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마세요, 주인님

나쁜 햇츙들을

다 치워버렸는데...

라디오에서 들리는 주인님의 이별통보는

마음을 찢어버리며 저를 아프게 해요

바라봐주세요, 저를 안아주세요

사랑해주세요, 저를 잡아주세요

아픈 이 마음을 구해주세요

자명종이 울리면 이 악몽에서 깨겠죠?

차가운 이 마음을 리제에게 안겨주지 마세요

카세트 테이프가 망가질 때까지 주인님을 기다릴게요

타버린 햇츙들의 시체 위에서 주인님의 사랑을 기다릴게요

파란 하늘 아래 피어나는 제 마음을 알아주세요

하트로 그려낸 제 사랑을, 전부 받아주세요





가야만 해.

나는 그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다른 빛깔도 모두 품는 게 내 일이라

라이터와 휘발유를 들고 협박하는 리제 너라도

마음 깊이 잡아줘야 했어.

바보같이, 적절한 거리를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에 눈먼 너는 나말고 안 보였나봐.

아스란히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사랑이라

자침당한 배처럼 너는 내 사랑이 전부 네가 아님을 알았을 때

차가운 심연에 스스로를 가두었나봐.

카타르시스시였니, 아니면 피에로의 절규였니.

타오르는 숙소에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찌를 때

파국을 알리는 너의 미소는 내게 결단을 종용했어.

하늘에게 묻고싶어. 내가 널 구할 수는 없었는지.... 





거짓말이라도 좋아요

너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듣고 싶어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주인님의 목소리...

러시안 룰렛하실래요? 저한테 약실 가득 총알을 채워주세요.

머리에 대고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기면

버림받은 제 비참한 운명도 끝나겠죠.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요

어서 제게 와주세요, 제게 온기를 주세요

저릿거리는 마음에 흐르는 눈물이 너무 쓰려요

처참하게 찢어진 제 사랑을 이어붙여주세요

커터칼 하나라도 주인님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치울게요

터져버린 햇츙들의 시체를 다 치우고 저희의 뜰을 만들게요

퍼뜨려요. 저와 주인님이 만든 사랑의 결실을.

허둥대지 마세요, 오래 걸려도 와주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거품이 꺼졌다가 다시 일었다.

너를 그곳에 두고 온 게 잘못이었어.

더러운 내 실책이 양심을 찔러서 너를 다시 찾으니

러브호텔처럼 꾸며진 공간이 있었지.

머리카락과 곳곳에 칠해진 핏자국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버스럭거리는 손톱이 밟히는 순간, 그만 얼어붙고 말았어.

서릿발 같은 내 사랑이 날 묶은 걸까

어깃장을 두는 걸 용서치 않겠다는 듯, 내가 멈추자 마자

저멀리서 네가 뛰쳐나왔지.

처분한 해충의 피가 마르지 않은 칼등으로 날 내려치자

커다란 고함과 함께 내 경호원들이 널 향해 쐈어.

터져나오는 총성 너머 들리는 네 마지막 목소리가

퍼지면서 내 깊숙한 곳에 박혔어

허파를 찔렸던 걸까, 왜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 숨가쁠까.





상황 설명하면 사령관의 사랑이 전부 자신에게 향하지 않음을 깨달은 리제가 사랑에 눈이 멀어 불지르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돌아다니면서 찔렀어. 사령관은 그걸 보고 도주 후 리제에게 추방 통보를 한 뒤 오르카호를 빠져나온 거고. 그후 시간이 흘러 사령관이 리제를 다시 찾자, 리제는 이미 죽은 바이오로이드의 시체를 도구로 사령관과 자신의 낙원을 만들어 놓고 사령관을 납치하려고 하다가 사살당해.



 드라마 각본집 읽다가 사랑에 집착하는 대사 읽고 느낌 받아서 쓴 건데, 역시 N행시는 사람 머리를 쥐어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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