세력을 불러모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다. 애꿎은 오드리와 올리비아를 학대하는 일도 줄었을 정도로 델타는 초조해져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철충도 모자라서 새로운 괴물들이라니....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냅둬. 이젠 정신병이 점점 더 심해지는 모양인데 괜히 건드리지 말자고. 적당히 정찰하고 돌아오면 될 일이야."


켈베로스 분대 하나가 한때 베르됭이라고 불렸던 지역을 정찰하고 있었다. 유서깊은 도시였고 먼 과거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격전지이기도 했던 도시. 도시 외곽의 숲으로 들어서자 으스스한 공기가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소식 들었어? 철충들 최근에 그 새로운 괴물들에게 엄청나게 박살나고 있대."


"웃기는 소리좀 하지 말라고 해. 그 괴물들이 누구한테 박살이 난다고 그래? 인간님들도 죄다 쓸어버린 그 괴물들이."


"하긴 그렇지. 하아... 이게 무슨 고생이야... 거리만 된다면 당장 탈영해서 오르카라는 세력으로 도망치고 싶다니까."


"누가 아니래냐.... 거긴 최근에 엄청 잘나간다던데... 오메가도 델타도 최근에 개박살났ㄷ......"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켈베로스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그래도 으스스했지만 숲이 안개로 자옥했기에 더욱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검은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자 켈베로스들은 긴장한채 방패를 들었다.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오네트들이었다. 꺼림칙한 놈들이지만 어쨋든 아군이다. 켈베로스는 한숨을 내쉬며 방패를 내렸다.


"정찰보고. 숲속 이상없음."


마리오네트가 영혼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래.... 이상없는데 니네때문에 간떨어지는줄 알았ㄷ...."


땅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뻗어나온 가시가 마리오네트를 말 그대로 두동강 내버리는 모습이 잡혔고 모두가 말을 잃었다. 두번째 가시가 뻗어놔와 마리오네트들을 다시 공격할때가 되어서야 켈베로스들은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지?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저건 또 뭐지? 왜 땅속에서 튀어나오는거지? 생각 할 시간도 없었다. 통신을 연결하려 시도해보지만 제대로 되지가 않는다. 정신없이 달리던 중 마침내 통신기 너머로 음성이 들려온다.


"찰리 정찰중대? 응답하라. 무슨 일인가?"


"베...베베베...베르됭 숲 외곽에서!!! 괴... 괴물들이!!! 따... 땅속에서 가시가!!!!!!! 아아아아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설명 바란다!"


"제대로 설명하게 생겼냐고!!! 닥치고 병력이나 보내!!! 당장!!!!!! 당......"


켈베로스가 말을 흐린다. 눈 앞에 있는 한무리의 괴물들.... 잠복한 채로 숨어있었던 바퀴들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 괴물들이 정찰대를 모두 처리하는데엔 5분도 필요없었다. 척후병을 없앤 저그 무리가 마침내 펙스의 영토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저그는 베르됭을 두 방향으로 공격했다. 세력이 작아보이는 북쪽의 부대는 적을 방심시켜 역공을 이끌어내려는 무리였다. 펙스는 보기 좋게 미끼를 물어버렸고 남쪽의 주공이 그대로 반쯤 비어버린 베르됭 방어선을 돌파하며 북쪽으로 싸먹는 구도를 만들어내는데에 성공했다. 이 벌레들은 보통 벌레들이 아니었다. 실제로 저그는 테란, 프로토스조차 고개를 저을정도로 교활하고 악랄한 녀석들이었다. 이 행성에서 가장 강할것으로 추정되는 철충이 박살나던 시점에서 이미 펙스는 이들에게 문제조차 되지 않는 세력일 뿐이었다.


잠시 후, 도시 내부로 오렌지빛의 분출물이 날아들고 있었다. 분출물에 명중한 AGS들이 완파되고 바이오로이드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궤멸충의 부식성 담즙이었다. 기간테스들을 순식간에 걸렛짝으로 만든 저글링들이 도시로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저글링의 뒤로 저그 무리의 원거리 저격수인 히드라리스크와 튼튼한 바퀴들이 따라들어오고 있었다. 중간중간 섞여있는 초록색의 맹독충들은 펙스의 부대를 말그대로 부대 단위로 쓸어버리고 있었다.


그 뒤로 유유히 무리어미가 들어왔다. 무리어미의 주변에는 그녀를 호위하는 추적 도살자라 불리는 변종 히드라리스크가 따라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무리어미는 여왕들을 시켜 크고 중요해보이는 건물마다 일벌레들을 보내라고 명령했다. 베를린에서 그랬든 정수가 보관된 상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무리어미는 어서 하루빨리 둥지탑을 복구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뮤탈리스크와 갈귀로 하늘을 뒤덮었던 그때의 위용을 되찾고 싶었다. 


전장을 둘러보고 있을때쯤 무리어미의 옆으로 한마리의 여왕이 다가왔다. 무엇인가를 보고하려는 모습이었다. 무리어미는 여왕과 몇마디를 나누었고 곧바로 여왕이 말한 장소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왕이 말한 장소에 있는 것은 커다란 시설이었다. 과거 테란의 중요 거점을 공격할때마다 보였던 산업시설의 모습과 유사했기에 무리어미는 그런 시설이라고 생각했다. 시설에 들어서자 겁을 먹은채 웅크리고 있는 시설 담당 바이오로이드가 보였다. 저글링들이 바로 달려들어 죽이려는 모습을 보이자 무리어미가 손짓했다. 손짓을 본 저글링들이 얌전해졌다. 무작정 죽여서는 안될 일이다. 쓸모가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 본 후 쓸모가 없다 판단되면 그때 없애도 늦지 않는다.


무리어미는 데리고 온 감염충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경 기생충이 뻗어나와 포츈을 향해 나아갔다. 겁을 먹은 포츈은 도망치지도, 저항하지도 않고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다. 마침내 신경 기생충이 포츈의 목에 닿았고, 촉수 끝의 바늘을 포츈의 목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짧은 비명과 함께 포츈이 축 늘어졌다. 이윽고 바늘에서 신경 세포들이 뻗어나와 포츈의 몸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유기 생명체나 로봇의 신경을 장악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장악당한 포츈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동화작용.... 완료......"


이윽고 무리어미가 다가가 포츈을 바라봤다. 사이오닉 능력을 통해 포츈의 머릿속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이 시설은 마리오네트라고 하는 인조 병사를 만드는 시설이었군. 이 녀석들이 이 시설을 맡고있는 녀석들이었고.... 가만... 자원만 있다면 이 병사들을 무한정 양성이 가능하다는 의미인가....? 이거 꽤 쓸만하겠는걸? 적의 물자로 아군의 수를 늘리는 것이니 이렇게 수지맞는 교환도 없을 것이었다.


감염충이 촉수를 떼어내고 완전히 장악당한 포츈이 비틀거리며 업무 위치로 이동했다. 나머지 벌벌떠는 인원들도 하나씩 감염충에게 자아를 빼앗기고 저그의 수족으로 전락해 갈 것이었다. 사실 이게 저그의 방식이었다. 도움이 될만한 존재는 군단의 일원으로 흡수하고 필요없다 판단되는 존재들은 말살해버린다. 저그는 늘 그래왔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었다.


무리 어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일벌레를 불러들였다. 일벌레가 시설 한가운데로 들어와 변이하기 시작한다. 바이로파지였다. 완성 되고나면 이 시설 전체에 저그 바이러스가 퍼지며 만들어지는 마리오네트들을 무리의 충실한 하수인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이 거대한 시설 전체가 거대한 감염된 테란 공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무리어미는 자가라를 매우 싫어했지만 자가라의 말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그 거만한 무리어미는 칼날 여왕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무리어미라고 했다. 칼날 여왕은 자가라에게 "통찰"의 중요성을 말했다.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당장의 이득이 아니라 더 뒤의,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거 하나는 정말 맞는 말이었다. 많은 무리어미들이 당장의 이득만을 쫒다가 낭패를 보고는 했으니까. 칼디르에 파견되었던 무리어미 나파시가 그렇게 죽었었지. 프로토스를 우습게 보던 그녀의 어리석은 최후는 교훈으로 새길만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꽤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이 시설의 인원들을 죄다 죽이지 않고 이렇게 살려둬서 이용해먹는 것이야 말로 그 가르침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리어미는 희미하게 웃음지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만큼 기분좋은 일은 없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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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부터 다시 분량 늘리고 삽화를 넣을예정. 펙스는 이제 어찌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