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37576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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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습니까, 폐하.”

 

집무실의 문이 살포시 열리고 노란 머리칼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심스레 문을 닫은 아르망은 쭈뼛거리며 들어와 그가 권한 자리에 먼지라도 날릴까 싶어 가벼운 몸짓으로 자리했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탄 듯한 코코아가 두 잔, 그리고 체스판이 놓여있었다.

한가롭게 체스나 두자고 부른 것은 아닌 모양이고, 불미스러운 사건에 관한 청취를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게임에 집중하게 만들어 스스로 진상을 밝히도록 유도하려는 사령관의 속셈이 불 보듯이 뻔하게 보이는 아르망이었으나,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속셈을 읽었다는 사실을 굳이 내보이는 것은, 대화의 우위를 점할 때 굳이 필요없는 일이기도 했다.

 

“체스판이로군요?”

“한 판 둘까? 잘할 것 같은데.”

“저는 져 본 적이 없답니다.”

“내가 먼저 둬도 되겠지?”

 

그 말을 끝으로 사령관이 말판을 움직였다.

체스는 기본적으로 수 싸움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더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

판도에 따라 행해지는 전술이 매판 다르고, 많은 데이터가 쌓여있는 아르망을 상대로 사령관이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아르망을 이기기 위해 사령관은 매번 다른 패턴의 전략을 사용했으나, 사령관의 말이 아르망에게 위협적으로 닿는 일은 없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기를 보는 것만 같은 압도적인 차이가 체스판 위에 매판마다 벌어지고 있었다.

 

“체크.”

“체크입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폐하.”

“…제가 또 이겼습니다.”

 

아르망은 사령관의 기분을 살폈다.

연달아 아르망의 승리가 계속되고, 계속 패배하기만 하는 사령관의 표정은 첫판과 같은 무표정이었다.

이상한 점은 표정 뿐만이 아니었다.

사령관은 체스를 두는 내내 말이 없었다.

간혹 패배 후 다시 두자는 말 외에는, 어디에 말을 놓아야 할지 고민할 때 내는 짙은 신음 말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판 공통적인 특징으로,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나이트’는 절대로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경기는 이후로도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 이어졌다.

틈틈이 마시던 코코아는 아르망이 컵을 비울 때마다 사령관이 새로 타왔다.

이제 지치고 패배에 싫증이 날 때도 되었건만, 사령관은 묵묵히 ‘한 판 더’를 외쳤다.

 

초조해진 쪽은 아르망이었다.

침묵 속에 이뤄지는 목적 없는 경기에 아르망은 점점 입안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리리스와의 사건에 대해서 캐물으며 체스를 뒀더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온전히 체스에만 집중하며 대화 한 줌 오가질 않으니 무엇보다도 지루하고 피곤했다.

 

“폐하…체크입니다.”

“한 판 더 두지.”

 

아르망은 자신이 벌써 몇 판을 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수히 많은 수를 둔 것 같은데, 마치 감정 없는 기계처럼 한 판 더하자고 말하는 남자가 조금은 무서워졌다.

자신이 사령관의 탈을 쓴 기계를 상대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예지로도 그의 의중을 읽을 수 없었다.

보이는 미래라고는 계속해서 지쳐가는 아르망과 무표정한 사령관의 체스 경기.

속 시원하게 목적이라도 알았더라면, 이 의미 없는 경기를 지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르망은 침을 꼴깍 삼켰다.

반복되고 있는 자신의 승리,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하고 있는 이 상황을 끊기 위해서 자신이 패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지 아르망은 고민했다.

 

이 의미 없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체스의 패배라고 생각한 아르망은, 실수인 척 사령관에게 형편 좋은 위치에 말을 옮겼다.

 

“뭐 하는 거야. 다시 둬. 거기 둘 거 아니잖아.”

“히끅.”

 

사령관은 단호한 목소리로 아르망을 일렀다.

일부러 지는 것도 통하지 않으면 극적으로 판을 이끌다가 마지막에 져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승리보다 더 힘든 조건이었다.

 

“폐…폐하.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아니.”

 

아르망은 눈을 질끈 감고는 다시 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포기하지 않고 한 판을 요구하는 남자의 모습.

오히려 패자가 투지가 불타고 승자는 점점 말라가는 미래의 모습이 아까와 같이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었다.

 

“폐하…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잔인한 얘기겠지만, 폐하는 절대 저를 이기실 수 없습니다……. 저는 쌓아온 데이터로 미래를 예지하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폐하의 패턴은 이미 제게 전부 입력이 되었습니다.”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너를 무슨 수로 이겨.”

“그렇다면 어째서….”

“그건 네 특기인 ‘예지’로 맞춰봐야 이 시간이 의미가 있을 거야. 뭐해? 네 차례야.”

 

아르망은 축복처럼 느꼈던 자신의 능력인 예지가, 마치 저주와도 같다고 느껴졌다.

수없이 그려본 자신의 미래에 이 연옥에서 벗어날 방법 따위 그려지지 않았다.

아르망이 본 미래에서는 하루가 지나가도, 매일 이곳에 불려 무의미한 체스를 두는 미래가 그려졌다.

 

내일이 영영 오지 않는 하루.

온종일 흑백의 체스판과 저 무표정을 바라보는 매일.

아르망이 바랬던 관계의 진전도, 경쟁자의 파멸도, 그 무엇하나 이룰 수 없고 반복되는 지옥의 수레바퀴.

 

'이럴 줄 알았으면 경호 대장을 필요 이상으로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자신처럼 미래를 엿본 사령관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다.'

'애초에 이 모든 상황이 사령관의 손바닥 위에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때쯤 아르망은 마주 앉은 소파에서 내려와 잽싸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주세요. 폐하! 제가 모두 잘못했습니다!”

“왜 이래, 일어나.”

“아닙니다! 차라리 제대로 된 벌을 받겠습니다!”

 

아르망은 일으켜 세우려는 사령관의 손을 한사코 거절하고 사령관의 발목을 붙잡고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일어나, 아르망.”

“제발 이 괴롭힘을 그만둬 주세요.”

“알겠으니까 일어나. 그리고 단순한 괴롭힘이 아닌 ‘교육’이다.”

 

추한 모습을 보인 아르망은 사령관의 말에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사령관의 눈은 여전히 체스판에 꽂혀 있었지만, 아르망더러 계속 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네 포기가 빨랐네. 이 체스판, 우리가 두던 매 판에 네가 그토록 알고 싶던 정답이 있다.”

 

사령관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 몫의 커피와 아르망 몫의 코코아를 위한 물을 끓이고는 체스판을 보고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르망은 성숙해 보이고 실제로 어느 정도 성숙했지만, 소녀의 외견처럼 아직 아이 같은 구석도 있다.

아이에게 과분한 능력이 주어질 때, 그 능력의 무게와 책임감을 알려주는 것은 어른의 역할이었다.

무조건 벌로써 잘잘못을 다스리는 것도 좋지 않다.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실패를 양분 삼아 성장해야지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직 어른아이인 아르망에게는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매번 패배하기만 했던 체스판, 사령관은 그곳에 힌트를 남겨두었다.

알아채고 못 채고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아르망은 사령관을 똑 닮았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오만함, 그러나 역으로 능력에 취해 능력 밖의 일은 생각 못 한다는 점이 특히나 닮았다.

 

사령관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고,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을 깨달았다.

아르망이 자신의 부관이 되어 이심전심으로 도와주어야만 앞으로의 난관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내부 분열은 도저히 지켜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조직에 있어 가장 위협적인 것은 적대세력이 아닌 불화이다.

 

여전히 체스 말을 이리저리 옮겨보는 아르망을 보고 사령관은 커피를 홀짝였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시간을 더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


 

깜빡거리며 간신히 빛을 전해주던 전등이 매가리 없이 끊어졌다. 

사방이 가로막힌 좁은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기껏해야 추억을 회상하고 때론 후회에 몸부림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방도가 없다.

그저 손가락으로 찬 바닥을 두드리며 규칙적으로나마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뿐이었다.

 

경호 대장이란 위치에서 죄인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된 것이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령관의 옆을 지켜야 하는 자리가 아닌, 가장 멀리 있어야 하는 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리리스는 자신이 총을 쏘던 순간을 잊지 않았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했었을지 이곳에 갇힌 내내 생각했다.

 

“절대.”

 

하늘 같은 주인은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는 오르카호 인원 모두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에 어느 정도 구별은 필요했다.

모질지 못한 주인을 대신해서 오르카호에 위협이 되는 인원을 대신 혼내주었을 뿐이다.

착한 리리스 또한 모질지 못하니 나쁜 리리스가 혼내주었을 뿐이다.

별것도 아닌 단순한 사실이었다.

 

“푸흐…….”

 

지금 벌을 받는 것도 나쁜 리리스의 몫이고 착한 리리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 착한 리리스로 살면 모든 것이 끝나는 일이었다.

 

무능하고 머리 나쁜, 그런 리리스는 필요 없었다.

무엇보다도 사령관이 싫어하니까.

내색하진 않더라도 분명히 싫어할 테니까, 차라리 없는 편이 훨씬 나았다.

 

“꺄핫…꺄하하하핫!”

 

별안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좁은 방 안에 검은색의 행복감이 피어올랐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검정을 모두 버리려는 듯, 리리스는 옷가지를 찢기 시작했다.

더러운 검은 색은 필요 없었다.

깨끗한 순백의 하얀 것만을 남겨야 했다.

 

“히힛…이제 됐어요. 주인님. 착한 리리스가 주인님을 기다려요.”

 

리리스는 유일한 입구인 문을 향해 다소곳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은발의 머리카락, 하얀 피부와 반쪽의 하얀 의복만 남은 착한 리리스는 마치 순백의 신부처럼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신랑을 기다렸다.

호박색 눈 안에는 그녀가 버려버린 검은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굳게 잠긴 독방 밖으로 여성의 흥겨운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입구를 지키던 켈베로스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노래소리에 오한을 느껴 몸을 떨어야 했다.



***



“끄응.”

 

폐하가 말씀하시길, 지나가 버린 체스판의 기록 위에 힌트가 있다고 하셨다.

폐하께서는 그분 특유의 화법인지, 직접 말씀하시질 않으신다.

마치 내게 주어진 시련처럼, 애매한 해석의 여지만을 남겨두고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라신다.

 

데이터에 기록된 소완 씨께 칼을 겨누시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힐끔 폐하를 훔쳐봐도, 힌트를 주신 이후에는 이쪽으로 시선 한 번 주지 않으시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신다.

 

체스 말을 이리저리 옮겨봐도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시던 패턴에 무언가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까 생각해서 복기를 해보아도, 폐하는 스스로 말 하나를 움직이지 않는 패널티를 안은 채 한 번의 승리를 위한 모든 것을 시도한 흔적만이 보였다.

 

‘내 특기인 예지로 알아내 보라고?’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내 예지는 앞으로 일어날 일만 과거의 정보로 알 수 있고, 개개인의 심정은 알 방도가 없다.

더군다나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며 낸 수수께끼 같은 문제는 더더욱.

 

이쯤 되면 인정해야만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내 예지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일어난 과거와 현재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으음…….”

 

폐하께서는 열심히 두셨다만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를 하시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내 체스 말을 취하기 위해 몇 수 앞을 내다보신 흔적도 보이지만, 이마저도 모두 읽혀버려서 실패로 돌아갔다.

매판 전력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내게 공격수단은 다양했고 무엇을 내주어야 할지, 무엇을 취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폐하의 말들은, 전쟁으로 치면 오합지졸 군대나 다름없었다.

손실을 최소화하고 왕을 위협하는 ‘체크’만 노리던, 마치 오르카호의 전력 운용과 닮은 상황.

그리고 필요한 순간마다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나이트’ 말.

폐하가 하시려는 말씀을, 이젠 알 것 같다.

 

“…비유였군요.”

 

폐하께서는 내 말에 천천히 돌아서셨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는 내가 이 서술형 문제의 정답을 모두 말하기를 바라고 계셨다.

 

“이 체스판 위는, 저희가 처한 상황입니다. 폐하께서 쓰신 흑색 말들이 저희 오르카호, 백색은 우리의 적이겠죠.”

“으흠. 또?”

 

폐하도 참 고약한 취미를 가지셨다.

애초에 내 예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폐하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으셨던 것은, 사건에 대한 추궁이 아닌 내게 하는 진정한 충고.

예지로 알 수 없는 것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흑색 말을 사용하신 폐하께서는 백색 말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미동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쪽의 흑색 나이트를 가리켰다.

 

“나이트, 주인을 섬기는 기사. 오르카호의 경우엔 경호 대장이죠. 나이트만이 가진 이동 능력을 전력으로 쓸 수 없는 상황이면 흑색은 백색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남자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를 직접 혼내지도 않고 이런 방법을 찾아 스스로 내 죄를 고하게 하다니.

 

“리리스 양의 경우에는 그녀를 자극한 제 잘못이 맞습니다, 폐하. 그녀를 거둬들이지요. 더불어 진실 된 사과를 건네고 그녀의 벌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가까운 것에 눈이 멀어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아르망.

이번 체스에서 내 예지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말판 위 싸움은 내가 이겼으나, 현실이 내게 가져다 주는 패배감은 꽤 씁쓸했다.

아마 폐하께서는 이를 두고 내 능력을 과시하지 말라고 이른 것임이 분명했다.

 

내 능력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유혈이 낭자하던 시대극에서도, 샬럿 총사대장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예지능력 덕분이었다.

 

내 예지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한시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샬럿 총사대장도, 함교 위에서의 폐하도 모두 행동을 예측해 그들이 움직일 가능성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보란 듯이 내 완벽했어야 할 예지를 피해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다.

 

“죄송, 죄송합니다… 내가 왜 이러지. 눈물이 안 멈춰.... 흑.”

 

나답지 않게 눈물이 흘러나온다.

폐하 앞에서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내가 저지른 못된 짓과 리리스 양이 받은 벌이 머릿속에 떠올라 솔직히 겁이 났다.

 

내 예지는 폐하께서 우는 나를 다독여주는 미래가 펼쳐졌다.

보란 듯이 내 예지를 피해낸 폐하니까, 이번 예지도 믿을 수 없어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

 

눈물을 훔쳐내는 와중에 폐하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방금 엿봤던 미래가 현재로 다가와 불안해하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아르망, 네 예지는 분명 도움이 되면서도 불완전해. 이번 계기로 느꼈겠지? 경호에 실패한 리리스도 마찬가지야. 세상에 완벽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어야만 해.”

 

이날 나는 많이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절대 들을 리 없을 줄 알았던 나만을 위한 충고와 위로.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지만, 그 말은 틀렸다.

나를 감싸는 품의 주인은 내게는 너무나 완벽했다.

나는 이 완벽함을 놓치기 싫어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따뜻한 품에서 어리광을 부려야만 했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사람.

그렇기에 더욱 알아가고 싶은, 그런 사람.

내 불완전함, 내 과오, 나의 모든 것을 가득 채울 사람.


적당히 따뜻한 품의 온도, 적당히 날 보듬는 말투, 적당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

이 모든 적당한 것들이 내게는 너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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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채널 분위기 심상찮음.

어느 정도 가라 앉은 것 같긴 한데, 아니면 이미 침몰한 상황일까.

왜 내가 복귀만 하면 이런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