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평화로운 하와이의 해변. 오늘은 잠시 오르카호의 시설을 정비하고 각 부대에게 휴식을 주자고 사령관이 결정했기에 오르카호는 이곳에 정박해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기분 좋게 솔솔 불어오고 쨍쨍한 햇빛은 모래사장에 누워 쉬라는 듯이 해변에 나와있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그런 자연의 헌사에 감사하는 의미에서일까. 평소라면 자원캐랴 철충 상대하랴 쉴틈없이 싸우고 있었을 오르카호의 선원들도 오늘만은 무거운 무기와 장비들을 내려놓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피부를 태우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저 해변의 중앙을 살펴보면 서로를 죽일 기세로 비치 발리볼....이라 쓰고 투포환 날리기를 하고 있는 샬럿과 앨리스가 있고 그 옆을 바라보면 달리기 내기에서 연전 연승중인 칸이 보인다.


그 외에는 그런 칸을 도촬중인 탈론 페더와 발키리를 데리고 선텐중인 레오나 역시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 넓은 해변에 있는 것이 저들만은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부대 소속이고 다들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딱 한가지 모두가 동일한 것이 있다.


바로 다들 신체가 거의 다 들어나는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것! 부드러워보이는 살결들이 사방에 만개하고 남성들의 로망이 담긴 풍만한 흉부와 잘룩한 허리 빵빵한 하반신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것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지금 그는 몸이 아픈 탓에 의무실에 누워있어 그 진수성찬들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그녀들이 그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과거 한 거대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의무실은 그곳에서 근무하는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방문하는 것을 꺼리는 장소가 되었다.


물론 의무실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는 한 존재에 의해 꺼리게 된 것이다.


뭐, 이 문제는 잠깐 뒤로 하고 해변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한 웃긴 장관이 있다.


"자 구보를 뛰며 말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적의 스틸라인 부대!"


오르카호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대이자 가장 군기강을 빡세게 잡기로 유명한 스틸라인의 대원들이 하나의 거대한 뱀을 연상시키는 줄을 이룬채 이 날씨 좋은 날에 구보를 뛰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냥 뛰는 것도 아닌 그녀들의 군기반장 레드후드의 사심이 듬뿍 들어간 웃기지도 않는 구호를 외치며 뛰고 있자니 다른 부대원들조차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ㅅㅂ 이 좋은 날에 왜 이 지랄을...'


오른편에서는 앵거 오브 호드가 무적의(풉!) 스틸라인 부대~라고 놀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왼편에서는 그런 그녀들을 미련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시선이 더해지자 중앙에서 뛰는 중인 이프리트는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부대들은 지금 사령관님이 특별히 내려준 휴가를 만끽하고 있는데 어째서 스틸라인만이 이런 고된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스틸라인도 원래는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에게 휴식시간을 줄 마음이었다. 하지만 브라우니들중 폐급에 속하는 이들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발리볼을 하던 중에 공을 그녀들의 지휘관 불굴의 마리의 머리에 맞혀버렸고 그녀는 괜찮다며 그들을 위로했지만 하필이면 그 모습을 봐버린 레드후드가 극대노를 시전해버린 것이었다.


지금 이를 갈고 있는 이프리트 704번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그 브라우니들을 어떻게든 찾아서 족쳐버릴 마음이 만연했지만 이프리트는 그 생각을 가장 열심히 해서일까. 다리가 느려져버렸고.


"거기 이프리트-704! 발이 보인다!"

"흐헉.....허헉.......으윽...."


바로 옆에서 메가폰을 통해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지는 뛰지도 않으면서 우리한테만 그런다는 억하심정이 들은 이프리트는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도 하극상은 안되기에 간신히 힘겨운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레드후드 연대장님...저..배가 너무 아픕니다....으윽!?"

"많이 힘든건가?"

"속이 뒤틀리는 것 같습니다. 장을 손으로 쥐어짜는 듯한...아악!!"

"그럼 의무실로.....윽..의무실에는 그 남자가......하..어쩔 수 없군. 전원 잠시 정지!"


레드후드는 한숨을 내쉬고는 메가폰을 통해 큰 소리로 외쳤고 다른 스틸라인의 일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10분간 휴식하도록. 난 이프리트 병장과 의무실에 다녀오겠다."


이프리트는 그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의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의무실 담당인 다프네에게 빌어서라도 휴식을 받아낼 생각이었는데 깐깐하기로 소문난 상관인 그녀가 함께 간다니.


이건 마치 꾀병으로 조퇴하려는 학생에게 의무실에 같이 가보자며 선생님이 따라오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이 눈치도 없고 연애복도 없을 상관은 이럴때만 쓸데없이 자비롭다며 속으로 외쳤다.


"아. 아닙니다! 저..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연대장님이 굳이 수고하실 필요는..."

"아니. 같이 간다. 그 뱀같은 남자가 스틸라인에 마수를 뻗는 것을 두고볼 수는 없으니 옆에서 내가 감시해주겠다. 따라오도록!"

"으으....가..갑자기 괜찮아 진 것 같습니다..하하하...그.그럼 다시 구보를..."


만일 여기서 그녀와 동행한다면 꾀병인 것은 단번에 들통날테고 그 이후에는 상상하기도 싫은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는 이프리트는 이제 애처롭게 보일 정도로 발버둥쳤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게 있으니 다녀오도록하지."

'야! 브라우니! 너도 뭐라고 말좀 해봐!!'


만만한건 후임이라더니 바로 옆에서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는 브라우니를 향해 눈빛을 보낸 이프리트는.


'죄송합니다! 병장님! 저희를 위해 희생해주십쇼!'


저 배은망덕한 브라우니의 행동에 그대로 절망한채 질질 끌려가게 되었다.


'시발......그냥 여기서 확 모래에 코 박고 죽어버릴까?'

"역시 안색이 좋지 않군. 그래도 걱정마라. 곧 의무실이니."

"하하하....네...감사합니다...."


그렇게 발이 무거운 이프리트를 질질 끌고 의무실에 도착한 레드후드는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부들거리는 팔을 그대로 뻗어 문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간호부장님. 들어가겠습니다."

"어. 들어와."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두사람을 맞이하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새하얀 피부에 노란 눈을 가진 여리여리한 체형의 청소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약해보이고 보호욕을 자극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등에 메여져있는 거대한 저격총과 사방에 놓여있는 정체 불명의 약품들, 그리고 사방에 붙어있는 각 대원들을 위한 약 처방진들을 보면 그가 결코 평범한 청소년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약간 긴장한 레드후드는 숨을 고르며 일단 그에게 형식상 인사를 건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오르카호의 공식적인 두번째 인간이었으니까.


"승리! 간호부장님, 여기 이프리트 병장이 속이 좋지 않다고 해서 왔습니다."

"승리. 그래 일단 여기 앉아. 간단한 진찰부터 시작하자."

"저...간호부장님...연대장님..저 진짜로 안아픕니다..."

"작은 부상도 신경쓰지 않으면 커지니까. 곧장 관리하는게 좋아. 그러니 사양하지 말고 앉으렴."


이프리트는 바로 옆에서 노골적으로 시선을 보내는 중인 레드후드와는 대조되게 마음이 편해지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손으로 톡톡 치는 그의 모습에 제빠르게 그 의자로 몸을 던졌다.


'제발. 아자젤님! 제 배가 진짜로 아프게 만들어주세요!!!'

"일단 손으로 살짝 눌러볼게. 아픈데가 있으면 말해줘."

"손으로...!"


여성의 배에 손을 올린다는 말을 가볍게 하는 그의 모습에 레드후드는 역시 마리 대장님의 말대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그렇고 그런 행동을! 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이건 엄연히 의료적인 행위야. 배탈은 평범하게 소화불량인 경우도 있지만 간혹 심한 병에 의해 부가적으로 오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래서 이프리트 병장. 지금 아픈곳은 어디야?"

"하복부가...살짝 따끔거립니다."

'그 외에는?'

'제 미래가 너무나도 아픕니다! 제발 살려주십쇼!'


이프리트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에게 눈치를 보내는 간호부장. 그 눈치를 빠르게 캐치한 이프리트는 형식상으로는 사령관 보다 살짝 모자른 권력을 가진 그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그는 눈을 한번 깜빡거린 다음 청진기를 꺼냈다.


"그럼 일단 더 정확하게 해야겠네."

"부탁드립니다."


부탁이라는 단어에 특히 악센트가 들어가 있는 것을 눈치챈 그는 살짝 튀어나온 이프리트의 배에 청진기를 이리저리 갖다댄 후에 레드후드와 그녀를 번갈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배탈이야. 아마 격한 운동을 무리일 것 같아."

"....!"


방금전까지 연병장에서 완전군장을 입은 채로 뛰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던 이프리트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배탈이라면...."

"음..원인은 여러가지인데. 추운 장소에서 배를 노출하고 장시간있었거나 차가운 음식을 먹어 속이 꼬였을 때, 그리고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가 그 원인이지. 물론 공통적으로 누워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면 금방 나아."


그는 동공지진이 일어난 이프리트에게 살짝 윙크했고 이프리트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바닥에 쓰러저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내 배가 찢어지네!! 아이고!!!"

"이프리트 병장?!"

"음..아무래도 이프리트 병장은 훈련 참여가 힘들 것 같지? 레드후드 연대장."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던 이프리트를 번쩍 들어올려 침대에 눕혀주며 그가 말하자 레드후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꾀병이라면 모를까. 진짜로 아픈 사람을 굴렸다가 마리 대장에게 걸린다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알겠습니다. 마리 대장에게는 제가 말씀드리지요. 이프리트 병장? 부디 '무사히' 치료 받은 후에 복귀하도록."

"넵!"

"아픈데도 힘찬 외침은 마음에 든다. 그럼 간호부장님. 전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픈 사람이 있으면 주저말고 이쪽으로 보내고."

"네. 승리!"

"승리."


레드후드는 내키지 않는 다는 듯한 발걸음을 옮기며 몰래몰래 그를 흝겨 보았다. 그 시선을 그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익숙하기에 뒤돌아보지 않았고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이프리트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간호부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아프면 쉬어야하는거야. 군인은 잘 먹이고 잘 쉬게 해줘야 잘 싸우니까."


저흰 그걸 못해본지가 오래인데요. 하는 시선을 보내면서도 고마움에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감사를 표하는 이프리트.


"오늘은 다프네가 바빠서 다행이네. 다프네는 솔직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드리아드가 자꾸 땡땡이를 치려하니까."

"땡땡이입니까?"

"정확히는 우리 사령관님이 간호해주기를 바라는거지. 물론 지금은 내가 해주지만."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이프리트는 도대체 왜 다른 상관분들이 그를 꺼려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와 마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행동하나하나마다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그의 말 역시 타인의 생각을 먼저 알아차리고 배려해주는 것을 보면 오르카호에 합류하기 전에도 분명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프리트의 시선을 뒤로한채 그녀에게 일단은 환자니까 누워있으라며 이불을 덮어준 그는 배를 토닥여주면서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꾀병 환자가 많네. 의무실은 꾀병 환자들의 쉼터가 아닌데 말이지."

"어....설마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응. 저기 한명 있어. 이 오르카호에서 가장 부지런하면서도 가장 게으른 사람."


이프리트는 자신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들은 사람이 또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끼며 시선을 손가락이 향한 방향으로 돌렸고 그곳에는 커튼이 처진 침대가 한 구 더 있었다.


이프리트는 지금 자신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들은 누군지 모를 저 사람에게 반드시 침묵의 서약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그리고는 손을 뻗은 후 커튼을 확 당겨버렸다. 그러자 열리는 커튼에서는 간호부장과 대조되게 큰 키를 가진 거구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땡땡이 치는 나쁜 아이는 누구냐!!"


이프리트는 어차피 땡땡이를 칠 대상은 브라우니 같은 폐급들 뿐일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감있게 커튼을 열었으나.


-두둥!!


이라는 기묘한 효과음과 함께 등장한 한 남성의 얼굴을 보고는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커튼 너머의 존재는 이 오르카호의 최고 권력자이자 전후무후한 세계 최고의 전략가이며 혼자서 서른명의 바이오로이드를 말 그대로 '떡'실신 시킬 수 있는 존재.


"안녕?"

"왜 사령관이 거기서 나와?"


오르카호의 사령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원스타도 아닌 쓰리 스타 그 이상의 등장에 이프리트는.


으아아아아아 안돼에에에에에에에!!


임관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작품 내 간호부장의 외모.


"사령관님은 절 처음 만났을 때. 가능이라 외치셨답니다. 그런데 그 가능이라는 단어의 뜻이 뭔가요?"


"그리고 왜 마리 소장님은 절 싫어하시면서 가끔씩 절 보실 때마다 음! 이라는 말을 하시는건가요?"


이름: (미정)

키: 162.7 cm (다프네: 굳이 소수점까지 기록하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몸무게: 47kg (레오나: 혹시 따로 다이어트라도 하는거야?)

성향: 중립 선 (사령관: 의외로 질서 선이 아니네?)

특징: 과할 정도로 착함. 호구가 아닌가 의심될 수준임. 전에 샐러맨더와 도박을 위해 참치를 빌렸는데 아직도 갚으란 말이 없었음. (칸: 이걸 작성한 워울프와 샐러맨더는 지금 당장 내 방으로 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